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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글, 잃어버린 4글자와 잘못 꿴 첫 단추, 정경시사 Focous, 2024.01.15.
http://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8106
심의섭(명지대 명예교수)
한글은 28자로 만들어 졌는데 지금은 24자를 사용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및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4개 글자를 정리하였다. '조선어학회'는 그 당시 논리와 판단으로 삭제했지만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하에서 일본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4글자를 빼어버려 해당 소리를 알맞게 적는 방법이 사라지게 되었고, 알맞은 소리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있는 원래의 모든 표기법을 활용하면 지금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 표현과 발음도 정확하게 구분해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24자를 사용하지만 사라진 4자( ㆍ, ㅿ, ㆆ, ㆁ )를 되살린다면 전 세계 언어의 표기와 발음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기에 앞으로 사라진 4자를 되살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제의 한글정책의 굴곡
먼저 네 글자가 사라진 곡절(曲折)을 살펴보자. 인위적이고 고의적으로 꿰어진 첫 단추는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이다.
1446년에 조선왕조에서 훈민정음의 이름으로 반포된 이후 훈민정음의 철자는 성문화된 맞춤법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근대에 이르러 1907년에는 대한제국 학부(學部)에 국어 연구소를 설치하여 한국어 맞춤법을 정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1910년 한일병합에 의해 그 작업은 조선총독부로 인계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한일병합 후 보통학교의 한국어 교과서에 사용하는 한글 철자를 정리, 통일하기 위하여 철자법을 정하기로 했다. 1912년 일제는 고쿠분쇼타로(國分象太郞) 등 일본인 학자들과 일부 한인 학자들을 동원해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정하였다.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은 그때까지 내려오던 한국어의 관습적 표기법을 정리하여 처음으로 마련된 한국어 맞춤법이다. 따라서 표기의 기본은 발음대로 적는 종전의 표음주의적 표기법이었다. 이때에 훈민정음의 발음체계가 크게 제한되었으며, 서울 방언을 표준으로 삼았고, 서언(緒言) 4항과 철자법 16항으로 이루어진다.
이 철자법은 그 후 1921년에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大要)’로 개정된다.
1930년에 조선총독부는 언문 철자법(諺文綴字法)을 2번 더 개정하여 현대 한글과 유사해졌다.
1912~1930년간 조선총독부가 언문철자법 확정 시행한 후 조선어학회로 업무가 옮겨진다.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는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정하게 된다. 해방 후, 남북 분단 후의 맞춤법은 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초로 형성된다.
첫 단추인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한글정책의 첫 단추인 일제하의 한글정책의 기본이 된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의 몇 가지 특징을 보자.
아래아(ㆍ)의 폐지 : 중세 한국어에 있었던 모음 ㆍ(창제시 음가 ʌ)는 16세기부터 그 음가를 잃기 시작하며 18세기 후반에는 한국어 음소로서 소멸되었다. 그러나 문자로서의 ㆍ는 그 후 20세기 초까지 관습적으로 계속 사용되어 왔다.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에서는 고유어의 표기에서 ㆍ를 폐지하고 실제 발음에 맞추어 ㅏ, 또는 ㅡ로 표기하기로 했다.
관습적 표기법의 일부 폐지: 현실 발음에 맞추어 자음 자모와 모음 자모의 조합 중 몇몇을 바꿔 적기로 했다. * 고유어에서 설음 자모 ‘ㄷ, ㅌ’과 반모음 j 를 수반한 모음 자모 ㅑ, ㅕ, ㅛ, ㅠ의 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때까지 ‘댜’와 같이 표기되어 왔던 것은 실제 발음이 ‘자’이기 때문에 실제 발음과 떨어진 ‘댜’와 같은 표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 고유어에서 ㅏ와 ㅑ, ㅓ와 ㅕ, ㅗ와 ㅛ, ㅜ와 ㅠ 두 가지 표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은 ㅏ, ㅓ, ㅗ, ㅜ로 적는 것만 인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치음 자모 ㅈ, ㅊ, ㅅ등에서 쟈, 죠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자, 조 등만 인정했다. * 다만 한자음의 표기는 종전의 관습적 표기법을 따랐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기법은 한자음의 표기에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모두 일본어처럼 ㅑ, ㅛ, ㅠ, ㅕ가 없어지고, △는 음가를 없애므로 한글의 왜곡이 고착되었다.
