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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김 문 수
1
상점 안,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왈왈대며 돌아가던 선풍기 대신에 국화꽃 화분들이 자리하고 들어앉았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으므로 그윽한 향기를 내뿜을 수는 없었으나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한심한 도회 사람들에게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구실만은 훌륭하게 할 수 있었다.
가을이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통에 자리잡고 있는 싸구러 기성복상점이기 때문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만만하게 문턱을 넘어와서 태연하게 문턱을 넘어가게 마련인데, 그 사나이만은 그렇지 못했다.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 표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걸음걸이도 활발치 못했다. 마치 지은 죄 때문에 어찔 수 없이 관청에 불려오는 사람의 걸음새였다.
“어서 옵쇼.”
점원이 가락을 붙여 꼬리를 길게 빼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건성으로 허리를 잔뜩 꺾어보이는 인사를 했다. 그 바람에 흠칫 놀란 사나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용해빠진 얼굴에 사람 좋아뵈는 웃음을 담뿍 지어보였다. 그 웃음 때문에 사나이의 왼쪽 입꼬리 근처에 터를 잡고 있는 외씨같이 길쭘한 검은 점이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 움직이며 그 모양새를 바꾸었다. 길이가 줄어들고 그 대신에 폭이 넓어졌다.
“무얼 찾으십니까?”
점원이 점박이에게 물었다.
“양, 양복 한 벌 장, 장만할까 해서 왔습니다만.”
점박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털어놓듯 떠듬거렸다.
“천지가 양복입죠. 천도 여러 질이고 색깔도 여러 가지가 있습죠. 맘에 드시는 걸루, 손님 의향대로 골라보십쇼.”
점원이 수다를 떨었다. 그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여러 계집 중에서 난 계집 하나 찝어내기가 어렵듯이 양복천지 중에서 맘내키는 양복을 골르기도 쉽잖습죠. 손님 제가 하나 골라드릴까요?”
점원은 손을 맞잡은 채 헤헤거렸다.
“감사합니다.”
점박이 사나이는 몹시 고마워했다.
“손님께선 피부가 검으셔서 이 밤색양복이라면 척 어울리시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손님 의향은?”
점원이 건성으로 상점 안을 한 바퀴 휘둘러본 다음,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자기 옆에 걸린 밤색양복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어련히 잘 고르셨겠습니까, 실은 저도 밤색계통의 색깔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귀신님의 눈은 속여두 제 눈은 못 속입니다요, 손님.”
점원이 으쓱거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양복이 내 몸에 맞을지…….”
점박이가 말했다.
“저한테는 자가 필요없습죠. 눈이 곧 자니까요.”
점원이 목에 걸고 있던 줄자를 벗어 점박이의 허리를 쟀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양복바지의 허리를 재고 나서 말했다.
“이거 보십시오. 눈금 하나나 틀렸나 말입니다.”
“그야말로 안성맞춤이군요. 그런데…….”
점박이가 하던 말의 허리를 끊고 점원의 눈치를 살폈다.
“값이 얼마냐 그 말씀입죠? 염려마십시오. 그냥은 드릴 수 없지만 헐값엔 드릴 수 있습니다. 실례 말씀입니다만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으신 것 같고 또…….”
점원이 점박이의 아래위를 쓰윽 훑어보며 수다를 떨어대던 입에 뜻있는 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보아하니 당장 양복은 꼭 한 벌 필요하신 모양인데 많이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급히 입어야 할 일이…….”
점박이는 자기가 곧 취직이 될 것 같아 그 준비로 양복을 사려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손님, 옷이 날개란 말 못 들으셨습니까?”
점원이 맞잡은 손을 부벼대며 헤헤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계속 점박이의 주제꼴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자 점박이는 점원의 그러한 눈길에 주눅이 들었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지니까 이런 남방바람으로 다니기가 뭣 해서 말이죠.”
이런 얘기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늘어놓았다.
“주인께 잘 말씀드려서 왕창 깎아드릴 테니 여기서 좀 기다리십시오.”
점원이 양복걸이에서 밤색양복 한 벌을 벗겨 ㄴ자 꼴로 굽힌 왼팔에 척 걸치고 주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 양복을 저어버리 같은 녀석이 사갈 모양인데 값을 얼마나 받을까요?”
“얼마는 뭘 얼마야! 제값을 다 받아야지!”
주판알을 튀기느라 두 눈을 아래위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주인이 점원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퉁을 주었다.
“그게 아닙니다요, 사장님.”
점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한충 더 낮아졌다.
“그게 아니라니?”
주인의 의아한 시선이 점원의 얼굴 위에서 동그라미를 몇 바퀴 그렸다.
“저 어버리 같은 촌뜨기에게 얼마쯤 더 씌우면 좋겠냐 이 말씀입죠. 제 말씀은 바로 그겁니다, 사장님.”
점원의 목소리가 귀엣말로 바뀌었다. 그러자 주인의 눈길이 갑작스레 부드러워졌다. 한참 동안 그렇게 점원에게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던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 네 녀석도 많이 늘었구나.”
“그럼입쇼. 벌써 몇 년쨉니까. 제가 사장님을 모신 것만해도 이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점원이 엄지와 집게와 가운데 손가락 세 개를 펴서 흔들며 헤헤거렸다. 그리고 나서,
“반 장만 더 씌울갑쇼?”
가지껏 죽인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임마, 사내녀석 이 쩨쩨하게…… 씌웠다면 적어도 한 장은 넘어야지!”
