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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처음으로 벽에다 낙서를 하고 나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찌 되었건 6시 내고향이라는, 개인적으로 이 몸의 이미지와 증~말 어울리지 않는 그 프로그램의 컨셉을 무시하고
단지 시골의 정서를 그리는 아줌마라는 이유 하나로 TV조명을 받은 날,
처음으로 빗발치는 전화세례를 '이게 유명세야?..'하는, 참말로 낯설고 어색하고 알딸딸한 체험을 '해버린 날'
나는 '햐..사람 인생 이렇게 풀리는 날도 있는 거구나!'류의 풍선에 실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미쳤지.. 대구에서 그림의뢰가 들어오고 말았다. 물론 TV본 사람의 시청소감 정도로 치부해 주었지만..
나로서는 그 인사가 달달하기도 하고 어이없었으니 약간 작위적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인사였던 것이다.
그 바람에 생긴 해괴한 망상은 아주 몇초간 내 이마위를 지나쳤으니, 그것은 조만간 진주나 마산 어디에서
'제발 우리 담벼락에 그림 좀 그려달라'고 사정하는 간절한 섭외의 망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망상은 대개의 사람들이 하룻밤새 원하는 집을 몇채고 지었다 부수는..인간이라서 할 수밖에 없는 황홀한 감각이니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한때의 풋풋함 정도랄까?
그것이 이렇게 한때의 스치는 망상에서 간절히 꿈꾼 것처럼 꾸미기도 좋게 이루어진 것이다.
장소는 진주...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이었다.
그때 나는 묘한 꿈을 꾸었는데...이상하게 방금 전에 꾼 그 꿈이 너무 생생히 기분 좋아 잠시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속 인연을 위한 장치처럼 딱 그 순간 낯선 전화번호가 뜬다. 내 이름을 물어 보는데 너무 친숙하게 군다.
예..하다가 예도 아니고 어도 아닌 모호한 에..로 답하며 알게된 그 사람은 그때 (방송보고 잠시 주고받은) 이후로 처음인,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내 친구였다. 오랜만이니 당연히 반가웠지만 더 당연히 웬일이냐 놀라웠다.
낯선 전화번호는 그간의 시간 속에 변경되었으며, 4년이란 놀랄만큼 훌쩍 통과된 숫자가 되어 있었다.
친구는 우선 나의 요즘 근황을 물어본다. 나...요즘 자~알 놀고 있다,고 천연덕스러우려 노력하며 얘기한다.
이럴 땐 꼭 심리의 꼬인 어디쯤에서 왜 자신의 취향과 물질적 속박 혹은 기타 사회적 여러 정당함에 못이겨
대다수의 아줌마들이 주체적 의사와 상관없이(?) 직업군으로 활약을 해야 하는지..딱 그럴 때만 잠시 자문해 보는 게 있다.
팍팍, 자존심을 뭉갤 것 까진 없어도 심히 신경쓰이는 비직업인의 어디 대놓고 따지지도 못할 항변이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누가 일러준 대로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구세적 단어가 있지만
그런 얄팍한 얘기는 장난이 익숙해야 나오리란 걸 너무 잘 아는 처지다.
그 친구..고맙게도 역시 친구답게, 너같은 재주가 집에서 놀면 세상이 어찌 되겠노?,라는 말로 응사해준다. 히~, 과히...!!!
그러고는 그 꿈에 대한 본론처럼, 내 부탁 좀 들어달란다. 바로 이런 곳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것으로.
그 친구의 남편은 인테리어 사업가였다. 벌써 옛이야기 되어버린 흐릿한 풍경 속에 잠시 남편까지 만난 적이 있었던 걸
기억하려 했지만, 딱 한번 본 얼굴을 기억해 내는 것은 나에겐 신의 영역이었다.
1월 4일 오전의 일화였다. 그 이후 정확하게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꼭 이럴 거란 걸 알았던 것처럼
팔이랑 심장이랑 온갖 세포들이랑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이 내림을 받는 것처럼 몸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의 그 냄새가 훅 끼쳐오는 듯했다. 이런,, 페인트에도 향기가 있다니...
그것은 스케치북이었다. 나의 도화지가 되어버린 세워진 하얀 벽.
그 곳에다 무엇을 그릴까? 나에게 지난 그림이란 순전히 나만의 정서대로 표현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무한의 공간이었다.
