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기업이 성공한다.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성공한 기업을 혁신적 기업이라고 착각하고있는것이 아닐까? 혁신은 무엇일까.
또한, 카피캣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여러분 중 그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카피캣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First Mover Advantage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Second Mover Advantage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구글이나 삼성은 Second Mover Advantage를 가지고 성공했다. 특히 IT업계에서는 Second Mover 가 First Mover 보다 오히려 Cost를 줄일 수 있다. 하루가 급변하고 전파속도가 빠른 SW업계에서는 First Mover Advantage는 상당히 난감한 개념이다.
제대로된 제품이라면, 이 세상에 First Mover Advantage 가 없는 제품은 없다. 모든 제품은 각각의 시장을 구축하며, 모든 제품은 그 영역에서의 최초의 제품이다. 그러나 아닌 경우도 있다. 제대로된 제품이 아닌경우다. 한 때의 소셜커머스, 그다음의 큐레이션, 리워드앱, 그리고 요즘의 섭스크립션까지 – 후발주자들의 90%는 그저 부나방일 뿐이다. 이들이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닌 이유는 시장과 소비자를 보고 제품을 만들지 않고, First Mover 를 보고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면 없던 Advantage가 새로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즉, first mover advantage 가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second 제품군이 제대로 못만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나? 그렇지 않다. 그럼 왜 우리는 혁신을 그토록 외치면서도 이렇게 카피캣만 만들 고 있는 것일까.
수년간 스타트업계의 사람들의 관찰하면서 필자가 생각해낸 답은 ‘한국인들은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대답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해 필자는 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관련 공무원도, VC도, 그리고 사업가까지 – 혁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극소수였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인은 혁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혁신을 좋아하는 순간, 혁신을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에서 혁신기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라고 판단된다.
먼저 혁신기업들을 살펴보자. 일단 구글, 애플정도는 당연 포함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엔 델이 혁신의 대명사였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JIT의 토요타, 6시그마의 모토롤라, 그 앞에 HP를 보면 한가지 공통 분모가 추출된다. 이들 기업 그 어떤 기업도, 혁신기업을 따라하지 않았다. 즉, 혁신은 혁신기업을 따라하지 않을 때에 시작된다. 이것이 혁신의 첫번째 조건이다. 닌텐도를 보고 닌텐도처럼 혁신을 하라니, 그것은 그저 닌텐도의 카피캣일뿐 혁신이 될 수 없다. 정말 중요한 닌텐도의 철학을 배울 수는 없고, 스펙을 나열한 하드웨어만 베끼자니, 닌텐도와 같은 제품이라도 결국 같은 제품이 될 수 없다. 그동안 닌텐도는 또 뭔가를 내놓을 테고, 그러면 이제 시장만 확대해서 닌텐도에게 바치게 된다. 이게 바로 없던 Advantage를 알아서 갖다바치는, First Mover Advantage 의 진실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관리 경영’라는 개념을 창조한 삼성은 어찌보면 혁신 기업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스타트업계에서 혁신이 나오기 힘든 첫번째 이유가 우리가 혁신을 원하기때문이라면, 두번째 이유는 사뭇 다르다. 한국 스타트업이 비지니스를 하는 목적은 돈과 사회적 성공이기 때문이다. 추측컨데, 우리는 혁신적 기업과 성공한 기업을 상당히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이 혁신적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대다수가 혁신적 기업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패한 기업의 상당수도 혁신적 기업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투수가 한복판에 스트라이크를 꽂았을때, 타자가 휘두르지 않으면 과감한 것이고, 홈런으로 직결되면 무모한 행위가 된다. 이처럼 기업이 혁신적 행위를 하였을 때 시장에서 이를 받아들여 경제적 부를 일구어내면 월스트릿페이퍼에 혁신 성공사례로 지목되지만,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용히 묻혀버린다. 즉, 글로벌하게 성공한 기업은 혁신기업일 수 밖에없으므로 혁신이 글로벌한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혁신을 기업내부에서 찾을 필요가 있는가. 재무제표상에 다 드러날 것을.
그러나 필자는 혁신을 추종하는 사람은 이런 뷰를 버려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물론 모든 사업가가 혁신을 추종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혁신을 하면 거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아지지만, 그 반대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날릴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돈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혁신을 할 수 없고, 한국 기업들의 상당수는 돈을 목적으로 하기때문에 혁신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필자의 추정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혁신적이었냐는 질문에 필자의 대답은 YES이다. 비록 실패한 서비스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상당히 색다른 서비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이는 완연한 실패이다. 실패한 또다른 혁신으로는 이리듐 프로젝트를 들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은 이해할 수도 없는 경영결정이라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대표적 프로젝트긴 하지만, 애시당초 시작은 과감했다 (그리고 결과는 무모했다). 반대로, 성공한 혁신으로는 페이스북이나 최근 드롭박스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들 제품에 대해선 추가언급을 할 필요도 없다.
이들 혁신제품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다음의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다.
