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슴없이 노란색을 꺼내들 것입니다. 노란색은 밝고 활기찬 색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으로 행복과 기쁨과 창의력을 떠올려 주는 것도 매력이지만 무엇보다도 봄꽃 중에 대부분 노란 꽃이 많다는 기억이 마음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가 노란색에 집착하고 사랑했다는 사실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특히 그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노란색이 주를 이루며. 배경까지 노란색입니다.
봄 바탕색을 노란색으로 칠하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녘의 유채꽃 빛이 마음에 찾아올 무렵이면 그곳을 찾았을 때 담아두었던 화상(花像)을 심미적(審美的)으로 펼쳐 놓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시 찍어 놓았던 화첩을 꺼내 살피며 추억의 시간으로 따라 들어가 봅니다. 현장에 느끼던 감정은 폭발적인 감동이었다면 회상의 시간에서 받게 되는 감정은 여유롭습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한 안도에서 갖는 감정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럴 즈음 축하할 일이 있어 시집을 챙겨 두었다가 보내드렸더니 봄 꽃망울 같은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내주신 글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기며..
반가웠습니다.
간결하면서, 삽화가 너무 예쁜
나 태주 시집, 감사합니다
나 시인과 나의 마음이 통하는 듯
마음에 와닿는 시인의. 시
너무 좋습니다~
봄 바탕에 적은 답신
작고, 순수한 마음을 익히 알고 있는 다른 마음이 선택한
한 권의 시 화집
그렇게 좋다 하시니 마음선물 같은 좋은 아침을 맞습니다.
그 간결한 시화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뜰,
늘 거 느시며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랜만에 찾은 남한산성 걸음 여행
오랜만에 찾은 남한산성, 초봄을 맞이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간단한 backpeack에 여벌 예비복으로 방풍상의, 장갑과 컵을 넣고 빵 몇 조각을 챙긴 후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가려다 오랜 지인에게 전화문을 보내 의중을 살폈습니다. 단숨에 응답이 도착 열어보니 동행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시간을 정한 후 나의 준비물은 이러하니 이것과 궁합이 맞는 한 가지만 준비하라 전하고 지하철 승차장에 서서 10시 50분 전철로 출발한다고 알렸습니다. 도착시간을 가늠하여 준비하고 나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만나 두 사람은 북문아래 마을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성벽을 쌓고 동서남북 방위에 사대문을 설치하고 사대문 사이에 소문이나 암문을 설치하여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도 외부로 출입하거니 성 안에서 사용할 물자를 나르는 통로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북문은 늘 동서남 문과 달리 닫혀 있었습니다. 성내 풍기와 북쪽 오랑캐들을 의식한 안전과 관련된 영향으로 불문율로 지켜져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 철칙은 깨져 북문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은 한양도성의 숙정문이 그렇고 남한산성 북문이 그렇습니다. 특히 남한산성은 산성 내에서 상행위를 하시는 상인들의 절대적 요구에 의하여 개방하게 된 것입니다. 인구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하남시 시민들에게 길을 열어주어 매출을 늘리기 위한 일한으로 민원을 넣어 성사가 된 것입니다.
사실 북문 밖에는 병자호란 당시 뼈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역사의 현장입니다.그 현장은 현재에도 지명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법화골이라는 지명과 법화사라는 절과 고골 등과 방어용 군사시설인 토성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토성은 흙으로 만든 성(城)을 말하는 것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춘궁동 방향은 그대로 두었지만 적이 침입할 수 있는 산곡동 방향은 경사가 급해지도록 흙을 깎아 성벽처럼 만들고 능선과 능선 사이 좁은 협곡에 흙을 다지고 깎아 연결하여 토성을 만든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법화골은 벌봉 아래 법화사란 절이 있어 생긴 이름입니다. 이곳으로 청군들은 처들어와 포를 이동하여 쏘며 남한산성 내 궁궐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때 조선의 명장 원두표장군에게 청 태종 누르하치 사위 중국 만주 법화둔 출신 앙고라 장군이 사살당합니다. 조선이 삼전도에서 항복 후 이곳에 절을 법화사라 짓고 사위의 영혼을 위로하라 하여 지은 절이 바로 법화사입니다. 지금은 터와 부도만 남아 있습니다. 부도 아래는 몇해 전 산사태가 일어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절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이 절의 이름 따서 계곡의 이름을 법화골이 불러왔습니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조선군은 청군과 전투에서 수십 명을 살상하는 작은 전과만 있을 뿐 오히려 패배가 상당하였습니다. 특히 영의정 김류가 북문 열고 나가 청군에게 기습 전투에서 300명의 조선군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전투를 법화골 전투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정조는 남한산성의 사대성문을 개축하면서·패전의 기억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북문의 이름을 ”전승문이라 명명하여 지금껏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광주향교를 지나 고골중간 즈음 산 길로 접어들기 위하여 고골과 춘궁계곡 사이의 능선으로 달라붙었습니다. 능선을 중심으로 우측은 춘궁동입니다. 좌측은 고골과 법화사로 갈라지는 방향입니다. 길은 호젓합니다. 낙엽사이로 간혹 보이는 풀빛을 자세히 살펴보면 새싹이 움트는 모습이 아련하지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성미 급한 산초나무 가지에도 움이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구정 지난 후 가끔씩 내린 눈비의 영향과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흙 속에 얼음들이 빠져나가 푹신함 감이 들어 풀들도 해토된 흙위로 부담 없이 새싹 얼굴을 내밀 수 있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토성의 흔적들은 안고 걸어 오르고 다시 등뒤로 흘려보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북문 가까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를수록 소나무 향이 짙어져 온몸이 정화되어 가는 듯하여 모든 것이 상쾌하였지만 소나무 향의 원인을 발견하고 마냥 좋아할 수만 없었습니다. 일전에 내린 폭설로 불균형하게 자란 대부분 소나무 고목들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 가지들이 무참하게 부러져 나간 것입니다. 가지가 몽땅 꺾인 소나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할 수 없이 사진처럼 벌목해 버린 것입니다. 이 숫자가 한 두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남한사성은 특히 소나무 밀도가 좋은 숲입니다. 잘린 소나무를 보면 긴 수령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시 소나무가 이렇게 성목이 되려면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참 가슴 아픈 현장이었습니다.
