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3월 25일 오후 “전기차를 한번 타보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전기차 제조업체인 CT&T 측은 “전기차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실제 탑승해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CT&T 전시장에서 전기차 키를 ‘잠시’ 건네받았다.
스포츠용, 경찰단속용, 노점상용 등 각종 전기차 8대가 내외부에 전시돼 있는 CT&T 1층 전시장에는 전화문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전화응대 중인 CT&T 국내영업본부 이승우씨는 “신문 광고가 나간 다음 하루에 걸려오는 상담전화만 1200여통에 달한다”며 “오늘만 벌써 전기차 시승식을 네 번째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비가 내린 지난 3월 25일 서울 동작대교 위를 달리는 CT&T의 저속 전기차.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하루 상담전화만 1200통” 전기차의 첫인상은 ‘작다’였다. 경차인 마티즈(GM대우)나 모닝(기아차)보다 앞뒤 길이가 조금 더 짧은 듯했다. 2인승으로 제작돼 자동차 문도 2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바퀴 사이즈는 마티즈와 동일한 규격이라고 한다. 자동차 지붕을 톡톡 두드리자 ‘탁탁’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CT&T 측은 “차량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차체 프레임은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자동차 외관 표면은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열쇠구멍에 키를 꽂고 운전석 손잡이를 ‘찰칵’ 하고 당겼다. 전기차 키는 원격 리모컨이 달리지 않은 순수한 열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검정색과 빨간색으로 된 인조가죽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대량구매하는 경우 시트 색깔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만 직물로 된 시트는 아직 없다고 했다. 운적석과 조수석 양쪽 옆에는 좌석 등받이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손잡이도 달려 있다. 실내 공간은 1인 운전자가 출퇴근용이나 근거리 이동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실내 높이는 경차보다 오히려 높았다.
노트북 가방과 카메라 장비를 싣기 위해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외부에 열쇠구멍이 없어 차 안에서 레버를 당겨 트렁크를 열어야만 했다. 운전석 왼쪽 아래에 있는 손잡이를 당기자 ‘덜커덩’ 소리가 나면서 트렁크가 열렸다. 골프가방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작아 보였다. CT&T 성기준 과장은 “여행용 가방 4개 정도가 들어가는 사이즈”라며 “어차피 고속도로에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골프가방은 넣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잡았다. 손에 잡히는 그립(grip)감은 나쁘지 않았지만, 에어백이 장착되지 않아 핸들은 조금 작아 보였다. 운전석 에어백은 선택사항이라고 한다. 자동차 키를 운전석 오른쪽 열쇠구멍에 밀어넣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가운데 놓인 계기판에 조명등이 들어왔다. 계기판은 속도와 주행상태, 충전상태 등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마티즈, BMW 미니 등 일부 소형차와 마찬가지로 운전석 앞이 아닌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계기판이 달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
도로로 나가기 전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눈높이에 맞춰 조절했다. 사이드미러는 차창 안쪽에 달린 새끼손가락 길이의 손잡이를 움직여 수동조절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조수석 위에는 안전손잡이도 달려있다. 다만 겨울 코트나 양복 상의 등을 걸어둘 수 있는 옷걸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천장에는 선루프도 달려 있다. 라디오와 CD플레이어, MP3를 꽂을 수 있는 플러그도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과 조수석 가운데는 컵 받침 2개가 마련돼 있었으나, 흡연자를 위한 재떨이는 보이지 않았다.
제한속도 60㎞ 이상 안 올라가 안전벨트를 매고 서서히 핸들을 돌렸다. 무(無)단 변속기라서 변속기어는 따로 없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핸드 브레이크만 놓여있었다. 계기판 아래 있는 ‘전진(D)’‘후진(R)’ 버튼을 눌러 주행상태를 설정했다. 왕복 6차선 동작대교 위로 올라가 서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속도계의 눈금이 30㎞에서 60㎞까지 올라가더니 60㎞에서 계속 맴돌았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속도계는 제자리걸음이다. 동승했던 CT&T 성기준 과장은 “전기차 제한속도가 60㎞로 정해져 60㎞ 이상은 밟을 수 없도록 속도제한을 걸어놨다”고 설명했다.
실내 소음은 상당히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주행하는 내내 차량 뒤쪽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심하게 거슬렸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도 ‘윙’하고 유압 브레이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부슬부슬 비까지 쏟아지는 터라 소음은 더욱 심한 듯했다. 핸들 오른쪽에 있는 와이퍼 손잡이를 돌렸다. 와이퍼 1개가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쏟아지는 빗물을 닦아냈다. 실내 소음에 묻혀 ‘쓱싹쓱싹’하는 와이퍼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실내공기를 바꾸기 위해 파워윈도 버튼을 찾았다. 전기차 역시 파워윈도로 창문을 열고 닫는다. 버튼을 수차례 누를 때마다 창문은 부드럽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동작대교 북단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강변북로로 빠져나가는 램프가 보였다. 최고 속도가 60㎞로 제한돼 있는 전기차는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이 현행법상 금지돼 있다. 하지만 차단기나 검문소 등 물리적 장벽이 없는 강변북로로 진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강변북로 진입을 포기하고 동작대교 북단으로 내려서는 곡선 램프로 접어들었다. 아스팔트 군데군데 팬 곳이 보이는 등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았다. 팬 곳을 지나가자 ‘덜커덩’ 하고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몸이 앞뒤로 심하게 움직였다. 조금 더 직진한 다음 다시 동작대교를 건너기 위해 유턴을 했다. 파워 핸들이 아닌 터라 핸들은 조금 뻑뻑했지만 코너링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다.
가격 1500만원, 한 달 유지비 1만원 동작대교를 건너 다시 남쪽으로 넘어왔다. 차선 앞 신호등 불빛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감속페달을 밟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인지 브레이크가 조금 밀린다는 느낌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이는 주행 중 급정거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지선 앞에 같이 멈춰선 옆차량 운전자가 두리번거리며 전기차를 쳐다봤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경차 정도만 겨우 들어갈 경사진 곳에 차를 세웠다. 차가 작은지라 쏙 들어갔다.
이 차의 단점은 긴 충전 시간이다. CT&T 성기준 과장은 “220v 가정용 충전기로 100% 완전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330v 급속 충전기로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이라고 했다. 차량가격도 싸지 않다. 현재 시판 예정인 전기차의 대당 가격은 약 1500만원. 1000만원 미만의 경차보다 500만원 이상 비싼 가격이다. CT&T 측은 현재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급 여부를 두고 당국과 협의 중이다.
다만 전기차의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것은 지극히 저렴한 유지비다. 하루 50㎞ 주행 기준으로 한 달 동안 들어가는 전기요금은 1만원가량. 서울 시내 지하철 정기권 요금(3만9600원, 30일·60회 기준)의 4분의 1 수준이다. 혼잡통행료 면제, 공용주차장 50% 할인 혜택도 있으니 유지비가 더 적게 든다. 저렴한 유지비로 전기차는 이미 세간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듯했다. CT&T 성기준 과장은 “1시간 뒤 방송사 대상 전기차 시승식이 있다”고 말했다.
CT&T는 3월 30일을 ‘전기차의 날’로 선포하고 기념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CT&T 백인영 상무는 “3월 30일은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할 수 있게 된 역사적인 날이자 자동차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