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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최근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가 개막했다. 장영실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작가 이상훈의 동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공연이다.
내가 87번째로 서평을 남긴 책이기도 했다.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작년에 직관했던 유일환 박사의 독립운동을 담은 뮤지컬 〈스윙데이즈-암호명 A〉를 했던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기간: 2025년 12월 2일~2026년 3월 8일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통계로 387 충무아트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러닝타임: 18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뮤지컬 및 연극 직관할 때의 루틴은, 일찍 도착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포스터 및 포토존을 사수했다.
하지만 로비의 포토존은 〈스윙데이즈-암호명 A〉 공연할 때가 더 사진 찍을 구석이 많았던 것 같다.
MD부스에서도 이번에는 기념품을 챙기지 않았다. 근검 절약의 시기라서.
📸 대신 스테이지 배경으로 설정한 무브잇 사진을 찍었다.
소설 〈한복 입은 남자〉의 진행처럼 뮤지컬 역시 역사와 상상력이 결합된 서사 속에 조선과 이탈리아,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공간적 구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막은 조선, 2막은 유럽을 무대로 한다.
배우는 세종대왕/PD 진석, 정의공주/엘레나, 장영실/강배처럼 1인 2역을 맡는다.
🎶🎭 “한복 입은 남자 그의 흔적을 쫓아 / 끝없는 터널 속을 헤매이다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새로운 제보자 / 전하께서 오르신 가마가 부서졌다, 전하께서 충격에 넘어져 쓰러졌다”
방송국 PD 진석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그림의 모델에 얽힌 가설은 두 가지가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노예가 되어 서양까지 가게 된 조선 소년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설과 중국의 상인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루벤스가 활동한 시기는 조선 중기인 데 반해 화폭 속 한복 양식은 조선 전기의 차림이다. 또 중국 상인이라는 설도 가설일 뿐이다.
그 와중 진석은 이탈리아 유학생 엘레나로부터 오래된 비망록을 건네받는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부터 자신의 뿌리를 찾아왔다.
이때 등장하는 노래의 가사가 역사 속에 분명 감춰진 다른 가능성이 있으리라 시사한다. 일종의 뮤지컬 주제와 이제부터 전개될 이야기의 방향을 드러내는 노래라고 하겠다.
🎶 “비망록의 주인이 진짜라면 / 교과서에 두 줄로 남으면 안 될”
옛한글과 한자, 이탈리아어까지 뒤섞인 기록 안에는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도면과 닮은, 조선 시대의 하늘을 나는 장치 ‘비차’의 설계 흔적이 있었다. 더불어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와 거의 동일한 스케치도...
진석은 고서를 연구하는 친구이자 재야의 은둔 학자 강배에게 비망록 번역을 의뢰한다. 곧 비망록의 주인이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임이 밝혀지고, 진석과 강배, 그리고 사학자 마 교수는 루벤스의 그림과 장영실, 그리고 비차와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선다.
개인적으로 이때 등장하는 노래의 가사 한 부분이 귀에 콱 꽂혔다. 아니, 진짜 장영실 교과서에 딱 두 줄밖에 안 나오냐고요! 신분 차이 재능과 노력으로 극복했고, 해시계 앙부일구 등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으며, 조선 초기 과학 기술 및 천문학에 큰 업적을 남겼는데, 꼴랑 두 줄이요?
점자책 기준 두 줄이라고 믿고 싶다. 점자 특유의 부피 때문에 그렇게 되면 실제 묵자에서는 서너 줄 정도가 될 테니까. 👩🦯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다르리라 믿고 싶다.
과연, 조선 시대 장영실에게는, 세종대왕과 얽힌 ‘안여 사건’의 이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역사의 진실은?
🎶🎭 “가혹한 운명만 허락되는 삶이라 해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
훗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조선의 4대 임금 이도는 고민이 첩첩산중이다. 나라의 근본은 농사인데 중국 역법을 쓰고 있으니, 때와 시가 달라 흉작을 거두기 다반사인 까닭이다. 그는 백성을 위해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농사짓는 백성을 위한 역법 등 과학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신분귀천 따지지 말고 전국에 인재를 추천하라 어명을 내린다.
