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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21호인 하회탈은 12세기경인 고려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로 만든 가면이다. 가면의사실적인 표정과 뛰어난 제작기법은 고려인들의 탁월한 예술적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세계적인 수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회탈의 특징은 코와 눈, 주름살이 잘 조화되도록 제작되어 비록 한 면으로 고정된 가면이면서도 얼굴을 뒤로 젖히면 밝고 유쾌한 표정이 되고, 얼굴을 숙이면 보는 방향에 따라 슬픈 표정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턱을 분리하여 제작함으로써 대사전달이 분명하며 표정의 변화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양 반 탈
고려초 유학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쓰여지기 시작한 양반, 당시엔 문반, 무반을 합친 벼슬을 지칭했고,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국법보다 우선하는 권세를 누렸다. 이후 인격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면서 양반은 엄격한 도덕적 조건을 갖춰야 했지만, 근세 유학의 이념이 무너지면서 단순히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져 왔다. 하회탈의 양반은 문반과 무반의 벼슬아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양반탈은 하회탈 중에서도 가면미술의 극치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계란형에 감홍색, 매부리코에 실눈으로 온화하고 인자하게 웃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양반은 냉수 마시고도 이 쑤신다"는 말처럼 허풍과 여유스러운 표정이 복합되어 있으며, 광대가 고개를 젖혀 입을 크게 벌리면 호탕하게 웃고,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면 화난 표정이 되는데. 희,노,애,락을 자유로이 표현 할 수 있는 기능이 세계적인 탈로 평가받는 이유다.
조선시대 양반은 권위와 거만으로 백성을 괴롭혀온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걷는 걸음은 팔자걸음, 따라서 양반의 춤사위는 "양반걸음 팔자걸음"이다.
부 네 탈
갸름한 얼굴에 반달 같은 눈썹, 오뚝한 코, 조그마한 입 등 우리의 미인의 조건을 두루 갖춘 얼굴에 눈웃음치며,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풍만하게 포개진 아래턱에 복스러움이 담긴 부네탈.
눈썹은 반달모양으로 또렷하고, 찹쌀가루로 분 바르고 연지, 곤지, 찍어 진한 화장을 했다. 이런 화장은 고려때, 기녀들이 하는 화장으로 "분대화장"이라 했고, "분대 화장한 아낙네"란 뜻의 "분네"가 자연스런 발음현상으로 "부네"가 된 것이다.
부네는 여염집 아낙이 아닌 주막의 작부다. 때문에 길에서도 화급하게 오줌을 눌 수 있고, 이를 본 늙은 중이 욕정을 참지 못해 파계의 길로 이르며 음흉한 중의 유혹에 넘어가 함께 춤을 추다 들켜서 야유를 받는다.
부네 입은 작게 뚫려있어 양반과, 선비가 부를 때 복(거절), 보-옥(승락)의 대답밖엔 할 수 없고 코 구멍도 흔적만 있을 뿐, 구멍은 뚫려있지 않다. 이는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숨도 제대로 쉬고 살 수 없었던 사회성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그러나, 머리모양은 고려시대 여성의 머리모양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부네의 춤사위는 "맵시 있다, 부네 걸음"이다. 눈웃음 치며 치마 자락 감싸고 옷고름 입에 물고 오금을 비비며 살랑살랑 걷는 모습이 술집의 작부답게 맵시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초 랭 이 탈
차분하지 못하고 방정맞게 까불락 거리며 경망스럽게 나서기 좋아하는 것을 촐랑댄다고 하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초랭이다.
툭 불거진 이마는 윗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는 고집불통의 상이며, 잘려진 콧등은 성질이 급한 것을 나타낸다. 튀어나온 눈알, 긴장된 눈빛, 좁고 길게 빠진 턱, 뻐드러진 이빨, 삐뚤게 옥다문 입과 보조개, 얼굴 전체가 왜곡되어 불만에 찬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원숭이의 촐랑대며 까불락 거리는 행동에서 초랭이를 형상화한 것일까? 초랭이탈만 동물 형상이다.
초랭이는 양반의 하인, 속담에 "말탄 원님보다 말잽이가 더 우쭐댄다"라고 했다. 막강한 세도를 가진 양반이 주인이므로 온갖 위세를 부려보고 싶은데 콧대를 잘라 버리고, 입마저 삐뚤게 만들어 별 수 없는 하인 신분임을 깨닫게 한 것일까?