받침의 표기의 제한: 받침의 표기에는 한 글자 받침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 열 가지만 인정했다.
된소리의 표기: 된소리 표기는 ㅺ, ㅼ, ㅽ, ㅾ과 같이 왼쪽에 ㅅ을 덧붙이는 방법만 인정하고 ㅂ을 사용하는 ㅳ, ㅄ이나 현행 맞춤법처럼 동일 자모를 나란히 쓰는 방법은 인정하지 않았다.
기타: 부사를 만드는 어미는 ‘-히’로만 적기로 했다. 그리고 장모음을 표시할 때는 한글 왼쪽 어깨에 ‘・’ 표를 달았다.
이처럼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은 아래아(ㆍ)를 폐지하고 한 글자 받침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의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ㄷ, ㅌ 등과 ㅑ, ㅕ, ㅛ, ㅠ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장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으며, 한국어를 일본어 비슷하게 개악한 것이라고들 평한다.
사라진 4글자와 순경음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4 글자는 ㆍ(아래아), ㅿ(반치음, 반시옷), ㆁ(옛이응, 꼭지이응), ㆆ(여린히읗, 후음)이고 사라진 과정은 아래와 같다.
* ㆍ (아래아): ㆍ 음은 ㅏ와 ㅗ의 중간발음이다. 공식적으로는 네 글자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글자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발표하면서 아래아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ㆆ (여린히읗, 후음): 순우리말의 초성에는 쓰인 적이 없어 음가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문헌에서는 네 글자 중 가장 빠른 15세기 초부터 문헌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ㅿ (반치음, 반시옷): 반치음의 음가는 15세기에 소멸되었지만 이후 이응과 혼용되다가 15세기 후반에는 거의 사라졌다.
*ㆁ (옛이응, 꼭지이응): 16세기부터 이응과 혼용하다가 17세기 문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예 : 베틀에서의 잉(이+ㆁ)아대, 유리창에 기인 성애(ㆁ+ㅐ), 아기의 울음소리 응(ㆁ+ᅟᅳᆼ)애
이처럼 아래아와 세 글자 여린히읗, 반치음, 엣이응은 15~17세기에 걸쳐 서서히 자취를 감추다가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면서 기존 28자에서 쓰임이 적은 4글자를 제외하여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을 “어디로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 쓸 수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역관들은 생소한 외국어 학습을 위해 28자의 훈민정음을 활용해 외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었다고 한다.
창제 당시 28자에 들어있지 않지만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서이자 사용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순경음이 나온다. 순경음(脣輕音)이란 가벼운입술소리이면서 파열음인 ㅍ, ㅂ, ㅃ, ㅁ 밑에도 동그라미를 붙인 입술 가벼운 소리를 말한다. ㅱ, ㅸ, ㆄ, ㅹ음을 말하는데 실제로 국어표기에 사용된 것은 ㅸ만이었으며 ㅱ, ㅹ, ㆄ은 창제시점에도 음가 없었다. 동국정음식 한자음 표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동국정운이란 한자가 오래전에 들어와 발음이 변하여 원래 중국식 발음과 차이가 있으므로 이글 교정하기 위해 편찬한 것이다. 순경음은 한국어 고유의 음운 표기에 이용된 것은 ㅸ뿐이며 음운 변화로 세조(15세기 중엽)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ㅸ(여린 비읍)은 이른바 순경음 비읍이라 부르는 것으로,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우리 말의 표기에 약 20년간 사용되었다; ㆄ(여린 피읖) 소리는 옛날 중국음 f 발음이 나는 글자를 표시하는데 쓰였다; ㅹ(표준어: 가벼운쌍비읍, 문화어: 가벼운된비읍)은 한글 낱자 ㅂ을 어울러 쓰고, 그 밑에 ㅇ을 쌓아 놓은 것이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ㅿ의 정확한 음가는 영어의 z 음이다 ; ㆅ 음은 ㅋ과 ㅎ의 중간 음이다.