그놈의 칙서인가 책서인가 하는 걸로 명나라의 견제구가 집요하게 날아오지만, 세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해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다.
🎶🎭 “도리 없는 일은 따라가라 / 어찌할 수 없다면 흘러가라 / 온몸 찢겨나가도록 애쓰지는 마라 / 살아 살아라 살아봐야 별에 닿아 / 살아 살아내 여한 없게 누려라 / 삶을 뺏는 꿈은 내려놓아 / 죽을 만큼 힘들면 포기해라 / 숨이 막히게 참느라 아파하지 마라”
장영실은 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손재주와 탐구심 등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온갖 유익한 도구를 개발했으나, 그의 출신 탓에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곁을 지키는 향원의 기생 미령과 친형처럼 자란 만복은 그런 장영실의 재주가 그에게 화가 될까 걱정스러워한다. 둘에게는 일단 영실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이때 영실과 미령과 만복 셋이서 부르는 노래가 참으로 인상 깊다. 특히 오케스트라 악기에 더해 국악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듣는 맛이 좋았다.
조선 초기에는 좀 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사회 구조가 경직되어 있었다. 반상과 적서의 차별이 존재했고, 남자와 여자로 성별·활동 영역이 구분되었으며, 사농공상으로 직업의 귀천도 나뉘었다. 그런 시대에 재능 있는 노비란...
강팍한 현실 속에서 꿈을 가진 채 그 이상을 향해 달리는 건 때로 삶을 더 고단하게 할 뿐이다. 그때는 꿈을 내려놓으라고, 체념을 방패 삼아 살아가라고, 살다 보면, 살아내야 별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르는 기회라도 잡지 않겠냐는 뉘앙스의 가사.
근데, 요즘도 꿈을 꾸면서 살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꿈을 꾸는 데 돈이 들어.
그러다 임금의 신분고하 가리지 않는 전국 인재 추천 어명을 계기로 장영실은 궁궐에 입성하고, 그 뛰어난 재주로 물시계 자경루를 선보여 경연에서 장원을 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장영실은 세종의 눈에 들게 되고, 두 사람은 주군과 신하 관계를 넘어, 같은 이상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 “맹자 가라사대 작은 나라 임금이 더 큰 나라 섬기는 건 지혜로운 일 / 말세야 말세 나라 꼴 개판에, 폭군의 독재 미쳐 돌아가네”
그러나 왕의 정책을 마냥 반기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선두주자로 병조판서 이암이 있었다.
그는 사대의식에 빠져 명나라에게 적극 협조하며 왕을 압박한다.
어이, 맹자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외교의 한 방편이자 수단이었고요! 누가 평생 눈치 보면서 살라고 하든?
그 와중 이암은 특권의식으로 아들과 정의공주와의 혼사를 통한 권력 상승도 노린다. 그렇기에 왕의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이며 천한 노비 출신의 장영실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세종의 추천으로 장영실이 명나라 유학에 오르자, 그를 없앨 계획을 꾸미는 등 뒷공작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용케 반역은 위험하다고 선은 넘지 않으려고 하는데...
👩🦯 내가 세종이었다면 신하라는 탈을 쓴 저 말세의 근원들부터 좀 잡아 족쳤을 것 같다. 세종대왕 선대 왕이 누군가? 목표를 향한 집념과 추진력의 화신 이방원, 별명은 ‘킬방원’ 아닌가!
자고로, 피는 못 속이는 법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라 개판 만드는 데 일조하는 신하들도 백성이라고 곱게 냅두는 거 보면, 이래서 성군으로 칭송받나 싶기도 하고.
역지사지, 보통은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사자성어인데, 현대 사회에 오면서 새로운 뜻이 추가되었다. 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그제야 사람들이 지 일인 줄 안다고. 📜
세종대왕 시대에 이 참뜻이 있었어야 하는데 통탄스러운지고!