1) 마켓 사이즈가 매우 불분명하다. 누가 제품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구글의 Y-Combinator 지원서에는 ‘Market’이라는 단어가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지니스라는 단어는 단 한차례 등장할 뿐이다. 그것도 ‘What do you understand about your business that other companies in it just don’t get?’ 이라는 질문에서 (물론 어떻게 돈을 벌것인지는 질문한다).
마켓이 불분명할 수록 혁신의 강도는 세진다. 왜일까. 마켓사이즈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소비자군이 확고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럼 이 소비자군은 누가 설정했을까. First mover 가 설정했을 것이다. 즉, 마켓사이즈가 존재하는 제품은 애시당초 혁신제품이 아니고, 글로벌하게 성공하기도 무척 힘들다.
예를들어, 철강산업은 마켓사이즈가 정해져있으며, 수요와 공급이 예측가능하다. 이때에 새로운 제품이란 말은 새로운 공법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IT에서의 혁신은 새로운 공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의미한다. 때문에 마켓사이즈를 추출해낼 수 있다면 그 아이템으로 대박을 내기란 어려운 일이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말이 마켓사이즈가 작다, 란 말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마켓사이즈의 변동성이 크다’ 라거나, ‘잠재적 확장성이 크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마켓사이즈가 중요하긴 해도, 마켓사이즈는 제품의 후행팩터이다. 제품이 있고 마켓사이즈가 존재하지, 마켓사이즈가 있고 제품이 존재하진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해도, 마켓의 확장성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페이스북의 사용자 수가 많아봤자 전세계 인구를 따라잡을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혁신 제품은 마켓사이즈보다는 마켓의 변동성을 봐야되지 않을까. 물론 이 이론은 필자의 추정이다.
2) Willingness to pay 가 거의 0달러이다. 또는 오히려 산업계의 마켓사이즈를 줄여버린다.
적정지불가격이 거의 0달러이다. 또는 매우 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제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로 인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제품은 아주 좋아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크게 열 것입니다”. 이 제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아마 북한에서 제 3국에 무기를 팔 때 쓸 수 있는 말일 수는 있어도.
이미 기존제품과 경쟁한다면, 아예 델처럼 마켓사이즈를 줄여버린다. 사업가는 애시당초 비싸게 팔아서 이윤을 대량으로 남겨먹자고 하는 생각이 없다. 결국 마켓에서 기업간 카니발라이제이션이 일어나면서 한 기업이 승리한다. 승리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공에 관한 DNA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 기업은 이젠 혁신의 강도를 더 높여서 자체적인 카니발라이제이션에 들어간다. (애널리스트는 아마 거품을 물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이 때에도 마켓사이즈는 의미가 없다. 기존 마켓을 축소하고자하는게 이들 기업의 목표거나, 일단 사람들이 자신의 제품을 써서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기업의 목표다. 이는 3)항으로 이어진다.
3) 경영자는 그냥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짐콜린스는 성공한 기업들은 애시당초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해내었다. 경영자의 대다수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신내림’ – 심지어 그의 연구에서이는 말 그대로 기독교에서의 영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했다 – 를 받은 사람들이다. “얼마를 벌겠다”는 목적이 없으니 회사가 성공한 후에도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페이스북을 보자. 주커버그는 ‘해커의 길’이라고 표현했는데, 결국 내포된 의미는 월가의 꼰대들이 뭐라고 하든지 난 내가 만들고싶은거 만들겠다는 정도이지 않을까. 혁신기업의 혁신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되는지는 상관없이, 경영자는 그저 자기 일을 계속 했을 뿐이다. 이는 티켓몬스터를 보고 일확천금을 바라고 벤쳐계에 뛰어든 사업가들이나 VC가 염두해두면 좋지 않을까한다.
4) KPI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몇가지 혁신기업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고민을 해봤을 때, 이 사실을 보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어떤 제품에도 KPI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 제품은 애시당초 비교를 거부하는 제품들이다. (구글 글래스나 아이워치의 KPI를 당신은 만들 수 있는가?)
그러나 한국 정부과제들은 KPI에서 시작해서 KPI로 끝난다. KPI가 없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감사원에 걸리면 담당 공무원은 난처해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할 수 없다, 라고 난 추정한다.
4)는 그렇다치더라도, 1,2,3 번항은 혁신 기업이 주가의 방향성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기업의 가치나 자기 월급통장에 애시당초 초연하고, 그러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엔 이와 같은 기업이 탄생하기 힘들까. 왜 투자가들은 ‘그래서 이거랑 똑같은거 만드는 경쟁사가 얼마 벌고 있니?’ 에 집착할까. 왜 한국에서는, 혁신 제품이라면 결코 답하지 못하는 – 마켓 사이즈나, 경쟁사나 경쟁제품을 꼭 투자에 관한 심의에 포함시킬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IT문화는 아직까지 Follower 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일단 한국에서 IT로 돈을 번 기업의 특성들은 일반 소비재 제품들과 거의 사업구조가 비슷하다. 즉 시장이 일정만큼 있고, 이것을 누가 먹느냐의 싸움을 한다. 00년대 후반부터의 게임업계가 대표적이다 (90년대나 00년대 초반의 NC나 넥슨은 어찌보면 마켓을 창출한 혁신기업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유져는 새로 나온 게임이 재미없다고 독서실에 가서 수학문제를 풀진 않는다. 다른 게임을 할 뿐이다. SI업계도 마찬가지이다. 일감은 상부에서 내려오고, 이 일을 내가 하느냐 경쟁업체가 하느냐의 싸움이다. 90년대에서 00년대 다음과 네이버의 경쟁은 어찌보면 혁신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후의 포탈 게임 역시 통신산업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터넷 인구가 정해져있고, 이 포탈에서 저 포탈로 옮겨갈 뿐이다. 보안업계도 유사하다. 마켓사이즈의 변동성이 작다. 때문에 시장을 키우기보단 상대방의 시장을 뺐아오는 게임을 해야되고, 그렇기때문에 영업이나 정치가 중요해질 것이다.
