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늑대보호구역/하 린-
배고픈 한 마리의 늑대가 밤을 물어뜯는다
고결(高潔)은 그런 극한에서 온다
야성을 숨기기엔 밤의 살이 너무 질기다
그러니 모든 혁명은 내 안에 있는 거다
누가 나를 길들이려 하는가
누가 나를 해석하려 하는가
발톱으로 새긴 문장이 하염없이 운다
부르다 만 노래가 대초원을 달리고
달이 슬픈 가계(家系)를 읽고 또 읽는다
그러니 미완으로 치닫는 나는 한 마리의 성난 야사(野史)다
<2>-서민생존헌장*/하 린-
나는 자본주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서민으로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가난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신용불량자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약소국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생존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출근과 튼튼한 육체로,
저임금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출신을 계산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기초수급자의 힘과 월세의 정신을 기른다.
번영과 질서를 앞세우며 일당과 시급을 숭상하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헝그리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발전하며,
부유층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지름길임을 깨달아,
하청에 하청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잔업 전선에 참여하고 월차를 반납하는 정신을 드높인다.
부자를 위한 투철한 시다바리 따까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가난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서민으로서,
조상의 궁핍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빈민을 창조하자.
* 1968년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패러디.
<3>-개에 대한 예의/하 린-
나의 의식이 잡종으로 기운다
목적을 발설하지 않는 이빨이 되기 위해
당신을 향해 흔드는 꼬리를 내려놓는다
예이요 새끼, 예이요 새끼새끼, 예이요 개, 개 새끼새끼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달이 비트박스를 날린다
불면증 걸린 늑대가 발톱을 세울 수조차 없는 밤
심장을 복제하려는 자 누구인가
치욕을 나누느라 왈왈왈 짖어 댄다
술 취한 어린 개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순전히 찌그러진 밥그릇 때문
도시에겐 도시의 목줄이 필요하다
침을 질질 흘리지 않는 건
얻어맞는 밤의 아가리가 얼얼하기 때문
위악적으로 돌아설 땐 욕이 필요하다
예이요 새끼, 예이요 새끼새끼, 예이요 개, 개 새끼새끼
<<하 린 시인 약력>>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2008년《시인세계》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서민생존헌장』,
*연구서『정진규 산문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