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룽나무 꽃구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구름 속에 ◼강혜정(소프라노)
◀꽃이 핀다. ◼손태진✕김현수
◀꽃의 이중창 ◼한경미✕최성훈
◀나 하나 꽃 되어 ◼이승민✕임규형✕서영택✕김수인
◀인생의 선물 ◼유정
◉귀룽나무가 머리에 꽃구름 모자를 쓰고 등장했습니다.
머리뿐 아니라 온몸 전체에 하얀 꽃송이를 촘촘히 매달고 봄이 한가운데로 들어섰다고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계곡가에 늘어선 잘생긴 키 큰 나무가 봄바람에 일렁입니다.
여기서 상큼하고 달콤한 꽃향기가 번져 나옵니다.
산골 마을 텃골은 지금 그 꽃향기에 젖어 들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 촘촘히 매단 귀룽나무꽃은 흰 포도송이 같습니다.
한 송이 꽃의 지름은 1.5Cm 전후지만 꽃차례의 길이는 10-15Cm 정도 됩니다.
이렇게 매달리는 모양이 총상(總相)꽃차례입니다.
꽃잎과 꽃받침조각은 다섯 개씩입니다.
이 꽃들이 일찍 나온 녹색의 잎들과 어울려 가지마다 흔들거리는 모습이 마치 뭉게구름이 일렁이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이 나무를 ‘구름 나무’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귀룽나무가 봄바람에 구름처럼 일렁이는 모습에 꼭 맞는 노래가 바로 ‘꽃구름 속에’입니다.
박두진의 시에 이홍렬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1965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봄마다 꽃 물결이 일렁이면 등장하는 가곡이 됐습니다.
◉빠른 속도의 경쾌한 리듬과 화려한 악상으로 봄꽃 소식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부에서 느린 속도의 애절한 가락으로 반전을 만듭니다.
마지막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동감 있는 악상으로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다아 까맣게 잊고 꽃 향에 꽃 향에 취해서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쓰러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쓰러지게 하여라!’
소프라노 강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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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노래에도 나오지만 모든 초목은 나름대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자신들의 얘기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가 바로 귀룽나무입니다.
다른 나무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잿빛이 가득한 숲속에서 가장 먼저 잎을 내밀고 봄을 알려줍니다.
낙엽활엽교목 가운데 가장 일찍 잎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농부들은 귀룽나무잎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농사 준비를 시작합니다.
◉연두색의 귀룽나무 잎은 꽃 못지않게 부드럽고 예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겨울 색이 가득한 초봄에 만나는 귀룽나무 잎이라 더욱 예쁘고 반가운지 모릅니다.
게다가 좋은 먹거리가 돼 줍니다.
연한 귀룽나무 잎은 초봄에 가장 일찍 만나는 최상의 봄나물입니다.
그래서 냉이와 달래 못지않게 인기 있는 봄나물이 됐습니다.
◉일찍 봄을 알리는 꽃들은 마음이 급해서 꽃부터 먼저 피우고 나중에 잎이 나옵니다.
선화후엽(先花後葉)의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벚나무가 그렇습니다.
이 나무들의 꽃이 지고 잎이 나올 때가 돼서야 귀룽나무의 꽃이 핍니다.
바람에 날리며 떠나가는 벚꽃에게, 진달래꽃에게 귀룽나무꽃은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듭니다.
◉귀룽나무꽃도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짧게 꽃피우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봄에 피는 꽃을 그리움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노래 한 곡을 들어봅니다.
김이나가 노랫말을 쓰고 김도훈이 작곡한 노래, ‘꽃이 핀다’입니다.
2015년 케이윌이 불렀던 이 노래를 바리톤 손태진과 테너 김현수가 커버해 팬텀싱어 시즌1의 최고 명품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심사위원 김문정의 눈시울을 적신 노래를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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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를 닮은 향기가 그윽하고 꿀이 많아서 귀룽나무는 벌들에게 인기 있는 밀원(蜜源)식물입니다.
아직은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이삼일 후 꽃이 만개했을 때 나무 아래로 가면 벌들의 윙윙거리는
요란한 날개짓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과실수꽃과 귀룽나무꽃 사이를 오가는 벌들도 가장 바쁠 때입니다.
