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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너에게로 가는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인간문화재
우표로 본 오늘~ 10/31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6 - 남아공 前대통령 보타(Botha, Pieter Willem) 사망
보타 [Botha, Pieter Willem, 1916.1.12~2006.10.31]
1970~80년대 남아공의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밀어붙였던 P W 보타(90) 전 대통령이 10월31일 오후 노환으로 숨졌다. 부인 바바라 여사는 “남편은 저녁 8시쯤 남부 케이프 해안 윌더니스의 집 침실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보타가 백인 소수정권을 이끈 1978~1989년은 최악의 유혈사태와 인권유린으로 얼룩졌다. 그가 아파르트헤이트의 틀을 고집하며 넬슨 만델라의 석방을 거부하는 동안 남아공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고, 미국·유럽 등의 경제 제재를 초래했다. 정치범 3만명이 감옥에 갇혔고, 정보기관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다혈질과 무자비한 성격 탓에 얻은 별명이 ‘늙은 악어(Old Crocodile)’. /조선
2003 - 노무현 대통령, 4ㆍ3사건 국가차원 사과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사령관 김달삼의 지휘아래 1천5백여명의 공산폭도들이 일제히 무장봉기, 도내 20개 경찰지서 중 10개소를 급습해 무기를 탈취하는 한편 관공서, 경찰관사, 서북청년단 숙소 등을 습격하는 이른바 ‘제주 4ㆍ3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숙청자 명단에 오른 우익인사들을 인민재판에 회부, 처형하면서 제주도 전역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들은 한라산을 근거지로 유격전을 펼치며 1년동안이나 저항했다. 이 여파로 제주도에서는 5ㆍ10 총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진압에 나선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1949년 5월까지 대규모 군사토벌작전을 5차례나 벌여 이들을 토벌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제주 4ㆍ3사건 관련 보고서들에 따르면 도민 28만명 중 5만여명이 죽었고 모든 마을의 77%가 초토화되어 이재민이 10만여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간접적으로 여순 14연대 반란에까지 이어져 또다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됐다.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이 ‘제주 4ㆍ3 사건’에 대해 추모사업과 명예회복 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4ㆍ3사건 발생 55년 만에 정부차원의 첫 공식사과가 이루어졌다. /조선 (오늘의 역사-1948.4.3)
2002 - 여군학교 52년 만에 폐교. 3사관학교(장교)-부사관학교(부사관)에 통합
한국 여군학교가 창설 5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반세기동안 여군 장교와 부사관 양성을 전담해 온 이 학교가 폐지된 것은 시대변화에 따른 것이다. 1989년 폐교논의가 처음 거론되면서 1998년 폐지를 최종 결정했다. 여군학교는 이제까지 장교 1550명과 부사관 6300명 등 7850명을 배출했다. 여군학교는 한국전쟁때 인민군이 낙동강 부근까지 밀려와 있던 1950년 9월 4일 부산에서 여자의용군교육대로 출발했다. 1기 생도는 491명. 1955년 서울 서빙고에서 여군훈련소로 재창설됐다가 1990년 여군학교로 승격돼 국방부 내로 옮겨졌다. 폐교후 여군 지망생은 장교는 제3사관학교에서, 부사관은 육군 부사관학교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조선
2001 - 미륵사지 석탑, 보수를 위해 1400년 만에 해체 시작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金馬面) 기양리(箕陽里) 미륵사에 있는 백제 말기의 화강석 석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4.24m. 사각형의 다층석탑(多層石塔)이었으나, 서남 부분은 무너지고 북동쪽 6층까지만 남아 있다. 초층 탑신은 사면이 3칸씩이며, 그 중앙칸은 내부와 통하도록 사방에 문이 있고, 탑 안의 중앙에는 네모난 커다란 찰주(擦柱)가 놓여 있다. 각 면에는 엔타시스 수법을 쓴 모난 기둥을 세웠고, 그 위에 평방(平枋)·창방(昌枋)을 짰으며, 다시 두공양식(枓?樣式)을 모방한 3단의 받침으로 옥개(屋蓋)를 받쳤다. 2층부터 탑신이 얕아지고 옥개석은 초층과 같은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석탑은 각 부분이 작은 석재로 구성되었으며, 그 가구(架構) 수법도 목조건물을 모방하기 위해 석탑 이전에 목탑(木塔)을 먼저 세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보기이며, 한국 석탑양식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양식상으로 볼 때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건립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원래 7층석탑으로 추정한다면 20m 안팎의 거대한 탑이었을 것이다. 건립연대는 백제 말기의 무왕 때인 600∼640년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일제강점기 때, 붕괴가 우려된다고 콘크리트를 발라놓아 훼손이 심하다.
