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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재안 제공 |
현재진행형인 고딩 때의 신앙 고백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하고, 첫 사역지였던 교회에서부터 그때의 고민이 연결되었다. 성탄절에는 내부 행사는 아주 간단히 끝내고 교회 밖으로 나가 외부에서 청소부 아저씨, 야근하시는 파출소 아저씨, 길거리 노숙하시는 분들에게 차를 나누었다. 결혼 2년차에 구입한 작은 다마스 봉고차에 뜨거운 물과 차, 컵라면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성탄절을 보냈다.
지난 12월 23일 금요일 밤에도 성탄을 맞이하는 ‘풀꽃강물’(교회) 친구들이 부산역과 수정동, 초량동 쪽방 주민들을 잠시 만나 뵀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빈약한 교회 헌금 40만 원으로 백설기 떡 400개와 컵라면, 그리고 율무차, 반방차를 준비했다. 수정동과 초량동에 있는 여인숙, 쪽방, 고시텔에 거주하는 80여 분, 부산역 2층 대합실 중심으로 노숙하시는 40여 분과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현수막도 없고 기도도 없고 찬양도 없다. 교회 소개도 당연히 없다. 그저 지나가는 ‘부산 시민’으로서 한 일일 뿐. 다음날 우연히 통장을 보니 천사 같은 지인이 30만 원을 후원하셨다.
쪽방 아저씨들과 함께 ‘촛불 행진’
요즘 부산의 촛불도 서울 광화문 못지않다. 매주 서면 지역에서는 촛불 행진이 이어진다. 부마민주항쟁이 가장 크게 불타올랐던 그 자리, 문현로터리에서 촛불 행진이 마무리된다. 쪽방 아저씨들에게 정치 활동을 제안하는 일은 매사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풀꽃강물교회 교인으로서 한 명이 함께하고 계신다. 깃발을 만들어서 함께 걷는다. 쪽방 주민분들이 서너 분이라도 더 이 자리에 나왔으면 하고 바라던 중, 어디서 많이 본 아저씨가 지나갔다. 허씨 아저씨다. 혼자 열심히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계셨다. 기쁨 가득 미소로 쓰윽 다가가서 “혼자 왔음니꺼!!” 물어보니. “어이~, 나는 혼자 속 시원~하게 혼자 투쟁하니, 걱정마쉐이~” 하신다. 그 말 듣는 내 얼굴에 씽긋 미소가 번진다.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구청에 의해 철거되고 12월 31일에 다시 제막될 때, 쪽방 주민 출신 권씨 아저씨와, 수급자지만 젊은 시절 노동가였던 우씨 아저씨도 함께 소녀상을 바라보며 송구영신을 보냈다.
대림절, 독거 월세방을 가득 채운 예배
대림절 한 주 전,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나누려는 풀꽃강물교회 공동예배는 부산시 외곽에 위치한 양산시 덕계동의 한 주택가 작은 월세방에서 드려졌다. 주인장은 혼살이 우씨 큰형님이다. 형님과 인연이 닿은 곳은 한 시민단체 대표님의 장례식장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개발을 반대하던 만덕주민공동체를 돕던 반빈곤센터(윤웅태 대표, 현 대표는 최고운)의 회원이셨다. 딱 일곱 명이 둘러앉아 드리는 단출한 예배다. 두 가지 색깔의 초와 우리의 기도를 담은 작은 현수막 하나, 상담소에서 준비한 1인용 전기요 하나, 그렇게 두 손 모아 마음 가득 담아 예배를 드린다.
대림절 아기 예수를 맞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가며 한 명씩 나누던 중이었다. “이렇게 저희 집에 와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 흑….” 갑작스레 눈물이 나는 것이 당황스러웠던지 우씨 형님은 입을 손으로 꽉 눌러 막으신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고 왈칵 복받쳐 오르는 감사의 눈물송이들. 그렇게 우리의 공동예배는 끝났고, 근처 식당에서 그동안의 성찬 중 가장 비싼 아귀찜, 해물찜을 맛나게 먹었다.
세밑에 떠오르는 얼굴들
세밑 즈음, 선명하게 떠오르는 여러 얼굴들이 있다.
고시텔에 입주한 김씨 아저씨
지난 12월 23일 성탄 나눔 모임 때 부산역에서 풀꽃강물 친구들을 만난 김씨 아저씨. 10여 일만에 고시텔에 입주했다! 부산역 노숙 4개월 만이다. 이제 정말 추워지니 들어가시려나 싶어 곁에서 살짝 물어보니 “텔레비전은 잘 나오지예…” 그러신다. 거의 매일 찾아가서 설득했다. 한번은 상담소에 가서 좀 씻으라고 말씀드리니 도망을 가셨던 적 있다. 고시텔 입주하고 이틀 동안은 잘 잤는데, 또 안 들어오셨단다. 오늘 밤에 들어오지 않으면 다시는 못 들어온다고 으름장을 놨는데 걱정이 된다.
