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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2013년 7월호
6년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을 넘지 못했다. ‘철천지원수’ 바르셀로나를 향해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자존심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복수와 명예 회복을 노리던 레알 마드리드는 가장 비싼 선수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가장 비싼 감독을 데려왔다. 그러다 다루기 까다롭기로 소문난 ‘우승 청부사’ 주제 무리뉴, ‘독이 든 성배’ 레알 마드리드의 의기투합은 3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 무리뉴와 레알 마드리드의 지난 3년을 집중 조명한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트레블 감독’
2009년 여름, ‘갈락티코’ 정책을 펼쳤던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레알 마드리드 회장직에 복귀했다. 바르셀로나가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한 직후였다. 페레스 회장의 목표는 확고했다. 바르셀로나에 빼앗긴 프리메라리가 타이틀을 되찾고 9회에서 멈춰있는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것. 무엇보다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는 레알 마드리드의 안방,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예정돼 있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카림 벤제마, 사비 알론소… 레알 마드리드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무려 2억 유로 이상을 투자해 스쿼드를 갈아엎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는 굳건했고, 코파 델 레이에선 3부리그 클럽에 패했다. 무엇보다 6년 연속 이어진 챔피언스리그 16강 징크스는 페레스 회장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레알 마드리드가 각종 대회에서 차례로 탈락하는 동안 주제 무리뉴의 인터 밀란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인터 밀란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격파했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마저 꺾고 트레블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올림피크 리옹에 패한 직후부터 무리뉴와 접촉한 페레스 회장은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를 맡았던 그 어떤 감독들보다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채 4년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외부의 적 그리그 내부의 적: Part 1
무리뉴는 앙헬 디 마리아,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매년 최고 선수만을 고집하던 기존 레알 마드리드 방침과는 다른 행보였다. 무리뉴는 “이적시장의 챔피언이 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철학대로 팀을 만들 것을 천명했다.
출발은 산뜻했다. 라 리가 초반 12경기에서 10승 2무, 무패를 달렸다. 무게중심을 수비에 둔 채 역습을 선호하는 무리뉴 방식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사라졌다. 레알 마드리드는 12경기에서 무려 33골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13라운드 엘 클라시코 캄프 누 원정에서 대참사가 벌어졌다. 바르셀로나의 압도적인 공세에 0:5라는 참혹한 스코어가 나왔다. 경기 후 무리뉴는 “처음부터 이길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앉아서 경기를 봤다. 바르셀로나는 완성된 팀인 반면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팀”이라며 애써 담담해했다. 그러나 충격은 컸다. 무리뉴는 외부의 가장 큰 적, 바르셀로나를 무찌르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문제는 바르셀로나뿐만이 아니었다. 무리뉴는 클럽 스포르팅 디렉터 호르헤 발다노의 ‘쓸데없이’ 큰 권한이 눈엣가시였다. 무리뉴는 허리 부상으로 쓰러진 곤살로 이구아인을 대체하기 위해 3번째 스트라이커 영입을 요청했지만, 발다노는 이를 거절했다. 발다노는 훈련장은 물론 탈의실과 라커룸에도 수시로 출몰했고, 원정 경기에도 선수단과 같은 비행기로 이동했다. 선수단 관리에 예민한 무리뉴가 이를 가만둘 리 없었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는 규모에 걸맞은 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No.1(페레스)과 직접 말할 수 있는데 왜 다른 이(발다노)를 거쳐야 하는가?”라며 공개적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페레스는 결국 무리뉴의 손을 들어줬다.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엠마뉘엘 아데바요르가 영입되면서 발다노의 권한이 약해졌고, 시즌 종료 후 해임됐다. 스포르팅 디렉터 임무까지 총괄하게 된 무리뉴는 한층 더 막강해진 권한으로 클럽 내부를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소기의 성과, 코파 델 레이 우승
내부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무리뉴는 순항을 거듭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또다시 마주친 올림피크 리옹을 무찔렀고 8강에서 토트넘마저 꺾고 4강에 올랐다. 코파 델 레이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세비야를 연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무리뉴와 레알 마드리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르셀로나를 꺾어야 했다.
