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사후 바라트 성계를 시작으로 몇몇 행성계들이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 내정에서는 완전한 자치를 이룩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국의 일부로서의 자치권일 뿐으로 내정 외의 권리는 철저히 제국의 손안에 있는, 독립도 아니고 종속도 아닌 애매한 형태로 향후에 또다른 문제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에는 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압제자'로 여겨지던 제국군은 자치령들에서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 철수하고 그 자리는 자치령군으로 많이 대체되었으며 폐간된 언론지들의 많은 숫자가 복간, 창간되는 등 라인하르트 생전에 비해서 구 동맹 시민들의 자유가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선거다. 선거와 투표야말로 민주주의에서의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 중 하나. 당연히 민주주의 자치령들에서 구 동맹 시민들이 선거권을 되찾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로서 특히나 이번 선거는 자치령의 첫 의원들을 선출하는 일인 만큼 그 의미가 매우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선거도 후보가 사전에 제국측에게 심사받아 제국에게 위험하다고 찍힌 이들은 후보로 등록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공정하긴 했지만 제국은 지구교와 연관이 있었거나 과격 공화주의자 같은 심각한 반체제 인물로 판단되지 않는다면 허용해주었기에 그래도 허용범위가 꽤 넓긴 했다.
제국의 통치는 구 동맹 시민들 속에 상처로 남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중 정치적으로 보면 구 동맹 시민들이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맹이 존속하던 시절, 동맹 정치인들은 소수의 양식있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상당수 많은 정치꾼들은 속으로는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행동하면서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척 위장했다.
이러한 정치꾼들의 만행은 두고두고 동맹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제국령 침공작전으로 주전파가 몰락하여 동시에 많은 정치꾼들이 몰락했지만 이번에는 트뤼니히트와 그 일파가 새로운 정치꾼이 되었다. 바라트 화약 이후에는 이들 정치꾼들이 제국에게 빌붙었고 동맹 멸망 후에는 적극적으로 제국에 부역하였다.
물론 라인하르트 생전에는 라인하르트는 이런 정치꾼들을 좋게 보지 않았기에 이들 중 이용의 가치가 있는 이들만 이용할 뿐 그들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으나 그들은 제국에 나라를 팔아먹고 노이에란트 고등참사관이라는 관직을 얻은 트뤼니히트를 떠올리며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여기며 열심히 제국에 아부했다.
반면 참된 정치인들은 쓰러져가는 나라의 상황 속에서도 피눈물이 날 정도로 국가를 위해 노력했고 동맹이 멸망한 후에는 동맹 시민들의 편에 서서 싸우거나 적어도 제국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의사표시를 명확히 했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제국에 협조한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조국이 망한 것은 슬프지만 그와 별개로 내 할일은 따로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조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을 이용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 등으로 적어도 이들에게 사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구 동맹령 각지에 자치령이 성립되자 가장 당황한 것은 제국에 적극 부역하여 콩고물을 주워먹으려는 이들이었다. 제국의 지배가 이어져야 자신들의 사욕을 채울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의 분노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텐데 제국이 떠나는 것은 출세의 기회가 사라짐과 동시에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결국 이들은 구 동맹령 각지에 자치령이 마련되면서 몸을 피했다. 가까이로는 제국의 직할지인 다른 동맹령으로, 멀게는 아얘 제국 본토로 도망치며 스스로의 안전을 꾀했다. 그러나 그렇게 도망친 이들은 마치 부평초와도 같아 모든 정치기반을 잃어버린 채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반대로 이들 중에서는 재빨리 다시 스스로 민주주의자들임을 행세하며 새 정부에서 한 자리를 노리려는 이들도 있었고 이들에 의한 정당과 정치집단, 그리고 후보도 있었지만 선거를 앞두고 각종 언론들이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이들은 정당, 후보 모두 아무리 높아도 대체적으로 제4순위의 극히 낮은 지지도를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일부의 경우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지역구 관리 하나는 잘 했던 이들이 그 인기에 힘입어 3순위권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정당 지지율이 그랬던 탓에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고 때문에 이들은 일부러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어야 했다. 그나마도 제국에 부역했던 사실이 발각되면 지지율이 큰폭으로 하락하곤 했으니 정치꾼들의 정치생명은 양쪽에서 잡아당겨지는 고무줄과도 같은 신세였다.
물론 당연히 시민들도 이런 정치꾼들을 안 좋게 바라봤다. 그래도 그런 정치꾼들이 집권했다는 점에서 시민들 중에 그들의 지지자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시민의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지지자는 동맹 멸망 후 완전히 소멸하다시피 했다. 더는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런 민심의 흐름에 정치꾼들은 스스로가 궁지에 몰린 것을 알았다. 정치인으로서 최악은 정치인생이 끝나는 것. 일생을 정치에 몸담으며 정치 외에 다른 일을 해본적이 없던 그들이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다못해 동맹이 건재한 시절이었다면 연금이라도 나왔겠지만 연금을 줄 나라는 없어진 이상 정치권력을 잡는것만이작게는 그들의 정치인생과 생활을 보장해줄 수단이었고 더 나아가 권력욕을 만족시켜줄 수단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수는 최악의 악수였다. 국가를 위한 비전은 없고 선동과 흑색선전 같은 것만 할줄 아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선거전략이라는게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선동과 흑색선전 뿐이었다. 게다가 동맹 말기에는 우국기사단 같은 정치깡패들이 난무했고 이 뒷배에는 정치꾼들이 있었다.
