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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신용
통제할 수 없는, 그러나 걱정 없는
김상미 (시인)
특별하지만 너무나 슬픈
시인 김신용. 그와 가까이 지낸 지도 어느 덧 15년째이다. 그는 내게 아주 좋은 선배 시인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장 주네니, 프랑수아 비용이니, 성자니 하지만, 내게 있어 그는 그 모두를 사랑과 연민으로 껴안고 소화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인, 내가 가장 믿고 존경하는 선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1945년 부산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4세 되던 해, 예기치 않게 불어닥친 불행으로 집안이 산산조각 나 졸지에 고아와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무임승차. 그때부터 시작된 30여 년의 부랑생활, 그 여정에서 꽃 같은 청춘을 삶에게 유린당하다, 파우스트 박사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받아들이듯 운명적으로 문학과 만난 사람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30여 년의 부랑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과 비참, 그 자체였으며, 그 속에서 유일하게 그가 한 일은 밥을 굶지 않는 일이었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는 무엇이든지 했다. 한 끼의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그는 서울의 밑바닥이란 밑바닥은 죄다 훑고 다녔다. 노숙과 매혈, 걸식, 꼬지꾼, 하꼬치기, 저녁털이, 아리랑치기, 엑스트라 등등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인간 비하의 최전방, 인간 최악의 빈민굴, 신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버려진 사람들’ 틈에서 그는 일거수 일투족을 하루살이에 저당 잡힌 채 집착, 기생하며 견뎌왔다. 그 와중에서 소년원은 물론 두 번의 감옥생활까지 했다.
더 이상 더 버틸 힘이 없어 일부러 죄를 지어 두 번째 감옥으로 들어가던 날, 그는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런 절망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사기꾼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고도의 지적 사기꾼 말이다. 아무리 참고, 견디고, 버티고, 내팽개침을 당해도 일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을 향해 고도의 지적 사기의 칼날을 휘두르며 세상을 희롱하고 버튕기며 난도질해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아는 것, ‘지식’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그는 틈만 나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감옥 안에 있는 책은 물론 마주치는 사람마다에게 책이 있으면 달라고 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프로이트의 『심리학』, 헤겔, 니체, 김승옥, 김수영, 케루악, 포크너,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등등,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책 속의 두껍고도 부드러운 장벽이 서서히 걷히며 그 영양분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뇌를 환히 밝혀줄 때까지, 수많은 책들의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그러다 두 번째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날 즈음엔 그의 온몸은 거짓말처럼 커다란 책장으로 변해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몸에서 문장들이, 글귀들이 주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결코 메피스토펠레스가 될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의 천성은 너무나 정직하고 사기로 먹고살 만한 더러운 배짱이란 게 없었다. 아예 그런 건 갖고 태어나지를 못했다. 아니, 그가 읽고 읽은 책들 속에서 그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를 이미 보아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짜가 되어버린 사람은 장난으로라도 가짜 노릇은 절대 하지 못하듯이….
하여 그는 그냥 일일 날품팔이 지게꾼이 되어 열심히 일했다. 그에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품삯을 쪼개고 쪼개 책을 사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이면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겪은 것들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글쓰기. 앞으로 그가 해야할 일은 글쓰기뿐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깨닫고 있었다. 삶을 글로 치환하는 것. 그래야만 그 동안의 삶의 오욕에서 그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쓰기에 있어 그는 소설보다 시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소설보다는 시가 자신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가 현실을 기록하는 데엔 더없이 좋은 장르일 뿐 아니라 매력도 훨씬 많아 보였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글쓰기 원칙을 세워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곤 서서히 자신을‘문학’쪽으로 밀어붙였다.