그나저나, 말세 운운하는 노래 가사가 좀 착착 감긴다. 꽤나 흥겨운 것이, 진짜 말세인가?
🎶🎭 “그대 꿈이 내게 한 겹, 그대 생각이 또 한 겹 / 고이 접어둔 맘속에 한 겹, 또 한 겹 가득히 쌓여가 /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길, 날씨와 신의 손길, 꽃이 지고 피는 계절까지 담아 / 하늘의 나침반, 그대의 혼천의 밤을 밝혀 / 우리의 세상을, 내 마음을 채워” 🌠
결과적으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헌물만 켜는 일이었다. 정작 정의공주는 마음이 온통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인재 발굴 및 한글 창제 프로젝트 초기부터 남장을 하고 궁을 활보하며, 기술을 배우고, 연구에 참여하는 등 왕실 팔방미인의 면모를 과시한 그녀는 학문과 기술에 뜻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장영실을 연모한다는 설정이 있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건 억지 로맨스 서사라고 생각한다. 소설 원작이라면 긴 호흡으로 감정 서사를 쌓을 수 있어 괜찮은 설정이다. 그러나 뮤지컬처럼 시간이 한정된 구조라면, 영실과 정의곤주 사이의 로맨스는 관객 입장에서는 부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차라리 똑똑하고 말 통하고 함께하고 싶은 이성 친구 연구 동료를 만난 데서 오는 동경과 호감이 더 논리적인 것 같다. 🌺
하지만 앞서 밝힌 조선의 고리타분한 사회상은 정의공주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놈의 더러운 세상!
👩🦯 참, 정의공주가 부르는 노래 내용 중 의문이 하나 있다. 가사에 보면,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자경루를 서술하며 영실을 생각하며 하루 24번 숨을 멈춘다는 내용이 있는데, 조선은 자축인묘 등 12간지를 대입해 하루 12시진으로 시간을 구분하지 않았던가?
따지자면 하루 12번 숨을 멈춰야 말이 되지 않나 이 말이다. 아니면 24절기에 대입해 1년 24번이라 하든가. 작가님, 이 부분 설명 좀요!
각설하고, 장영실은 명나라 유학에서 돌아온다. 콜럼버스보다 더 일찍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한 명나라 환관 정화 대장과의 인연을 가지고서.
🎶🎭 “약속을 내려놓고 꿈을 지워내도, 널 잃는 법만은 배우지 않으려 해 / 나 그리던 꿈, 가려 했던 길 모두 막아설 때 / 함께 걸어준 유일한 사람 너마저 떠나보내 / 이렇게라도 이젠 내가 널 지킬 수 있게 / 살아 닿아라 널 위해 찬란히 빛나는 너만의 별에”
한글 창제와 각종 천문 기구의 발명 등 세종대왕의 원대한 프로젝트는 차츰 진척을 보인다. 하지만 갈수록 명나라의 압박은 심해지고, 급기아 왕의 면전에서 사신 및 신하들이 장영실을 죽일 것이라 위협하기에 이른다. 우와, 조선이 아무리 군약신강의 나라라고 해도, 저런 장면이 말이 되나? 그래도 왕권국가인데? 진짜 왜 쟤들 목 안 치는데요! 사신은 외교 문제가 있으니 냅두더라도, 신하들은 조질 수 있는 거잖아!
결국 역사의 사건은 이렇게 이어지고, 세종대왕의 안여(가마)는 부서졌다. 장영실은 그 사건을 계기로 모든 역사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
사실 몰래 빼돌려 다른 나라로, 더 넓은 세상으로 피신시킨 거였다. 그에 협조한 인물이 명나라에서 인연을 맺은 정화 대장이었다. 그는 장영실이 배의 방향 및 위치를 잡는 천문 기구를 수리해준 일을 계기로 호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실은 친형처럼 함께한 만복을 잃는다.
나라가 약하고 지도자가 힘이 없으면, 저렇게 되는 거다. 국민을 지킬 수가 없다. 하다못해 자기 사람도 못 지킨다. 떠나보내야 한다. 세종이 덜 무르고, 좀 더 과감했다면, 괜찮았을까?
