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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2km 떨어진, 주능선 상에 위치.
'노루의 목'처럼 높고 길게 솟아오른 고개마루란 의미로 명명.
반야봉의 지형이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던 도중에
이곳에서 잠시 멈춰, 머리를 지켜든 한마리의 노루와 같은 산세.
반야봉을 노루 몸통, 토끼봉을 머리에 비유하면, 그 사이가 노루목.
반야봉 가는 갈림길 있는 그곳 주변 등산로는 눈이 많이 쌓이는 곳.
가파른 산마루에 쌓인 눈이 바람에 깎여 내려와 등산로를 뒤덮기 때문.
산마루 비탈 타고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눈사태에 떠내려가기도 쉬운 곳.
그곳 허리 깊이 눈밭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실감나는 지형 이름...노루목.
노루목은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역동적인 산세를 지니고 있다.
노루목이 화개면 정금마을로 걸어나오다 개울가에서 만난 여자.
빨래하다가 너무 놀라워 크게 외쳤다고 한다. "산이 걸어 나온다"
그 탓에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하여, 노루목은 산이 걸어나오는 듯 보이는 산세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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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서면 서상리 장항(노루목) 마을.'
남해 대교에서 20㎞, 남해읍에서 8㎞,
전남 여수에서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11㎞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반경 40㎞ 내에 삼천포시, 여수시, 광양시, 순천시,
하동군, 사천군 등이 위치한 주말 관광객 배출 지역.
113가구 중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83 가구인 마을.
구릉지에 산재한 취락은 남해지역 어촌의 독특한 경관
당산제 및 남해 농악 등이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마을.
혹시, 지리산 노루목과 관련있는 곳은 아닐까?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장항마을은 곳곳에 있다.
장항마을은 일기예보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도깨비>는 이상한 힘과 재주를 가진 잡된 귀신.
사람을 호리거나, 험상궂은 장난질을 많이 한다.
단천교를 지나 화개면 정금마을까지 여러 개 소 중에서 <도깨비소>.
단천마을 지나 계곡을 3~4 번 건너 오른쪽 계곡에 있는 <용추폭포>.
용이 폭포에서 추락할 만큼 급류가 거센 곳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정금마을은 비오면 개울물이 자주 넘치는 곳.
개울물이 불면, 지리산이 걸어나오는 듯한 산세.
특히, 우뚝 솟은 노루목을 보면 도깨비에 홀린 듯.
하여, 정금마을 주민에겐 더욱 실감나는 도깨비소.
'정금마을 주민에게 노루목은 기상 관측소.'
산이 걸어 나온다고 놀랄 만큼 홍수에 시달린 탓.
중산리 사람들은 천왕봉의 통천골을 보고 두려워한다.
통천골에서 거센 폭포가 쏟아지면 천왕봉이 무너지는 듯.
'천재지변을 관측하는 첨성단 = 노루목.'
정금마을 주민에겐 일기예보를 점치는 곳.
우리나라에서는 마을마다 그 방법이 다르다.
새가 낮게 나르거나, 개구리가 유난히 울면 비.
일기예보를 점치는 방법이 곳곳마다 색다르다.
'한반도에서는 일기예보를 어떻게 관측했을까?'
백두대간의 분수령 태백산은 첨성단이 있는 곳.
태백산이 신단수인 황지연못과 검룡소를 품은 탓.
첨성단은 이조시대에 단군 왕검을 모시는 성지이다.
아울러, 고려시대부터 천문을 관측하던 태백산 첨성단.
첨성단은 옛부터 한반도 곳곳에 설치한 일기예보 관측소.
첨성단 곳곳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다.
'인천 강화 마니산에도 첨성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니산은 단군이 천제를 올렸던 곳.
매년 전국 체전의 성화가 체화되는 곳이고 민족의 영산 중 하나이다.
마니산(469M) 입구에서 성화가 체화되는 첨성단까지 1시간 30분 거리.
.............................마니산의 첨성대 유래..............................
우리나라 5 대섬의 하나로, 항몽유적지와 전등사, 보문사로 유명하고
화문석 또한 전국적으로 알려진 강화도는 특히 문화유적지가 많은 곳.
어딜 가도 명소일 정도로 가는 곳마다 볼거리와 사연이 가득한 강화도.
오히려 산행을 하려고 마니산을 찾는 사람이 드믄 곳이다.
그러나, 마니산은 발 아래 펼쳐진 서해 조망이 아름다운 곳.
마니산행 일반적인 코스는 상방리 관리사무소에서의 들머리.