체험의 힘
―내 눈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아왔나? 그 동안 내 눈을 흘러간 모든 것들이// 물 빠진 강바닥에 드러난 돌들처럼 아프게 박혀 있다― (『환상통』의 「飛蚊症 1」 중에서)
그는 자신의 온몸에 박힌 아픈 돌들을 하나하나 뽑아내 시로 만들었다. 도저히 뽑아지지 않는 것들은 연민과 사랑으로 서럽게 안고 뒹굴었다. 저절로 몸 속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그러다 N.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읽고는 그 격한 감동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감동의 현기증! 조르바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책 속의 인간이지만 어떻게 한 인간의 삶 안에 그토록 신선한 생명력이 자글자글 끓어 넘칠 수가 있는가! 그가 겪은 일들이 아무리 모질고 처참한 경우들이었다 해도 그러한 빛나는 생명력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가면 갈수록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햄릿이 말한, ‘독서가 모든 것인’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본래부터 문학이 운명이었던 사람처럼 펜을 들 때마다 온 마음, 온몸이 떨려왔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 통제할 수 없는 갈증! 그에게 있어 이제 문학은 그냥 글쓰기가 아니라, 그를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구원이 되어 있었다.
그가 1988년 여름, 『현대시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을 때, 그의 데뷔작품을 읽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이듬해 그의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이 나왔을 땐, 문학 근처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시집에 대해 한마디씩 언급할 정도로 일대 ‘사건’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특별한(?) 삶의 이력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그의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숭원 교수의 해설은 그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진 반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김신용의 작품을 대한 것은 무크지 『현대시사상』을 통해서였다. 그 잡지에 실린 7편의 작품들은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그리고 감각의 새로움에 있어서 놀랄 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나는 그가 문학수업을 제대로 받고 상당한 습작의 과정을 거친 젊은이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따라서 그의 시에 담긴 노동자나 떠돌이의 삶의 모습들은 단편적으로 체험한 것이거나 시인으로서의 상상적 체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얻은 감동은 사실 굉장한 것이어서 어느 시전문지에 그 중 한 편의 시에 대한 짧은 해설을 게재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후 신문지상을 통하여 그의 나이와 이력이 소개된 것을 보고 나는 스스로의 판단 착오에 아연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큰 감동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으니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면서 그 뼈를 깎는 괴로움 속에서도 그토록 밝은 사랑의 정신과 저 눈부신 감성의 눈길을 그대로 지녀왔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놀라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안온한 삶을 누리고 있는 먹물 든 나 자신에게 깊은 부끄러움으로 각인되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그의 시에 대한 나의 이해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숭원 교수의 지적처럼 그는 정말 놀라운 시인(사람)이었다. 그의 이력과 시를 대하면서 아마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그 동안 상상력만으로 도시 빈민의 삶을 동정하며 소리 높여 노래하던 시인들에게 그는 체험의 힘이란 무서운 무기로 졸지에 꼼짝 못할 일침을 놓아버린 셈이니까―.
화엄 부랑의 성자
1990년 가을, 어느 술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의 이력에 비해 그는 얼마나 호방하고 맑게 보였던가. 나는 그때 실례를 무릅쓰고 그에게 물었었다.
“혹, 선생님 가짜 아니세요? 부랑자 생활을 직접 한 게 아니고 부랑자들 근처에서 조금 사신 것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고생고생한 사람치곤 너무 단정하네요. 그리고 지게꾼이나 노동 잡부를 한 손치고는 손이 너무 곱고 예쁘잖아요!”라고.
그만큼 그는 전혀 막 산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천일야화처럼 풀어내는 그의 양동시절 이야기에 어떻게 그런 일이? 설마? 하는 경악의 외마디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술자리 내내 그가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하는 의심의 눈으로 그를 염탐했었다. 그러다 헤어질 즈음, 인간 평가에 대한 객관이나 주관, 보편성 같은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새삼 느끼며 그에게 아주 많이 죄송해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두 번째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세계사, 1990)을 가장 좋아한다. 인간 내면을 유클리드적 지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반역과도 같은 시집. “그는 시집 2권으로 우리 시사에 ‘도시빈민의 시’라고 부를 만한 하나의 시 양식을 가장 앞선 자리에서 이룩해 놓았다”는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의 지적처럼, 그는 그가 가진 시적 역량을 충분히 우리에게 보여준 셈이다. 위대한 시는 다 쓰여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쾅! 하고 치면서 말이다.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얼마 후, 그는 착하고 참한 여인을 만나 ‘신혼 살림’을 차렸다. 끝없는 사막과도 같았던 지상에 ‘즐거운 나의 집’ 한 채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고백』(미학사에서 1994년 출간한 것을 2003년 천년의 시작에서 『달은 어디에 있나』로 제호를 바꿔 재출간)이라는 충격적인 소설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주인공의 이름이 ‘시부랑탕’인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문단의 ‘화제’가 되었다.