비지니스를 하던 사람이 성공을 하면, 후배 사업가에게도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게된다. 마켓을 정확히 측정하라,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라,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아라, 인맥이 사업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 필자도 수도 없이 들었던 이런 사업 노하우의 상당수는 애널리스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소비재산업과 직결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의 몇몇 인큐베이팅업체들의 어플라이 폼을 보았을때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들 폼에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긴 해도, ‘얼마나 돈을 벌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중요하게 다루진 않는다 (물론 Y컴비네이터에도 이런 질문이 있기는 해도, 수많은 질문 들 중 한개일 뿐이다). 당신이 2000년에 google.stanford.edu 의 URL을 알고 있었다면, 이 회사의 2012년의 매출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사실 따지고보면 얼마나 돈을 벌 것인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의 투자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혁신은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사항이다. 혁신을 하면 크게 돈을 벌 수 있지만, 그것은 혁신적 행위를 시장에서 받아들였을때 뿐이다. 투자가의 목적은 우국충정에서 한국에서 나온 제품을 만국에 휘날리는 것이 아니다. VC의 목적은 들어온 펀드에 일정 수익률을 내서 돌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혁신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칭찬을 해야 마땅하다. 각종 연기금과 PE에서 들어온 돈의 목표는 수익률임을 잊지 말아야하며, 실패한 혁신만큼 돈의 주인에게 실망스러운 것은 없다. 더 나아가, 만약 투자가의 목적이 수익률이 아니라 혁신이라면 그 투자가는 배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 휘하의 공무원에게도, 연기금 휘하의 VC에게도 혁신적 기업을 피하는 것이 어찌보면 그들 본연의 임무이다.
그렇다면 혁신을 하기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몇 가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 물론 이 것들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가장 먼저, 혁신을 하기 위해선, KPI를 버리고, 남들의 말을 듣지 않고, 혁신기업을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따지고보면 정부가 개입되었을 때에 혁신기업이 탄생할 수 없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감사원이 버티고 있는데 KPI도 불분명한 기업에 투자할 미친 공무원이 어디있으랴.
둘째로, 마켓을 버리고 통찰에 기반하여 움직여야한다. 소비자의 표현된 니즈라면 뻔하다. 그 니즈를 나만 알고 있을리도 없다. 혁신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를 만들어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필자가 재직하던 한 대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것이었다. 경쟁사인 S전자가 이런 컨셉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나?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도 빨리 만들어야한다. 만약 제품을 만들고 있지 않다면 왜 제품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애시당초 이런 질문들은 자신을 카피캣으로 전락시키는 질문들이다.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자체 혁신 동력을 떨어뜨리게된다.
셋째, PE나 연기금에서 스타트업계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개인들이 돈을 움직이면 좋지 않을까한다. 애시당초 수익률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믿는 펀드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현재 벤쳐기업도 자신의 목표가 혁신인지, 상업적 성공인지를 깨닫고, 사업에 관한 조언도 그에 걸맞는 사람에게서 들으면 좋을 것이다. 상업적 성공이나 SI업계에서의 성공이라면 성공한 야채가게 사장님이나 유통업으로 성공한 사람의 일대기가 도움이 될 것이고, 혁신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면 미친짓으로 성공한 사람의 DNA를 읽어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혁신행위 그 자체에 매달리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를 카피캣으로 전락시킨다). 기존 소비재산업과 유사한 패턴의 IT에서 성공해내기를 원한다면 그런 VC나 사업가에게서 조언을 들어야 할 것이다. 매번 ‘경쟁사 대비 150%의 효율성 달성’을 외치는 분과 ‘세계 최초의 제품 개발’을 성공하신 분의 전략적 접근방식은 상당히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엔 이와 같은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구글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아니면 결코 성공하지 않을 무모한 시도들을 후원하는’ 그런 정신나간 사람들이 조금씩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듯하다. 셀트리온 유석환대표처럼 ‘나는 70%가 가라고 하는 길이면 절대 안간다’ 라는 언급은 그래서 새겨들을만 하다. 주변에 있는 사람의 대다수가 ‘이거 된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길은 뻔한 것이다. 수익률이 정해진 게임에서 서로가 서로를 먹는 싸움을 한다. 소셜커머스와 큐레이션이 그랬고, 리워드앱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 혁신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길에 놓여 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길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것이 혁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