삼국시대부터 임금님이 천제를 드리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
첨성단에서 다시 40분 쯤 오르면 정상이고 정족산이 보인다.
정상을 지나 조금 가면 함허동천, 정수사, 첨성단의 이정표.
암릉이 끝나면서 숲길이 이어지고 곧 정수사가 보인다.
여기서 버스가 들어오는 사기리까지 비포장길을 걸어가면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산행이 끝나는 암릉미가 일품인 산.
세계에서 가장 간만(밀물과 설물)의 차이가 심한 바다 서해.
단군시대부터 천문관측 장소인 이곳은 국내 천문대의 역사.
농본국가인 한반도에서 음력은 농사와 밀접한 역활을 한다.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이 발생은 달의 인력에 의해 좌우된다.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첨성단에서 별을 관측한 일이 기록에 있다.
이조시대에도 일식, 월식과 북극성 고도를 관측한 관상감의 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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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천문관측 유적지.......................
전문 천문대로 잘 보존된 것은 647년에 건립된 경주 첨성대.
신라는 선덕여왕 이후 288년간 많은 천문 관측기록을 남겼다.
고려 때엔 천문학이 더 발전해 개성 만월대 서쪽에 첨성대 건립.
이조시대 4개의 천문대가 건설되었지만 현재 2개만 남아 있다.
1434년 준공된 대간의대(大簡儀臺)로 당시에 제작된 관측기기들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설치한 천문대지만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
1702년 경희궁 개양문 밖에 관청대는 조선총독부에서 헐어버렸다.
지금 보존된 천문대는 창경궁의 소간의대와 북부 광화방의 관천대.
1688년에는 금호문 밖에 있던 소간의대가 창경궁의 보물 제851호.
관천대는그 위에 동서남북 관측 석대 선까지 보존된 사적 제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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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나 첨성단은 오늘날 기상대보다 기능이 부족했을 듯.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꾸준히 관측해 일기변화를 찾아낸 듯.
첨성단은 농사짓는 백성의 풍년 염원을 담아 제사를 지낸 성지.
조상의 은덕으로 풍년을 기원했던 성지가 더 발전한 것이 첨성대.
'지리산 화개골 주민들에게 노루목은 어떤 곳일까?'
불무장등은 천연제방이자 천재지변으로부터 피난처.
물한계곡 단천골 개울이 폭우로 불어날때 제방 역활
하여, 화개골은 고대국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곳.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5층 석탑(국보 236호)........
장항리는 덕동호를 지나 가내고개 넘어 범골 다음 마을.
마을 앞산 산등성이 생김새가 노루의 목 같다고 노루미기
장항리사지는 장항석굴로 제4교 오른쪽 언덕 신라시대 절터.
이 계곡은 토함산 동쪽에서 흘러 나와
'감은사' 앞을 흐르는 대종천 상류 지점.
절터는 두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 위 높은 언덕에 있고,
금당 자리와 석조불상을 안치했던 불상대좌, 5층 석탑
금당 안에 안치되었던 석조불상은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
연꽃 위에는 여래상과 보살상만이 오를 수 있는데
연꽃 위에 배치한 탑신부 각면에는 8 금강역사 상.
뚜렷한 이목구비, 호통치듯 벌린 입, 불끈 쥔 주먹
석불 대좌 중대석 신장상과 사자상들도 큰 동작들.
장항리사지 조각들은 전체적으로 활동적인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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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장항)은 신라 불교문화에서 유래된 듯.'
정금마을.
'정금 야생열매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
가을은 무척이나 쓸쓸하고 외로운 계절.
자연의 변화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환절기
자연의 섭리가 피부로 느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가을에 정금마을은 풍요롭다.
온갖 야생열매가 풍성한 마을이기 때문.
정금마을 산길을 걷다보면 낙엽숲 속삭임
"바스락. 바스락" 바람이 일군 낙옆소리.
그리고, 온갖 야생 과실들이 반기는 정금마을.
머루, 다래, 오미자, 산초, 초피, 까치밥, 팥배.
쥐똥열매, 맹감(청미래 덩굴 열매), 아그배, 정금.
정금은 성냥알 2~3개 크기로 길가에 송알송알 열린다.
얼핏 검게 보이는 진보라색 정금은 예전에 나무꾼 식량.
수백개씩 열리는 열매를 따먹기 좋을 키 높이의 정금나무
한 자리에서 실컷 따먹을 수 있다.
정금 열매의 맛은 매콤 새콤 달콤.
씨도 가리지 않고 함께 씹어먹는다.
정금에는 비타민류와 칼슘류가 많다.
