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城喩品(화성유품) 第七
3. 대통지승불의 성도(成道)
(1) 십겁 (十劫)이 지나고 불법이 현전(現前)하다 2
그때 도리천신(忉利天神)들이 먼저 그 부처님을 위하여
보리수 아래에 사자좌(獅子座)를 펴놓았는데 높이가 일 유순이니라.
'부처님이 여기에 앉아서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하니,
마침 이 사자좌에 앉으셨느니라.
그 때 여러 범천왕들이 온갖 하늘 꽃을 비 오듯 내리니
그 꽃의 넓이가 일백 유순이며, 향기로운 바람이 때때로 불어와서
시들은 꽃은 날려 보내고 다시 새 꽃을 내려서
십 소겁 동안을 쉬지 않고 부처님께 공양하였느니라.
열반에 드실 때까지 항상 이렇게 꽃을 내렸느니라.
여러 사천왕들은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항상 하늘의 북을 치고,
그 외에 다른 하늘에서도 하늘의 풍류를 연주하여 십 소겁이 차도록 하였으며
열반하실 때까지 이렇게 하였느니라.
이렇게 아주 과거에 대통지승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까마득히 멀고먼 세월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결국은 그 이야기는 대통지승불이 출가하기 전에 16왕자가 있었는데
그 16왕자 중에서 최후의 마지막 왕자가 석가모니불이라는
그런 이야기가 이제 연결이 되어 가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멀리서 부터 만들어 오는 거지요.
법화경에 어느 구절에 선가 나는 있는 이야기도 하고 없는 이야기도 하고
내 이야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도 하고 그게 누구의 이야기고
또 있는 이야기든 없는 이야기든 누구의 이야기든 간에
그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앓고 있는 중생들의 병을 고치면
그것으로써 끝이다 이거죠.
그것으로써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 이야기의 사실여부는 알려고 하지마라.
내가 없는 이야기도 얼마든지 들려줘서 깨우치게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참 그런 걸보면 아주 속이 후련해요.
그렇게 보면 특히 법화경 이나 대승경전이 다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특히 법화경은 이런 대통지승불 같은 경우
그렇게 이 지구의 역사보다도 수 억만 배 더 오랜 역사를 이야기 하고
그 때 부처님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그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는가?
알고 보면 이해하기가 간단하고 너무 쉬운 거예요.
이것은 무한 세월 속에서 또 무한한 공간 속에서
사람의 역사도 또 무한히 이렇게 있어 오고
또 무한한 인연들이 거기에 개재 되어서 또 모습의 삶을 연출해 가고 있다 하는
그런 취지를 이해하면 그 뿐인 거예요.
대통지승불이 지구의 역사보다 수 억만 배 더 오래고 아니고
그까짓 것 별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의 인연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그 뜻입니다.
여러 비구들이여,
대통지승불께서는 십 소겁이 지나고 나서 부처님의 법이 앞에 나타나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느니라.
불법이 나타날 게 어디 있습니까.
나타났으면 아까 이야기한대로 한 사람 깨달았을 때 하나씩 나타나고 그랬으면
지금 뭐 수 억만 명이 깨달았을 텐데 그분들 것이 지금 지구상에 쌓여 가지고
비좁아서 어디 견딜 수나 있겠어요.
그 나타나는 것은 없어요.
그냥 말을 하자니 나타났다 그러는 것이지 본래 그대로가 불법이예요.
'일체법이 개시불법.' 그것만 알면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든 간에
특히 신심이 좀 있다고 하는 불자들이 이러저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 세속에 얽매여 가지고 그런 생활을 못하고 이렇게 있다 해서
늘 마음 조리고 그런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분들을 흔히 보는데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은 잘못 생각 하고 있는 거죠.
바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서있는 그 자리가 불법의 자리고
또 거기서 그대로가 불법인 줄 알면 그걸로 끝이예요.
어디 이상 세계가 유토피아가 따로 있습니까?
극락세계가 어디 따로 있겠어요?
전혀 그런 것은 아니죠.
바로 이 순간 우리 사는 이 땅, 이 자리, 여기에서 우리가 갈구하는
이상적인 삶이 있고 또 거기에서 발견해야 된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대통지승불이 멸도 한 열반하신 그 오랜 세월을
그리고 또 대통지승불께서 성도 하신 이야기.
이것은 “십겁좌도량 불법불현전”((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한문으로 그렇게 표현해요.
대통지승불이 십겁동안 도량에 앉아 있어도 불법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십겁이 지난 후에 비로소 불법이 나타나더라 라고 하는
이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숱한 선사들이 아주 뭐 신이 났어요.
재미가 있고 신이 나서, 이리 이야기 하고 저리 이야기하고...
아 그렇게 당연히 불법은 나타나지 않아야 되는 거지.
또 나타났다 하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아 그렇지 나타났지. 본래 나타나 있는 거야.’
그럼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뜻이나 나타났다고 하는 뜻이나
똑 같은 뜻이 되는 거죠.
나타나지 않는 것은 본래 그대로니까 나타날 것이 없으니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럼 십겁이 지난 뒤에 나타났다는 뜻은 뭐냐.
그대로, 알고 보니 그대로가 불법이더라, 이 뜻이죠.
참 묘하죠.
이 소재만 가지고도 금강경의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다 하는 이런 이치와 아울러서
아주 좋은 설법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또는 불교적 어떤 사유의 좋은 소재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합니다.
오늘 법화경 공부 여기 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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