2001년 10월, 총공사비 80억 원을 들여 해체·보수작업에 들어가 2007년 완성할 예정이다.
- Intl. Space Station
2000 -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상주할 우주인 태운 '소유즈 로켓 TM-31' 발사
미국, 러시아 등 16개국이 건설중인 국제 우주정거장(ISS)에 상주할 3명의 우주인이 2000년 10월 31일 러시아 로켓 '소유즈 TM-31'을 타고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출발했다.
미국인 선장 윌리엄 셰퍼드와 러시아인인 유리 기젠코,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등 3명은 11월 2일 지상 368km 궤도에서 ISS와 도킹, 2001년 2월까지 ISS에 117일간 머물면서 임무를 수행한 뒤 후임자들을 싣고 오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편으로 지구에 귀환하기로 했다. 현재 길이 48m, 무게 60t인 ISS가 2005년 완공되면 길이 108m, 무게 450t 규모로 확대될 예정이다.
ISS는 2001년 2월 폐기된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를 대체해 2013년까지 우주인들이 교대로 파견돼 다양한 실험을 벌일 예정이다. ISS 건설계획은 지난 1988년 미국과 유럽 우주청 참여국, 일본, 캐나다 간에 합의됐으며 1993년 뒤늦게 러시아 참여가 합의됐다. 완공까지 총 60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조선
- Le Notti di Cabiria
1993년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펠리니(Fellini, Federico, 1920~1993) 사망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출생하였다. 정규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방랑생활을 하였다. 고향에서 일 없이 지낸 젊은 시절과 만화 그리기·유랑극단 등의 생활을 체험한 후, 풍자기사(諷刺記事)를 쓰던 제2차 세계대전 중 젊은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알게 되어 결혼하였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R.로셀리니 감독을 알게 되어 그의 조수로 협력하였다.
영화연출에 뜻을 두고 자기의 유랑시절을 투영한 《청춘군상 I vitelloni》(1953) 등으로 주목받았으며, 난폭한 연예인과 백치 처녀와의 내면적 편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길 La Strada》(1954, 아카데미상 수상)로 세계적 평가를 받았다. 이어 《절벽 Il bidone》(1955) 《카비리아의 밤 Le Notti di Cabiria》(1956, 아카데미상 수상)에서 열심히 사는 현대 하층계급의 영혼구제의 길을 모색하였고, 《달콤한 생활 La Dolce vita》(1960, 칸영화제 1등상 수상)에서는 부패한 로마의 풍속을 현대의 장대한 벽화(壁畵)로 묘사하였다. 1963년 《81/2》(1963, 아카데미상 수상)과 색채 제1작인 《영혼의 줄리에타 Giulietta degli spiriti》(1964, 골든글러브상 수상)는 개인의 내면생활을 형상화한 신개척 영상이다. 그 밖에 《사티리콘 Satyricon》(1969) 《오케스트라 리허설 Prova d’orchestra》(1979) 《여자의 도시 La Citt delle donne》(1980) 등의 작품이 있다.
현대의 페스트로 불리는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는 외국에서 유입된 성전염병이다.