왕의 무력감이 상상되어 참 착잡한 장면이었다.
드라이아이스의 효과로 배가 진짜 바다에 떠 있는 듯한 연출이 근사했다고, 아빠가 평가했다. 무대 연출이 진짜 ‘GOOD!’이었던 모양이다.
🎶☦️ “하나님 앞에 증명이 필요한 세상의 이치는 악마의 속삭임 / 어둠의 지배자들 사탄을 심판하라”
장영실과 정화 대장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까지 닿았다. 2부의 무대는 유럽이다.
돌아가기 위한 함선을 꾸리려고 무역을 시작한 일행들, 영실은 그 와중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천문학자 토스카넬리 등 유럽의 지식인과 교류하며 서로의 학문을 나누는 과정에서, 교황과도 만나게 되는데, 그 대목에서 그만 일이 꼬였다. 장영실 일행이 천동설 X, 지동설 O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구는 둥구니까 배 타고 나아가면 결국 이 자리로 돌아와요! 비차 타고 날아가도 결국은 이 나라로 돌아와요!
교황은 장영실의 과학 지식이 무척 거슬렸다.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부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 무렵에 교황이 면죄부 장사를 시작했더라고.
그런데 장영실 일행이 지식을 전파하자 시민들과 식자들이 눈을 떠서 면죄부 판매 수익이 줄었단다.
결국 교황은 장영실과 정화 대장 일행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화형시키려 한다. 이에 일행은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로 피난을 가는데, 교황의 마수는 그 도시까지 뻗친다.
🎶🌠 “닿을 수 없는 꿈, 그리움을 닮아 / 어제는 희망을 담았던 저 별에 오늘은 위로만을 / 그립고 그립다 / 다시 그리웁고 그리웁다 / 닿을 수 없는 꿈, 그리움을 닮아 / 어제는 희망을 담았던 저 별에 오늘은 위로만을 / 빌고 또 빌어봐, 다녀왔어 다녀왔어 한마디만 하게 해주길”
교황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피렌체의 지도층은 토스카넬리 등 식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정화 대장 일행과 장영실도 교황의 군대 저지 계획에 합류한다. 이때 등장한 게 우리나라의 옛날 무기 신기전!
무대에서 진짜 화약이 터진다. 뭔가 폭죽 비슷한 소리가 나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겼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알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는 것이, 세상 불공평하다.
좌우간 전쟁을 피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과 개발의 과정에서 장영실은 마침내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난나게 된다. 소년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영실, 서자라 학교를 다니지 못해 배움의 기회가 없다는 아이의 현실에 장영실은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의 군대를 물리치고, 정화 대장 일행이 귀환을 위한 출항에 나설 때 장영실은 어린 레오나르도 곁에 남기로 결정했으리라.
물론 그도 조선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세종에게 비망록을 직접 전할 수 있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정세를 모르는 채 그가 돌아간다는 도박을 할 수 없었고, 어린 천재를 두고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는 여행을 다녀오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도가도 못하고 멈춰 선 채 부르는 노래가 참 절절하다. 가사 누가 썼는지 참...
