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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고개라는 하늘재
△ 주흘산 삼거리 표시등
△ 탄항산
월항삼봉( 851m)은 월악산국립공원 남단에 위치하며 가까이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든 미륵사지와 고대 삼국시대부터 호서 영남을 잇는 하늘재를 감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산세를 가지고 있는 산이다.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다하여 삼봉이라 부르나 예전에 산삼이 많이 난다하여 삼봉(蔘峰)이라 부르기도 하며,
또한 탄항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 운다.
△ 서쪽에는 달이 떠 있지만 동쪽에서는 태양이 떠 오른다.
△ 어사 박문수가 조령 관문 봉우리에 마패를 걸어 놓고 쉬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마패봉
△ 마역봉에서 바라본 오늘의 마루금과 뒤쪽에 제일 높은 조령산이 우뚝 쏫아 있다.
△ 천오백년 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산성
△ 조령 제3관문
임진왜란당시 신립장군의 오판과 탄금대 몰살이라는 슬픈전설을 간직한 조령3관문
1583년(선조16) 온성부사로 있을때 이탕개(尼湯介)가 거느린 야인(野人)들이 침입하여 훈융진(訓戎鎭)을 공격, 첨사 신상절(申尙節)이 위급하게 되자
유원첨사(柔遠僉使) 이박(李璞) 등과 합세하여 적병 50여 명을 목베고 이어 적군을 추격, 두만강을 건너가서 그들의 소굴을 소탕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그를 삼도순변사로 임명하고 보검을 하사 하였다. 이에 그는 특청(特請 : 특별히 요구사항을 청함.)하여 유성룡(柳成龍)의
막하에 들어가 부장 김여물(金汝?) 및 80명의 군관과 시정백도(市井白徒 : 일반 시민으로 군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 수백 명을 모병하여 충주로 떠났다.
이어 부장 몇 사람을 거느리고 조령(鳥嶺)으로 내려가 지형을 살폈다. 이때 군관 60여 명과 군졸 4,000여 명을 이끌고 남하했던 순변사 이일(李鎰)이 경상도 상주에서
왜군에게 패하여 쫓겨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죽여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일의 재주를 아껴 용서하고 오히려 선봉장으로 삼았다. 이일은 왜군의 정세가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대군이라고 보고 하였다.
이에 김여물 등이 아군의 수가 열세임을 들어 지형이 험한 조령에서 잠복, 전투를 벌일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병의 활용을 극구
주장하여 군대를 돌려 충주성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彈琴臺)에 나아가 배수진을 치고 임전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해 4월 28일 배수의 진을 친 아군을 향하여 고니시(小西行長)를 선두로 한 왜군이 대대적으로 공격해오자 중과부적으로 포위되어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결과 아군의 힘을 믿고 미처 피난을 하지 않았던 충주의 사민(士民)과 관속들이 많은 희생을 당하였다. 아군이 섬멸되자 김여물·박안민(朴安民) 등과 함께
남한강물에 투신, 순절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 주흘산 영봉과 주봉의 파노라마
△ 신선암봉과 그뒤로 조령산 △ 이름도 어려운 꾸구리 바위 갈림길
△ 신선암봉 정상에서 바라본 조령산과 ▷ 드라마 왕건 셋트장
△ 신선암봉
신선암은 조령산(1,025m) 서쪽에 있는 높이 120미터, 폭 150미터의 화강암으로 초보자를 위한 연습 슬랩과 훼이스,크랙,오버행 등 다양한 코스를 가지고 있는 암장이다.
루트 개척은 청주와 충주, 제천을 연고지로 충북 산악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난이도는 5.8급에서 5.11급까지 있고, 최근 충북대학산악연맹 회원들이 확보물
보수작업을 마쳐 보다 안전한 등반을 할 수 있다.
△ 조령산 오르는 중에 바라본 신선암봉
△ 조령산 정상에서 조망한 주흘산의 파로라마
가운데 사진 중앙에 오늘의 출발지 하늘재 (포함산의 바위가 하얗게 보임) 가 보인다
△ 조령산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는 신선봉(神仙峯:967m)·주흘산(主屹山:1,106m) 등이 있다.
조령산과 신선봉의 안부에 해당하는 조령은 문경새재,새재라고도 부른다. 남쪽과 북쪽 산록에 있는 이화령(梨花嶺:548m)·소조령을 비롯하여 유명한 고개가 많다.
특히 문경새재라는 이름은 과거부터 영남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는 주요관문이 되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곳에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재라고도 불렀으며, 이곳 박달나무로 만든 홍두깨가 전국으로 판매 되었다고 한다.
△ 조령샘
날으는 새도 힘이부쳐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넘는다는 샘
△ 이화령(梨花嶺)
조령천과 연풍천의 하곡에 배꽃이 많이 피고 꽃피는 계절이 되면 햐얀색으로 온산이 눈온듯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와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48m이며 소백산맥의 조령산과 갈미봉과의 사이에 있다. 동쪽 사면은 조령천(鳥嶺川),
서쪽 사면은 연풍천(延豊川)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그 이전에는 국도가 새재[鳥嶺]로 통하는 험난한 산로(山路)뿐이었으나, 신국도 3호선이 이화령을 통과함으로써 주변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잠,엽연초등 특용작물의
수송도로로 이용된다.충청북도의 충주권(忠州圈)과 경상북도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탈바꿈하여 옛 조령에 이어 새로운 교통요충지가 되었다.
이 고개 밑으로 이화령터널이 개통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