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부의 아름다운 결심
지난 달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한 주부가 약속한 시간에 왔다.자신이 먹어 본 일식집의 점심 특선이 괜찮았다며 그 집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깨끗한 제복을 입은 여자 도우미와 관록의 향이 묻어나는 주방장이 차려내 주는 음식 접시에는 곱게 물든 단풍잎이 얹어져 가을이 담겨 함께 들어왔다. 즐겁고 맛있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소화를 겸해 가벼운 나들이에 나섰다.
찾아간 곳은 주부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대전 중구 침산동에 조성돼 1997년 11월에 개장한 성씨 상징의 조각품이 설치된 효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인 <뿌리공원>. 일행은 유등천변에서 1km지점에 있는 뿌리공원을 함께 둘러보았다. 공원을 끼고 흐르는 안영천 위에 한가로이 노니는 백로 떼에 눈길을 빼앗겼던 그녀는 공원이 자리한 천혜의 자연 경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공원을 걸으며 자신의 그간의 생활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도서 봉사를 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 여름에도 봉사를 하며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여러 해 전부터 대학병원에서 도서 자원 봉사를 하며 장기 기증의 뜻도 품어 왔다고 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은 어떤 결실을 보지 못하고 흘렀다. 자신을 되돌아 본 그녀는 우선 자신의 뜻을 굳게 다졌다. 그리고 가족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고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남편과 외아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녀는 장기 기증에 필수적인 가족 동의를 어떻게든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굳히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여겼다. 그 후로 가족들은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 여름 그 대학병원 도서 봉사에 나섰다가 다시 한번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번 이야기 한 자신의 장기 기증 결심을 밝히고 가족들의 동의를 구했다. 뜻밖에도 남편이나 아들은 전처럼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보여 준 그와 같은 동의에도 더 없이 고맙게 여긴다고 했다.
그 후 바로 필요한 서류를 다 구해 놓았다. 남편과 아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서류는 자신의 일기 안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공원 안에 서 있을 자기 본인 慶州 李氏의 상징물을 보고 싶다며 앞장섰다. 그 상징물 앞에 선 그녀는 상징물에 새겨진 글을 차분히 다 읽었다.
공원에서 나오는 다리를 함께 건너던 그녀에게 장기를 기증하게 된 동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50대 초반의 그녀는 "제가 살아오며 무엇 하나 좋은 일을 한 것이 있어야지요?" 라며 "제 눈 하나는 좋거든요."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2005. 12. 7.)
첫댓글 "제 눈 하나는 좋거든요" 하며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몰려 주겠다니 .....
자신이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겠다는 그 믿음이 너무도 아름답군요...
자기 희생의 실천이란 믿음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일이지 ,그 주부님의 눈같이 맑고 고귀한 정신에 찬사를 보냅니다.그리고 다녀온 뿌리공원이 있는곳은 고교시절 소풍을 왔었던 아들 바위가 있는 곳이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살아오며 무엇하나 좋은 일 한 것 있으면 내어놓느라"라고 묻는다면 거의 대부분이 머뭇거리고 당황하는 것이 세태이거늘.... 정말 어려우면서도 고매한 결정을 내린 이 주부님께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