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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느 겨울의 이별. (이 작품은 문예지 '문학사랑' 2006년 봄호 수필 신인상수상작입니다.)
동지가 가까워 밤이 긴 탓일까, 진눈깨비가 내리는 새벽하늘은 어둡고 우중충했다. 가로등 불빛이 명멸되어 아름다운 허공으로 떨어지는 진눈깨비는 마치 하얀 꽃가루 같았다. 어둠과 반조 되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진눈깨비는 광장타운을 신비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 진눈깨비가 질정 없이 내리다니 … ." 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날씨가 궂으면 답사여행은 엉망진창이기 마련이다.
"어제까지 맑고 포근한 날씨 였는 데, 에이 참." 나는 다시 한번 중얼거리며 원망에 가득찬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날씨를 예기치 못한 나의 눈에는 자연 핏발이 설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나는 답사 짐을 꾸리면서 내일 새벽하늘의 총총한 별을 헤면서 도시를 떠나는 그 상쾌한 장면을 몇 번이나 뇌리에 수놓아 보았다. 그런데 지금 막상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이없는 꼴을 당하면서 울화가 치밀고 기가 막혀 헛웃음이 자꾸 나왔다. 도시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해박한 답사가인 유 교수와 근 반년만에 짜 맞추어 논 일정이었다. 그나저나 가로등 빛에 반사되어 내리는 진눈깨비는 바로 하얀 나비였다. 그 하얀 나비는 공연한 서러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오히려 한탄에 가까운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리는 저 허공은 아득한 그리움보다도 더 멀리 어딘가에 꼭 있어야 할 적막같이도 생각되었다. 나는 가로등 그늘 아래에 서서 진눈깨비를 줄곧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는 어떤 환영에 빠져 과거와 현재를 혼돈하고 있었다.
그 때는 1961년 초겨울 어느 날 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꼭두새벽에 감삼 못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는 열두 살배기였고 한 동네에 사는 승구 형은 내년이면 군에 간다는 청년이었다. 둘이는 어깨에 대나무 낚시대를 하나씩 맨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어둠을 헤집고 바삐 걸었다. 해 뜨기 전 못에 도착하여 고기를 낚을 작정이었다. 나는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몰래 집을 나왔으므로 내심 불안하였으나 승구 형이 그 파리한 얼굴로
"물괴기는 새빅에 낚아야 된데이. 사람도 새빅이 되면 배가 고프제. 물고기도 마찬가지인기라. 내일 이자뿔지 말고 낚시대 두 대 챙기서 꼭 나오거래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서꾸마."하는 부탁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냥 묵묵히 걸었다. 승구 형이 몇째 동생뻘 되는 나와 어울리는 데는 사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승구 형은 지독한 가난뱅이였다. 승구 형은 어머니와 단칸 월세 방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6.25 때 행방 불명 되어 뿔고 그때부터 고향을 등진 고단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이 모자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밥 끓이는데 쓰는 간단한 취사도구와 이부자리, 방벽에 언제나 기대어 있는 작은 두레 판이 전부였다. 실로 애처로운 정경이었다. 그러다가 승구 형 모친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그나마 연명하던 곡기를 끊어야 할 판이었다. 그때는 입에 풀칠하기도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승구 형 모친은 자기 친정 곳으로 식량을 구하러 떠나고 혼자 남은 승구 형은 속수무책으로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승구 형의 단칸방에 뻔질나게 드나 들 었는 데 그는 굶어서 기력이 쇠진 한데도 항상 웃는 얼굴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나는 야위고 볼품 없는 승구 형의 앙상한 몸매와 파리한 입술,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모습을 보고 애잔한 마음이 생겨 집에서 간혹 쌀을 훔쳐내어 갔다 주 곤 했다. 그때마다 승구 형은