―장 주네나 윌리엄 케네디에 버금가는 소설이 나왔다는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첫 대목부터 정신 없이 끌어당기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소설이다. (장정일 시인· 소설가 )
―한국 문학사에 전무후무한 작가가 쓴 전무후무한 소설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버려진 자들의 축생도가 바로 이 책이다. (이문재 시인)
―김신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군은 하수구의 쥐 떼와도 같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부패한 이면에 돋아난 무수한 ‘악의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최승호 시인)
―방랑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까? 여기 자유라는 이름으로 씌어진 책 『달은 어디에 있나』가 있습니다. (황인숙 시인)
16세에서 25세까지의 삶을 자전적으로 구성했다는 『달은 어디에 있나』는 체험의 진정성이 주는 흡인력으로 많은 독자와 화제를 낳았으나 기대한 만큼의 판매 부수를 올리지는 못했다. 솔직히 나는 그 소설을 읽으며 세 번인가 네 번 토했다. 토할 수밖에 없었다. 비참과 비굴이 주는 혐오,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소설을 덮을 때 즈음엔 그가 보여준 부랑의 화엄! 비참의 화엄! 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붙여진 聖者라는 이름에 수긍이 갔다.
진짜 시인
나는 모든 것과 사랑했다. 버려진 여자, 떠도는 남자,
시든 풀, 구르는 돌멩이와도…….
그는 그렇게 국민이 조국을 사랑하듯이 그가 밟고 온 길들을 사랑하였다.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분신처럼 온몸,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여 시에서든 소설에서든 흥미 유발적 묘사나 웅변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히 진실을 풀어놓을 뿐 그에 대한 동의나 분노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동정을 구하지도 어떤 연민의 제스처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겐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시 중 「우화」(그의 시집 『몽유 속을 걷다』)라는 시가 있는데, 나는 그 시만큼 그의 삶의 자세를 잘 표현한 시도 없다는 생각이다. 독자들을 위해 그 시 전문을 옮겨보겠다.
송아지는 눈이 멀었다
눈곱을 빨아먹는 파리 떼들이 퍼트린 병균 때문에
그 선한 눈망울을 잃었다
초원의 그 푸른빛을 박탈당한 어둠 속,
목동에게도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들었다
같은 동족에게마저 이방인이 되어 번번이
거부의 뿔에 떠밀려 무리에서 추방당했다
눈앞은, 풀뿌리 하나 없는 캄캄한 침묵의 낭떠러지
이제 한 발짝만 내디디면 세계는 종말이었다
그때,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매의 날카로운 발톱에 쫓겨 물가에서 도망쳐 온 거위,
그 힘없는 거위의 천적인 여우를 눈먼 송아지는
이제 돋기 시작한 뿔로 쫓아버려 주었다.
그러자 꽥꽥 목 졸린 신음 같은 기쁨의 소리로 눈먼
송아지의 손을 잡은 거위, 따라 간 곳, 푸른 풀밭이었다
못생긴 코미디같이 뒤뚱거리는 안짱걸음이 이끌어준 곳,
물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물통 가였다
날개도 없는 거위, 그러나 눈먼 송아지에게는
신의 푸른 지팡이
눈먼 병신이라고 공동여물통에서도 내쫓는 다른 뿔들을
납작한 거위의 입은 분노로 꽥꽥거렸다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파닥이며―.
이제 눈먼 송아지는 푸른 초원을 되찾았다
거위에게는 천적인 매와 여우가 사라졌다
눈먼 송아지와 코미디 같은 안짱걸음의 거위와의 이 기묘한 동거 앞에서―.
언젠가 나는 위의 시 「우화」를 가지고 동화를 한 편 써볼 생각이다. 그의 글들이 지닌 좋은 특성―어두운 것을 보이게 하고, 쓰인 것의 의미를 무한히 확장시키고,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그냥 전체를 보여주어 느끼게 하는―을 아주 잘 살린 한 편의 동화. 그에게 바치는.
