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하루가 황혼에 질 무렵. 남루한 농부 부부가 일을 마치고 삼종기도를 드린다.
일 속에 계신 내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다.
저녁 여섯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겸손히 드리는 마리아의 기도가
여기 농부 부부의 입술을 통해서 고요한 대지에 울려 퍼지고 거룩함 속으로 다가선다.
내 고향 두름박재 /
고구마 익는 마을 /
할머니 시장가실 때 /
꽃신신고 따라 갔다
내 고향 황등은 /
햇살이 타는 마을 /
할머니 건너가실 때 / 토마토가 익어갔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 내 고향 신기촌마을
우리 집에서 마을 앞뒤 경관은 하느님이 드실 물을 길어 올리는 듯 두름박과 흡사하다.
이름하여 두름박제. 동편에는 만종 속의 성당처럼 내 어머니 영이 깃든 삼기교회
그 뒤에는 미륵산의 햇살 듬뿍 안고서 신비의 첨탑이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만종晩鐘의 주인공이 바로 내 살아계신 아버지 어머니요 그리고 할머니
그 속에서 새벽부터 저녘까지 아버지 어머니 나와 남동생 두 여동생은 함께 일했다.
지금은 영원 속에서 빛이나 천사로 계실 할머니의 자애로운 존영이 비칠 때면
이 곳은 지금 살아서도 그리움이고 죽어서도 사랑의 단물 가득찬 영원의 하늘이다.
이 그림을 처음 대할때 작가의 의도는 물론 이 그림의 제목이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왜 만종 晩鐘 인지, 왜 이 그림이 사람들의 극찬을 받는 명화인지 알 수 없었다. 세월이 익어 우리 사회와 역사, 혹독했던 민중의 삶을 알고 바라보게 되면서 나는 이 작품이 외치는 뜨겁고 강렬한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끼의 식사를 걱정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
그야말로 하루 하루 사는 것조차 막박하고 버거운 가난한 사람들, 사회의 조명을 받는 잘 나가는 중심인물이 아닌 방치된 인물군을 밀레는 캔버스의 중심으로 초대한다.
혹자는 이 그림을 일러 노동의 존귀함과 그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설명한다. 그것보다 나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신화 속의 거룩한 신, 성경 속에 종교적 인물, 그 사회를 대표하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측면에서 왕과 정복자, 마에스트로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아닌 그 사회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는 농부, 그것도 가난한 농부를 용감하게도 그림의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근저에 이와 같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대지에 몸을 바치며 성스럽게 살고 있다고 웅변하고 있는 점에서 이 그림의 위대성과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밀레는 무엇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역사를 주저없이 생의 가장자리가 아닌 삶의 무대에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살아내고 목격한 꺼질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존엄을 담아내고 있다. 당시에는 농촌 풍경을 그릴 때 도시 부르조아의 취향에 맞추어 전원적인 시골 풍경으로 그리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또한 이 해는 프랑스에 민중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바리케이트를 치고 대치하는 등 2월 혁명이 일어난 해로, 귀족의 경제적 특권을 옹호한 새 정부는 공적으로 사유재산을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중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하층민들을 배려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민중들은 새로운 정부가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왕정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림의 주 고객인 부르조아들이 이와 같은 사회 상황을 위태로운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던 때였다. 프랑스 어디에서나 거지, 창녀, 범죄자가 넘실거렸는데 이는 빈민계층이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택한 궁여지책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회의 가난과 빈농 문제를 다룬 가히 ‘혁명적’,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밀레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평범함과 치열함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은 당시 비평가들에게 불만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에 한 번도 영웅으로 표현된 적이 없는 무명의 농부들이 미술을 통해 영웅성을 드러낸 것 자체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밀레의 작품이 지닌 인간에 대한 외경과 존엄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동력과 감동을 주는 힘이 되고 있다.
밀레는 "노동은 순교" 라고 말한다. 쌀, 보리, 밀, 감자, 토마토. 한 농작물을 수확하기까지 혹독하고 쓰라린 경험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이 말 뜻을 알 수 없다. 정성껏 가꾼 벼가 장마철에 물이 차올라 수확의 대가로 쭉정이를 거두어드린다면 그 허망함과 좌절은 감당하기 힘들다. 애써 키우고 있는 토마토 하우스의 비닐이 서풍에 날려버릴 때, 그리고 폭설에 가라앉을 떄 푹 꺼진 한숨이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다.
이렇듯 밀레의 그림이 대부분 힘겹게 노동하는 농민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그림은 순교자로서의 농민, 천부로부터 받은 생명을 성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는 성직자로서의 농민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밀레의 농민들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거룩하고 고귀한 인상을 받는지, 왜 이렇게 평범하지만 신성한 평화를 느끼는지 성자 아닌 성자의 삶을 살아가는 농부의 마음 가까이 다가섬으로 알 수 있다.
만년에 밀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리는가 하면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농부들의 삶처럼 이 만종을 그릴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물감을 사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으며 그와 그의 아내도 대부분의 인생을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물감을 사기 어려워서인지 그의 작품들을 보면 화면 전체의 채색이 어둡고 무겁다. 또 그림을 들여다 보면 인물의 얼굴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혹은 상세하게 묘사된 것이 없다. 한참을 쳐다보면 어딘지 창백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많다. 그의 그림에서 평화스럽거나 온화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농촌이라고 하는 전원적 환경이 주는 낭만적인 배경과 목가적인 기대, 한적하고 막연한 평화로움으로 인한 혼동 때문이리라.
그러나 밀레의 농부는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쓰러져도 굴하지 않고 기필코 언땅을 지고 다시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나네처럼 좌절하지 않고 운명과 함께 신과 함께 힘주어 일어서는 역동적인 농부, 지평선 위까지 치솟은 두 분의 머리가 마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에 겸손히 고개숙인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