2011년 4월 16일 라 리가 32라운드, 4월 20일 코파 델 레이 결승전, 4월 27일과 5월 3일 챔피언스리그 4강전….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는 공교롭게도 모두 바르셀로나였다. 운명처럼 마주친 전무후무한 엘 클라시코 4연전에서 받은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표는 1승 2무 1패. 시즌 초 0:5 대패와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선 1무 1패에 그쳐 탈락했지만,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바르셀로나를 1:0으로 누르고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와 UCL 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강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바르셀로나의 앞길을 어느 정도 저지한 레알 마드리드는 자신감을 얻은 채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무리뉴가 늘 강조해 오던 완성된 팀, 그의 2년 차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조직력을 끌어올려라
부임 첫 시즌 소기의 성과를 올린 무리뉴는 라 리가와 유럽 제패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프리시즌 무리뉴의 목표는 두꺼운 스쿼드 완성과 베스트 일레븐의 조직력 강화였다. 무리뉴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파비우 코엔트랑, 누리 사힌, 하밋 알틴톱, 호세 카예혼, 라파엘 바란을 영입했다. 레프트백 마르셀루의 경쟁자를 즉시 전력감으로 영입한 코엔트랑을 제외하곤 백업과 미래를 위한 영입이었다.
2011/12 시즌 개막을 앞두고 수페르코파에서 또다시 바르셀로나와 격돌한 레알 마드리드는 전 시즌과 판이해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 시즌 무리뉴는 센터백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 시키는 등 변칙 전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수페르코파 1차전 레알 마드리드의 선발 라인업은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에 0:5 대패했을 당시의 멤버와 동일했다. 1년간 무리뉴의 지도를 받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달라져 있었다. 2:2로 비겼지만 슈팅수는 20:4로 레알 마드리드가 월등히 앞섰고, 점유율도 48:52를 기록하며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레알 마드리드는 캄프 누에서 열린 2차전에서 2:3으로 석패해 트로피를 내줬지만 경기 내용은 대등한 양상이었다.
무리뉴는 촘촘한 압박과 압도적인 점유로 무장한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릴 비책으로 역습의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선택했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필드 어디에서든 공격수 쪽으로 빠르게 전달되도록 훈련시켰다. 점차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최고의 역습 능력을 갖춘 클럽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새 역사를 쓰다
수페르코파에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개막전과 2라운드에서 레알 사라고사와 헤타페를 각각 6:0, 4:2로 대파했다. 레반테에 패하고 라싱 산탄데르와 비기며 잠시 주춤했지만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한 레알 마드리드는 9월 24일 라요 바예카노전 승리를 시작으로 공식경기 15연승을 달렸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타이기록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라 리가 10연승을 비롯해,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전 전승으로 돌파하는 무서운 행보를 이어갔다. 최다 연승 신기록을 앞도고 만난 상대는 ‘이번에도’ 바르셀로나였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벤제마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강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점유율을 차츰 높여 미드필드를 장악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뒤쫓아 다니기 바빴다. 바르셀로나는 차례로 3골을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비수를 꽂았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낙담하지 않았다. 엘 클라시코 패배를 뒤로 한 채 다시 내달린 레알 마드리드는 라 리가 35라운드 캄프 누에서 기어이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케디라와 호날두의 연속골로 2:1 승리를 거머쥔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의 추격을 뿌리치고 4년 만에 라 리가 정상에 복귀했다.
단순한 우승이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라 리가의 새 역사를 썼다. 32승 4무 2패, 승점 100점 기록은 유럽 상위 6개리그에서 어떤 팀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었다. 32승은 라 리가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고, 121득점 역시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라 리가에서만 46골을 터트린 호날두는 단일 시즌 전구단을 상대로 득점한 최초의 선수가 됐고, 이구아인과 벤제마는 번갈아 경기에 나서면서도 각각 22골과 21골을 터트렸다. 한 팀에서 시즌 20골 이상 득점자가 3명이 배출된 것 역시 라 리가 역사상 최초였다.
