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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는 철저해서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법정 스님-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때도 모란처럼 서슴없이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산뜻한 아름다움으로 지라는 말은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나 집착을 가지지 말라는 말로 해석이 된다. 삶이란 어떻게 보면 비루하기도하며 비겁하기도 하다. 욕심을 버리며 사는 연습과 삶을 교정하면서 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 살지 않는다. 더러운 물속에서도 스스로의 깨끗함을 유지하고,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불교에서는 참선을 닦는 도인에 비교한다. 중국의 유학자'주렴계'는 '연은 진흙에서 나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텅 비워 통해 있고, 밖은 곧으며 넝쿨도 가지도 없으며, 향기도 멀리 풍기어 맑으며, 물 한 가운데 우뚝하게 조촐하게 서 있어도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지만 가까이서는 만질 수 없다' 며 연꽃의 특성을 이야기 했다.
우리네 삶이 연꽃처럼 쓸모 있고, 품위가 있고, 고고하며, 그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병에 걸릴 일도 없을 것이다.
불교에서 일컫는 중생, 기독교에서 일컫는 죄인은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고통이니, 슬픔이니, 아픔 등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는 동안 조금이라도 행복하려고 종교를 가지거나 책을 읽고 공보를 하는 등 안간임을 쓰는 것이다. 종교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혹은 나 자신을 통해서 삶을 교정해 나갈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나의 읽어버린 한 조각 Missing Piece' 이라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몸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하지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습니다. 동그라미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그라마는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하며 동그라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잃어버린 조각 어디에 있나요! 호이~호이~내가 여기 있답니다.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어요!"
조각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 동그라미는 길에서 비를 맞기도 하고, 눈이 오면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찬란한 햇빛을 만나기도 하고, 햇볕에 까맣게 그을리면서 조각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동그라미는 빨리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힘겹게 천천히 힘을 다해서 구르다가 가끔 쉬면서 길가에 핀 들꽃과 인사도 나누고 꽃향기를 맡기도 하고, 땅바닥에 다니는 벌레들과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딱정벌레와 함께 구르기도 하고, 또 어는 날은 나비가 둥그라미 위에 내려와 앉기도 하였습니다. 동그라미는 바다를 지나고 늪을 지나고 산을 오르내리던 어느 날, 혼자 떨어져 있는 조각 하나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반가웠던 동그라미는 떨어져 나간 자기 귀퉁이에 맞춰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각이 작아서 맞지 않았습니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또 다른 조각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조각은 너무 컸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조각을 만났습니다. 네모모양이라 맞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조각은 너무 날카로운 조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조각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왠지 맞을 것 같았습니다. 맞춰 보았더니 아! 딱 맞는 조각을 만났습니다. 동그라미는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이전보다 훨씬 쉽고 몇 배나 빠른 속도로 구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빠른 속도로 떼굴떼굴 구르다 보니 벌레와 이야기 할수도 없었고, 향기로운 꽃 냄새도 맡을 수 없게 되었고, 나비도 동그라미 위에 내려 와 앉았다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래만큼은 부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동그라미는 '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았답니다' 라는 노래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내해 힐어버린.....초각글.....착작답네다. 헉헉." 너무 빨리 구르는 바람에 노래도 제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동그라미는 생각했습니다. 완전한 동그라미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
동그라미는 구르기를 멈추고 찾아 끼웠던 조각을 살며시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각이 떨어져 나간 예전의 몸으로 천천히 굴러가며 노래를 했습니다. "내 읽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 나비 한 마리가 동그라미의 머리 위로 살포시 내려 않았습니다.
이 짧은 동화가 주는 메세지는 '완벽함의 불편함'을 전하고 있다.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는 모습은 사람들이 보기에 행복하고 부럽다. 이 동화는 본래의 자기 모습대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편안한 옷과도 같다는 암시하는 글이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다.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장미는 장미답게 그리고 김하리는 김하리답게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났다거나 생각하거나 아니다라고 생각이 들거나, 내 인생에 빨간불이 들어와 고통이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면 주저없이 회복하려는 마음 자세로 삶을 교정하도록 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것이된다.
빨리 얻는 것은 빨리 사라진다. 고통도 인내하며 천천히 사람들과 만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여름에는 하안거(음력으로 5월15일~7월15일까지)을 하고, 겨울에는 동안거(음력으로10월15일~다음 해 1월15일까지)각 3개월 간 안거에 들어간다. 본래는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안거제도가 생겨났는데, 그 연유는 우기(雨期)인 여름철에 수행자들이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초목과 벌레들을 살생하는 사태가 많으므로 ,이 시기에는 아예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에서 유래 했다. 전국의 선원에서 방장스님이나 조실스님을 모시고 화두를 참선하는 것을 말한다. 90일 간 말을 하지 않는 묵언정진,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하는 일종식, 하루에 10시간 이상, 18시간~20시간, 22시간을 정진하는 가행정진을 한다.
