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하고 새벽 두어 시간 고양이 잠을 잤다. 그래도 단잠을 쫓아버리고 일어나 새벽별을 헤며 백여 미터 거리의 유황온천탕에 갔다. 두세 사람 밖에 없는 온천탕은 모든 시설이 청정한 느낌으로 다가와 결벽증이 있는 나는 안심하고 온천욕을 즐겼다. 매끌매끌한 감촉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온천수는 묵은 마음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 비너스몸매라도 된 듯 날아갈듯 상쾌하였다. 양평의 기온은 다른 지역보다 낮다. 밖으로 나오니 하얗게 핀 나뭇가지 서리화가 아침햇살에 아름답게 빛난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열시에 출발해서 팔당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운길산 수종사에 올라갔다. 사방으로 산수화 병풍을 두른 듯 산 능선들이 첩첩이 에워 싼 깊은 곳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는 수종사(水鐘寺)는 세조의 설화를 담고 있었다.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는 뱃길에 두물머리에서 야경을 즐기고 있는데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세조는 기이하게 여겨 주민들을 불러 모아 알아보니 뜻밖에도 절터의 암굴 속에 18나한상이 열좌(列坐)해 있고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였다는 것이다. 왕은 여기다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水鐘寺)라 이름지었다한다. 먼저 올라온 우리들은 일주문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멋들어지게 찍고 리더의 재촉에 그 유명한 수종사 차 맛도 못보고 먼저 서둘러 내려왔다.
언 땅이 녹으면 경사가 심하여 오르내리기가 힘든 길이 더욱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운길산아래 동네어귀에서 한참을 동행자들을 기다리자니 무료했다. 마침 그림 같은 미국식 하얀 목조별장주택이 눈에 들어와 그 구조와 잔디마당을 살펴보고 주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 끝에 그 주택 뒤로 난 오솔길로 가면 사십분이면 편하게 수종사에 올라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삼정헌(三鼎軒)」에서 다성(茶聖)초의선사, 다산(茶山)정약용, 추사(秋史)김정희가 대화를 나누며 차를 즐겼다하여 수종사 차맛이 그렇게 유명해졌는가보다. 여름날 마음 맞는 이와 다시 한 번 와서 나도 그 멋을 만끽해 보고 싶다.
일행모두가 모여서 내려오다 금남리의 그린산장 굴밥과 굴김치전골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다. 아니 굴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있을까, 모두들 명함을 챙겼다. 굴 요리로서 최고의 미각을 맛본 것이다. 이 그린산장에 식도락가들이 다투어 올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H는 맛있는 밥집을 안내하더니 또 근사한 찻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산구릉과 강가에 삼각주처럼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 보인다. 마당에 수많은 장독이 줄서있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사장댁이고 황토초가 다섯 채는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봉주르』라는 찻집이다. 초가 한가운데는 겨울날씨에 어울리게 참나무 장작이 불꽃을 날리며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따끈따끈한 한지 장판방으로 들어가 강물위로 나르며 춤추는 철새를 바라보며 대추차를 즐겼다. 그런 중에 백여 미터 앞쪽에서 갑자기 기차가 소리치며 지나간다. 옛날의『기찻길 옆 오막살이』노래가 생각나는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위치다. 남은 간과해버릴 땅을 주인은 이곳의 자연적 조건을 낭만적인 삶으로 즐기며 경제이익까지 창출하면서 누구도 간섭받지 않을 성주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 대감댁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큰 기와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기찻길 옆의 황토초가찻집이름은 그곳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잣 향내풍기는 감미로운 차 맛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짧은 겨울여행을 아쉬워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서로 헤어져 귀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