그 결과 선거를 앞두고 각종 고약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가장 핵심인 하이네센의 경우 여러 이유로 선거열기도 정치충돌도 가장 격했던 만큼 막말과 망언이 난무하였고 양측 지지자들에 의한 충돌은 물론 정치꾼들이 배후가 된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꾼들 측에서 공격하는 입장이었지만 간혹가다 이런 정치꾼들의 행패에 분개한 지지자들에 의한 공격도 일어났다.
정치꾼들의 이런 행태의 목적은 분명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떨어뜨리거나 극단적으로는 후보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딱히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며 오직 권력다툼만을 할줄 아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구 동맹 시민들은 제국 시절에 누구보다도 제국군의 군화를 핥아대던 이들의 행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민심은 더욱더 추락하였다.
궁지에 몰린 정치꾼들은 급기야는 이제르론 공화정부측 인사들과의 연계성을 만들고자 하였다. 우습게도 양의 생전에는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이들이 양의 후계자들에게 빌붙으려는 행태를 보인 것이지만 권력만 있다면 개똥밭에 굴러도 좋은 그들이기에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이미 새로 태어날 자치령 정부에서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었고 또 대부분 그런 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모두들 거절하였을 정도로 권력욕이 없었고 또한 안 좋은 선례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이 양 웬리 기념재단의 명예회장을 맡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명예직이었고 카젤느도 기념재단의 행정직을 맡긴 했지만 실권이 강한 자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양 생전부터 고질적으로 대립해온 관계였던지라 이제와서 정치꾼들이 손을 내밀어준다고 해서 잡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자신들은 군 출신이고 그들은 정치인이었기에 좋게좋게 거절하는 식으로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매달린 탓에 선거 끝까지 이제르론 공화정부측 인사들의 속을 썩였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이 선거에 있어 도움이 되진 않았다. 이런 사건들은 언론들에게 떡밥을 제공한 셈이었고 기레기 같은 언론인들이 이제르론 공화정부측 핵심 인사들에게도 불편을 끼치긴 했지만 그만큼 정치꾼들의 만행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정치꾼들은 온갖 변명을 했지만 지지율이 쭉쭉 떨어지는건 면하지 못했다.
결국 선거에서 정치꾼들은 참패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추하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들며 추악한 발버둥을 쳤지만 그들의 행태에 진저리가 난 시민들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언론들도 시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함에 따라 점차 부정선거 음모론 뉴스를 다루지 않게됨에 따라 정치꾼들은 첫 선거에서 완전한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각지에 세워진 자치정부들은 주로 양식있는 기존 정치인들과 반제국 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온건 공화주의자 성향의 신인 정치인들로 구성되었다. 정치꾼들이 소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캐스팅 보트조차 못할 정도로 소수에 불과했고 의회에서의 발언권도 약했다.
또한 이번 선거의 특징중 하나라면 제국의 관심이었다. 시민들의 선택에 따라 이 조치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었을 뿐더러 전제군주제에 익숙했던 제국 출신에게 선거라는 것은 매우 낯선 '문화'였기에 관심이 간 것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제국 내의 '진보파'들에게는 공식적인 반응을 낼 수 없어서 그렇지 동맹의 정치는 비록 상상했던 것보다는 매우 부패했지만 '소수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민주공화주의라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진보파의 기수이자 칼 브라케나 오이겐 리히터는 진보파를 대변하여 민주주의 자치령의 설립을 적극 옹호하였다.
이 두 사람은 시민들이 올바른 정치인을 뽑아 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심어지기를 기대했고 결과적으로 동맹 시민들이 이번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을 해서 적어도 민주주의가 제국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피했다. 제국도 당선자들의 출신에 제국에 적극 충성하는 이들이 적기는 해도 이들도 제3위 정도로 어느정도 의석을 가져간데다 어쨌든 모든 후보들이 명목상 제국에 순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투표결과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다만 제국 입장에서도 골치아픈 일이 있었다. 동맹령 극히 일부에서는 반제국 기치가 대단히 높아 자치령조차도 못 받아들인 지역이 있었고 이 지역들의 시민들은 제국의 총칼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제국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선거는 그저 장식이라 여겨 투표하지 않는 식으로 소극적 저항을 하여 다른 자치령에서는 투표율이 90%에 육박 혹은 넘었던 반면 이 지역에서는 50%를 밑돌아 자치령 정부와 제국을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