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롤로그 11
「그대들은 이렇게 말해본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는가?
아, 그대들이 이렇게 우는 소리를 내가 들어봤더라면!
그것은 그대들의 죄가 아니라 하늘에 대고 우는 그대들의 자제심이 죄이며, 죄를 지을 때 하늘에 대고 우는 그대들의 야비함이 죄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아무리 영리하고 교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미덕이 거짓된 것이고,
자신의 종교라는 것이 형식에 불과하고,
자신의 윤리는 사회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며,
자신의 정직함이 위선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전체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체성이 그의 기쁨이자 그의 보람이다.
그가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문제점이 아니라 그대의 자제심이다.
그대는 죄를 지으면서도 마지못해 한다.
그대는 죄를 지어도 자기 전부를 던지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진실하지 못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중용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공자는 사회성과 정치력이 뛰어난 사상가여서 절대로 극단으로 달리지 말고 항상 중앙에 머무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앙에 머므르면 그대는 어떤 것도 전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차라투스트라의 통찰력은 이렇다.
그대가 죄를 짓더라도 전체적으로 살면 그 죄악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죄악을 평생 삶에 매달고 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그대의 자제심이다.》
《전체적인 삶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대가 갖고 있는 위선이다.》
그러한 전체적인 경험은 너무나 대단한 것이어서 그대는 그것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우유부단한다면, 미완성의 경험은 그대에게 그것을 완성하라고 부추길 것이다.
모든 미완의 경험은 완성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금주령이 내려졌지만, 모든 관료들, 고위직의 공무원들, 소위 정치지도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술을 마셨다.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으며, 금주령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은 막지 못했다.
이것이 야비함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의 국민을 착취한다.
그는 엄청나게 좋은 일들을 해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들은 절대로 지켜지는 법이 없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최대한 많은 부를 자신의 금고에 쌓아간다.
정치인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새로운 자격을 얻는 특혜를 누린다.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은 구속되고,
집은 압류되고,
아주 작은 꼬투리로 힘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의 비열함은 끝이 없다.
비열함이 진정한 죄악이다.
사람은 모든 비열함으로부터 깨끗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초월이 될 것이다.
「자신의 혀로 그대를 핥는 번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대를 정화시킬 광기는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추한 인간을 초월하려면 그는 마지막까지 노력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부를 정도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고타마 붓다, 예수 그리스도, 소크라테스를 모두 미쳤다고 했다.
군중의 광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 그 광기를 뛰어넘는 사람은 군중에 의해 미친 사람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광기는 정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에 대해 가르친다.
그가 바로 이 번개이자, 이 광기이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길게 놓인 밧줄, 심연을 가로지르는 밧줄이다.
그것을 건너는 것은 위험하고,
그 위를 움직이는 것도 위험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덜덜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목적지가 아니라 다리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아래로 내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저 너머로 건너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됨being이 아니라 되어감becoming이다.
개는 개로 태어나서 개로 죽는다.
인간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고타마 붓다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神이 되어 죽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에 썩은 것을 모두 불태우는 번개가 되어야 하고, 인간이 성장 없이 제자리에 머무르도록 만드는 모든 위선, 매너리즘, 가면을 초월하려면 스스로 미쳐야 한다.
인간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점이 바로 그의 아름다움이다.》
인간은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다.
그것이 인간이 사랑스러운 점이다.
인간은 동물에서 초인으로 건너가야 한다.
그는 초인으로써 자신이 있던 높은 정상에서 용기를 내어 내려가야 하고,
뒤에 남겨져 있던 사람들,
정체되어 있던 사람들,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메시지와 환희와 춤을 선사해야 한다.
「나는 자신의 삶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 이외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바로 저 너머로 건너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위대한 공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깨달음의 경지, 깨우침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그곳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므로 속세로 돌아가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속세에 남아있다.
그들의 목마름은 잠들어 있고, 그들은 자신의 굶주림을 알지 못한다.
그대는 그들을 흔들어 깨우고,
그들에게 도전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떻게 저 너머의 세상으로 건너가는지, 어떻게 동물에서 초인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위대한 숭배자이며, 저 너머 피안을 염원하는 화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이유들 때문에 별들 너머를 추구하지 않다가 희생자가 되지만, 언젠가 속세가 초인의 것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속세에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저 너머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기를 염원하지 않고 의식의 최고봉에 오르려고 열망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모든 종교들은 그대가 자신을 희생하야 신의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자신을 속세에 희생하면 어느 날 속세는 초인의 것이 되리라."》
다가오는 아침의 선구자가 되어라.
초인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라.
「나는 언젠가 초인이 등장할 거라는 믿음을 위해서 살고, 그런 믿음을 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믿음으로 자신의 몰락을 바란다.
나는 자신의 미덕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미덕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의지이며, 염원하는 화살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미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
하나의 미덕은 두 개의 미덕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그것은 운명이 서로 매듭을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는 오직 하나의 미덕을 품고 있다.
그것은 초월에 대한 염원, 저 너머 피안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다."」
초인을 염원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 자신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 인간은 사라져서 초인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한곳을 향해 나아가는 화살이 되어야 한다.
그제야 그대는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위험한 심연을 건너갈 수 있다.
수많은 미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유일한 미덕은 인간으로 머물지 않고 인간을 극복하여 신神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끝.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1
오쇼 강의/박형진 옮김. 젠토피아 출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