이 오름 오솔길만 벗어나면 북문인 전승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급경사가 같으면서도 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호흡이 거칠어질 이유가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남한산성 동남서쪽 보다 유순하여 청군들도 북문 쪽으로 공격루트를 잡은 이유입니다. 북문 아래에 도착하여 바라본 북문, 해체하여 다시 신축한 북문을 처음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걸려는데 그 이유는 공사 중 각종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사실 만으로도 참 오랜만에 찾은 남한산성입니다. 늘 울타리가 쳐져 있는 모습만 보고 지나갔는데 6.25이 후 재건된 북문 보다 더 묵직하고 웅장한 자태로 다가왔습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봄기운이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행락객들이 타고 온 차들로 가득한 주차장과 진입하는 긴 행렬의 차량 물결을 보면서 봄 아지랑이가 느껴졌습니다. 벌써 봄이 이렇게 왔구나 하며 로터리 부근에 있는 새롭게 한옥을 짓고 개업을 한 식당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식탁이며 집기와 실내환경도 새것이라 봄과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지평막걸리 한 병을 시켰습니다. 적당하게 흔들어 작고 앙증스러운 잔에 따르고 받고 잔을 부딪친 후 들이켰습니다. 인내하며 버티고 능선길을 마지막으로 넘어서서 마주한 북문 안부에서의 얻어낸 성취감처럼 그렇게 넘어가더니 청량감과 더불어 술꾼의 탄식성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카~~~(잘못하면 톡 발음을 붙일 번 했습니다) 꾹 참고 다시 한 잔을 더 따르며 입주(立酒)를 이어 나갔습니다. 안주는 장을 묻혀 놓은 산채,
반 평생을 함께 걸어 온 우정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균열이 조금씩 보이는 듯 합니다. 쓰잘대기 없는 농담으로 서로를 골려먹으며 좋아하는 작태가 그런 생각을 들게 합니다. 오늘도 오르면서 장의자를 만나면 자리로 생각하고 자주 눕길레 떠날 때 받침판으로 사용하는 송판이라고 하였더니 발끈하고 느림보를 멈추고 따라 붙어준 노력이 가상했지만 때로는 심술를 얼마나 부리는지.. 그래 오늘도 성을 바꾸라고 재촉했습니다. 심술꾸러기 심씨로 바꾸라고 .... 간혹 북사면 길이라 녹지 않은 얼음을 딛고 언덕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뒤에서 넘어지지않고 잘 간다고 타박을 합니다. 넘어져야 보는 재미가 삼삼하다면서.. 이러니 송판 이야기도 할만 한 우정입니다.
진한 갈색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탁배기 잔을 마주 하기 위해 들은 잔에 소리없는 정이 흘러넘쳐 선택한 노래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을 기다리며 커피 또는 가벼운 술잔으로 겨울을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찻 잔
너무 진하지 않는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며 손끝이 따듯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너무 진하지 않는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며 손끝이 따듯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밥이 질어 비빔밥을 조성하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젓가락을 살살 휘젓어 비빌 수 있어야 하는데 떡이라~~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생각하고 다독거리며 점심을 마쳤습니다. 다시 역순으로 걸음을 옮겨 원점회귀, 걸음여행을 접었습니다.
낙엽송 꽃말 대담과 관련된 복음을 떠 올리며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고린도 전서 16:13) 하며
완성된 봄을 위하여 주능선에 설치된 의자에 봄님께서 쉬어 가시라 비워 놓고 하산을 재촉하였습니다. 산이 좋은 이유는 올랐으면 내려가야 한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겸손입니다. 완성된 봄을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