시집 2권(『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과 소설 2권(『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을 세상에 내놓고, 그는 남쪽 섬, 땅끝마을로 이사를 갔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최소한의 생활을 살아내기엔 서울이란 도시가 그에게 너무 벅찬 탓일까? 그는 참한 부인과 함께 남쪽 섬마을로 내려가 그곳에서 한동안 어부처럼 조용히 살았다. 3번째 시집인 『몽유 속을 걷다』를 준비하면서.
그의 3번째 시집이 나오고 얼마 후, 그는 경기도를 거쳐 다시 서울로 입성했다. 서울의 신림동에서 그는 부인과 함께 수의(壽衣) 재단사가 되어 수의를 만들었다. 수의 만드는 일이 그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는지… 그 당시의 그는 다른 때보다 훨씬 즐겁고 생기 있어 보였다. 몇 번 그에게 술도 얻어 마셨다. 술! 하면, 언제나 그가 떠오를 만큼 나는 시인들 중 그와 가장 술을 많이 마셨다. 그만큼 그는 편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될 만큼 신의가 두터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작가정신이 투철하고 정직했다.
요즈음은 그를 만날 때마다 그들 부부에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 아이가 있었으면 그는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현재 그는 다시 서울을 떠나 충주로 내려가 있다. 충주의 한 작은 마을인 도장골에 새 둥지를 털었다. 그의 4번째 시집인 『환상통』이 출간되자마자 그곳으로 내려갔다. 7년 만에 낸 4번째 시집! 그 아름다운 시집 안에는 그의 기억 속에 살고 있던 모든 새들이 과거의 아픔을 털고 일제히 노래하며 날아오르고 있다. 행복한 김신용과 불행한 김신용을 다같이 붙안고, 자유롭게 훨, 훨….
어쩌면 한동안 그는 시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열심히 쓰면서 서서히 변신을 꾀할지도 모른다. 그가 무엇을 쓰든 그는 자신의 존재를 문학화하고 그것을 한 편의 아름답고 심오한 시로 변모시킬 수 있는 진짜 시인이니… 나는 그가 시를 쓰든 시를 쓰지 않든 이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의 삶이 곧 그의 문학이고 그의 문학이 곧 그의 삶일 테니까!
* 김신용 시인의 저서 목록
시집-『버려진 사람들』(고려원, 1989)
『개같은 날들의 기록』(세계사, 1990)
『몽유 속을 걷다』(실천문학, 1998)
『버려진 사람들』(천년의 시작, 2003, 재출간)
『환상통』(천년의 시작, 2005)
소설-『고백』(미학사, 1994)→『달은 어디에 있나』(천년의 시작, 2003, 재출간)
『기계 앵무새』(세계사, 1997) ♠
김신용의 시
*가시 1
가시에
얼굴이 비쳐 보일때가 있다
핏방울이 묻어날 듯 날카롭게 돋아있는 가시가
거울처럼 얼굴울 비쳐 보여 줄 때가 있다
내가 가시가 되었을 때다
내가 가시가 되어 가시를 바라볼 때이다
그때 가시는 드므가 된다
가시가 된 내 얼굴을 맑게 떠올려주는 물거울이 된다
가시가 가시를 겨루는 그 전율!
내가 또 하나의 敵意 앞에 섰을 때의 삶이
덫과 같은 맑은 물거울에 파동치는 순간!
-환상통-
*눈부처
그대 눈 속에 들어 있는 얼굴 하나
깊은 동굴 같은 얼굴 하나
슬픔이 석순石筍처럼 맺혀 자라나고 있는
그 돌고드름에 매달려 눈물처럼 그렁이고 있는 얼굴 하나
젖은 나뭇잎 같은 그 위조지폐를,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는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어 마치 강철로 만든 잎처럼, 아무리 바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얼굴 하나
하고 싶은 말들은 그 눈 속에 울타리처럼 두르고 너와집이라도 지어 살게 하고 싶은
것일까?
돌고드름에 맺힌 눈물을 삽처럼 쥐어주며 더 깊은 동굴을 파게 하고 싶은 듯, 눈꺼풀
을 깜박이는 눈 속의 얼굴 하나
그 태초의 빛인 듯, 손에 쥔 삽으로 그대 눈 속에 어두운 동혈洞穴을 경작하고 있는,
그 위조지폐로 사는 건 슬픔이지만 맺힌 돌고드름의 삽질로, 파헤쳐진 그대 가슴 속을
방으로 꾸며주고 있는 눈이여, 그 동그란 눈동자 속의 영어囹圄여.