"찬열아 고맙데이, 니 보기에 면목이 없데이, 내가 니 은혜를 어찌 다 갚을 란고. 글타고 어른들 몰래 쌀을 가져와서는 안된데이." 하였다. 나는
"승구형. 이 쌀은 엄마한테 허락 맡고 가져 온 기라요. 걱정하지 마소." 하며 승구 형의 염려를 덜어 주었다. 이러한 생활이 열흘쯤 지나게 되면 승구 형은 기진맥진이 되는데, 이 때쯤이면 영락없이 승구 형 모친이 돌아왔다. 그러면 모자가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생기를 되찾곤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인생은 고통이고 사바세계라고 하지 않던가. 이 세계는 내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어 있다. 비단 어찌 그뿐이리, 내가 원 하는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다. 그래서 사바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이 기구한 운명의 모자에게 아직도 시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어느 겨울날 집을 떠난 승구 형 모친이 달 장간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이렇게 되자 승구 형도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승구 형이 돈을 벌 수 있는 뾰족한 수 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승구 형은 장사 밑천도 튼튼한 몸도 갖지 못한 사주에 타고난 비렁뱅이 운이었다. 아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움치고 뛸 수도 없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같은 신세였다. 이렇게 오갈 데 없이 딱한 사정에 있던 승구 형이 생각해낸 기발한 묘책이 피를 파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내가 들리니까. 승구 형은 어디서 금맥이라도 찾은 사람처럼 희색이 만연해 가지고 다짜고짜
"찬열아 이제 살길을 찾았데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 있다 안카더나. 동산병원에 가서 피를 팔면 되는 기라 그라면 돈이 생기는 기라." 하였다.
나는 피를 판다는 말이 생소하고 두려워서 멀뚱거리며 쳐다보았다. 이어서 승구 형은
" 난도 들은 소문인데 와 그자 동산빙원 담벼락에 붙어있는 혈액은행 안 있더나, 거기서 피를 산다 안 카나. 내일 가서 피를 팔아 쌀도 사고 장사 밑천도 하면 되는 기라. 니 걱정 말거래이, 인자 됐데이." 하였다.
나는 승구 형이 피를 팔아 돈을 장만하겠다며 들떠 있는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며 속으로 연신 혀를 찼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야윈 몸을 한 승구 형의 피를 병원에서 과연 사 줄 것인가에 자신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모처럼 대하는 승구 형의 의기를 건들이기 싫어 그냥 고개만 주억거렸다. 다음날 그 일이 궁금하여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승구 형 방으로 놀러갔다. 내가 방에 앉자 마자, 승구 형은 목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간의 경위를 미주알 고주알 털어 놓았다.
" 찬열아 마 혈액은행에 갔는 기라, 예쁜 간호원한테 피 팔러 왔다고 안 캤나, 입 띠기가 거북했지만 우짜노. 그 간호원이(사람 직이도록 이쁘다고 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기라. 매우 쑥스럽데 솔직히 얼굴이 화끈 하더마. 조금 있으려니 그 간호원이 먼저 체중을 달아 보입시더 카데 와 목소리도 사람 죽이는 기라, 그래서 체중을 재고 난 뒤 피를 뽑더니 돈을 주는 기라." 승구 형이 그 피 판돈을 손에 거머쥐고 있으려니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는 거였다.
