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아주 가난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에게는 멋진 백마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왕까지도 노인이 가지고 있는 백마를 탐냈다.
왕은 그 말을 엄청난 가격으로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게 이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저에게 사람과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친구를 팔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가난했지만 결코 말을 팔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노인은 말이 마구간에서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렸다.
"어리석은 늙은이로군. 언젠가 왕이 당신의 말을 훔쳐갈 걸 알고 있었어.
그때 팔아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정말 안됐군."
-52쪽
노인이 말했다.
"흥분하지 맙시다. 그리고 지금 그 말이 마구간에 없다고만 말합시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당신들의 판단입니다. 이 일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단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니까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들은 노인을 비웃었다. 그들은 항상 그 노인이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난 어느날 밤, 말이 돌아왔다. 말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말이 마구간에서 도망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말은 열두 마리의 야생마를 함께 데리고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 53쪽
당신 말이 맞았군요. 말을 잃어버린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었어요."
노인이 말했다.
"또다시 사실에서 벗어나고 있군요. 그냥 말이 돌아왔다고만 말합시다.
이것이 행운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하나의 조각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문장 속에서 단어 하나를 읽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책 전체의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노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열두 마리의 멋진 말이 함께 돌아온 것은 분명 행운이라고.
노인의 아들이 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두 다리가 모두 부러져버렸다.
사람들은 또다시 모여서 말했다.
- 54쪽
당신의 말이 맞았군요. 말이 돌아온 것은 불행이었소.
당신의 외아들이 다리를 다쳐 걸을 수 없게 되었잖소.
당신 나이엔 아들이 유일한 버팀목인데, 이제 당신은 전보다 더 가난해지겠군요."
노인이 말했다.
"여러분은 판단에 집착하고 있군요. 사실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그냥 내 아들의 두 다리가 부러졌다고만 말합시다.
이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은 조각들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것들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몇 주가 지나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이 군대로 소집되었지만 오직 그 노인의 아들만이 부상으로 목숨을 구했다.
마을 전체는 눈물과 슬픔에 잠겼다.
- 55쪽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 전쟁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돌아올 수 없는 절망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말이 맞았소. 그것은 행운이었군요. 절름발이가 되었어도 당신 아들은 당신 곁에 있잖소.
우리 아들들은 영원히 가버렸다오."
노인이 말했다.
"여러분은 여전히 판단을 하고 있군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당신의 아들들이 군대로 끌려갔고, 내 아들은 그렇지 않다고만 말하세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오직 신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매 순간 의견이나 판단을 만들고, 그것들에 매여버린다.
우리 스스로 그것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불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싫음과 좋음에 영향을 받는 자는 상황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57쪽
초연한 자는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그 사람에게는 모든 일들이 새롭고 의미가 있다.
행복 뒤에는 슬픔이 따르고, 슬픔 뒤에는 행복이 따른다.
하지만 행복과 슬픔을 차별하지 않을 때, 좋고 나쁨을 차별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어떤 것으로 보이는 그대로가 진실은 아니다. 지성은 알 수 없고, 지성의 이해는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지성의 이해와 본질적인 지혜의 차이는 의자 위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
산 정상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서 있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
우리는 신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심리학자나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항상 내면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에도 접근할 수 있다.
58쪽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자위에서 의견을 쏟아내고 판단하며 우리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식의 행동에 '중독'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라고 여겨지는 상황이 나타날 때, 우리는 항상 행동과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다음 이야기는 이것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하루는 농부의 당나귀가 우물에 빠졌다. 당나귀는 몇 시간 동안 애처롭게 울어댔고,
농부는 당나귀를 꺼낼 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결국 농부는 당나귀가 나이가 들었고 어차피 우물도 메우려고 했으니 당나귀를 꺼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농부는 이웃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우물을 메우기로 했다.
이윽고 사람들이 삽을 들고 우물에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 당나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애처롭게 울부짖이었다.
잠시 후,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삽으로 흙을 어느 정도 더 퍼 넣은 뒤 우물 안을 들여다본 농부는 눈잎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나귀는 놀랍게도 등 위로 떨어진 모든 흙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한 발 한 발 밟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의 이웃들이 당나귀 위로 흙을 계속해서 퍼 넣었고, 당나귀는 몸에 떨어지는 흙을 떨어드려 밟고 서기를 반복했다.
곧 당나귀는 우물 밖으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도망쳐버렸다."
삶은 당신에게 온갖 종류의 흙더미를 집어던진다.
우물에서 나오는 비결은 흙을 떨어뜨려 그것을 밟고 올라오는 것이다.
모든 문제들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깊은 우물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
흙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밟고 올라설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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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포노포노, 평화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마벨 카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