스님은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사람들로 번뇌 망상을 끓기 위해서 안거를 하면 삭발을 하고 쟂빛승복을 입는다. 이 모든 것들은 스님들만의 삶의 교정법이다.
최고의 감정 상태는 열정이다. 열정적인 상태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떤 장애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다. 추구하는 것은 곧 희망이며 꿈이며 사랑이며 열정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어떤 좌절이 와도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인 것이다.
눈과 코가 예쁜 아가씨가 있었다. 아가씨는 많이 돌출된 입 때문에 예쁜 얼굴이 감정이 되었고, 심지어 촌스럽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어서 항상 고민이 되었고, 드디어 길고 긴 교정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치과를 찾았다. 교정이라는 것이 금방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력을 요구하는 치료이다. 아주 조금씩 자리 잡아 가면서 몇 년이 지났을 때, 가지런한 치아를 가질 수 있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삶이란 길고 긴 여정에서의 교정을 하면서 길고 지루한 시간들을 참을성 있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선배 한 분은 긴 시간 동안, 열심히 저축해서 모은 몇 억을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매일 술을 마셨다. 믿었던 사람에게서의 배신감과 자신의 못남을 한탄하는 자괴감 등이 그를 못ㅂ시 괴롭혔다. 더군다나 사기를 친 사람은 아예 연락조차 끊긴 상태여서 절망감과 분노감에 더 괴로웠다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한시도 보낼 수가 없어서 매일 술을 마셔 몸은 말이 아니었고, 직장도, 가정생활도 한사람의 나쁜 짓으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본인의 잘못인 양, 괴롭고 힘들었다고 한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다면 결과도 좋아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울증까지 와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심신이 너무 지쳐 있는 상태에 있던 어느 날, 예전에 몇 번 갔었던 절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수심에 가득 찬 그 선배의 얼굴을 본 스님 왈,
'어째 처사님의 얼굴 모양새가 그렇습니까?" 절에서 담배는 피울 수 없고, 대답 대신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고민을 말했다고 한다.
"스님 제가 그 동안 알뜰살뜰 모은 돈을 한 순간에, 그것도 아는 사람한테 몽땅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파안 대소 하더란다. 갑자기 크게 웃는 스님 웃음소리에 황당하고 어안이 벙벙하여, "스님. 저는 너무 괴롭고 속상해서 찾아 왔는데, 어찌해서 스님께선 저를 약 올리시는 것도 아니고, 그리 큰 소리로 웃으시는 겁니까?" "처사님은 이제서야 그 사람한테 빚 다 갚으셨습니다." "네? 빚이라니요?" "전생에 처사님이 그 사람한테 진 빚이 있었는데, 이제야 다갚았으니 됐습니다."
순간, 이상하게도 스님의 말 한마디에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이 말끔히 날아가는 것 같은 가뿐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처럼 자신도 모르게 큰 웃음소리로 웃게 되더라는 것이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고, 돌아오는 발걸음에 마치 날개를 단 것 마냥 가볍더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교정을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몸 전체의 일부분인 치아를 교정하는 것도 긴 시간을 인내하면 견뎌내야 하는데, 하물며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교정을 하는 일은 당연하다.
가끔, 기다랗게 늘어진 삶의 줄에 생긴 보푸라진 보플을 뜯어내기도 하고, 굵은 매듭은 당겨서 앞뒤 줄과 비슷하게 만들기도 하며, 거칠어진 곳은 로숀을 발라서 매끄럽게도 해주며, 따뜻한 손길로 만져주기도 해야 한다. 이런 모든 행위들은 삶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 방법은 삶을 좀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억지로 웃어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다 바다 한 줌으로도 적셔지지 않은 가슴은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말소리가 커졌다 더 커졌다 빛 푸른 바다가 괜히 서럽다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가을 경포대, 뼈를 삭이낟 갈매기 떼 빌미 삼아 목울대에서 꺽꺽 우는 서러움 미친 여자 마냥, 펄쩍 뛰고 싶었으나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였다, 비겁하게 거센 파도치는 내 가슴만 빼고는, 회색빛 가을 바다를 바라만 보다 돌아서 왔다, 눈물로 꽉 차 가슴은 넘실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손을 흔들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김하리 <11월의 바다>
2010년 11월이 시작 되었다. 2011년은 여행 한 번 해보지 않았다. 바다에 데려가주마, 무인도에라도 데려가주마, 아님 말레이지아 클럽매드 라도 데려가주마. 나 스스로에게 여러 번 약속을 하였다. 하얀 백지에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 들을 적어 놓았지만 단 한 군데도 가보지 못한 째,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1월에서 6월 까지는 뮤지컬로 꽉 찬 상반기를 보냈고, 하반기는 책 2권을 집필하느라 지하실 사무실에서 두더지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서둘러 친한 시인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강를 경포대를 다녀왔다.