3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치한 최초의 감독이 된 무리뉴는 “중요한 것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이나 선수로 뛰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다만 바르셀로나가 지배하고 있는 사이클을 끊어 내는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며 소감을 밝혔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승부차기 끝에 주저앉았다. 코파 델 레이 8강에서는 바르셀로나에 합계 1무 1패로 탈락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결과로 일궈낸 라 리가 우승은 두 대회에서의 ‘아까운’ 실패를 상쇄했다. 시즌 종료 후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2년 연장 계약에 서명했다. 2016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게 된 무리뉴는 다가오는 2012/13 시즌 모든 대회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외부의 적 그리고 내부의 적: Part 2
2012/13 시즌 개막 전, 레알 마드리드의 전망은 밝아 보였다. 루카 모드리치의 합류로 오히려 더 강해졌단 평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개막에 앞서 벌어진 수페르코파에서 또다시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트로피를 품으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라운드 헤타페 원정에서 1:2로 패했다. 3라운드 그라나다전에서 3:0 완승을 거뒀지만 호날두는 골셀러브레이션을 하지 않은 채 “슬프다”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어 벌어진 4라운드 세비야전에서 또다시 0:1로 패했다.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불화설, 재계약 문제, UEFA 최우수 선수상 수상 실패 등 호날두에 관한 각종 추측성 헤드라인이 지면을 장식했다. 위기는 계속됐다. 호날두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좌측 공격을 지원하는 레프트백 마르셀루가 부상으로 3개월 아웃 판정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13, 17라운드에서 각각 레알 베티스와 말라가에 패하며 승점을 잃어갔다. 이어 센터백 페페가 발목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다.
무리뉴는 17라운드 말라가전에서 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케르 카시야스를 이유 없이 벤치에 앉혀 구설수에 올랐다. 무리뉴는 “안토니오 아단의 컨디션이 더 좋기 때문이다. 전술적인 이유일뿐이다.”라며 카시야스와의 불화설을 일축했지만 2:3으로 패하자 언론과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무리뉴는 휴식기 후 재개된 후반기 첫 경기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도 카시야스 대신 아단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이어진 2경기에서는 카시야스를 기용하는 등 알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둘의 불화설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카시야스가 왼속목 골절로 3개월간 전열에서 이탈하게 됐다. 대표적인 마드리드 언론 <마르카>는 무리뉴와 선수단 사이에 불화설을 연일 대서특필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거세게 흔들었다. 스페인 언론의 행태에 진절머리를 느낀 무리뉴의 잉글랜드 복귀설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선수 바르셀로나의 승점차는 16점으로 벌어졌다. 레알 마드리드는 심지어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도 밀린 채 3위 자리를 위태롭게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의 코파 델 레이 4강전 상대는 바르셀로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결정됐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위기를 정면 돌파하다
무리뉴는 세비야로부터 유스 출신 골키퍼 디에고 로페스를 긴급 영입해 카시야스의 공백을 메웠다. 레알 마드리드 앞에는 ‘죽음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비야(홈)-맨체스터 유나이티드(홈)-라요 바예카노(홈)-데포르티보(원정)-바르셀로나(원정)-바르셀로나(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원정)로 이어지는 7연전은 사실상 무리뉴의 거취와 올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대 고비처였다. 만만한 상대라고는 라요와의 홈경기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데포르티보의 홈구장 리아소르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단 1승 만을 거두는(1승 6무 12패)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신들린 듯이 상대를 연파해 나갔다. 세비야를 4:1로 격파했고 리아소르 원정에서 데포르티보를 2:1로 꺾으며 징크스를 날려버렸다. 이어 바르셀로나는 연파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마저 꺾어 버리며 죽음의 7연전을 6승 1무, 무패로 돌파했다. 특히 막판 3경기, 바르셀로나와의 2연전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을 모두 승리한 것은 ‘경악’에 가까웠다.
무리뉴는 풀전력으로 나선 바르셀로나를 2차례 모두 완벽하게 제압했다. 2년 3개월 동안 바르셀로나와 무려 17차례나 맞부딪히며 내공을 쌓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어느덧 투사가 되어 있었다. 승리의 전리품은 컸다. 코파 델 레이에서는 결승에 올랐고,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라 리가에서는 바르셀로나와 승점차를 13점차로 줄였고, 2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2점차로 따라붙었다. 대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내 실패한 라 데시마 (La Decima)
탄력 받은 레알 마드리드는 UCL 8강에서 격돌한 갈라타사라이를 합계 5:3으로 누르고 3시즌 연속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4강전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격돌해 1무 1패에 그쳤던 도르트문트, 라 리가 우승이 어려워지면서 챔피언스리그에 사활을 건 레알 마드리드는 비장한 각오로 도르트문트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도르트문트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홀로 4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을 발판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4:1로 대파했다. ‘역압박’으로 무장한 도르트문트는 중원 싸움에서 완승을 거두며 레알 마드리드를 압살했다. 3:0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던 4강 2차전,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 반전을 일어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 38분과 44분 벤제마와 라모스의 연속골로 기적에 근접했지만 끝내 추가 득점에 실패하고 말았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가 3년 연속 결승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이었다.