"찬열아 마 그 돈으로 질로 먼저 산 것이 먼지 아나, 니가 국화빵을 조아 하제 그래 니캉 같이 먹을 라고 국화빵을 먼저 산기라." 하면서 승구 형은 우묵에 있던 국화빵 봉지를 내 놓았다. 나는 국화빵을 매우 좋아하였다. 금방 구워낸 국화빵에 흰 설탕을 슬슬 뿌려 주는 것을 입으로 호호 불어 가면서 먹어 보면 그건 영 판 꿀맛이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바로 그 맛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몽롱하고 미칠 것 같다는 국화 향기보다 나는 국화빵의 밀캐한 냄새를 훨씬 좋아하였다. 승구 형은 나의 의중을 정확히 꿰차고 그 피 판돈으로 국화빵을 사왔던 것이다. 내가 국화보다 더 좋아하는 국화빵이지만 그 빵 봉지에 얼른 손이 갈 리가 만무였다. 내가 거듭 망설이자 승구 형은
"와 안 묵노. 국화빵을 그리 좋아 하민시로. 피 판돈으로 샀다고 그 카나. 개얀타 일마야. 빵에 피 안 묻었응께 얼른 퍼뜩 묵거래이." 하였다. 나는 그 날 승구 형과 같이 봉투의 국화빵을 다 먹고 말았다. 피를 먹고 산다는 드라큐라, 피를 판돈으로 산 국화빵을 먹는 승구 형과 나. 나는 그 후 지금까지도 승구 형의 피가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을 종종 느꼈다. 두 사람은 감삼 못에 도착하여서도 못둑을 한참이나 걸어 나갔다. 뒤에는 집으로 둘러 쌓이고 둑이 굽어진 아늑한 곳에 낚시대를 폈다. 그럭저럭 여명이 찾아와 희미하게나마 물위의 찌가 보일 즈음이었다. 승구 형 말마따나 새벽이라 물고기도 배가 고팠든지 던져 넣은 미끼를 덥석덥석 물었다. 마수는 내가 했는데 씨알이 참한 붕어였다. 우리는 고기를 담을 다래끼마저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낚시 줄을 끊어내 양끝에 가는 나무 가지를 묶고 고기 아가미를 꿰어 그 끝을 돌로 단단히 고아 놓았다. 우리가 점심을 굶어 가면서 바쁘게 낚아 올린 물고기가 근 백 여수나 되어 애초에 길게 잡은 꿰미가 절반을 한껏 넘어 섰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낚시터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고기의 입질도 도통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자니 자연 손발이 한가하게 되고 찌를 보던 신경이 배고픔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나는 허기가 돌자 어슬어슬 추워지고 하여 아예 찌를 보지도 않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다가 수면에 닿자 마자 졸지에 사라져 버리는 진눈깨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하얀 나비처럼 떨어지던 진눈깨비가 물위에 떨어져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몸도 눈의 한 부분이 되어 홀연 사라지는 것 같았다. 또 물결도 끝없이 밀려 왔다. 밀려온 물결이 돌에 부딪쳐 부셔져 내리고 그 때 생긴 포말이 잠깐 사이에 흩어지는 그 허망함에 더욱 우울해지기도 하였다. 나는 오래 시간을 그대로 있었다. 배고픔과 허망함으로 나의 속은 텅텅 비어버린 듯 했다. 지겹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 고통의 시간을 떨쳐버리 듯이 낚시를 당겼는데 예기치도 않았던 붕어가 올라왔다. 낚시바늘에서 고기를 떼어내 아가미를 꿰고는 그 끝을 돌로 눌러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나는 승구 형이 낚시대를 접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지쳐 있었다.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픔은 추위를 더욱 불러왔다. 한기가 들어 몸이 으스스 하면서 후들거린다. 그러던 잠시 후에 승구 형이 붕어를 낚아 올려 바늘에서 고기를 따 손에 쥐고 물가로 갔다. 승구 형은 여러 차례 물가를 두리번거리다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찬열아 니 고기 꿰미 어디 두었노. 고기가 안보인데이."
나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승구 형을 쳐다보며
"형이 서 있는 그 발 밑으로 보이소. 거기다가 꿰미 끝을 돌로 눌러 놓았심더."
대꾸하였다.
"찬열아 암만 찾아 봐도 꿰미가 안보인데이."