딱히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오로지 내가 꿈꾸고 싶고 나누고 싶었던 어떤 정서.
1월 7일 만나 흰 바탕만 부탁하고 1월 10일이 되는 동안 내가 준비한 것은 매혹의 저 공간에 새길 대략의 이미지 뿐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지 않는 천성이 어디 갈 리 없었다.
나의 심호흡에 따르는 어떤 힘의 크기를 새기려는 잘난 아마추어의 프로의식.
우습지만 나는 순간의 기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러서지 말아야 할 순간에는 오로지 내 자신을 가장 신뢰하는 버릇.
저 스케치북은 아이들의 동심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를 나에게 뚜렷한 물음으로 물어 왔지만,
막연한 매혹과 몽롱한 이미지의 사흘동안 나는 정말 준비해 두지 않았고 너무 나를 믿고 있었다.
지나간 내 그림도 알고보면 첫 시작이 힘들었었지만, 개구리가 되어버린 내 허영처럼 그것을 기억해 낸 것도 역시 한 발 뒤였다.
첫째날의 스케치 중 커다란 꽃에 다가가려던 피터팬과 팅커벨은 지워지고 말았다. (물론 지운 의사는 내 스스로)
원장은 그림의 스케치를 낙서쯤으로 받아들였는지 대략의 채색과 그 낙서를 뒤늦게 보고(첫 그림의 가운데 부분)
좀더 특별한 그림을 원하노라는 언질을 전해왔다. 그것은 곧 퇴짜를 의미했다.
원장과의 첫 대면은 그렇게 다음날 이루어졌다. 나로서는 순전히 낙서에 불과한 스케치를 실력으로 믿는 건 아니었을까,
그림보는 안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첫인식을 심은 것도 나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앞세울 수 없는 입장이 원장의 앳된 얼굴을 보고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30대의 아직 섣부른 욕망들이 묻어난 얼굴에서 나름 천진난만한 40대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앞으로 하얀 유성페인트가 많이 필요하단 뜻이었고
스케치도 함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뜻했다. 대략의 얼개였던 밑그림들이 끝내 선으로 남는다면
여러 덧칠과 수정할만한 그림들로 채워져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첫 그림의 산타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동화속 캐릭터를 그리려던 첫번째 의도에서도 맞아 떨졌지만,
그것에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간다는 것에서 잠시 궁리가 필요했다.
산타의 인사가 있고 굴뚝을 뒤뚱거리며 타고 넘는 산타가 있었다면 그 다음을 어떻게 연결할까?
굴뚝집과 어울리는 옆마을의 풍경도 필요했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자연스런 연결도 필요했다.
그러려면 계절까지 싣고 날아가는 산타는 더더욱 필요해 보였다.
꽃그림이 지워진 자리는 어울리는 마을을 더 그려야 했다. 그리고 봄을 만들어 버리는 거다.
그랬기에 목련은 다시 살린다. 지웠던 목련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한가한 정서가 더 필요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에서 아이는 산타를 발견하는 걸로 해 두고 싶었다. 강아지는 죽어라 달려야 했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될거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틀 째의 그림에서 비약적인 질주가 필요해 보였다. 늦은 오후였지만 남편이 잠깐 경비실에 간 사이
나는 스케치 없는 그림으로 좀더 많이 확장해 두었다.
이 추운 영하의 연속에서 내 몸이 하루이틀쯤 몸살이라도 난다면...그러나 나는 내 몸을 잘 알았다.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육체적 피로 때문에 아파서 몸살하는 몸이 못되었다.
그건 어떨때 차라리 너무 아파보고 싶은 미련한 꿈으로 이어졌지만, 일 앞에서 그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낮은 의자마저 해당이 안되는 것도 순전히 내 마음 탓이다. 의자에 앉아서 좀더 편하게 그려도 되었겠지만
그림이란 건 그리는 순간 의자찾고 뭣찾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개똥철학이 나에겐 있었다.
내 친구 말마따나 생활근육, 생활 다이어트..뭐 그런 게 내 몸엔 흐르고 있었나보다.
그림이 너무 오밀조밀했다. 그것도 내 실수였다.
첫번째의 그림에 함부로 스케치를 한 것이 결국 오밀조밀한 시작을 부른 셈이었다.
내 집앞의 그림또한 너무도 가득찬 풍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벽화란 것의 간략성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
그랬기에 좀더 커다란 아이들이 필요했다.
