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월) 이사야 28:23-29 찬송 487장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화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개역 개정)
- 농부 비유를 통한 위로의 교훈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곧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경고를 기록한 지난 말씀(1-22절)에 이어 주어진 오늘 말씀의 농부 비유는
이방에 대한 멸망의 징벌과 구별되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특징과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 말씀의 비유에서 농부는 하나님을, 곡식과 씨는 그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하신 이래 지금까지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오신 사실을(24-26절),
농부가 곡식을 추수하기 위해 도리깨질과 타작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서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하여
연단에 연단을 거듭하시는 사실을(27-29절) 나타낸다.
성경에는 택한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농부와 곡식,
창조주와 피조물, 왕과 백성 등의 관계로 묘사한다.
그런데 농부가 곡식을 타작하는 것이 알곡을 깨뜨려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껍데기를 벗겨 알곡을 얻기 위한 것이듯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것도 그들에게서 죄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알곡과 같은 성도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멸망이 그 목적이 아니라 구원이 그 궁극적인 목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징계 받을 때 노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징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더욱 절실히 느끼며
그 징계를 달게 받음은 물론 그 징계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속히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사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히12:4-13)
27-28절)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각각의 결실을 타작(打作)하는 장면이다.
소회향과 대회향, 즉 깨와 같이 극히 작은 결실의 경우는
도리깨나 수레 바퀴가 아닌 작대기나 막대기로 타작하며
곡식, 즉 소맥이나 대맥의 경우는 수레바퀴로 한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문자적 의미를 넘어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서 의의 열매를 얻기 위하여 연단하시는 양태를 시사해주는 말씀이다.
소회향이나 대회향은 그 열매가 매우 약하다.
조금만 강한 힘을 가해도 부서진다.
그래서 도리깨나 수레바퀴를 동원하여 탈곡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을 탈곡할 때는 막대기 같은 것으로 살살 쳐준다.
그래도 탈곡이 잘된다.
그러나 밀이나 보리나 귀리는 열매도 강하고 껍질도 강하며,
곡식이 붙어 있는 줄기도 강하다.
그래서 소회향이나 대회향처럼 막대기 같은 것으로는
줄기에서 떨어내기가 어렵고 탈곡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곡식을 떨어내고 탈곡하기 위해서는
도리깨나 수레바퀴 같은 것을 사용한다.
여기서 수레바퀴를 돌린다는 것은 소나 말에 커다란 수레를 달아
그 바퀴를 곡식 위에 굴림으로써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탈곡의 한 방법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탈곡의 방법이 곡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 흔히 농부로 비유되시는 하나님께서
곡식으로 비유되는 성도들로부터 의의 열매를 얻기 위해 사용하시는
연단의 방법과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26절에서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라는
말씀과 29절에서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하신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서 의의 열매를 얻고자 연단하실 때에
누구에게나 동일한 연단의 방법과 강도를 적용하시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연단의 정도가 있다.
막대기와 같은 약한 연단으로도 의의 열매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리깨나 수레바퀴와 같은 강한 연단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완고함의 껍데기를 벗고 의의 열매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사람의 상태에 따라 적당하게 연단하신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28절 말미에 제시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의의 열매를 얻고자 우리들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수레바퀴로 굴리는 것처럼 강하게 연단하신다고 해도
결코 그 곡식이 부서지도록 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연단하시는 목적은 연단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로 참되고 의로운 열매로 드러나 천국 창고, 축복의 곳간으로 들이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아무리 엄중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가혹한 징계로 거의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처하여서도 회복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무지한 농부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농부들에게 농사의 지혜를 주신 지혜로운 농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혹독한 징계가 임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줄로 확신해야 한다.
그 모든 징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가 되게 하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인 줄로 믿고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