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에 의해 거부되다
1942년 11월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롬멜은 무책임한 현지사수 명령만 남발하는 히틀러의 조치에 실망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타 독일 장군들과 달리 총통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정면으로 항거하여 부대를 후퇴시켰다. 사실 지금까지 북아프리카에서 보여준 독단적인 롬멜의 행동을 고려한다면 결코 이상할 것도 없는 결정이었지만 당연히 히틀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서 이듬해 1월 트리폴리 함락 직전에 롬멜이 튀니지로 다시 철수하자 히틀러는 그를 인사조치하여 본국으로 소환하였다. 그런데 연속 된 후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롬멜의 군복을 벗기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다른 장군들에 대한 문책성 조치에 비하면 그야말로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는 현지사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후퇴한 장군들의 군복을 벗기고는 했는데 그는 예외였던 것이다.
1942년 11월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롬멜은 무책임한 현지사수 명령만 남발하는 히틀러의 조치에 실망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타 독일 장군들과 달리 총통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정면으로 항거하여 부대를 후퇴시켰다. 사실 지금까지 북아프리카에서 보여준 독단적인 롬멜의 행동을 고려한다면 결코 이상할 것도 없는 결정이었지만 당연히 히틀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서 이듬해 1월 트리폴리 함락 직전에 롬멜이 튀니지로 다시 철수하자 히틀러는 그를 인사조치하여 본국으로 소환하였다. 그런데 연속 된 후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롬멜의 군복을 벗기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다른 장군들에 대한 문책성 조치에 비하면 그야말로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는 현지사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후퇴한 장군들의 군복을 벗기고는 했는데 그는 예외였던 것이다.
- 엘 알라메인 전투 당시 독일군을 격파하고 전진하는 영국군 기갑부대. 이 전투에서 엄명을 어기고 롬멜은 부대를 후퇴시켰는데, 이후 히틀러와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국에 소환된 롬멜은 한직에 머물러야 했다. 그것은 패전에 대한 일종의 문책이기도 했지만 군부에서 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동부전선은 더욱 격렬하게 변해가던 중이었지만 히틀러에 의해 수많은 명장들이 해임되거나 면직되는 바람에 전선에서는 단 한 명의 장군도 아쉬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멜을 원하는 곳은 없었다.
만일 명성만큼 뛰어나다고 평가하였다면 최연소 원수인 롬멜을 군부가 그냥 내버려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고집불통인 총통과 그나마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군이라면 군부 입장에서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정작 롬멜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무소불위의 히틀러조차도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를 전선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넣지 못했을 만큼 롬멜이 군부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 1943년 동안 동부전선의 하르코프, 쿠르스크, 오렐 일대에서 제2차대전의 명운을 결정지은 건곤일척의 대전투 들이 연이어 벌어졌지만 정작 명성을 얻은 롬멜은 10개월 동안 한직을 전전해야 했다. 군부에서 특별히 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총통을 믿고 상부의 명령을 밥 먹듯이 무시하던 롬멜의 행태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던 육군최고사령부는 만일 그가 동부전선에 뛰어든다면 또다시 임의적으로 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또한 갈수록 총통의 전횡에 몸서리치는 군부에서 히틀러와 친하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군부가 총통의 총애로 벼락출세했다고 수군거림을 당하던 롬멜을 거들떠볼 리 없었다.
롬멜이 지휘관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에서 소환된 지 10개월 만인 1944년 1월 15일, 동부전선이 아닌 북부 프랑스를 담당하던 B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부터다. 그곳은 연합군의 상륙이 예상되는 곳으로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당시 독일의 주전선은 아니었다. B집단군은 후방의 해안 경계 및 상륙 저지가 임무였고, 예하부대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한 2선급 부대였다.
- B집단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롬멜이 예하 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영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으로 전향한 인도인들도 병력으로 충원했을 만큼 B집단군은 전력이 약한 2선급 부대였다.
서부전선을 총괄한 부대는 서부전선최고사령부였다. 예하에 프랑스 북부와 대서양을 관할하는 B집단군과 프랑스 남부를 관할하는 G집단군이 있었고 직할부대로 강력한 서부기갑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롬멜이 새로 사령관으로 부임한 B집단군은 노르망디를 담당하는 제7군과 파드칼레를 방어하는 제15군이 편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이런 깔끔한 전투서열과 달리 지휘체계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일사불란하던 독일군의 지휘체계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엉망이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사사건건 모든 것을 간섭하려 들던 히틀러의 광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총통의 행태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분열된 군부 스스로의 책임도 컸다. 서부전선은 공식적으로 국방군최고사령부가 파리의 서부전선최고사령부에 지시를 내렸지만 비공식적으로 군부의 헤게모니를 계속 장악하려는 육군최고사령부의 간섭도 받고 있었다.
- 롬멜은 특유의 추진력을 발판삼아 대서양 일대 방어선을 조기에 구축하였다. 흔히 ‘롬멜의 아스파라거스 선인장’이라 불린 해안가 방어물을 순시하는 롬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