첫번째 벽의 마지막 그림.
아가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의 품을 그렸다.
아기가 달의 조각배를 타고 잠자는 것은 엄마품에 안긴 아기의 꿈인지 엄마의 꿈인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반드시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심을 가진다.
특히 아이들은 춥다고 빨리 가자는 엄마들의 재촉도 무색하게 언제나 우와~하며 서서 보고 가야 했다.
한 아이는 내게 첫날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셋째날 쯤인가, 그날 초콜릿을 주고 갔다.
다음날도 '저기요~'하며 우유를 주고 갔다.
다음날은 사과쥬스 팩을 가져왔다.
이거 엄마아빠의 것 아니냐는 내 질문에는 저희들도 먹는다는 간단한 답이 있을 뿐.
그러고 보니 쌍둥이였다. 늘 양쪽에 번갈아 섰었는데(쌍둥이 특유의 옷도 똑같이 안입고)
나는 그날 방금전엔 분홍잠바였는데 한시간뒤엔 파랑잠바를 입고 선 것을 두고 무식하게 '옷이 바꼈네?"하고 말았다.
그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퍼뜩 던져두고 가는 것을 너무 형식적으로 고마워했나 싶은 미안함이 확 끼쳐왔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들이 오면 간단하게라도 이야기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심지어 과자까지 배달해 왔다.
한번은 호주머니에 넣는다고 넣은 과자가 그만 땅에 떨어졌었나 보다.
쌍둥이가 떨어진 과자를 친절하게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예의 "저기요~"하며.
나는 너무 미안해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뒤늦게 쌍둥이를 알아차린 것만큼이나 미안한 일이었다.
그 동네에 머무른 며칠동안 나는 그 동네 아이들의 친절도 보았지만
엉뚱한 야합으로 왕따를 하려는 속셈까지 보게 되었다.
사내아이 두 명이 집으로 가고 있었다. 뒤에서 한 아이가 진호야(가칭) 부른다.
진호에게 귓속말을 소곤소곤 전하는 품이 아무래도 진호 아닌 아이에게 심히 괴로운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진호는 그 순간 약간의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진호아닌 아이는 눈치껏 저만치 가고 없고
불러세웠던 아이와 진호가 이제는 맘껏 소리치며 이렇게 주고 받는다.
A: 내가 그렇게 말했던 거 머시기한테는 말하지 마라
진호: 먼젓 거하고 나중 거 중에 나중 거는 얘기해도 되재?
A: 내가 말해도 된다고 할때까지 말하면 안된다. 알았재? 만약에 말하면...
그 뒤엔 안들어도 죽음이다, 라는 말이다.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론 이것들이 확~싶었지만 그냥 웃는 일이 이 추운날에 대한 딱 맞는 휴뇌법 같았다.
ㄱ 자로 꺾여진 또다른 벽의 그림.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아파트의 골바람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도 한가닥 인정처럼 한시간짜리 햇볕이 주어지는 곳이다.
앞서의 그림은 햇살한줌이 들어오지 않아 지나가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엄청나게 걱정을 해 주었다.
그것도 프리랜서 아줌마(^^)가 뭐 돈 한푼 벌어보겠다고 비쳐질까 걱정까지 해가며...
실제로 그 아파트는 좀 부자들이 많다 하였다.
그것을 알 수 있는게 내 딸의 진정한 단짝친구가 어릴 때 의령에서 진주 이곳 아파트로 이사온 것이었다.
내가 그 아파트에서 그림 그리고 있다하면 당장 내려올 것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않았다.
추운 아파트 외벽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림은 하루 6시간씩 6일 반. 마지막 날은 한시간 정도 하고 마쳤으니 그냥 6일이라 해도 될 것이다.
마음을 들뜨게 했던 벽화를 접는 날, 앳된 원장은 늘 뭘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쓰며 종이컵에 녹차를 띄워 왔다.
추운 날에 내밀었던 귤은 먹지도 않았다. 그냥 인생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이나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섬광이 있었다.
그리고 내 그림일수록 내 관점으로 그려야 한다는 짭잘한 교훈?
