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볼 때 많이 우는 편이다. 별 것 아닌 장면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와, 영화가 다 끝난 뒤 극장에 불이 켜질 때 부끄러워 얼굴 숙이고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영화가 끝날 무렵 슬며시 극장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맨 먼저 도망치듯 빠져나온 적이 많았다. 청춘시절에는, 영화 보면서 남자가 눈물 흘린다는 게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눈물을 닦으면 주위 사람들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한꺼번에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자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닦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눈물이 때로는 입술 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그대로 참아내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투적이고 관습적 코드를 자극하는 영화들은 나의 눈물을 자극하지 못한다. [편지][하루]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값싼 감정의 낭비나 사치로 눈물샘을 자극하려고 하는 영화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은 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감독의 솜씨가 있었다. 그러나 [국화꽃 향기]는 역시 그 상투성과 신파에도 불구하고 묵은 때를 벗겨내는 신선한 감각의 연출이나 연기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국화꽃 향기]를 보는 동안 내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하인의 베스트셀러 [국화꽃 향기]는 익숙한 상업적 코드를 유려한 문체의 힘에 실어 대중적 감성을 자극하며 전개시켜 나간다. 이정욱 감독의 데뷔작 [국화꽃 향기]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사랑이라고 홍보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 속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각색과정에서 비극을 심화시키기 위해 희재의 첫 결혼 등이 삽입되었지만 큰 줄거리는 다르지 않다. 볼커 쉴렌도르프나 장선우처럼 원작 소설을 즐겨 영화화하는 감독들은 자기가 선택한 텍스트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처럼 구효서의 [낯선 여름]에서 원작만 가져와서 크게 바꾸는 경우도 있다.
[편지][고스트 맘마][하루]처럼 최루성 멜로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다. [편지]의 경우에는 잔가지를 다 쳐내고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췄었다. 그들의 부모나 친구들도 최소화되어 있다.
그러나 [국화꽃 향기]는 비극적 사랑의 진폭을 크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갖추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운명적이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장애물이다. 장애물이 많을수록, 즉 그들의 사랑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게 어려워 보일수록, 비극은 극대화된다.
대학 새내기 인하(박해일 분/원작자인 김하인의 이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는 외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생활을 해서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많은 지식이 없다. 그는 지하철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책을 읽기 위해 들어간 대학 동아리에서 다시 그 여인을 만난다. 동아리 회장이기도 한 그 여자 선배는 희재(장진영 분).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인하의 선배이기도 한, 애인이 있다.
섬으로 떠난 MT. 그리고 물을 무서워하는 희재를 위해 인하가 몸을 던지는 과정에서 첫 키스가 등장한다. 힘들게 시도한 그의 고백을 그녀는 거절하고 시간은 흘러 졸업을 한다. 졸업 뒤의 희재의 결혼, 그리고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의 죽음까지 빠른 점프컷으로 전개된다. 홀로 된 희재와 라디오 방송국 피디로 일하는 인하가 만나 본격적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 영화의 후반부에 해당된다. 전반부가 후반부에 전개될 비극의 기초공사를 위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면, 후반부는 비극의 마무리를 위해 느리고 더디게 진행된다. 감독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최대한 자극하기 위해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이 그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새로움은 없다. 이야기는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미 다른 멜로 영화의 공식을 통해 익숙해진 범위 안에서 전개된다. 우리 멜로 영화가 빨리 떨쳐버려야 할 나쁜 유산 중의 하나가, 다양한 삶의 깊이를 거부하고 관습적 범주 안으로 도피하려는 습성이다. 아이를 낳다 죽는 여주인공이라든가,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신부라든가,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놓고 먼저 세상을 뜨는 인물의 설정은, 우리들의 비루하고 남루한 삶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새로운 각도로 구성되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받아야 한다. 비슷한 소재, 똑같은 서사구조의 반복, 평범한 연출은, 스크린이라는 전자적 거울을 통해 우리 삶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미학적 충격을 받기를 원하는 관객을 실망시킬 뿐이다.
다만 파나비전 렌즈로 공들여 찍은 화면이 아름답다. 박해일의 연기도 괜찮다. 박신양과이지만 조금 풋풋한 대신 아직 완벽하게 물이 오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대학로 연극 [청춘예찬[을 보며 눈여겨 봤던 배우인데 충무로에서 지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장진영은 [소름]에서의 소름끼치는 연기 이후 멜로 영화의 히로인으로 등장해서 쉴새없이 눈물을 자아내지만, 익숙한 서사구조 안에서 그 눈물이 빛을 발할지는 의문이다.
영상 정보화 시대에 라디오가 두 사람의 사랑을 중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라디오 피디로 설정된 인하의 직업도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을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사연 코너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낡은 정서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랑, 꾸며낸 비극은 우리들의 감정을 움직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