승구 형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가로 갔다. 허리를 구부려 손을 물에 넣어 더듬어 나갔다. 꿰미 끝을 눌러 놓은 그 큼직한 돌은 있는데 아가미를 꿰여 있다가 사람이 오면 요동을 치고 하든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심으로 아차 하면서도 설마 고기가 없어 질 리가 있겠는냐. 고 손을 휘저어 물 속을 뒤졌으나 물고기는 종적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루종일 잡아놓은 물고기가 송두리 체 없었졌다는 의식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자 나는 한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아이고 승구 형 물고기가 없어졌심더. 내가 돌을 놓을 때 잘못 눌러 놓은 것 갑심더. 이거 큰일 났데이"
나는 울음이 섞인 소리를 질렀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새벽에 그것도 식구들 몰래 빠져나와 두 사람이 두끼를 굶어가면서 잡은 물고기 백 여수가 단 한번의 부주의로 없어지고 만 것이다. 나는 아득한 절망감으로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러나 그냥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나무 작대기 하나를 주워 물가를 다니면서 이리저리 휘저어 보았으나 물고기가 다시 잡힐리 만무였다. 이렇게 안절부절 하든 나를 멍하니 바라보든 승구 형이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반쯔만 남기고 홀딱 벗은 승구 형은 팔을 흔들어 준비운동 흉내를 내고는 철벅거리며 물 속으로 들어갔다. 허리께 쯤에 물이 차 오르자 승구 형은 더 파리해진 얼굴로 나를 힐끗 뒤돌아보고는 싱긋 웃으면서
"찬열아 물이 억시로 시원 하데이. 내가 마음을 강단지게 묵고 잠맥질로 고놈의 괴기들을 찾아 낼끼구마는."
하고는 물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나는 승구 형의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도 우는 얼굴로 보였다. 겨울의 찬 물 속으로 들어가면 심장마비가 일어난다는 들은 말이 있어 승구 형이 심장마비로 죽을까 봐,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 승구 형은 열 번도 넘게 물에 솟구쳤다가 다시 잠맥질을 하였으나 종내 물고기 꿰미를 찾아내지를 못했다. 마음을 강단지게 묵었던 승구 형도 겨울 찬물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든지 뭍으로 나왔다. 승구 형이 옷을 다 입자 나는 낚시대를 거두어들이고 맨땅에 누워있던 한 마리의 물고기를 방생을 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정리가 된 셈 이였고 집으로 돌아 갈 일만 남게 되었다. 나는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꼬리 내린 똥 강아지 몰골이 되어 어깨가 축 쳐져 버렸다. 오늘 새벽 우리 두 사람은 여명의 추위를 헤집으며 부푼 기대를 한아름씩 안고 기세 좋게 감삼 못으로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무엇인가. 그 씨알머리 좋은 붕어 백 여수를 한순간에 놓치고 말다니. 참으로 허탈하고 처참했다. 홀쭉한 승구 형의 가냘픈 두 어깨가 눈에 잡히자 나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오히려 분노를 느껴야 했다. 우리는 풀죽은 모습으로 추위와 배고픔에 치를 떨면서 지루한 반고개 길을 힘겹게 넘었다. 현실을 꿈속으로 끌고 가던 그 현란했던 진눈깨비는 옷을 적시고 냉기를 몰고 오는 성가신 물나비가 되었다. 나는 동네에 가까워 올수록 슬며시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반고개를 넘기 전까지 몰랐던 다른 고통의 고개가 눈앞으로 다가 왔다. 이 몰골로 집에 들어간다면 어른에게 또 얼마나 혼 쭐이 날 것인가. 나는 그 섬직한 장면을 그려보고는 다시 한번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채가기도 전에 승구 형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경남 마산부근에서 큰 저수지를 파는데 공사현장 인부들 함박(인부들에게 밥지어 파는 일)에 승구 형 모친이 일자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가재도구는 화물로 부치고 몸은 기차로 간다는 거였다. 승구 형이 마산으로 떠나던 날은 다행히도 공일이어서 나는 대구 역으로 전송을 나갔다. 개찰구로 들어가기 전 승구 형은 나의 손을 꼭 쥐고서
"찬열아 니캉 히진다고 생각항께 섭섭기 짝이 없데이. 모친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거래이. 니 보러 꼭 한번 올 낀께로." 승구 형은 잠시 있다가 종이에 싼 것을 내밀면서