그러나 탈놀이에선 마당 요소 요소에 등장, 놀이 전체를 이끌며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양반, 선비를 조롱한다.
초랭이는 항상 얼굴을 상하, 좌우로 흔들면서 촐랑거린다. 경망스럽고 촐랑대는 사람은 체구가 작고 얼굴도 작아 움직임이 가볍기 때문에 초랭이탈을 작고 가볍게 만들어 탈을 쓰고도 움직임을 쉽게 했다.
초랭이는 바삐 붸아 다니지만 방정맞고 경망스러워 실속이 없는 인물로 "조착걸음 초랭이걸음" "방정맞다 초랭이걸음"이 춤사위다
이 매 탈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을 예전에는 "이매스럽다"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스럽다"란 형용이 빠지고 "이매"가 되더니 그마저도 지금은 사전에도 잘 실리지 않는 옛말이다.
코는 넓적 펑퍼짐하고, 코밑은 째져서 언청이에, 좌우 근육은 비정상으로 일그러졌고, 눈은 아래로 쳐져 측은하게 악의 없이 웃는 백치 얼굴에 몸마저 자유스럽지 못한 바보 병신탈 이다.
이매탈은 턱이 없어 더 우스꽝스럽다. 굼뜬 움직임으로 고개를 젖히고 혀를 빼며 우습다는 표정일때 보는사람은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사람도 이매탈을 쓰고 같은 표정을 하면 틀림없이 바보 병신이 되고 만다. 탈이 주는 신비감 이다.
이매탈은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이탈의 턱을 만들때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금줄을 넘어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순간, 신의 노여움에 허도령이 그 자리에 피를 토하고 죽어, 턱을 만들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이매는 춤사위 마저 "비틀비틀 이매걸음"인데,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데 흥에 겨워 급히 움직이려다 비틀비틀 쓰러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중 탈
이마에 불거진 혹은 백호라 불리는 부처의 상징이라 중 탈임을 알 수 있다.
주먹코, 쌍꺼풀 눈, 굵은 주름살, 검게 탔으나 살찐 얼굴, 능청스레 웃는 모습이 고행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수도자의 얼굴이기보다는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런 타락한 늙은 중의 얼굴이다. 특히 눈이 초생달처럼 둥글게 생긴 것은 호색가상으로서 놀이에서의 성격과 일치한다.
불교를 숭상해온 고려에서 승려는 귀족으로 지배층이었다. 그러나, 고려말엽 승려들이 정치에 간여하고 타락해 가면서 나라를 망하게 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승려" 대신 "중"이란 말로 비하해 불리게 된다.
고개를 들고 크게 웃다가 고개를 숙이며 턱을 내밀면 더 음흉하고 능청스런 표정이며 수도자란 신분과 인간의 본능 사이에서 잠시 갈등 하다가 음흉한 눈빛으로 부네를 유혹 할 때 걸음이 능청스럽다. 그래서 중의 춤사위는 "능청스런 중의걸음"이다
할 미 탈
깡마르고 검게 탄 얼굴, 뾰족 솟은 코, 눈과 눈 사이가 깊어 수심이 가득하고, 불거진 땡그란 눈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여유없이 긴장되게 살아온 고된 삶의 흔적처럼 보인다.
아랫입술이 안으로 말려 합죽한 모습은 허기진 듯 울먹이는 듯 측은 하지만, 양반 과 선비가 소 부랄을 먼저 사겠다고 다투는 꼴을 보고 힐책 할 땐 그렇케 당당 할 수가 없다.
할미는 15세에 시집와서 사흘만에 청상이 되어 늙은 미천한 노파로 미천하고 가난에 찌든 삶, 그 한을 베틀가에 담아 달래보지만 절망에서 벗어 날수 없는 현실에 쪽박 들고 빌어먹는다.
할미탈은 입이 크게 뚫려 있으나 콧구멍은 흔적도 없다. 여성은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사회에서 늙은 할미의 말문은 열어 주었으나 미천한 삶에 숨 죽이며 답답하게 살아야 했던 사회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늙고 찌든 삶에 허리 굽은 할미의 걸음은 엉덩이가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장단이 있고 흥이나서 걸음이 빨라지면 엉덩이가 춤을 춰 할미의 춤사위는 "엉덩이춤 할미춤" 이다
선 비 탈
선비라는 말도 양반과 함께 고려초 유학이 들어오면서 부터 사용되었다.