유일한 희망이 무너지자 참고 참았던 불평불만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로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던 카시야스 옹호파를 필두로 언론과 팬들이 또다시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무리뉴의 인계심에도 한계가 왔다. 무리뉴는 챔피언스리그 탈락 후 첫 경기였던 레알 바야돌리드전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오기 전 레알 마드리드는 20여 년 동안 코파 델 레이 우승에 실패했다. (전임 감독들 이름을 나열하며) 지난 21년간 18명의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에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의 UCL 4강 진출은 5번뿐이었다. 그리고 ‘나쁜 놈’ 무리뉴는 3년간 3번이었다.”라며 비아냥거렸다. 카시야스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독설을 날렸다. 부임 기간 중 가장 큰 실수를 묻는 질문에 무리뉴는 “디에고 로페스를 진작 영입하지 않은 것”이라 답해 기자회견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혼돈에 빠진 레알 마드리드는 5월 17일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1:2로 역전패했다. 마지막 남은 타이틀마저 사라지자 무리뉴와 레알 마드리드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결별 수순을 밟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꿈꾸던, 레알 마드리드가 무리뉴와 손잡은 이유였던 유럽 챔피언 10회 달성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채로 말이다.
무리뉴가 3년 동안 남긴 것
시즌을 빈손으로 마친 무리뉴는 첼시 복귀 확정 후에도 “내 경력 중 가장 실패한 시즌이었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리뉴의 3년을 ‘실패’라 단정 짓기엔 무리가 따른다. 무리뉴는 바르셀로나가 지배하던 스페인과 유럽 축구에 도전했고,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부임 첫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시작으로 2011/12 시즌 라 리가 우승, 수페르코파 우승은 모두 바르셀로나를 꺾고 얻은 트로피다. 특히 라 리가 우승 당시 압도적인 전력으로 일궈낸 각종 기록들은 역사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몇 년 동안 형편없이 뒤처져 있던 엘 클라시코 상대 전적도 2012/13 시즌 3승 2무 1패를 거둬 역전시켰다. 무리뉴가 부임하기 전 레알 마드리드는 6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를 따라다닌 ‘안방 호랑이’란 오명을 날려버렸고, 유럽 대회 톱시드로의 복귀도 이뤄냈다. 페레스 회장은 무리뉴와의 결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가 원래 있었던 위치로 되돌려줬다.”며 무리뉴에게 감사를 표했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으로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무리뉴와 레알 마드리드는 이렇게 3년간의 동거에 마침표를 찍었다.
달변가 그리고 독설가, 무리뉴 3년간의 어록
“누구도 해내지 못한 도전은 매력적이다. 경력에 레알 마드리드가 없다면 아무리 완벽해도 빈틈이 있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오늘부터 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하나다. 나 역시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것을 원한다.”
- 2010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 부임 기자회견에서
“우승하지 못했는데도 만족하다고 말한다면 위선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우리의 경기력이 향상된 것에 만족한다. 나의 팀은 언제나 2번째 시즌에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몇 개의 우승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 2011/12 시즌 개막 전 수페르코파 패배 후
“역사와 기록이 말하듯 레알 마드리드는 궁극의 챔피언이다.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선 좋은 경기력, 철저한 준비, 그리고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축구에선 최고의 팀이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했을 때 우리는 톱시드가 아니었다. 10번째, 11번째 정도였지. 그러나 우린 지난 2시즌 동안 4강에 올랐고 다시 톱시드로 복귀했다.”
- 20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개막전을 앞두고
“경기 시작 전, 나는 아단에게 경기장의 모든 야유는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포터들과 언론은 나와 문제가 있는 거지, 아단과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단에게는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단은 레알 마드리드에 16년이나 머물고 있는 우리 선수인데 왜 뛸 자격이 없는 건가?”
- 2012/13 시즌 라 리가 18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전 종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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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공
무감독님 없었으면 라 데시마 없었다 생각함
기대치보다는 모자란 성공. 12/13부터는 커리어 꼬이기 시작한거 같지만
양자택일 하자면 성공에 가까운데 결국 최종목표인 라데시마를 못이루고 당시 레알에 비해 언더독이었던 뮌헨과 돌문에게 지면서 결승도 못가본점 막시즌 불화설과 무관으로 최악의 분위기로 끝냈다는점이 선명한 옥의티로 남았다고봄
레알이 유럽대항전에서 다시일어서는 전초적 역할을햇다봄 성공
재밌당
실패라고 보기엔 너무 가혹하가고 생각해서 성공이라고 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