한국에서는 85년 12월 첫 감염자의 발견 이래, 해마다 증가하여 95년 말 2,000명으로 추정된다. 에이즈의 감염력은 강하지 않으나 적절한 치료법이 없어 치사율(致死率)이 높다.
1984 - 인도 총리 인디라 간디(Gandhi, Indira Priyadarshini) 피살
간디 [Gandhi, Indira Priyadarshini, 1917. 11.19~1984.10.31]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이 1984년 10월 31일 9시30분경 수상실로 출근하기 위해 뉴델리 관저를 나서던 중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 3명으로부터 집중사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6시경 심한 출혈로 사망했다. 66세였다. 범인 중 2명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1명은 생포됐다.
1917년 인도 독립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 초대 인도 수상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간디여사는 '리틀 인두(작은 인도인)'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당찬 소녀였다. 인도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뒤 스위스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하고 귀국, 21세때인 1938년 아버지 네루를 따라 반영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1964년 네루수상 사망에 따라 집권한 샤스트리 내각에서 공보장관을 지낸 후 1966년 제3대 수상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남인도 지방의 종파 및 인종분리소요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철권정치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갔고 정권유지를 위한 야당 탄압으로 독재자라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장기집권에 싫증을 느낀 인도국민의 反간디 무드로 1977년 총선에서 참패,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1980년 재집권했다. /조선
1983 - 로마교황청 350년 만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복권
지동설을 주장해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됐던 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3백50년 만인 1983년 10월 31일 공식 복권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13년전 자신이 발족시킨 특별위원회의 최종보고를 청취한 교황청과학원 공식회의에서 갈릴레오에 대한 교적회복을 공식선언했다.
이로써 신앙과 과학 사이에 벌어졌던 역사적 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단자 심문소로 널리 알려진 교황청 검사성성(檢邪聖省)이 지동설을 지지한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파문키로 결정한 것은 심문에 들어간지 17년 만인 1633년의 일이었다.
당시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며 자전한다는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지지했으나 교황청은 결국 그를 파문했다. 69세의 쇠약한 노인이었던 그는 교황청 심문관들의 기세에 눌려 재판정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오를 시인했으나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혼자 중얼거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
1966 -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이 1966년 10월 31일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방한했다. 동남아6개국 순방을 마치고 말레이시아에서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존슨 대통령은 공항에서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고 3군 및 해병대의장대를 사열했다.
부인 버드여사와 러스크 국무장관을 비롯한 81명의 공식 수행원을 대동하고 방한한 존슨 대통령은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진 시민환영대회에 참석한 후 숙소인 워커힐로 향했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2일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이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담은 약3천자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2개항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한국의 경제, 사회 및 과학분야발전을 위해 미국이 계속 지원할 것과 주한미군을 현재선 이하로 줄이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을 때는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원조를 하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천명했다. 이번 방한을 통해 한미관계의 전통적인 우호를 재확인했다. /조선
1959 - 한국-브라질 국교 수립
1959년 10월 31일 한국 정부는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연방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브라질은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한 남아메리카의 모든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브라질리아이다. 1962년 7월 브라질 상주대사관을 설치하고 1970년 10월 상파울루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며 1965년 5월 주한대사관이 개설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정부와 과학기술협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 외교관·관용여권에 대한 사증면제협정, 범죄인인도조약 및 투자보장협정 등을 체결함으로써 관계가 진전되었다. 1998년 현재 한국의 대(對) 브라질 직접투자액은 2억 660만 달러에 이르며, 포항제철·대한항공·삼성전자 등 약 30개 한국 기업이 직접 또는 합작투자 형태로 진출해 있다. 한국은 전기·전자제품, 기계류, 자동차 등을 주로 수출하고 철광석, 커피, 사료, 펄프, 알루미늄 등을 수입한다. 브라질 이민은 1950년대에 시작되어 1997년 6월 현재 교민 4만 3,741명, 체류자 460명이 있다. /브리태니커
1941 - 미국 러슈모어산의 워싱턴, 제퍼슨, 루스벨트, 링컨 대통령 두상조각 완성
1941년 10월 31일 거츠 보글럼과 400 명의 일꾼이 러슈모어 산에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두상 조각을 완성하다. /위키백과
1930 - 미국의 우주비행사 콜린스(Collins, Michael, 1930~ ) 출생
이탈리아의 로마 출생. 이탈리아 주재 미국 대사관 무관의 아들로 아버지는 육군소장, 삼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이었으며, 형은 육군준장인 군인가족이다. 195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에드워드 공군기지의 테스트 파일럿이 되었다. 1963년 제3기 우주비행사로 선출되었고, 1966년 7월 제미니 10호로 지구를 46회 선회하여 표적과의 도킹에 성공하였으며, 28분간의 우주유영도 하였다. 1969년 7월에는 역사상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사령탑 파일럿으로 활약하였다. 은퇴한 후 홍보담당 국무차관보가 되었다.