"이것은 연필 한 타스와 공책 두 권 이데이. 내 성의라고 생각하고 받아 두거래이." 하고는 내 손에 꾸러미를 쥐켜 주었다. 승구 형 모자는 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목이 메어 잠시동안 말을 잊고 있다가 "승구 형." 하고 불렀다. 개찰구를 지나간 승구 형이 뒤돌아 보았다. 나는 손을 연신 흔들어 주었다. 파리한 승구 형의 얼굴이 싱긋 웃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승구 형의 얼굴은 일그러져 어딘가 어색하게 보였다. 승구 형은 그렇게 떠나갔다. 나와는 아픔과 기쁨을 같이 해온 승구 형이었다. 피 판 돈으로 국화빵을 사주던 승구 형. 놓쳐버린 물고기 꿰미를 찾아 진눈깨비 내리던 감삼못 물 속으로 열 번이나 넘게 잠맥질 하던 승구 형은 내 마음 속에 색인만 해놓고 정녕 그렇게 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떠난 승구 형은 그 뒤 영영 소식이 없었다. 나는 승구 형이 살았던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제나 중얼거렸다.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 승구 형 방에는 승구 형이 없다."고 "니 보러 한번 올 낀께로." 하던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파리한 얼굴의 승구 형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이동되고 그 자리에 학교가 들어섰지만 오십 년 대 부터 있었던 수송부대의 위치에서 도면을 떠보면 내가선 광장타운 자리는 감삼 못 둑 어디일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소싯적 승구 형과 같이 낚시를 했던 못 둑 어디쯤인 가로등 그늘 아래에 서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내리는 진눈깨비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그렇고 진눈깨비의 잔영이 하얀 나비가 되어 마음을 텅비게 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오늘 이 현실은 엄청난 착각일 것만 같았다. 지금 나에게는 사십 년 전 그때의 애절했던 낚시 정경이 너무나 선명하였다. 파리한 얼굴을 한 승구 형이 물고기 꿰미를 찾으려고 물위로 떠올랐다 잠맥질 하던 그 애잔한 몸부림 위에 내리던 진눈깨비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기만 하다. 그런데 현재의 이 몽롱한 광경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느 장면이 진상이며 또 허상은 어느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마치 꿈속의 꿈이라고 생각되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한 구절이 뇌리에 떠오른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인연으로 조작되는 모든 현상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고
이슬이나 번갯불 같은 것이니 변함 없는 참 진리 밝게 보렴
응모부문 : 수필
성명 : 김찬일 주소 : 대구 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500-7 월성 화성타운 103동 808호
전화 : (폰) 010-4502-9695
첫댓글 향기를 듬뿍 느낍니다. 축하드립니다
심후섭 선생님 고매한 인격과 후덕한 인간미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언제가 한번 뵈옵고 차라도 나눌날이 오겠지요. 늘 건필하소서.
아득한 시간의 길 위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한 끈끈한 정이 묻어 있습니다. 김찬일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김미옥님 축하 감사합니다. 이러한 진심에 찬 격려가 저의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치열한 문학혼을 위하여 자신을 더욱 담근질하겠습니다. 늘 건필하소서.
축하드립니다
소설같기도 하고 시를 읊는 것 같기도 한 아름다운 글이네요. 승구형! 저도 궁금해집니다.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가보면 가끔 국화빵을 만날 수 있는데 국화빵에 아픈 추억이 담겨 있네요. 어린 나이에 승구 형을 돕고 따른 선생님은 아름다운 천성을 타고 나신 것 같아요.
이 아침에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감정으로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시는 선생님이 수필을 쓰신다니 궁금했는데... 과거는 희망적이고 화려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요. 아프고 슬펐던 과거가 지나고 나면 더 아름답고 그립게 다가오기도 하지요. 인사가 늦었군요.수필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계속 건필하시길..
남녁밭님, 강촌님의 축하 격려말씀에 감사합니다. 게다가 강촌님의 칭찬하시는 리플에 더욱 몸둘바를 모르면서 감사함을 느낌니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주로 상처로서 남아있죠. 누구라도 사람은 상처의 숲으로 살아간다는게, 부처님의 말씀이죠. 강촌님 의 온정과 , 공감의 글월에 한번 더 감사합니다.
김찬일 선생님 축하드리고요..담엔 소설로 등단하셔도 될 거 같네요^^
축하드려요!!!(^*^)
유자란 시인님. 축하 인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구문협에서 보여주신 후의에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후의는 잊지않고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건필 하시길...
미숙한(웃음) 저의 수상을 축하해 주시니 감사하기만 하군요. 늘 건필하시고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