한 줄기 슬픔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눈사람 같은
땀방울들, 맺히고 맺혀 이제 가시 기둥 같은 돌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어도
그대 눈 속에 담겨 비로소 얼굴이 되는 얼굴 하나
그대 눈 속에 비쳐져 비로소 세계가 되는 얼굴 하나
-시인세계, 2005, 겨울호-
*도장골 이야기
-부레옥잠
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
주희야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시인이고.
지는 자리도 잘 알고, 쉽게 감출 줄 아는...
*공중변소 속에서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깡통을 위하여
한 때
우리 모두 가난했을 때
판잣집의 쭈그러진 그릇처럼 헐벗었을 때
깡통은,
우리들의 삶의 일부였다
속은 텅 비우고 껍질만으로 굴러 다녀도
깡통은
초라한 꽁초의 집이 되어 주었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그릇,
뚫린 벽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스스로 텅 비우지 않아도, 늘 비어있는
버린다는 그 의식마저 비우지 않아도, 알맹이는 주고
흙을 담으면 화분이 되어 주었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다
깡통의 생애가 꽃으로 장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깡통 화분이 놓인 山 1번지,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쪽마당 가에 갖가지 빛깔로
핀
깡통 꽃밭을 보며
비록 빈혈이었지만, 우리는 꿈의 어질머리를 앓기도 했
다
그 깡통을
발로 차지 말자
홧김의 구둣말로 시궁창에 처넣지 말자
텅 빈 껍질만으로 굴러다니는 알몸이
잿빛의 미래를 펼쳐 보이는, 이 앙다문 몸짓의 물구나
무서기라 해도
만나는 그 어떤 것과 몸 섞으며
버려져 뼈아픈 것들을 기억하게 한다 해도
*바람의 입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 떼를 바람의 입이라고 부른다
바람을 타고 공중을 가득 뒤덮으며 날아와, 지평선을 지우고
하늘을 지우고
들판의 곡식들을 갉아 먹어 버리는 메뚜기,
메뚜기 떼들.
앉은 자리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그 바람의 입들.
누가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하나?
바람에게도 입이 있다. 저렇게 바람의 입을 발견한 아프리카人들에게
나는 무릎을 치며 경탄한다
숲을 지나 온 바람
푸른 풀밭을 걸어 온 바람을 <바람>이라고 발음만 해도
입술이 초록으로 물드는, 내 고정관념의 목덜미에 차가운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그들의 언어 감각.
그러면
에메랄드와 철광석 같은 광물들을 먹어치우기 위해, 새카맣게 몰려든 西歐人들을
그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엔진을 가진 바람의 입?
혹은 총?
낡은 집
풍화하고 있는 늙은 고목만이, 바람의 입이 스쳐간 자국이 아니다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날아와, 이윤만 빼먹고 튀어 버려
먹튀族이라고 불리는, 그 바람의 입도 있다
그 입이 스쳐간 자리는, 정리해고의 빈 쭉정이들만 남는다
그리고 저 간판들
건물의 벽면에 메뚜기의 形象으로 앉아 있는 무수한 돌출 간판들
저것은 바람의 입이 아닌가?
기호화된, 보이지 않는 그 낱낱의 입들
의식이 들판의 곡식인 그 메뚜기 떼들
앉은 자리를 아예 無化시켜 버려야 식성이 풀리는
그 바람의 입들.
-시집/환상통-
*이땅의 풀잎
땅 밑을 흐르는 저 뿌리의 몸부림이
곡괭이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아주 부드러운 포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날, 속잎이 눈뜰 때
뼈를 깎는 살을 찢기는 그 아픔으로 뿌리는
땅 밑 가장 어두운 곳에서
땀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맑은 햇살 속, 떠오른 풀잎의 흔들림
결코 지게질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미풍에 흔들리는 꿈의 요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 부는 날
아주 미친 바람 부는 날
피바람 자욱한 황사의 오월이 왔을 때
가녀린 풀잎 위에 실린 햇살 한 짐 한 짐......
