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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茶 이야기 스크랩 【이런스님】햇차같은 선승 여연스님
명전 추천 0 조회 155 08.01.05 16:00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이런스님】햇차같은 선승 여연스님


전통문화 해박한 지식

녹차 대중화에 기여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다. 조선조 말 유생들 사이에도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실학이라는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다산 정약용이라든지 추사 김정희라든지 하는 천재적인 사상가들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천재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유를 한 스님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초의 의순 선사이다. 사상이나 학문에 있어서나 시서화 등에 있어 당대의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고 거기에 승려로서도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대 선사였다. 그러나 후학인 우리들이 스님을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은 다성(茶聖)으로서의 초의이다.

배불정책으로 인해 변변한 불교인물이 없던 그 시대에 초의선사는 ‘차’만으로도 불교사 뿐 아니라 우리 민족사에서 빛나는 위대한 인물이다. 다산과 추사에게조차 초의는 차에 있어 스승이다. 술밖에 모르던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차를 마시게 하고 차의 문화와 멋을 알게했다.

그러한 차인으로서의 초의선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스님이 있다. 바로 해남 대둔사 산내 암자인 일지암 암주로 있는 여연(如然)스님이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직접 창건하고 말년을 보낸, 한국차문화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일지암은 오랫동안 그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지못한 채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왔었다. 그런데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70년대에 암자터를 찾아내고 지금의 암자를 새로 지었다. 여연스님은 그때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중 한사람이었고 지금은 일지암의 암주가 되어 일지암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연스님은 바로 초의선사의 후신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내가 여연스님을 초의선사의 후신이라고 하는 것에는 단지 그가 일지암에 살고 있어서뿐이 아니다. 다인(茶人)으로서의 초의를 닮은, 다인으로서의 여연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요즘은 너 나 없이 차를 즐겨 마시고, 또 녹차가 동네 슈퍼에만 가도 살 수 있게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산중의 스님들만 마시는 것이 녹차였다. 아니 60년대 내가 처음 승려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절 집안에서조차 차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몇몇 스님만 마시는 기호품이었다. 그런 차를 우선 스님들의 일반적인 기호품으로 유행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한 스님중 한 사람이 여연스님이다. 나역시 이때부터 차를 몹시 좋아하게 되었다. 여연스님을 알게된 일은 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 잘 법제된 우전차(雨前茶)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싱그럽고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연스님은 싱그러운 햇차같이 샤프한 그런 선승(禪僧)이다.

 

오늘날 전통차를 마시자는 취지 아래 우리 사회 전반에 너나 없이 녹차를 마시는 것이 유행하게 된 저변에는 여연스님같은 분이 큰 기여를 했다. 남들은 차가 무언지도 잘 모를 때 스님은 사천 다솔사를 찾아가 당대 최고의 다인 효당스님에게 차를 견문(見聞)하고 배웠다. 그리고 차에 대한 문헌을 모으고 공부를 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차를 강의했다. 당시 전국 각 대학에서 여연스님의 차 강의는 아주 유명했다. 물론 지금도 여연스님의 차 강의는 명강으로 유명하지만 차를 널리 알리는데 공을 세운 스님이다.

 

여연스님이 시대를 앞서간 것은 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솔직히 불교가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강점이 있지만(차문화를 포함해서) 반대로 외국문물에 대한 이해에는 약하다고 불 수 있다. 한데 여연스님은 일찍부터 우리문화 전통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울러 외국문물에 대해서도 남달리 깊이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스님이다.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잘했고 그 영어를 바탕으로 근 현대 서구사회의 음악이나 그림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조계종단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재를 활용하고 인재를 대우할 줄 모르는 게 아닐까?

 

그건 그렇다치고 내가 여연스님을 정작 좋아하는 것은 그의 섬세한 감수성과 사물을 보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그는 그 섬세한 마음을 바탕으로 맛깔스런 글을 쓴다.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감칠맛 나는 글을 쓰는데는 아마 여연스님 같은 분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이곳저곳에 두서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냥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쓰는 글인데 비해 여연스님은 문학성이 높고 향기를 가진 글을 쓴다.

무등산 뒤에 가면 옛날 송강정철 문학의 산실이라고 하는 식영정(息影亭)이 있다. 그 식영정에 대한 여연스님의 수필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오게 했다.

나는 단순하면서 담박하기도 한 성품의 여연스님을 좋아하고 여연스님의 글을 좋아한다. 우리는 마땅히 좋아할 것이 있으면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칭찬할 것이 있으면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불교와 불교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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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1.05 16:50

    첫댓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반석에 올려놓으신 여연스님은, 불교계는 물론,우리 나라나라의 보배같은 분이죠_()()()_

  • 08.01.05 19:04

    좋은글잘보았읍니다, 여연스님 명전님 우리나라 차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시며 정성을다하시는 모습무한이 감사합니다.

  • 08.01.06 09:18

    차문화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전통문화의 발전에도 많은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시는 시대를 앞서가시는 여연스님,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_()()()_

  • 08.01.07 10:31

    _()()()_

  • 08.01.07 15:01

    _()()()_

  • 08.01.22 20:52

    . . . _()_

  • 08.03.04 22:28

    _()_

  • 08.03.10 16:39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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