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3]‘2026 북중미 월드컵’ 단상
축구(蹴球)의 ‘축’자도 모르는 내가 월드컵에 대한 단상이라니, 말이 안된다. 나의 친구중 축구 선수 출신도 있고, 또 한 친구는 국제심판 자격증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프사이드에 대한 정의도 잘 모른다. 그리고 이제껏 빅 게임이라고 열심히 시청을 하거나 응원을 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올 여름 재미난 일이 있었다. 아침 7시 kbs2에 채널을 고정하여 월드컵 경기 몇 개를 본 것이다. 혼자 봐도 재밌는데, 지난번 남아공과의 경기는 인근에 사시는 형님을 불러 같이 보자고 했으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작은 섬나라를 알게 된 것은 수확.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570km 떨어진 인구 52만명의 소국.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두 무승부로 사상 첫 본선 진출. 아르헨티나와 2대3으로 지긴 했으나 사실상 이겼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신데렐라’가 따로 없었다. ‘푸른 상어들’ 별명의 축구팀의 ‘신의 손’ 보지냐(VOZINHA. 40) 골키퍼는 단연 이번 월드컵의 영웅이었다(이름 부르기가 좀 민망하다). 할아버지의 “너는 반드시 세계 무대에 설 것”이라는 어릴 적 칭찬에 용기 백배했다고 한다. 디아스포라(해외 이주민)들이 대다수라는데, 중요 기항지이기 때문에 한국인 피도 있을 거라는 보도에 쓴 웃음을 지었다.
카보베르데보다 더 작은 카리브해의 섬나라(베네수엘라와 상거 65km) ‘퀴라소’는 인구라야 10만이 조금 넘는다던가. 월드컵, 축구가 아니었으면 이 나라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됐을까. ‘작은 네덜란드’라 불리는 네덜란드왕국의 자치구성국. 푸른 바다와 알록달록한 유럽풍 건축물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섬나라. 깔보지 마시라. 빌렘스타트 수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당연히 역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 독일에 비록 7대1로 대패했으나 에콰도르, 코트디브와르도 당당히 싸워 이름을 알렸다. 기특한 일이다. 누구나 어린이나 약자, 장애인에게 정이 많이 가게 마련이듯, 소국이기에 애틋한 마음으로 ‘축구의 명가’들을 꺾기 바라며 열심히 응원을 했다(인지상정). 혼자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폈다하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는 등 원맨쇼라니. 내 생전에 이런 일은 없었다. 흐흐.
어쨌거나, 이번 월드컵(오늘도 볼 것이지만)을 통해 축구를 몇 경기 봤다는 것은 나로선 참 '별일'이다. 구기종목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완전히 접어버린 까닭은, 작은 고무공이나 짚으로 둘둘둘 말아 만든 축구공을 차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한번도 내 발에 닿은 적이 없어 운동장과 논에서 그냥 울고 만 기억 때문이다. 중1 체육시간에 배구를 하는데, 서브를 태반이 받지 못하거나 어쩌다 받아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려 친구들의 빈축을 사기 일쑤여서 아예 ‘자포’해버렸다. 그래도 친구를 잘 만난 덕분에 1993년 배드민턴 라켓을 들기 시작, 20년 동안 클럽에서 운동을 했으니,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운동이 ‘민턴’이다. 라켓을 놓은 지 10년 가까이 되니 셔틀콕을 이제 백퍼 맞추지도 못할 것이지만. 운동은 술잔 들었다놓았다하는 '역기'가 쵝오!
축구, 월드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백기완 선생님과 히딩크이다. 백 선생님은 진짜로 10살 때 축구선수가 되려고 황해도 은율에서부터 맨발로 걸어내려왔다. 축구하게 해준다는 아버지는 공수표를 날리고 초등학교도 보내주지 않아, 독학을 했다. 에센스 영어사전을 다 외워버린 ‘천재’였다. 시선 고은이 감옥에서 국어대사전을 모두 외웠던 것처럼.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 재야 민주화 운동가로 평생을 일관한 백선생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김진숙 힘내라’는 글자를 쓰신 '영원한 노동자의 아버지'였다. 그런 백선생을 축구협회장이 2002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 대표팀 선수들에게 정신교육 특강을 하게 했다. 백선생의 ‘트레이드마크 어록’ “기 죽지 마라”고 시작된 강연의 요지는 이랬다.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축구에 기 죽지 마라. 지단 몸값 100억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한번 공을 차겠다고 나선 이상, 쩨쩨하게 16강이 뭐냐. 당연히 세계 으뜸이 돼야지. 축구는 무대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꾼과 같이 차야 한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둥근 공을 뻥 차라”였다. '평화를 위해 공을 뻐엉- 차라'는 헤드라인치고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아래의 일화는 내가 통일문제연구소 선생님의 방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이 특강 요지를 전해 들은 히딩크가 만나 본 적도 없는 백선생에게 "선수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 주어 정말 고맙다. 당신을 보면 진짜 '한국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편지를 썼다는 거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이루고 7월 귀국하는 히딩크가 백 선생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당시 D일보 체육부장이 새벽에 백 선생을 보시고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직행, 두 분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단독 기획보도. 그 부장은 칭찬 많이 받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히딩크가 백 선생을 알아본 것이다. 백선생의 배웅의 말역시 멋있다. “사람은 만났다 헤어지지만, 우리가 나눈 뜻과 뜻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함께 영원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니. 히딩크가 기내에서 또 편지를 남겼는데, 그 역시 고수이다. “뚜렷한 소신을 갖고 평생을 살아오신 백소장님의 삶과 나의 축구에 대한 신념이 서로 닮아 있는 것같아 특별한 유대와 애정을 느낀다. 한국은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다”고 했다나.
상봉 직후 기자가 “세계적인 명장 히딩크 감독에게 이런 존경의 편지를 받았는데 소감이 어떠시냐”고 묻자 “사나이”라는 단 한마디로 잘라 말하고 입을 다무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들려주며 신이 나시던 선생님 가신 지 벌써 5년, 지난 2월 처음으로 모란공원 5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이야말로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음을.
아아-, 한국축구는 정말 쪽팔린다. 내 잘못도 아닌데 뭔가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놈의 망할 놈의 카르텔이 도처에 존재해 체력도, 국력도 모두 망가뜨리는구나. 한심한지고. 우리는 언제나 월드컵을 안아보려나. 일본 축구 탄탄한 것을 반면교사 삼으시라. 제발도. 반면에 보라. 카보베르데, 퀴라소 두 섬나라를. 팀의 별명 '푸른 상어들' '푸른 파도'답게 언제나 굳세어라. 보지냐 골키퍼여, 당신의 모습을 2030년 월드컵에서 보지는 못할 지언정, 당신은 ‘축구보국’(蹴球報國)의 일등공신이로소이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