🎶🎭 “보고 싶어 저 별을 / 닿고 싶어 저 별에 / 헛된 꿈속을 날아 세상의 끝에 내 몸을 던져 / 닿을 수 있다면 비차를 타고 함께 날아가 / 어느 좋은 날, 삶이 먼저 길을 내어주는 날, 저 별에 닿아” 🪽
장영실은 천문학자 토스카넬리와 이탈리아 메이드 파올라의 호의로 피렌체에 정착하고, 레오나르도 다 비인치를 제자로 삼아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한다. 그리고 불현듯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닿고자 애써 왔던 ‘별’이 이 소년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고, 그가 아니면 안 되었던 일, 작은 천재가 세상을 항해하는 데 길라잡이 별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한편 스펙터클하게 흘러간 과거 이야기와 같이 중간중간 나오는 현재 상황도 아주 스펙터클하게 흘러간다.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알아낸 진석과 강배, 엘레나와 마 교수는 그들이 발견한 것을 역사 학계에 발표하려 한다. 하지만 진석의 다큐는 엎어지고, 강배는 고소장을 받고, 마 교수는 온갖 추문에 휩싸이고, 엘레나는 집안이 털리는 등의 각종 봉변을 당한다. 소설 읽을 때도 가진 의문이고, 뮤지컬 보면서도 느낀 의문인데, 저게 저렇게까지 해서 묻어야 하는 걸까?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만남은 차치하고, 동서양의 교류는 예전부터 쭉 있어온 일이다. 그런 교류 끝에 르네상스의 시작이 태동했다는 가설 정도는 있음직한 일 아닌가? 다빈치를 폄하한 것도 아닐진대, 가능성 제기조차 무시하고 묻어버리는 건 왜지?
📑🌠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가장 밝은 별이 될 수도 가장 어두운 별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뮤지컬 공연 중 가장 백미는 역시 엔딩 장면이다. 별들이 쏟아지며 과거의 장영실과 현재의 PD 진석이 노래하고, 나머지 배우들이 앙상블로 참여하는 그 부분.
장영실의 삶을 결과론적으로만 놓고 감히 평가해보자면, 그의 인생은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다. 조선에서 꿈을 펼칠 뻔했으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종국에는 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유럽에까지 갔으나, 그곳에서도 온전히 꿈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누군가에게 이어졌다. 🪽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역사에 한글 창제 등 업적을 남겼으나, 훈민정음은 당시 온전한 우리나라 글자로 자리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닿아 정말 널리 잘 활용되고 있다. 🪽
PD 진석과 은둔 학자 강배는 또 어떤가? 엘레나와 마 교수의 노력은?
그들 또한 연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를 관통하는 테마는 ‘별’이다. 예부터 영원을 상징하거나 꿈을 뜻하는 것.
🌠 어디서 읽었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의 빛은 사실 별이 소멸할 때 발산하는 빛이라고 한다. 즉, 우리 눈에 담긴 별빛은 그 별의 마지막 빛이요, 마지막으로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 순간, 그 별은 이미 없는지도 모른다. 드넓은 밤하늘을 건너, 무수한 밝기의 별들 속에서, 그 무한하리만큼 넓은 공간과 시간을 지나 마침내 닿은 별빛.
그것은 과거가 현재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과거의 누군가도 저 별을 보면서 꿈을 향해 정진했을 것이다. 비록 이루지 못한, 못다한 꿈이라 해도, 그 자취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빛나, 종국에는 미래에, 오늘의 우리에게 닿고야 만다. 마치 장영실의 꿈이 다빈치에게 닿은 것처럼. 또는 비망록이 진석과 강배에게 닿은 것처럼.
어쩌면 배우들이 1인 2역을 담당한 건, 이런 연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극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세종대왕의 집념이 진석에게 이어지고, 강배는 장영실의 기록을 수신하는 역할, 뭐 이런 식으로.
공연 끝에 나온 대사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별의 밝기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밝기인 실시 등급과 별들이 같은 거리에 있다고 쳤을 때의 밝기인 절대 등급이 있다고 한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별들도 같은 거리에 두고 보면 태양처럼 눈부시다고 한다.
👩🦯 요컨대,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는 뜻이다. 꿈을 이루었거나, 꿈을 찾고 있거나, 꿈을 잠시 접었거나, 계속 꾸고 있거나, 내려놓았거나 상관없이.
그저 각자의 삶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엔딩이었다.

첫댓글 위대한 성군옆에 위대한 발명가가 있는 멋진 조합이 어이없는 신분제도로 무산된 역사적 비극.
진실은 모두가 국민을 위한 노력과 헌신이 존재함을 존중하고 기억해야 될 우리의 작금의 현실이다. 흘러가는 시냇물은 새로운 물이 채워지기 때문에 현재의 시냇물이 존재하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