온몸 짓눌려도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그 흔들림으로 져날라서
어둠 속 저 뿌리의 캄캄한 길 위에
등불로 피워놓는 것을 보았다
분신처럼, 어두운 이 땅 위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밝혀 놓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몰래
- 버려진 사람들-
*재봉틀
풀밭 위에 재봉틀 한 대가 놓여 있다
365일 수의를 짓느라 낡아지고 칠 벗겨진 재봉틀
순한 눈망울의 맹인 안내견처럼 풀밭에 앉아 있다
그 푸른 지팡이에 이끌려온 내 만혼晩婚의 날들
된장독 이불 보따리 같은 가재 도구들의 곁에 부려놓고
신호등 앞에서 앞발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앉아 있다
저 신호등의 색깔이 푸른 제비꽃으로 바뀌면
또 어디로 가나? 눈 깜박이는 나비 한 마리
재봉틀 위에 날아와 앉아, 낮선 길을 눈새김 하듯 날개를 접는다 풀로 만들어진 수의
풀의 실을 뽑아 지어진 옷을
매일 하루 하루에게 입히며, 그대 위해 옷 한 벌 지어본 적 없는
품삯, 풀에서 뽑아낸 실로 지어
풀처럼 깨끗이 삭아 갈, 또 하루를 꿈꾸는지
나비가 팔랑 나래를 펴고 울타리를 넘어 날아간다
풀의
옷은, 풀잎이듯
태우면 고운 재의 입자粒子만 남는, 눈길 거두고
몸 일으킨 맹인 안내견, 목줄 내밀어 새로 이삿짐을 푼 집의 방으로
다시, 나를 데려갈 것이다
풀밭 위에
놓여있는 재봉틀 한 대,
황혼을 이끌고 온 해거름의 일꾼처럼, 순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마당 가에
앉아 있는, 내 만혼晩婚의
텃밭,
-현대시 8월호-
*몽유속을 걷다
요즘 나는 <머리에 떨어진 벽돌>을 꿈꾼다
길을 걷다가, 멍청히 빈 공터를 서성이다가 문득
어디선가 떨어져 내린 벽돌이 머리에 꽝 부딪친 순간
(사망은 말고,)
머리통 속만 깜깜히 어두워져 버렸으면......, 하고 상
상한다
또 두개골 속의 물렁한 뇌가 돌처럼 딱딱히 굳어버린
그 순간,
등에 닭털 날개라도 돋아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 닭털 날개를 달고 날지도 못하면서 날 것처럼 푸
드득이는 모습이
서커스의 우스꽝스런 어릿광대 같다고 해도
나는 <머리에 떨어진 벽돌>을 꿈꾸곤 한다
그리고 박제의 가짜 날개를 달고, 이 도시를 몽유
도원처럼 거닐었으면......, 하고
다시 상상한다. <머리에 떨어진 벽돌>.
뒤로 넘어지다가 코가 깨질 때처럼, 최소한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재수 없다는 이 불행, 이 생의 돌발성에 실려
머리 속에는 캄캄히 타버린 기억의 재밖에 들어 있지
않은데
기억회로에는 살아온 어떤 생의 무늬도 비쳐지지 않
는데
나는 이 불치(?)의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거리를
무릉도원처럼 거닐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두개골에 벽돌이 꽝 부딪힌 그 순간,
텅 빈 머리통 속에 덜컥 <공중정원>이 들어서기를
그 공중정원에서 닭털 날개를 달고, 반가사유상 같은
우주의 주민의 산책을 꿈꾸는 것이다. 마치 베를린 장
벽이 무너진 것 같은
해방된 표정을 낯짝에 달고, 이 도시가 유토피아라도
되는 듯이
그 모습 또한,
불타는 소돔을 못 잊어 문득 뒤돌아본 <소금기둥> 같
다고 해도.
