허난설헌 [許蘭雪軒]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강릉(江陵) 출생. 허균(筠)의 누이.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으며,
1577년(선조 10)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작품으로는 시(詩)에 《유선시 遊仙詩》《빈녀음 貧女吟》《곡자 哭子》 《망선요 望仙謠》《동선요 洞仙謠》《견흥 遣興》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 怨婦辭》《봉선화가》 등이 있다.
허난설헌 의 생애
1세(1563, 명종18년) : 허난설헌은 강릉 초당 생가에서 초당 허엽의 삼남 삼녀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8세(1570, 선조3년) :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으며 뒷날 주옥같은 시 213수를 남겼다.
15세(1577, 선조10년) : 난설헌은 이 때 서당 김성립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인다.
23세(1585, 선조17년) :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몽유광산산』를 지었다.
27세(1589, 선조21년) : 짧은 나이로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혔다.
1590년(선조23) : 이 해 11월 남동생 허균이 친정에 흩어져 있던 난설헌의 시를 모으고, 자신이 암기하고 있떤 것을 모아서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유성룡에게 서문을 받았다.
1592년(선조25) : 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쟁중에 싸우다가 죽었다.
1598년(선조31) : 이 해 봄 정유재란때 명나라에서 원정 나온 문인 오명제에게 허균이 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보여주었다. 이 시가 『조선시선』『열조시선』등에 실렸다.
1606년(선조39년) : 허균은 이 해 3월 27일 중국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난설헌의 시를 모아서 전해주어 『난설헌 집』은 사후 18년 뒤에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1607년(선조40년) : 이 해 4월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였다. 난설헌집의 발문은 태안 피향당에서 지었다.
1711년 : 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하여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1913년 : 이 해 1월 10일 허경란이 난설헌의 시를 읽고 감화받아 자신이 소설헌이라고 칭하며 시를 지은 『소설헌집』이 활자본으로 신해음사에서 출판되었다. [출처] 허난설헌 [許蘭雪軒]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