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도서관에는 녹두장군이 7권까지 밖에 없어, 읽다 만 게 영 똥 밑 안 닦은 것처럼 찝찝했는데 엊그제 모처럼 대전 원동에 있는 헌책방 거리를 나갔다가 그들을 만났다. 사려던 참고서를 사고 시간을 내 서점들을 둘러볼 때였다.
폐허로 변해버린 옛 도읍을 돌아보는 두보의 심정이 이랬을까.
폐허였다. 옛날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고 전과를 사러 이곳을 들르면, 원동끝에서 중앙시장 입구까지 약 1킬로미터는 헌 책방이 줄지어 있었던 것 같다. 가도가도 끝이 없던 서점들, 길가에 죽 쌓여있던 누런 책들. 나는 늘 원동 사거리에서 몇 걸음 가지 않고도 원하던 책을 찾곤했다.
모두 사라지고 띄엄띄엄하게, 한 댓 개의 점포나 남았을까? 쓸쓸했다. 아무리 불경기이고 사양산업이라지만, 나는 이미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가를 가보았기에 거기에 비해서도 턱 없이 초라해져버린 원동의 헌 책방가를 보자니 자꾸 심사가 뒤틀리고 비감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었다. 초라한 내 고향,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듯한 내 어린시절의 추억들.
하지만 세번째 집에서 나는 '녹두장군'을 발견했다. 부산 보수동에 세번이나 가서 찾았고 각종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특히 중고서점 사이트까지 다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책. 총 12권중 9, 10권이 빠진 10권이었다. 나는 사려다가 2권이 빠진 게 마음에 걸려 망설이다 일단 그냥 나왔다. 설마 오늘 내일 저 책을 누가 사가랴 싶었다. 이후 나머지 책방을 다 돌았지만 역시 그 책은 아무데도 없었다.
며칠 후에 다시 오마고 마음 먹고 나는 그대로 한밭도서관을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녹두장군' 12권이 모두 있었다. 이런, 반가울 데가! 8권과 9권을 빌렸고 집에 오는 내내 고민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러브맘도 고위를 위해 사자고 말했다. 곧 원동에 다시 나가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