한글학회 창립 50돌 기념, 1971
1929 - 조선어연구회, 조선어사전 편찬회 조직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 '큰사전'은 1957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4 ·6배판. 전 6책. 3,864면)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창립되어 편찬작업을 시작하였으나, 1936년 조선어학회가 이를 인수하여 1939년 출판허가를 받았다. 1941년 대동인쇄소에 원고를 넘겨 일부 조판하였으나,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사전편찬 관계자들이 투옥되어 중단되었다가 8 ·15광복 후 다시 착수, 1957년 완간되었다.
수록어휘는 16만 4125개이고, 그 범위는 현재의 표준어로 쓰이고 있는 순한국어 ·한자어 ·외래어 ·숙어 ·각종 전문어 ·이두 ·옛제도어 ·사투리 ·별말 ·지명 ·인명 ·서지 ·관용구 등이 포괄되어 있다. 해설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1946년 개정안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외래어 표기는 1940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외래어표기통일안’에 준하였다. 한글사전의 바탕을 이룬 값진 문화유산이다.
1922 -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수립
1922년 10월 ‘로마 진군’이라는 쿠데타로 정권을 인수, 정치 ·문화 ·경제를 개혁하여 강력한 독재정권의 기반을 굳혀 나가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1935년 에티오피아침략, 1936∼1939년 에스파냐내란 간섭 등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구체화시켰다. 1939년 5월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나치스 독일 ·일본과 함께 국제파시즘 진영을 구성하였다. 1940년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영국과 프랑스에 대항하였으나 각지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1943년 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섬 상륙과 함께 실각하여 체포, 감금되었다.
1922 - 캄보디아의 정치가 시아누크(Sihanouk, Norodom, 1922~ ) 출생
프놈펜에서 출생했다. 사이공 및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1년 4월 조부인 국왕 모니본 사망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프랑스 보호국이던 캄보디아의 독립을 염원하여 1945년 독립을 선언하고, 1949년 프랑스연합 내에서 캄보디아 독립을 획득하였다. 1955년 3월 왕위를 아버지 수라마리트에게 양위하고, 9월 총선거에서 압승하여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취임, 국내적으로는 정치쇄신, 대외적으로는 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하였다. 1960년 4월 국왕이 사망하였을 때 왕위계승을 하지 않고 국가원수로 취임하였다. 따라서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지만 왕이 없는 상태였다.
1955년 이래 인민사회주의연합을 이끌며 거듭 내각수반으로서 정치의 중심을 감당하였고, 왕제(王制)사회주의의 추진을 내세웠다.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는 군사동맹 불체결을 선언하고, 1957년 영세중립법을 공포하였다. 1961년 라오스국제회의를 제창, 그 중립화에 공헌하였다. 1970년 3월 외유 중에 우파(右派)인 론놀 등에 의한 쿠데타로 국가원수직을 박탈당하고, 5월 베이징[北京]에서 캄보디아 민족연합정부를 세우고 망명정권의 수반이 되었다. 내전을 일으켰던 공산 크메르루주군(軍)이 캄보디아를 장악함에 따라, 1975년 9월 귀국하여 그들의 지지을 받고 국가원수직에 복귀하였으나 1976년 4월 크메르루주의 독재 강화로 사임하고, 중국에 망명객으로 머물었다.