◉벌들만 좋아하는 나무가 아니라 새들도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7월이 되면 버찌를 닮은 열매가 달립니다.
새들이 이 열매를 좋아한다는 것은 귀룽나무를 부르는 영어 ‘bird cherry’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귀룽나무 벌과 새는 물론 사람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생명들과 함께 돕고 노래 부르며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상생의 나무입니다.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멋진 화음의 ‘꽃의 이중창’을 만나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레오 들리브(Leo Dullib)의 오페라 라크메(Lakme)에 등장하는 이름다운 아리아입니다.
사제의 딸 라크메와 하녀 말리카가 강에서 배를 타고 부르는 이중창입니다.
강가의 꽃들과 새들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낸 이중창은 원래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멋진 화음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여기서는 카운터테너 최성훈이 메조소프라노 말리카의 역할을 맡아 특색있는 남녀 이중창을 만들어 냅니다.
라크메 역에는 소프라노 한경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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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귀룽’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을 어떻게 얻었을까?
나뭇가지를 구룡목(九龍木)이라부르는 것을 보면 여기에서 출발한 이름으로 보입니다.
우산 모양의 거대한 나무가 가지마다 꽃송이를 가득 매달고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여 그런 이름을 얻은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왜 용이 아홉 마리나 됐을까?
아무래도 불교 설화와 관련 있는 듯합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나 향기로운 물로 아기 부처를 목욕시켰다는 설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통도사의 구룡지 등 구룡은 사찰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에서 귀룽나무는 신목(神木)처럼 대접받기도 합니다.
올해는 푸른 용의 해이니 귀룽나무가 더 귀하게 대접받아도 괜찮습니다.
◉신목으로 신성하게 대접받아도 충분한 나무입니다.
우선 15미터가 넘는 거대한 나무가 쉴 새 없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신선한 산소를 내뿜으면서
사람을 비롯한 주변의 생명을 편하게 만드는 친환경 나무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동식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며 상생의 길을 열어 생태 다양성을 갖추는 데도 한몫합니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모양에 보는 사람이 기분 좋습니다.
시각적 즐거움에 꽃향기까지 일품이니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잎에서부터 껍질까지 전통적인 한약 제로 사용돼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역할도 합니다.
가구나 건축자재로 쓰이는 좋은 목재 역할까지 합친다면 이 나무는 사람이 만난 자연의 좋은 선물 임에 분명합니다.
이 좋은 선물은 귀룽나무의 작은 잎사귀, 작은 꽃 수천, 수만이 모여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조동화의 시로 만들어진 가곡 ‘나 하나 꽃피어’를 들어보면서 그 긍정적인 의미를 새겨봅니다.
팬텀싱어 시즌 3에서 네 명의 성악가가 일군 꽃밭과 산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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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봄을 보내고 바쁜 여름과 가을을 보낸 뒤 겨울 입구에서 돌아보며 귀룽나무는 아마
열심히 산 한해에 스스로 대견해할 것 같습니다.
꽃피고 지는 인생을 보낸 뒤 나이 들어 마음속에 한 송이 꽃을 심은 사람은 어떨까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젊어서는 잘 보이지 않던 화려한 봄꽃이 나이가 들면 왜 잘 보일까?
그 깨달음으로 양희은이 나이들어 만든 노래가 ‘인생의 선물’입니다.
양희은이 노랫말을 쓰고 동갑내기 일본 싱어송라이터 사다 마사시가 곡을 붙였습니다.
◉알 수 없는 안개빛 젊음보다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서 누군가 세월을 돌려준다 해도 웃으면서 싫다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저 나란히 앉아 아무말 하지 않고 지는 해를 함께 바라봐 줄 친구나 가족이 있으면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자 인생의 비밀이라고 마무리 짓습니다.
자연의 꽃이 피고 지는 의미, 사람의 인생이 오고 가는 의미를 생각하며 봄의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듣습니다.
유정이 커버한 ‘인생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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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 만년의 인생에 얘기를 나눌 친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한 송이의 꽃이 되기도 하면서 초록빛 생명들에게 말 걸기가 수월합니다.
◉여름, 가을, 겨울에도 이들과 나눌 얘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봄이 조곤조곤 나눌 얘기가 좀 더 많은 편입니다.
이들과의 말 걸기는 세상일을 바라볼 때처럼 노여워하거나 억울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