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관하여
2024.03.10.(사순절제4주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1/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2/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것입니까? 그들은 빵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셨다. 5/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게서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6/ 그 사람은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7/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마태복음 15:1-9)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전통을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면서 보존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위해 전통은 사라져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전통은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전통을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을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하며, 전통을 폐기하려는 사람을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공공선(common good), 즉 시민의 이익이란 기준에 따라 전통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한 후,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입장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전통도 어떤 사람에겐 좋게 보이고 어떤 사람에겐 악하게 보입니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공공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 자기 이익에 충실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그것이 모두의 이익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이익이 대중의 이익이라는 신념을 가질 때 그들은 ‘주의자’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우리는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수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서로 비난하면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통에 대해 보수적일까요, 아니면 진보적일까요?
하늘나라가 실현되다
우리가 예수님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외딴 곳으로 물러나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게네사렛 땅으로 들어오십니다. 이곳은 예전 그대로의 땅이지만, 이제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마태는 이 땅 위에서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알아보고, 주위의 온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모두 그에게 데려왔다. 그들은 예수께, 그의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다.”(마태 14:35-36)
첫째는 알아봄입니다. 옛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를 가져온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둘째는 소문냄입니다. 사람들은 이웃들을 불러 모아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셋째는 간청함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있는 하늘나라와 접촉하기를 간청합니다. 마지막은 드러남입니다. 접촉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현장에 옛 세상을 대표하는 곳으로부터 옛 세상을 대표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15:1)
옛 세상의 깊은 곳에서부터 그 세상의 대표자들이 들고 온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하늘나라가 이 세상 속에 실현될 때,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전통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하늘나라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전통을 파괴해야 할까요? 그렇게 한다면 예수님은 진보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길을 가십니다. 진보주의자란 옛 세상과 투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한 자일뿐입니다. 하늘나라와 세상은 싸움의 결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을 압도하는 것이며, 비교 불가한 것입니다.
전통의 주인들
따라서 예수님은 보수주의자들과 싸우는 진보주의자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유대교의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율법 해석에 있어서 절대적 지위를 얻게 되자, 그들의 주장은 곧 공공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샌가, 그들은 그들이 공공선으로 선포한 전통 아래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공공선으로 선포해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는데, 율법주의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통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도구가 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것입니까?”(2) 라고 묻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피하심으로써 율법주의자들인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시지만, 그렇다고 진보주의자임을 드러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수주의자가 아님을 분명해 말할 수 있지만, 진보주의자는 아닌 것입니다. 전통은 장로들이 만들고 유지합니다. 이들은 역사에 정통한 역사학자들이었고, 종교지도자들이었으며,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정치가들이자, 섣부른 행동으로 파멸을 가져오지 않을 만큼 경륜을 갖춘 노인들이었습니다.
이 어른들의 전통은 곧 누구나 지켜야 할 종교적이며, 정치 사회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한편, 그들이 만들어낸 전통의 내용이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준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준수해야 할 규범들이었습니다. 전통은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모두를 위해 지켜야하며, 이것이 공공선을 가져올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이며, 지키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에 관한 전통은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지키겠다는 유대인의 겸손한 태도와 약속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유대교를 근간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분명히 어겼습니다.
전통 위의 주인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상당히 정중하게 질문합니다. 제자들이 전통을 지키지 않은 것이 명백함에도, 비난을 삼간 채 그 이유를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표면상 이들의 질문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전통을 부정하는 예수님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전통에 관한 예수님의 진보주의적 입장이 드러난다면 그들은 곧바로 싸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3) 예수님의 질문은 먼저 장로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 전통을 어긴 것은 명백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것을 전제로 예수님께 질문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것입니까?’ 라는 그들의 질문과 똑같은 구조로 질문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음을 모여 있는 군중들 앞에 드러내십니다. 단, 예수님께서는 질문 속에 ‘전통 때문에’라는 말을 덧붙이시는데,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 바로 전통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제자들이 위반한 것은 전통이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위반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기 위한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위선자들’(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변명하지 않으며, 전통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지도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전통 중에는 선한 전통도 있고 쓸모없어진 구습도 있다. 따라서 계승해야할 전통이 있는 반면, 때론 개선해야 할 전통도 있다.’ 라는 식으로 예수님께서 하실만한 대답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가는 말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예수님을 구습에 얽매이지 않는 진보적인 분이라고 평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옛 세상이 가진 문제는 전통 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전통에 종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통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의 전통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사회적 전통은 사회의 질서를 ‘위한’ 것이며, 국가적 전통은 그 국가의 정체성과 통합을 ‘위한’ 것입니다. 종교적 전통은 신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전통이란 무언가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질문에 대한 즉답 대신 ‘전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대답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은 전통을 주장하는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전통을 주장하는 위선자들이 가르치는 규범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섬기게 하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을 헛되게 예배하는 것’(9)이 됩니다. 예수님과 율법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전통의 가치와 기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주장하는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전통을 주장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며,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국회의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할 뿐입니다. 주장하는 이들이 힘을 가진 자들이라면, 지켜야 하는 이들은 그들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이점에서 같은 편이 되며 그 반대편에 제자들과 군중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