1979년 2월 헹 삼린 정권을 앞세우고 캄푸챠를 장악한 베트남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1982년 반(反)베트남파가 집결하여 수립한 민주캄보디아연합의 불안정한 망명연립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외에서 국가회복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쟁을 계속해오다가, 1991년 귀국하여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93년 9월 입헌군주제로 환원하는 헌법개정으로 왕위에 복귀하였다. 2004년 10월 14일 아들인 노로돔 시아모니(Norodom Sihamoni)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naver
숭의학원 창립 100주년 기념
1903 - 미국 북장로회선교사 사무엘 모펫(Moffet, Samuel Austin), 평양에 숭의여학교 설립
한국명 마포삼열(麻浦三烈 또는 馬布三悅). 인디애나주(州) 매디슨 출생. 1884년 하노빌대학을 졸업하고, 1889년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한국 선교를 자원하여 1890년 내한한 후 1893년까지 서울에서 활동하고, 1893년 이후에는 평양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 근대교육에 힘을 쏟았다.
또 1918∼1928년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평안도에 많은 학교와 교회를 설립하였다. 1912년 ‘105인 사건’으로 한국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자, 매큔[한국명 尹山溫] ·에비슨 선교사등과 함께 이 사건이 사실무근의 날조사건이며 고문 등 비인도적 방법이 자행되고 있다 하여 당시의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항의하고 미국의 장로회 본부에 일제의 만행을 보고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힘썼다.
1936년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일단 귀국하였는데, 1939년 본국에서 사망하였다. 슬하에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그 중 둘은 한국에서 선교사업에 종신하였다.
1902 -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전신 케이블이 완공됨
1902년 태평양횡단 전화(전신을 잘못 표기한듯...) 케이블이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연결하게 되다. /Google
1888 -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영국 극지 탐험가 윌킨스(Wilkins, George Hubert) 출생
윌킨스 [Wilkins, George Hubert, 1888.10.31~1958.12.1]
극지방 탐사에서 비행기 사용을 진척시키고 잠수함 사용을 주도했다. 일찍이 비행사로서 1913~16년 캐나다 북극지방 탐험에서 탐험가이며 민족학자인 스테판스손과 동행했고, 1920~21년 그레이엄랜드에 대한 영국의 남극탐험에서 부사령관을 지냈으며, 1921~22년 어니스트 새클턴 경의 마지막 남극탐험에서는 박물학자로 참가했다. 1926년 알래스카 배로 곶 북쪽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북극지역에 대한 비행탐사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시험비행을 시작했다. 1928년 4월 16일에 부조종사와 배로 갑에서 노르웨이 북단의 스발바르(스피츠베르겐) 제도까지 3,400㎞ 되는 미지의 바다 위를 20시간 30분 만에 비행했다. 그는 이 비행으로 기사작위를 받았다. ...
1887 - 중국의 정치가 장제스[蔣介石] 출생
1883 -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
1883 - 프랑스의 화가 로랑생(Laurencin, Marie) 출생
1875 - 인도의 변호사, 정치가 파텔(Patel, Sardar Vallabhai) 출생
1864 - 네바다(Nevada)주가 미국의 36번째 주가 됨
1864 - 아이슬란드의 시인 베네딕트손(Benediktsson, Einar) 출생
1847 - 이탈리아의 전기공학자 페라리스(Ferraris, Galileo) 출생
1835 - 독일의 유기화학자 바이어(Adolf von Baeyer) 출생
1795 - 영국의 시인 존 키츠(Keats, John) 출생
1705 - 로마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 출생
1632 -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Vermeer, Jan) 출생
1517 - 루터, 95개 조항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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