진짜 가족 배씨 아저씨
노숙을 하다가 쪽방상담소를 통해 지원받으셔서 현재는 매입임대주택에 잘살고 계신 배씨 아저씨. 그러나 최근 당뇨병 합병 증상으로 신장이 많이 상해 3개월 전부터 신장 투석 중이시다. 두 달 동안 심장에 문제가 생겨 투석을 멈추기도 했다. 100만 원 정도 된다는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고민하시다가 이제야 심장 스탠스 시술을 했다. 총비용은 699,000원. 예상보다는 적었지만 본인이 50만 원을 내고, 나머지는 내 카드로 먼저 지불하고 나중에 갚기로 하셨다. 물론 두 달 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60% 정도를 환급해줄 것 같다. 돈을 빌려드려 고마운 것도 있겠지만, 입원하고 시술할 때 함께해준 것을 더욱 감사해하신다. 이게 진짜 가족 아닌가.
새벽 3시 귀신처럼 나타난 김씨 아저씨
쪽방주민으로서 부산역 쪽방 반장 역할을 앞장서 하시는 장복이 어르신이 운영하는 여인숙에 어젯밤 새벽 3시, 의료원에 입원해 계시던 김씨 아저씨가 왔단다. 기절초풍할 일이다. 귀신인 줄 알았단다. 김씨 아저씨께 왜 그곳에 가셨느냐 여쭤보니, 왜 갔는지 모르겠단다. 차후에 치매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잔소리를 해도 짜증은 못 내시니, 살짝 귀여움이 배어난다. 응가 싼 채 다니던 분이 이제는 그러지 않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10년 암 투병 끝에 소천하신 조선족 선생님
지난 11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리슬라브의 입관 등 장례를 무료로 도와주셨던 창성웰라이프 대표님으로부터 며칠 전 연락이 왔다. 감천2동에 사시는 조선족 남자분이 10년 정도 암 투병 중에 금일 새벽 소천하셨는데, 장례비용이 없어 지원이 필요하단다. 그분의 아내는 귀화를 하셨기에 한국인으로서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나 그분은 뒤늦은 입국, 그리고 통장에 돈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외국인등록번호만 부여받은 상태인지라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족도 외국인이라 도울 수가 없단다. 항상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할 뿐이다.
즉시 협력단체들에 긴급 문자를 전송하고 십시일반 돕기로 하였다. 바쁜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자정 무렵 장례식장에 조문하고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며칠 뒤 전화를 주셨다. 고맙다고,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식사라도 함께하자고 하신다. 다음에도 서로 도와서 힘든 이들을 있는 힘껏 돕자고 얘기할 것 같다. 며칠 뒤 만날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싹 물러간다. 몸살도 싹….
2017년을 맞이하며
2016년의 마지막 날, 송구영신의 시간을 부산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본 뒤 근처 상담소에서 열 명 남짓이 모였다. 수현이는 잠이 와서 쓰러지면서도 함께했다. 부산역 노숙인을 자주 도우시는 최 선생님 부부와 홍 전도사도 왔다. 작은 촛불, 그리고 둥굴레차 한 잔, 자기소개도 하고 1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맘껏 나눈다. 정해진 시간이 없어서 이야기가 딴 길로 가다가도 어느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새해의 다짐과 바람으로 넘어간다. “고통당하는 이들의 자리에 최우선으로 나아가자.”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근무하는 쪽방상담소에 등록된 분 중 열여덟 분이 소천하셨다. 8월 폭염에 혼자 가신 두 분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병원도 같이 다니고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마음을 다지며 편안히 눈 감겨 드렸던 분, 마지막까지 대화하며 자리를 함께했던 분들이 있어 그나마 뿌듯한 마음은 있다. 작년부터 명절 때마다 영락공원 추모관에 가 묵념을 드리고 온다. 이번 구정에는 주민 몇 분과 함께 가고자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나의 장례식에는 어떤 친구들이 올까, 궁금하다.
겨울이 한창이다. 강원도나 중부지방에 비교하면 부산은 봄바람이지만, 부산 쪽방동네에는 여전히 마음이 쓰라린 이들이 곳곳에 많다. 때로는 쓰라린 봄바람 같은 을씨년스러운 겨울 부산항 바닷바람이 매서울 때가 많다.
정부에서 쪽방 주민들에게 이불을 400채나 보냈다. 감사한 일이기는 하나, 평소에 코빼기도 안 보이던 주민분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나는 왜 이불 안 주느냐’ 잔소리다. 아침부터 상담소가 무척이나 시끄럽다. 밉지는 않으나 밉상스럽다. 이불이 문제가 아닌데, 당신들의 마음이 이불보다 더 따뜻하면 좋을 텐데….
2017년 한해에는 쪽방 주민분들의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지면 좋겠다.
이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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