현재 사용하는 24자로도 다양한 표현과 발음이 가능하지만, 네 글자와 두 자음이나 모음을 나란히 쓰는 방법(竝書), 자음을 위아래로 이어 쓰는 방법(連書)을 활용한다면 어떤 언어도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다. 병서(竝書)란 초성(初聲)에 2~3개 자음을 나란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L은 ‘ㄹ’로 적고 R은 ‘ㄹㄹ’, 또는 ‘ㅇㄹ’ 등으로 적으면 `L과 R`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연서(連書)는 순음(脣音 B, V, P, F 같은 입술소리) 아래 ㅇ을 연서하여 순경음(脣輕音 입술 가벼운 소리)을 만드는 것이다. 순음 ‘ㅁ, ㅂ, ㅍ, ㅃ’ 아래에 ‘ㅇ’을 연서하면 ‘ㅱ, ㅸ, ㆄ, ㅹ’ 같은 순경음이 되는데 B를 ㅂ로, V는 ㅸ으로 적으면 B와 V를 구분하고, P는 ㅍ로, F는 ㆄ으로 적는 식으로 정리하면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으로 적을 수 없는 발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행 맞춤법으로는 영어 발음 표기 못해 영어 26자 중 L과 R, P와 F, B와 V, G와 Z, E와 Y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비록 1948년 문교부에서 제정한 ‘들온말 적는법(외래어 표기법)’에서 외래어 발음을 표기할 때 f는 ㆄ, v는 ㅸ을 쓴 것은 어원과 형태를 밝혀 적으려는 세종의 표기의식을 존중하고 글로벌 시대를 미리 내다 본 표기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 등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의 생활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1958년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에 의해 폐기되었다.
한글의 국제화와 주도적 역할
또 다른 문제는 이덕일 박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두음법칙을 재고하여야 한다. 식민지 언어정책이 철저하게 극복되지 않은 결과 현행 한글은 특정 발음을 표기할 수 없는 절름발이 언어로 전락했다. 두음법칙 같은 것들은 수많은 일제 잔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도 일제의 언문철자표기법 틀에 갇혀 ㄹ, ㄴ이 어두(語頭)에 오면 ㅇ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 같은 반 언어적 조항이 실려 있는 현행 한글맞춤법통일안은 일제의 언문철자표기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한글의 국제화를 위해 소리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되살리어 사라진 네 글자와 경순음 같은 글자들을 부활시키는 방법도 고려하여야 한다. 우리가 외국어를 만날 때 지금 안 쓰이는 사라진 글자들에 대한 아쉬움과 부활의 절실함이 공감되는 시대이다. 글로벌 시대, 다문화 시대에 살면서 이러한 아쉬움을 우리보다 먼저 타자가 알아주고 속 풀이를 해줄 계기가 마련되고,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등한시했던 혜초의 ‘왕오천국전’과 일연의 ‘삼국유사’의 가치를 우리보다 타자가 먼저 알아준 사례에 대해 우리의 어떠한 변명도 자위도 공허한 메아리이었을 뿐이다. 첫 단추를 잘 못 꿴 한글의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한글이 우리글이라는 종주국으로서의 안일과 자만은 시대적 유물이다. 남한과 북한, 연변과 중앙아 등에 살고있는 동포들, 그리고 고려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흩어진 가족과 재외동포를 생각하면 한글을 쓰는 인구는 1억도 될 수 있다.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과 역사를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출처 : 정경시사 FOCUS(http://www.yjb080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