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증이 의심됐던 72세 김모씨는 2년 전 이 병원에서 관상동맥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혈관조영술을 받았다. 그 결과, 한쪽 관상동맥이 거의 막혔다. 본래 혈관 지름의 20%에서만 혈류가 흐르고, 80%는 막혔다. 당장 스텐트를 넣어서 좁아진 부위를 넓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 /김지호 객원기자
하지만 박 교수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좁아진 부위의 관상동맥 앞쪽과 뒤쪽의 혈류와 혈압을 측정했다. 김씨의 관상동맥은 좁아졌지만 의외로 혈류가 무난히 흘렀다. 혈관 내시경으로 들여다본 협착 부위도 매끈했다. 이에 의료진은 스텐트를 넣지 않고 그대로 뒀다. 현재까지 김씨는 심근경색증 발생 없이 약물치료로 관상동맥 협착증을 관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환자에게 스텐트를 안 넣었다고 국내외 학회 가서 보여주면 안 믿었어요. 절반(50%) 이상만 막혀도 스텐트를 넣는 것이 치료 기준이니까요.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했죠."
심장 스텐트 시술 건수를 줄이는 박 교수의 치료 기준이 세계 의학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관상동맥 협착이 있어도 앞뒤로 흐르는 혈류가 좋으면 스텐트를 넣지 않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핵심이다. 그러고도 환자들의 심근경색증 발생률, 치료 합병증 등이 줄어든 결과를 심장 저널 논문과 각종 학회 발표 자료를 통해 박 교수가 입증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고가의 의료 시술 비용을 줄이는 '윈-윈(win-win)' 모델이다. 고령화와 비만 인구 증가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 건수는 급증했다. 2006년 3만7355건이던 시술 건수가 2012년 5만6173건으로 늘어났다. 6년 사이 50% 증가했다. 스텐트 한 개 비용은 약 200만원이다. 한 번 시술에 스텐트 1~3개를 넣으므로, 한 해 7만 개 정도의 스텐트가 한국인 심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이 관상동맥 혈류 측정검사(FFR)를 정례화한 이후, 스텐트 시술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 2009년 3545건이던 것이 2011년에는 2000건으로 떨어졌다. 2년 사이 43% 줄었다.
2000년대 말부터 혈류 측정의 필요성이 실험적으로 부각됐다. 박 교수가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임상 데이터로 입증하고, 국제적으로 이슈화한 것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지금까지 4편의 논문을 실었다. 전 세계 의과학자 통틀어 10명 정도밖에 없는 기록이다. 이 때문에 관상동맥질환 수술 기준과 치료 교과서를 바꿔 놓은 의사로 통한다.
이런 변화에 이견도 있다. 김무현(동아대 의대 교수) 순환기재단 대표는 "혈류 측정이 학계 트렌드인 것은 맞지만, 그 기준에 따른 장기적인 효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환자에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도 아직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료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박 교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해부터 스텐트 시술 기준에 혈류 검사를 추가했다. 이에 따라 스텐트 시술 건수가 상당수 줄어들 것으로 심장학계는 전망한다.
☞스텐트(Stent)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졌을 경우 그 부위를 넓혀 놓는 금속 그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