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아래서
비 내리는 날, 타워 부근의 공원에서 올려다본 도쿄 타워는 유난히 또렷했다. 빗물에 씻겨진 붉고 흰 철골이 더욱 선명해졌다. 눈앞에 선 높은 탑은 마치 우리 인간은 여기까지 높아졌다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도쿄 타워는 1958년에 완공되었다. 전후 폐허 위에서 경제 부흥을 이루던 일본이, 그 회복과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세운 구조물이다. 높이는 333미터로, 에펠탑보다 더 높다. 방송 전파 송출과 전망대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이 탑의 철재 일부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탱크의 고철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전쟁의 잔해가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한 셈이다. 그러나 그 역설 속에는, 순수한 의도만 담겨 있지 않다.
바벨탑을 쌓아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던 욕망이 시대를 넘어 반복되고 있다. 창조주를 떠난 인간 내면에는 더 높이, 더 멀리, 더 크게 해보려는 욕망이 과학과 기술, 예술과 건축의 형태로 끊임없이 구체화된다.
도쿄 타워 역시 그러한 욕망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물론 그것은 도시의 필요와 시대의 요구 속에서 탄생한 실용적 구조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높이와 형상은 인간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상징적 제스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탑은 언제나 수직으로 하늘을 향한다.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땅의 한계를 벗어나 하늘을 향한다. 문제는 그 ‘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창조주를 향한 경외의 시선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신격화하려는 욕망의 연장인지에 따라, 같은 높이의 탑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많은 이들이 탑 위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겠지만, 정작 탑 자신은 아무것도 내려다보지 못한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높이 세워졌으되,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하는 존재. 그것은 어쩌면 인간 문명의 자화상이 아닐까.
인간이 세우는 모든 ‘높음’은 결국 방향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나님을 향해 겸손히 올려지는 높음은 성전이 되지만, 인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높음은 또 다른 바벨이 된다. 도쿄 타워는관광 명소나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상징일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동시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을 품고 산다. 비는 멈추고 탑은 묵묵히 서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내가 세우는 탑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탑 아래서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