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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회로 막을 내리는 명륜교우회 2018/04/07 안동초등학교 체육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세월은 망부석이 아니라 물같이 흐르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러리라던 우리네도 젊은 패기를 잃어 갔으니 자연의 순리 아니랴. 새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가지는 건 아니라도 우리네 명륜의 발자취를 한번 되돌아 봅니다. 안동사범학교는 1947년 7월 21일 도립으로 신설되어 1947년 8월 30일 경상북도 안동시 명륜동에 교사 2동과 향교 건물 일부를 가교사로 정하고, 동년 9월 15일에 본과 1학급과 초급과 2학급으로 개교하였습니다. 1948년 2월 1일에 6개월∼1년 과정의 강습과가 개설되어 1952년도까지 운영되었는바, 5회에 걸쳐 895명의 수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1950년 4월 1일에 공립에서 국립으로 이관되고, 1952년 4월에 고등학교 졸업자를 입학자격으로 하는 1년과정의 연수과(演修科)가 설치되어 1957년 3월까지 운영되어 5회에 걸쳐 44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안동사범학교는 1962년 2월 28일 폐교가 되었고 1947년부터 1962년 2월 말까지 존속되면서 초등교원을 양성한 결과 사범본과의 경우 14회에 걸쳐 모두 3,384명의 졸업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안동교육대학은 1965년 3월 30일 제1회 신입생 200명(남 137, 여 63)의 입학식을 거행하면서 개교되면서 ‘대한민국 교육이념 아래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고 유능한 교사로 건전한 사상을 구유하고 지도적인 인격과 기능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함.’을 그 목적으로 했다가 1967년에는 교육목표를 ‘① 민족주체성이 강한 교사 양성, ② 사회 및 개인윤리가 투철한 교사양성, ③ 교직관이 투철한 교사와 교육기술이 있는 교사 양성’으로 하였으며, 또한 그 이후에는 ‘유능한 초등교원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입학생 정원은 처음에 10학급 400명이었다가 1967년에 14학급 560명, 1968년 1월에 18학급 720명, 1968년 12월에 20학급 800명으로 증원되었고, 1974년에 300명(10학급)으로 감축되고, 1975학년도에 200명을 모집하였습니다. 1965년 9월 1일 학민사를 설치하여 안동교육대학보를 격주간으로 발행하였습니다. 1966년 3월 1일 18학급 편성의 부속국민학교를 설치하고, 1964년부터 보수교육과정을 개설하여 초급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자를 대상으로 단기간의 교육을 실시하여 초등교원을 양성하여, 1969년까지 모두 1,892명의 수료자를 배출하였고, 1967년 12월 1일 임시초등교원양성소를 설치하여 준교사반과 2급정교사반을 운영하여 단기과정을 통해 초등교원을 양성하여, 임시초등교원양성소는 2급정교사과정 5기에 659명, 준교사과정 4기에 1,133명의 수료자를 배출하였습니다. 1966년 2월 9일 초등교원연수원을 부설하여 경상북도의 안동시·군위군·의성군·안동군·청송군·영양군·영덕군·선산군·상주군·문경군·예천군·영주군·봉화군·울진군 소재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초등교원을 대상으로 행정반, 1정반, 2정반 등 자격연수와 자연·산수과 등 교사연수를 실시하였고, 1969년 1월 16일 제209학도군사훈련단(ROTC)이 창단되어 남학생들은 소정의 군사교육을 이수하여 졸업과 동시에 예비역 하사관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69년 9월 10일 학생지도연구소를 설치하여 학생생활에 대한 연구와 학생에 대한 전문적 지도에 관한 사항을 전담하는 한편, 소보와 학생지도연구지를 발간하였습니다. 1969년 12월에 안동문화권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및 자연과학연구를 통하여 전통적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신문화 창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안동문화연구소를 창설하여 ≪안동문화≫지를 간행하고, 학술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974년 2월에 주부시민대학을 개설하여 안동시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주부들을 대상으로 사회교육을 실시하였고, 1974년 7월 3일 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안동교육대학은 1978년 2월 28일자로 폐교되고, 동년 3월 1일 안동초급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안동교육대학의 총 졸업자는 3,468명이고, 부설 초등교원양성소 수료자는 1,598명이며, 보수반 수료자는 1,892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명륜의 뿌리가 70여년 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많은 이들을 스승의 길로 들어서게 하여 그에 딸린 제자들을 합치면 거대한 교육 왕국입니다. 폐교가 되고 후배들이 단절되고도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되었지만 오늘로 그 걸음을 거둔다니 만감이 가슴에 소용돌이칠 것입니다.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이 갑자기 멀어지는 건 왜 일까요? 명륜교우회 창설을 주도 한 선배를 비롯한 모든 선후배가 엉켜 언제까지 회포를 함께 할 줄 알았던 게 29회라는 만남으로 마무리되는 자리는 참 숙연합니다. 마지막 등록부 그래도 모처럼 만남에 서로를 반가워 합니다. 마지막 잔치를 주체한 11회 동문 회원들의 인사도 뭉클합니다. 29회 명륜교우회의 회고 영상은 모두를 말이 없게 하고 저절로 가슴을 쓸게 합니다. 주관 회장의 대회사마저 귀를 윙윙 울게하고, 모든 것들이 초연해집니다. 함께 부르는 교가는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연상하게 합니다. '대 선배님들 늘 건강하소서' 기원하는 주관 회장과 함께 동창들끼리 만남은 계속되겠지요? 모든 행사가 끝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가시는 길 눈물이 어리지만 늘 건강하소서 그리고 잊지마세요 명륜의 그 뜰악을 탄지에 비치던 아름다운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행복하소서. 안녕히 안녕히 가소서. 한장의 우표붙은 편지를 대신하여 카카톡 명교회가 사월의 첫토요일 안동초 강당이란다 후배차에 오른다. 등록도 하기전에 마지막 명교회란 뜻밖의 이야기라 영문조차 모르고 지나간 자취영상에 눈이 절로 감긴다. 낯익은 얼굴들을 가슴에 담으면서 지나온 날 영상을 다시한번 되돌려 동행한 명륜인들을 품고 안고 가리다 2018/04/08 문경 아침도시의 산돌로 닉을 쓰던 벽암 전제훈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