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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함석헌길1(원효로 자택터)를 걸었고 이번 6월에는 함석헌길2(쌍문동 자택)을 걷습니다.
선생님이 12평짜리 초라하고 조그만 원효로집에서 쌍문동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1983년입니다. 선생님은 남강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56년 마련했던 원효로 자택을 재단에 기증하였습니다. 남강문화재단의 설립일이 1984년 12월10일이니 한해 전 부터 그 일을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1987년 동아일보사 제정 제1회 인촌상을 수상하였는데 그 상금도 전액 남강문화재단에 기증하였습니다.
쌍문동집 현관 옆에는 2006년 10월 대전 현충원 안장되기 전의 묘비가 있습니다. 묘비에는 선생님의 시 ‘나는 빈 들에 외치는 소리’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원효로 자택에서 큰 온실을 가꾸시다 쌍문동 집으로 옮겼는데 온실의 수목들이 지금도 옮긴 그대로 서 있으며 쌍문동집 집안 구석구석에는 선생님의 많은 자료와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쌍문동으로 이사한 후 선생님은 1979년에 이어 1985년 두 번째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고 이후 미국 캐나다 등을 순회하며 나라의 평화와 민주화를 외쳤습니다.쌍문동 자택으로 이사 온 6년 뒤 1989년 2월4일 새벽 5시25분 서을대학병원 12층 108호에서 노환으로 서거, 향년 88세, 날수로는 32,105일의 생애를 마감하셨습니다.
우이령은 오래전부터 장흥과 백석, 광적, 고양 등지에 거주하는 양주주민이 서울로 땔감과 채소를 팔러 다니던 마차길이었으나 6.25 당시 미공병대가 군사도로로 넓혔습니다.
1968년 1.21 김신조 사태 이후 41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2009년 7월 제한적으로 일반에게 개방되었습니다. 개방 당시 포장도로개설을 주장하는 양주시와 생태탐방로를 주장하는 강북구, 환경단체 등과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생태탐방로로 이용객을 하루 1000명(서울 우이동 500명, 양주시 교현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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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 등 신분증 필참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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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 - 6월2일(토) 9:50 구파발역(3호선) 1번출구 지하 만남의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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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0 구파발역(3호선) 1번출구 지하 만남의 장소 10:00 교현리행 버스 환승 10:30 교현리 탐방안내소 입산신고 후 순례시작 12:00 우이동 탐방안내소 도착 12:10 북한산 둘레길 왕실묘역 입구 통과 13:00 함석헌 쌍문동집 도착 및 방문인사 13:30 정의여중 사거리 "엄마네 집" 음식나눔 14:10 쌍문역(4호선) 도착 해산
음식나눔 - "엄마네 집" 정의여중입구 사거리, 쌍문역 1번 출구 전화 02-902-1379 휴대폰 010-9656-3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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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쌍문동 자택 함석헌 자택 설명문 교현리 들머리(군사지역) 우이령길 1 우이령길 2 도봉산 오봉 왕실묘역길 입구 쌍문공원 쌍문교 쌍문공원 날머리(미라보아파트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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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금 347,500원 헌화(8개) 48,000원(-) 식사회비 110,000원 식대 102,000원(-) -------------------------- 계 307,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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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7월7일 순례는 유김길을 가려고 합니다. 순례자 씨알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유김길, 구기동 유영모 자택터에서 출발하여 정릉동 김교신 자택터까지, 씨순길이 처음 걷기 시작했던 길입니다.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님' 찾는 씨순길, 나를 찾자는 씨순길, 씨알삶을 살자는 씨순길, 함께 걷는 구도(求道)의 길 위에 도반(道伴)들의 충언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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