내게 의도한 그림이 있었지만, 자신의 명함 속의 그림은 도저히 이 풍경에 어울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 그림을 넣어달라 부탁하는 것도 내겐 그냥 하루를 버린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귀여운 아양이 허락되는 것도
선을 분명하게 긋고 싶었다고나 할까. 종이컵에 담긴 티백처럼 간단한 선이 있었던 날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의 풍경이다. 거의 다 마무리한 상태에서 저 사슴이 한가롭게 목련아래 드러누운 마당에
약간 장욱진 화백풍의 초가집 속 아이들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그 생각이 그리는 마지막날 떠오른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밤의 고요한 별가루가 최면처럼 뿌려지는 초가집 속에
잠든 아이를 크게 그려넣는 것은 멋진 조화로움 같았다.
돌아와 사진을 찾으니 저 초가그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대동하고 마지막 파티를 벌린다는 것에만 들떴는지, 찍사는 어쩐지 내게 흡족한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딸은 저 별가루를 그리면서 엄마가 이 추운 곳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잠시 20분 정도 겨우 하얀 별가루 찍었을 뿐인데도 발가락이 얼것 같다 하였고
그나마 철이 덜 든 아들은 아빠를 따라 옷타령 신발타령 하기 바빴다.
초록색 나무 둥걸 속에 아기 다람쥐가 기다리고 있고
파랑 챙모자를 뒤집어 쓴 다람쥐가 먹이를 나른다.
커다랗게 그린 다람쥐가 몰래 도토리를 까먹으려 할 때,
옆에서 나무 줄타기를 하던 다람쥐가 놀라 빠질 표정으로 이 상황을 보고 만다.
마지막날은 가지마다 붙어야 할 초록잎이과 들꽃 몇 무더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돌아와서 사진을 보다가 저 여우의 바구니 손잡이가 그만...
그러니까 저 팔등에 선을 이어야 하는 것을 마지막에 심심해서 바구니를 더 추가한다는 것이 그만 저렇게 이상한 바구니를 낳았다.
사과도 빨간 바지에 그리는 바람에 묻히고 말았고..ㅠㅠ.
간혹 옥의 티를 남겨야 기억에 더 남을려나? 암튼, 느닷없이 무언가를 추가할때는 좀더 심사숙고 할 일이다.
해바라기 아래 꼬마들이 미끄럼을 타는 풍경을 그려 넣었다.
그것또한 좀더 뚱뚱한 녀석에 배꼽 정도도 그려 넣었으면 더 재밌었을 걸 하는 후회로 남았다.
부끄러워서 내 그림에 무슨 낙관이냐 싶었지만
퉁사리처럼 우기는 남편의 강권으로 못이긴척 그려 넣기로 했다.
마음그림 키스. 아주 떨리는 부끄러움을 새겼다.
그저 나는 추운 날에 고생 좀 한거였다.
부족한 부분도 안타깝게 기억에 남아 버렸지만, 그냥 한때의 멋진 추억으로 새길 생각이다.
그린 사람만 보이는 실수이길 바라는 몇몇 흡족하지 못한 부분들..그 모든 것에도 건투를 빈다.
첫댓글 아름답고 멋집니다. 아이들의 상상이 환하게 열리겠습니다.
얼마나 작업 하신 건가요?
6일에서 6일 반요...ㅎㅎ 감사^^
건물과 그림은 야수와 미녀/ 등만 있는 사람이 미녀를 낳았다/ 제발! 앞을 보고싶다/ 아냐. 그냥 그 모습이 좋을지도 몰라/ 전 건너 소나무가 그래서 좋은거야/ 그래 그렇게 등만 보며 상상을 하자/ 미녀를 낳은 그 사람이라고
미녀는 아무나 낳나? 엄마가 안이쁘면 절대 불가능한 일.
이렇게 쓰면 분명 또 화살이 날아온다. 우리 신랑 사진 찍는 솜씨가 좀 쩔지.
근데 소나무는 어인 거?
... 슬비는 달의 조각배에 누워, 엄마~ 부르며 밤하늘을 흔들흔들 떠다니고 있어... -_-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참 괴로운데..마음에 안들어서요. 그외도 여럿 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한 작업이라 좋기는 하겠지만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예전의 그림보다 색감이 강렬해진것 같습니다.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즐거워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욱 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실것을 믿습니다.
예,,전문가처럼 색깔의 변화를 말씀해 주시다니..놀랍습니다. 이런 색깔은 제 스타일과도 안맞았지만(원래 제 스타일이 따로 있는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린이집이라는 성격상 좀더 밝고 원색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의해서 그만...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