- 몽유 속을 걷다 / 실천문학사, 1998
*흉터, 어느 작부로부터의 편지
-엉망으로 취해,뱃놈 인생은 말짱 개털이라고 내 남루한
치마폭에 오물을 게워놓고,폐선 속의 쥐새끼처럼 하룻밤
내 썩은 몸뚱이를 다녀가신 선생님께-
바다 위에 노을이 타오르면 온몸 석유 끼얹고 분신하던 그이의 모습이 보여요
와락 그 불덩이를 껴안았다가 얻은 왼쪽 얼굴과 귀밑 목덜미에 반져 있는
그 火傷 제 섬이에요 낡은 통발배가 버러진 고무신짝처럼 떠 있는 남해의 작은
落島 밤이면 선창의 붉은 불빛 객혈처럼 흐르는 좁은 술집 골목 술자리에서
빈번이 쫓겨나던 작부---그래요 제 흉터의 섬 견고한 바다의 물결로 첩첩이
쌓은 제 감옥이에요 철조망 번뜩이는 탐조등은 없지만 스스로 벽을 쌓아
유폐된 감옥 절해 고도----
그이가 살아 있었다면---온몸 멍처럼 시퍼렇게 물들이는 바다의 저 푸른 쪽빛
마치 농익은 오얏을 깨물 때의 그 상큼한 맛으로 내 오관을 저리게 했을지도---
철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저 핏빛 동백 내 목에 화환으로 타올라 세상의 가슴에
내 꽃무늬 화사한 문신으로 새겨졌을지도----
그러나 저는 알아요 스스로 갇힌 이 감옥 세상을 향한 집념 인간을 위한 모든
욕망을 버렸을 때 다가오는 포근한 고절감 또 이것이 얼마나 금찍스런 감옥
인가를 그 안온암이 얼마나 뼈저린 자기 방어인가를 저는 알아요 자기 위안의
내 견고한 섬 허망 위에 허망을 쌓아 물거품만 허벅지게 피웠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포말의 집이라는 것을.
흉터---그이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섬 이제 정분난 남정네가 주고 간
정표 같아요 죽어서 비로소 잉태된 그이의 흔적이에요 온통 그믐밤처럼 꺼멓던
탄광촌 제 몸 곡괭이가 되어야 살아남던 삶들 그들의 구멍 숭숭 뚫린 가슴의
空洞 같던 갱 앞에서 스스로 온몸 불꽃 피워 어두운 삶을 밝히려 했던 그이
몸 안주 삼아 들고 다니던 내 들병이 같던 새월 썩은 몸둥이 무엇이 좋다고
밤마다 파고들어 몸 던져 껴안아야 할 날들을 몸으로 말해 주던 그이.
그 흉터 술맛 떨어진다고 흘러 흘러온 갯촌의 시린 술주정을 피해 얼굴이 밑천인
이 화류의 세계에서 내치는 손길 손톱 세워들고 돼지 얼굴 보고 잡아먹냐고
악머구리 몸부림 대신 홀로 어둠 속의 방파제로 나와 일렁이는 밤물결 앞에 서면
마치 최면이듯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영원한 잠에의 유혹---그 허망이 지어놓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이와 함께 잠들 이불만 펴면 되는 것을.
그러나 선생님 병도 오래 앓으면 수족 같은 정이 든다 했던가요?
얼굴에 술을 끼얹으며 썩은 내 품을 파고드는 비린 생선내음
절이고 절여진 퇴락한 어촌의 그 한서린 세월 그것 또한 내가 껴안아야 할 흉터가
아닌가요? 이 땅 암호처럼 그이가 내게 주고 간 흉터 그 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가 아니던가요? 잡풀도 새들의 둥지를 짓는데----.
