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로, 1961년 8월 4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내는 미셸이고 말리아와 샤샤라는 두 딸이 있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흑인 혼혈로 태어난 오바마의 친아버지는 자신의 조국인 케냐를 위해 가족을 떠났다. 그래서 오바마는 어머니, 새아버지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항상 친아버지의 좋은 점만을 오바마에게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서 오바마에게 아버지는 신화적인 존재로 남았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 뒤에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끝낸 뒤에 하와이로 돌아가 조부모와 함께 자랐다. 하와이에서 오바마는 명문 푸나호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푸나호우 학교에서는 흑인 혼혈 학생이 별로 없어서 처음에 오바마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곧 적응하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 오바마는 신화적 존재였던 자신의 친아버지와 함께 한 달을 보내게 되엇다. 그리고 그 새아버지와 이혼한 엄마가 여동생 마야와 함께 돌아온다. 오바마는 외적으로는 활발하고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갖춘 학생이었지만, 내적으로는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또 백인 중심의 미국에서 흑인 혼혈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게다가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도 느꼈다. 이런 많은 고민들로 인해 오바마는 마리화나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으며 가끔은 코카인에도 손을 대곤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다. 엄마의 편지를 읽고 농구를 하며 그는 세상을 상대로 자신을 단련하며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오바마의 정치 인생은 시카고에서의 지역사회 운동가 활동이 시작이었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확고하게 알고 정리 하기위해 케냐로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온다. 그 뒤,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고, 그 즈음에 아내 미셸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는 하버드의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96년에 일리노이 주의 상원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2000년, 민주당 하원의원 경선에서 바비 러시에게 패배하면서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미 연방 상원의원에 앨런 키예스와 잭 라이언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 비법은 그의 감동적인 연설과 성장배경이었다. 그 이후, 그는 2004년 7월 민주당 후보 존 캐리를 위한 전당대회 기조연설로 ‘담대한 희망’이라는 연설을 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경국 그는 2008년 11월 4일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불운하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 그는 항상 포기하지 않았으며, 리더십 또한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바마가 자신의 상처가 있었기에 지금의 오바마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는 그 누구보다 비행 청소년들을 잘 알 것이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