암자색에 역삼각의 작은 얼굴, 도끼눈에는 긴장이, 콧대는 찡그리고(嚬), 눈살을 찌푸리고(蹙), 눈섭은 곤두서 있다. 속된 말로 털이 섰다는 것은 몹시 화가 났다는 것, 위엄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빈축(嚬蹙),이란 기분이 언짢거나, 괴로운 일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통속적인 사회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불만에 차 있음을 보여준다.
선비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업으로 지내는 학자, 선비는 희,비,애,로의 본색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아야 하고, 궁핍하여도 의(義)를 잃지 않아야 한다. 즉,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아야 하며, 빈천이 절개를 바꿀 수 없다 했는데 어찌 선비의 표정은 그토록 신경질적이고, 위엄을 담은 표정일까?
선비의 춤사위는 "황새걸음 선비걸음"이다. 황새(학)는 장수와 고고한 인품을 상징하는 새, 선비의 걸음이 황새의 걸음처럼 조용하고 품격이 있기 때문이다
백 정 탈
치켜뜬 눈꼬리엔 살기가, 넓적한 주걱턱엔 장년의 힘이 넘쳐 보이고, 빈틈없이 그어진 굵은 주름살은 멸시받고 힘겹게 살아온 고달픈 삶의 흔적처럼 보이는 백정탈, 백정은 이마에 혹이 난 혹부리 영감이다. 혹부리 영감은 심술영감, 심술은 남이 잘못되거나 골탕 먹이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고개를 숙이면 살생을 할 수 있는 험악한 표정이며, 뒤로 젖히면 살생으로 인한 죄의식 때문에 미쳐 버린다는 실성한 웃음으로 나타난다.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며 한방에 황소를 때려눕힐 때, 오줄 없고 염치없는 양반 소 염통 사먹고 정신 차리고, 양기 없는 양반은 소 부랄 사먹고 양기 돋궈서 젊은 마누라 둘씩 데리고 살라고 조롱하는 쾌감이 백정의 심술보다.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양반을 조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성황님이 허락한 별신굿에선 마음껏 조롱 할 수 있었다.
평생 멸시와 천대로 살아온 백정, 허세나 부리고 젊잔만 빼던 양반이 소 부랄이 양기에 좋다니까 먼저 사겠다고 다투는 모습에 그 역시 별수 없는 인간임을 느끼며 위신과 체통을 뭉게 버린다.
백정의 춤사위는 "심술궂은 백정걸음"이다. 소 부랄과 염통으로 양반을 마음껏 조롱하며 쾌감을 느끼는 심술영감의 걸음이니까?
각 시 탈
옛 사람들은 이승에 한을 남기고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고 위해주면 복을 받고 위하지 않으면 화를 입는다고 믿었다. 최영과, 남이 장군이 신으로 모셔진 이유다.
즉, 이승의 한을 달래주어 그에 합당한 복과 안녕을 보장 받고싶어 신으로 모시고 정성을 다해 섬긴 것이다.
하회마을을 지켜주는 성황님도 열다섯에 시집와 자식도 낳아 보지도 못하고 17세에 한을 남기고 죽어 하회마을의 성황님으로 모셔진 것이다. 그리고, 각시탈의 모습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각시광대는 반듯이 17세 총각으로 뽑고, 광대 중에서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식사 할 때나, 잠 잘 때 윗사람의 예우를 하고 무동을 태워 다닌다.
각시는 갓 시집온 새색시로 엄숙하고 굳은 표정이다. 뚤리지 않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입은 벙어리를, 수줍은 듯 내리깐 눈은 봉사를, 답답하리 만큼 큰 코에 코구멍도 없는 것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새색시의 삶을 나타낸 것이다.
각시탈은 크고 무거워 탈을 쓰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져 수줍은 표정이 된다. 이는 표정을 사실적으로 나타내려한 지혜로 하회탈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시탈의 타래머리도 부네의 머리와 함께 고려시대 여성의 머리모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명주수건을 길게 느려 손을 감추는 것은 신의 현신이기 때문이고 혼례,신방마당에서 신부의 손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각시의 춤사위는 "사뿐사뿐 각시걸음"이다. 새색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조심스레 걸으려면 "사뿐사뿐" 걸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