그래서인지 정금은 피로를 잊게 한다.
정금마을 주민들은 봄에는 진달래꽃을,
가을엔 열매 주렁주렁한 정금나무 가지
나뭇짐 지게위에 꽂고서 산길을 내려온다.
정금나무 초피는 진한 자극적인 냄새가 나서
추어탕에 넣어먹는 '종피' 또는 '젬피'의 원료.
그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민중 소설로 대중에게는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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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은 남원 함양 특산물이 화개장터로 가는 길목.
임걸령 고개마루 피해 화개장터로 가는 우회로는 없다.
하여, 의적 임걸에서 유래된 지명, 그만큼 도적 많던 곳.
'그 옛날 산도적을 만나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삼도봉에서 피아골 입구 지나 노루목과 임걸령 사이의 샘.
그 샘물 마시다가 도적떼를 만나면 놀라 혼비백산 했을 듯.
임걸령 샘터에서 50분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노루목.
'임걸령에서 노루목 쪽으로 25분 거리..임걸령 샘터.'
임걸령은 그곳에서 30분 거리 반야봉으로 다녀오는 길목.
만날 약속 하거나 식사하기 편하기에 만남과 휴식의 장소.
불무장등 왕시루봉 능선이 보이고
멀리 천왕봉, 중봉이 구름위로 우뚝.
노루목, 피아골 입구,삼도봉 지나 화개재
그곳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뱀사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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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전설이 담긴 곳.
구형왕의 증손자 김유신은 7년간 지리산에서 수련.
화랑 시절, 이곳 도둑 떼를 길들여 부하로 삼았단다.
훗날, 김유신이 삼국통일할 때 전쟁에서 앞장 선 그들.
그만큼 옛부터 도둑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 임걸령.
'임걸령은 의적 임걸년에서 유래.'
임걸령은 원래 '물두덩이'라 불렀고
신라시대에 화랑들의 연마도장인 곳.
임걸년 활동 무대는 임걸령 반야봉 일대
그리고, 덕평봉 음양샘 부근에 있던 별채.
임걸령 샘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KM거리 능선 중간 위치
반야봉이 북풍을..주능선이 동남풍 막아주는 아늑한 위치.
샘터에는 언제나 차고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물이 솟는다.
샘터에서 피아골 쪽 암벽 밑에는
'황(黃)장사의 호랑이 막(幕)터.
옛날 약초꾼 황 장사가 눈 내리던 겨울
이곳에서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곳.
노고단에서 약 4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지금 야영터 자리가.. 황장사 막터.
호랑이를 지혜와 용기로 잡았다는 곳.
옛부터 지리산 약초꾼들의 야영터이다.
약초꾼들이 야생동물 사냥도 했을 샘터.
인근 돼지평전은 야생 멧돼지 서식처.
지금도 야생 멧돼지들이 나타나는 곳.
겨울에 그곳 원추리 뿌리는 멧돼지 먹이.
황(黃) 장사 막터.
노고단에서 반야봉까지 8km 중간지점 고개 임걸령.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보통 걸음으로 1시간 20 분.
임걸령에서 노루목 35분, 임걸령에서 반야봉 1시간 반.
임걸령은 북쪽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 주고
노고단과 인근 능선들이 동남풍을 막아 주어
높은 고갯마루지만 샘물까지 솟는 천혜의 요세.
의적 두목 임걸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
피아골 쪽으로 내려가면 아늑한 절벽 밑에 막터
옛날부터 이곳은 <황(黃) 장사 막터>'라 부른다.
'옛날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던 사람 중에
<황 총각>이라는 약초꾼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황 총각이 임신한 개를 데리고
지리산을 산행하다가 날이 어두워졌다.
황 총각은 '호랑이 막터'에 불 피우고
야영 중 개가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 때 그곳에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 거렸다고 한다.
황 총각은 새끼 강아지를 한마리씩 호랑이에게 던졌다.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먹는 동안 황총각은 돌을 구웠다.
황 총각은 뜨겁게 달구어진 돌을 호랑이에게 던져주었다.
호랑이는 그것이 새끼 강아지인줄 알고 덥석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 뜨겁게 달구어진 돌을 삼키고나서 곧 죽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황 총각이 지혜와 용기로
호랑이를 잡은 곳을 <황장사 막터>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2km 지점 작은 고개 = 노루목 삼거리.'
덧 말.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 절벽 아래 암자.. 묘향대.
옛부터 속세를 떠난 구도자들이 수도하는 기도처.
황장사 막터 일대는 옛부터 야생동물들의 서식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