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노조의 ‘공동 투쟁’ 선언
변화 열망을 투쟁으로 이을 정치가 필요하다
현대ㆍ기아차 노조의 신임 집행부가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위한 “공동 교섭, 공동 투쟁”을 선언했다. 금속노조 차원의 ‘완성차 공동투쟁 준비회의’도 구성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보를 반가운 신호로 여기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ㆍ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서로 힘을 합쳐 공동의 적에 맞서기보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를 두고 눈치만 봐 왔다. 더구나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는 ‘기아차보다 더 따내겠다’는 주장을 펴며 노동자들 간 경쟁의식이나 부추겼다. 이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뒤틀리게 만들고 부문주의를 강화해 왔다.
이런 ‘실리 없는 실리주의’ 속에 노동자들은 물량 확보 등을 둘러싼 갈등을 반복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유성기업 투쟁, 한진중공업 투쟁 등에 연대하는 것도 주저했다.
물론, 이것은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공격 속에 노동조합 운동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다시 경제가 수렁에 빠지고 자동차 호황도 약발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상시적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이 투쟁과 위기 극복으로 이어질지는 노동운동의 대응이 좌우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완성차 신임 집행부들이 단결을 선언한 것은 완전히 올바르다. 단결 투쟁이야말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왼팔, 오른팔인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강력한 단결 투쟁을 벌일 때, 심야노동ㆍ비정규직ㆍ일자리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힘으로 1퍼센트 부자들에 맞선 99퍼센트의 행동을 확대ㆍ강화하며 사회적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노동시간ㆍ비정규직 등에 대한 양보 제스처를 믿고 기다리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 위기 상황에선 강력한 저항 없이 진정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완성차 노조들은 사측과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에 미련을 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부와 지배자들이 정치적 위기에서 허우적대며 사분오열하고 있는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말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근 주요 노조들의 선거 결과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변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 줬다. 특히, 대표적인 우파 집행부가 줄줄이 낙선하고 보다 투쟁적인 좌파 집행부가 당선한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
비정규직 점거파업에 찬물을 끼얹고 투쟁을 회피해 온 현대차 이경훈의 패배는 정말 통쾌한 일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채필은 바로 한 달 전에 “울산에서 노사평화가 정착됐다”며 좋아했는데, 이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한진중공업에선 조합원들의 등에 칼을 꽂은 채길용이 좌파 후보에게 대패했고, GM대우에서도 더 전투적인 후보가 당선했다.
물론, 그렇다고 현장 조합원들의 사기가 충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에서 문용문 후보는 3퍼센트를 조금 넘는 차이로 간신히 이경훈을 이겼다. 기아차에선 금속노조 탈퇴를 주장하는 우파가 지난 선거보다 갑절 가량 지지를 늘렸다.
그간 현대차의 좌파 활동가들은 이경훈의 배신과 투쟁 회피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다. 예컨대, 대표적인 현장파인 ‘민투위’(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는 2009년 윤해모 집행부의 중도 사퇴와 주요 활동가들의 ‘골프’ 사건 연루 등으로 위기를 겪어 왔고, 이번에도 저조한 득표를 했다.
기아차에선 좌파 현장조직 ‘금속 노동자의 힘’ 소속 김성락 집행부가 노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연임에 실패했다. 좌파 현장 조직과 활동가들이 작업장 밖으로 시야를 넓히며 현장 조합원들의 행동과 연대를 건설하지 못하다 보니, 우파가 그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었다.
새로 당선한 배재정 집행부는 자민통 진영의 선거 연합으로 당선했지만, 지난 선거에서 얻은 개별 후보들의 지지율의 합보다는 적은 표를 받았다. 선거 연합에 참가한 ‘기노회’(기아자동차 민주노동자회)가 전 간부의 비리를 감싸며 투쟁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요컨대, 좌파의 정치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수년간 노동조합 운동은 정치적 약점과 부절적한 방향 때문에 위기를 겪었다. 때때로 투쟁 가능성이 솟구쳤다가도 금세 꺼진 데에는 현장에서 정치적 주장과 설득, 대안을 제시하며 조합원들의 행동을 건설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지금 많은 상층 지도자들은 투쟁보다는 내년 선거에 기대 어지간한 개혁을 따내는 게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운동의 압력 없이 부르주아지 개혁 분파에 기대서는 양보를 따내기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는 것이다.
반대로, 많은 경우에 노동조합 운동 내 전투적 활동가들은 이런 개혁주의에 반발해 일면적으로 전투성만 강조하기 일쑤다. 개혁주의 정치와 정당을 거부하고 현장 투쟁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의 영향력에 개입하면서 도전하지 않으면 오히려 개혁주의가 강화된다.
예컨대, 진보정당과 참여당의 통합은 노동자들의 사기와 운동의 요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참을성 있게 이런 문제에 개입해 진정한 진보의 단결과 투쟁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미FTA가 가져올 결과와 반대 투쟁의 정치적 의의를 설명하면서 거리의 청년ㆍ학생 투쟁에 노동자들이 함께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좌파 활동가들은 명확한 정치적 주장과 대안을 제시하며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투지를 높여 행동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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