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입니다. 매일 TV에서 ‘오늘 비가 많이 오는 지역과 집중 호우가 내릴 곳을 예보하면서 우산 챙겨 외출하라고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구름이 두껍지 않은데 뭘’하고 그냥 나왔다가 장대비를 만났습니다. 맞으면 아플 뿐 아니라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것 같아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덕분에 비 구경을 실컷 해서 좋았습니다. 한동안 가물었으니 비가 오는 것이 좋지만, 큰 피해 없이 이 장마철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이야기 식구들 모두 이 시기를 건강하게 넘기시기를 빕니다.
장마철이 되기 전, 오래된 지우들의 모임이 양양에서 있었습니다.
1981년 11월, 12월에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유학 가서 함께 공부하고 살며 일상을 나누었던 세집 친구들이 벼르고 별러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때 처음 비행기 타며 데리고 갔던 아이들이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고,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저마다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이제는 모두 은퇴자로 살고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양양에서 전원 생활하는 친구 집에서 얼굴을 마주 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집을 돌아보고 마당의 식물들도 보고, 자녀들의 안부도 나누고... 이야기가 끊어질 새 없이 이어집니다. 밤이 깊어가니 우리의 추억들이 어느새 4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유학 초기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가 함께 했던 예배모임. 우리가 살던 크리스토포러스 기숙사 옆, 독일교회 예배당을 빌려 유학생들이 예배모임을 가졌었습니다. 정해진 목회자 없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돌아가며 말씀을 전하고 친교를 나누는 장이었지요. 그곳에서 의사로 일하시는 정선생님 가족이 유일한 현지생활인(교포)이고, 우리는 모두 뜨내기들로 공부하러 왔다 가는 이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어 모였었지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우리를 위해 의사 선생님 따님이 자발적인 주일학교 선생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었고, 여기서 발전하여 괴팅겐 한글학교가 생겨났고 오래 계속되었지요. 우리 세 집은 아이들도 있고 신앙도 같아서 가장 잘 어울렸던 멤버들로 기억을 합니다. 전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들, 처음으로 괴팅겐이라는 이국의 땅에서 만났던 우리가, 그 모임을 따뜻하고 즐겁고 신나고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걱정하는 쪽으로 넘어 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 참석교인들이 많이 줄어들어 걱정이라는 이야기 끝에 근본적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를 믿는 이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회에 가지 않고도 영상예배 유튜브 등을 통해 신앙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신앙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된 것일까요? 우리에게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왜 나는 여전히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생각해 낸 것은 세상이 바뀌었다, 변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위 과학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온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괴팅겐 예배모임의 어른이셨던 의사선생님과 사모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으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하나님”을 부름으로 기도를 시작하신 것이지요.
‘사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이 하나님을 믿고, 다 각기 다른 감사와 소원과 간구를 가지고 동시에 기도하고 있는데 그걸 하나님이 어떻게 다 들어 주실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시지’ 하는 단순한 답으로 마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핸드폰을 들고 세계의 많은 이들이 동시에 자기가 찾는 곳을 입력합니다. 그러면 그 길을 내비게이션이 즉시 묻는 이에게 알려줍니다. 즉문즉답이지요. 이 지구상의 어디나 길을 알려 줍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백번 물으면 백번 다 알려줍니다. 길을 알려달라고 기도하고 기다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알려 줍니다. 뭔가에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찾고, 구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진들이 가졌던 지식도 지혜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들을 AI가 다 찾아서 알려줍니다. 심지어 모든 사물에서 내가 모르는 것을 그저 사진만 찍어도 무엇인지 대답해 줍니다. 고민하고, 묻고, 알려고 노력하고, 생각하고 하는 일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사람들의 삶에 종교가 필요치 않다고 하는 쪽으로 향했다고 보입니다. “참 좋은 세상이야” 하고 감탄하고 끝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명들이 죽어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그 좋아진 세상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생명을 값없이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생명들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조차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까짓 것, 죽어 버리면 그만이야’ 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선조들과 우리들은 하나님께,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어려움을 넘기고 살아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질 때를 소망하며 어떻게 하든지 살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자신들 앞에 놓인 문제들 앞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내어 놓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스스로 노력도 하며 자신들의 삶을 이어 갔습니다. 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길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헤쳐 나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에 부르짖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그에게 우리의 음성이 닿을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인터넷에 물어 봅니다. 모든 길은 인터넷으로 통합니다. 자신을 나타내는 것도 인터넷, 배우는 것도 인터넷, 질문도 인터넷에 합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세대들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인터넷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게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 인간이란 어떤 존재? 생명, 우정, 사랑, 인생, 영생, 기쁨, 슬픔, 아픔, 고통, ... 인터넷은 이런 단어들을 정의해 줄 수는 있으나, 그것들이 내 삶에서 진행될 때, 정작 부딪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 만나는 우리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실천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인 내가 어떻게 사는가를 보시고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제 젊은 시절 어머니가 제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주 약한 존재로 태어났다. 그리고 자라나서, 한 평생 살아나가는데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뭔가 큰 힘에 의지하고 살아간다. 너는 너 좋아하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거라.”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신 어머니가 내게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한평생의 삶이 내 앞의 길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에만 의지하는 이들이 다다르는 길은 어디일까요? 종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신)이 꼭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당신 앞으로 불러 주옵소서. 오늘 우리의 기도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