*물고기 무덤
물고기야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살아, 퍼득퍼득 뛰는 놈을 회
를 쳐, 초고추장에 푹,
소주 한 잔 칵! 생각만 해도 의시시하다
뜨거운 천렵의 강가에선 더욱 소름끼친다
살아, 퍼득이는 놈을 찾아 천방지축이 되는 나의
벌거벗음, 물고기야
사람의 몸 속에는 강이 있다
모든 것을, 태어난 곳으로 되돌려주는
살은 살에게 주고, 뼈만으로 흐르는 강이 있다
그 뼈의 강은
죽비,
깨라! 살 한 점 없는 부끄러움 빈 그릇 위에 앙상히
떠올라도
물고기는 무덤을 짓지 않는다
물고기의 눈에는 눈꺼풀이 없다
뼈는 물고기의 주검을 물로 흐르게 하지만
살은 항문으로 오물을 흐르게 한다
그럼 물고기의 무덤은 인간의 뱃속? 그러나
물고기야
어두운 밤길, 가로등을 켠 뼈가 있다
제 어둠을 밝히지 못해 두 눈 핏발 켠 뼈가 있다
살은 살에게 주고, 아무리 뼈만으로 헤엄치고 싶어도
줄 살이 없는 뼈가 있다
그때, 너는 살을 찾기 위한 단백질 주공급원,
밤길을 걸어, 차가운 上流의 물에 핏발 아픈 두 눈의
열을 푸는
열목어,
그 뼈의 가로등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부끄러움의 뼈 한 자락도 부끄러워, 방취제인
무덤을 뿌린다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소주 한 잔 촛불 켜마, 내 몸 속의 강에 살 한 점 남김
없이
너를 방생하며, 뼈를 다오
티없이 맑은 下流의 물에 열목어를 다오
- 몽유 속을 걷다-
*빈집 속의 빈집
땅끝을 지나,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땅끝에 매달려/
저기, 수척한 바다처럼 누워있는
사람, 그 바다에 /
나는 얼마나 많은 섬들을 띄워놓았던가
말의 섬들,/
햇살 속에 온갖 어족의 비늘로도 반짝이던
그 다도해,그러나 그 섬들은/
이제 마당가에 뒹구는 빈 장독들처럼
불룩해진 배로 /
상상임신의 헛구역질만 하고 있음을 보네,
말의 뼈를 뽑아 /
삭아버린 서까래 하나 얹지 못한
덜컹이는 바람벽의 못 하나 되지 못한 /
빗방울 스미는
저 녹슨 함석 지붕 하나 떠받치지 못한 /
말의 무수한 발자국만 남긴
몸, 이제 이 땅의 끝까지 지나왔지만 /
저기,赤湖에 잠겨
잡풀 우거진 빈집으로 누워있는 사람,/
그 빈집에 들어서야
내가 빈집 속의 빈집이었음을 알겠네
*환상통(幻想痛)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배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쳤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 없고, 바퀴 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잇는 창 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나는 처음, 그 말이 그녀의 울음인지 몰랐다
나는 배가 고파요-. 오늘 밤, 잠잘 곳이 없어요-. 하는, 신음인지도 몰랐다
한 불구의, 공원을 떠돌아 다니며 몸을 파는 어린 창녀의, 남자를 유혹하는
눈웃음인 줄만 알았다
걸을 때마다 몸과 심한 불화를 일으키는, 미발육의, 우스꽝스러운 그 몸이
얼마나 값싼 것인가를 나타내는, 기호인 줄만 알았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않아, 걸을 때마다 등나무처럼 뒤틀리는, 그 기형의 걸음걸이로
남산 공원을 떠돌며, 만나는 남자들에게마다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하던 그말이-.
나는 갈 곳이 없어요-.
지금<내 몸이 불타고 있어요>하는, 비명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불구,
그 부끄러움을 마비시키기 위해, 신경 안정제를 마약처럼 삼키고
그 몽롱함으로, 공원의 풀숲
공중변소 속에서도 몸을 팔던 그녀
어릴 때부터 그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것이 꿈이었던
그것이 그때,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던-,
그 몸을 팔기 위해
걸어 들어간 공원의 어두운 풀숲
더러운 냄새나는 공중변소 속에서, 그 우스꽝스런 불구의 몸 때문에
양동 빈민굴 사창가에서마저 몸을 팔 수 없어, 남산 공원의 떠돌이 창녀가 된
그녀가 마지막으로 움켜쥘 수 있었던-.
짜장면 한 그릇만 사주실래요?
정말 나는 처음 그 말이, 종의 돌연변이인 줄만 알았다
변이 유전인자에의한, 이상 진화인 줄만 알았다
자신의 불구 때문에, 영혼이 먼저 소아마비에 걸린-.
-[환상통]중에서
실천문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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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그의 삶은 가슴을 아리게 하고
그의 시가 주체할 수 없는 갈등을, 통곡을 쏟게 하는데
그의 시는 너무나 담담해서, 담담해서 숨막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