11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 9시, 경부선에서 3시간 동안 미끄러지듯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를 타고 강릉 터미널에서 내렸다. 오죽헌과 이율곡과 신사임당의 고향인 강릉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만나는 묘한 느낌, 강릉에서 커피축제를 한다는 것이 내내 미심쩍었고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강릉 시내 임당동의 유명한 커피전문점에서 뜨겁고 진한 원두커피와 녹차 빵을 먹었다. 서울 그 어디서 맛볼 수 없는 두 가지 맛이었다. 아이러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분리해서 생각하기로 하였다. 너무 분석하면 산다는 일은 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 한다는 것을 살면서 느낀 지혜이다.
택시를 타고 오죽헌에 가서 율곡선생과 신사임당과 김정희의 글씨를 만나고 그 다음 코스로 선교장, 경포호수, 그 다음 경포대를 보고 저녁식사를 한 다음 호텔에 들어가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해수 사우나를 하고, 초당동에 가서 순두부로 아침 식사를 하고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올라 갈 때는 채시인은 오산으로, 나는 서울로 각자 헤어져 가기로 하였다.
마침 우리 앞에 '오죽헌' 버스가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오죽헌에 내려 신사임당과 율곡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 나뭇잎과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얼굴, 모습, 옷차림, 말하는 것, 걷는 모습만 보아도 그 사람의 직업과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니 꽹콰리 소리가 났다. 앞마당에서 '관노 가면극' 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7월, 한국의 집에서 관노 가면극을 관람하였었는데, 본토에서 보니 오히려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맛이 더 재미를 더해주었다. 꽹과리, 날라리 연주에 몸이 저절로 들썩거리는 것을 간신히 주저앉혔다.
덩실 덩실 춤이라도 췄으면 좋겠구만, 모두들 조용히 관람만 하였다. 올해는 가을도 없이 겨울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산 밑에서 곧 올것 같아 분주히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흔 아홉 칸 양반집인 선교장은 안기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경주호수로 갔다. 옛날에는 둘레가 12km 였으나 지금은 4km 라고 한다. 자가용 자전거 2인승을 빌려 어린아이처럼 호수 한 바퀴를 돌았다. 억새풀 석양에 물든 잔잔한 호수가 참으로 아름답고 고왔다. 붉게, 노랗게 물든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연인들과 가족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호수에 물오리들이 떼지어 있는 풍경에 괜스레 슬픔이 슬금슬금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막연함으로 그리움이 솟구쳤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1학년 때, 한 번 자전거를 타보고는 처음이라 그런지 다리에 쥐가 두 번이나 나서 멈춰서곤 했었다. 5시, 경포대 옆에 있는 호텔에 짐을 문 앞에 던져 놓고 어둠으로 물들인 밤바다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없고 조용해서 좋았다. 여자 둘이서 가슴 안으로 밀려오는 바다를 마음껏 껴안았다.
자유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유였다. 그리고 쓸쓸함이었다. 포장마차에서 미역만 넣고 끎여 낸 미역국과 소주 없는 꼼장어를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모과냄새 진동하는 장어구이집에서 민장어를 먹었다.
못생긴 여자들이 덕지덕지 처바르고, 치렁치렁 달고 다니듯이,싱싱하지 못한 장어를 양념을 해서 먹는다고 민장어를 구워 소스에 찍어 상추에 생강을 넣어 먹으라고 장어구이집 주인은 내내 설명을 해주었다. 굿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노오란 모과를 하나 씩 얻어 호텔로 돌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채시인은 잠이 들고, 낮에 남은 커피를 많이 마셨던 탓인지 낯선곳, 낯선 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자는 채 낯선 탓인지 강릉경포대서의 시인과의 하룻밤은 엄청길었다. 일분 일초도 잠 속에 누이질 못했는데 어느 새, 창문으로 날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부지런한 채시인은 욕탕에 몸을 당구는 일이 너무 행복했다면 좋아했다.
아침 바다와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순두부 식당이 즐비한 초당동에 가서 순부두를 먹었다. 작은 소나무는 해수, 큰 소나무는 적송, 곰처럼 생긴 소나무는 곰솔이라고 한다. 강릉 시내를 돌아 고속터미널에 오니 11시 30분, 우리는 각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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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별이님, 늘 고마워요. 별이님, 복 많이 받길 기원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