주인의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눈초리에는 이미 조금 전의 그 부드럽던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2
조그만 장롱 하나, 받닫이 하나, 경대, 앉은뱅이 책상, 반닫이 위에 놓인 라디오 등이 그 방 살림의 전부였다. 이런 방 살림이 여기저기에 놓이고 남은 빈 바닥은 어른 세 명이 누으면 꽉 차버려서 송곳 하나 꽂을 데조차 없을 지경으로 비좁았다.
방 아랫목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고 앉은뱅 이 책상 앞에는 국민학생인 사내아이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3학년 2학기용 국어책 이었다.
꽃사슴
아가의 새 이불은
꽃사슴 이불.
포근한 햇솜의
꽃사슴 이불.
소록소록 잠든 아가
꿈 속에서
꽃사슴 꽃사슴
타고 놀겠지.
그 아이는 아까부터 읽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곤 했다.
“얘, 우진아. 책 읽는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애. 우경이가 깨겠어.”
점박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우경이도 이런 꽃사슴 이불을 사서 덮어줬으면 좋겠다아, 그치요?”
사내아이가 펼쳐든 국어책을 들고가 점박이의 눈앞에 디밀었다. 예쁜 사내아이가 꽃사슴과 단풍나무 잎의 무늬가 찍혀진 이불을 덮고 소록소록 잠들어 있는 원색 그림이 있고 그 옆에는 그 아이가 꿈 속에서 이불에 찍힌 무늬와 똑같은 꽃사슴을 타고 노는 그림 이 그려져 있었다.
“왜?”
점박이는 자기 아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시치미를 떼고는 국어책에서 시선을 거두어 아들의 얼굴로 옮겼다.
“우경인 다른 애들처럼 갖고 놀 장난감도 없잖아. 그러니까 꿈 속에서라도 꽃사슴을 타고 놀면 재밌을 거 아냐!”
사내아이의 목소리엔 불만이 그득하게 고여져 있었다. 그것은 자기들 형제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제 좋은 장난감을 많이 사다 줄 테다, 그러면 됐지?”
점박이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돈이 어딨어서 우린테 장난감을 사준단 말야, 순 고옹갈!”
사내아이의 목소리에선 조금도 불만의 빛이 바래어지지 않았다.
“걱정말라구. 이젠 아빠도 돈을 벌게 됐단 말야.”
점박이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말했다. 그러나 사내아이로서는 제 아버지의 그런 얘기가 조금도 믿어지질 않는 모양이었다.
“맨날 집 안에서 낮잠만 자는데 어디서 돈이 생긴단 말야. 어떤 미친놈이 낮잠만 자는 아빤테 돈보따리라도 갖다 준대요?”
“저 녀석이, 아빠한테 무슨 말버릇이 그 모양이냐!”
부자간에 오가는 얘기를 들으며 다소곳이 앉아서 삯바느질거리를 마름질하고 있던 부인이 호통을 쳤다.
“여태까지 애비노릇을 제대로 못 했으니 그런 얘길 듣게 되는 거지 뭘.”
점박이가 아들을 두둔하는 말로, 그러나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당신두 한심한 당신이우. 그래 아이버릇을 고쳐줄 생각은 않고 쯧, 쯧, 쯧.”
아내가 남편에게 가볍게 홀긴 눈길을 보냈다. 점박이는 아내의 그런 눈길에 앗차 싶었다. 아내가 버릇없는 아이를 꾸짖게 내버려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던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무조건 아들을 두둔할 생각으로만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날짜에 일자리가 생기게 되어 기분이 좋아 있는 데다가, 이제는 아이들에게 그 에들이 바라는 장난감이라든지 군것질 거리 따위를 풍족하지는 못하나마, 애비의 주머니돈으로 사줄 수가 있게 됐다는 자랑스런 속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이었다.
“여보, 나 며칠 있으면 일자리가 생기게 될 것 같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어서 확정 되는 대로 얘길하려고 했던 것인대……·.”
점박이가 담배를 피워무느라고 하던 얘기의 중허리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
“그래서 양복 한 벌 장만했지.”
점박이가 이런 얘기를 담배연기로 덮어 아내 쪽으로 조심스레 밀어보냈다. 차마 미안해서 못 했던 얘기인데 언제까지고만 숨기고 있을 수가 없어서 꺼내놓는 듯이 아주 조심스립게.
“어머! 양복을요?”
아내가 놀랍기도 하고 믿을 수 없기도 하다는 듯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다간 다시 힘없이 아래로 내리깔아 바느질거리 위에 떨구었다.
“정말이라구, 아까 밖에서 돌아올 때애 가지고 왔는데 당신이 없기에 그냥 장롱 속에다 걸어두었지.”
“정말이에요?”
“내가 뭣하러 당신한테 실없는 소릴 하겠소.”
점박이가 또다시 담배연기에 덮은 얘기를 수줍은 듯이 아내 쪽으로 밀어보냈다.
“……?”
“새 양복이 들어가 걸리니까 전에 입던 옷들이 말짱 넝마쪼가리처럼 보입 디다.”
“정말로 하시는 말씀이에요?”
아내는 아직 남편의 입에서 나온 얘기를 반신반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말이 그토록 믿기지 않거던 장롱을 열어보면 될 거 아니요?”
점박이의 목소리에는 이제 자랑스러운 빛까지 어리어 있었다. 두 내외가 찧고 있는 입방아에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앉은뱅이 책상 앞에 붙어 있던 사내아이가 갑작스런 불침이라도 맞은 듯 발딱 퉁겨지며 일어나더니 장롱문을 드르륵 밀쳐 열었다.
“야, 정말이구나. 우리 아빠도 이제 ˙다른 애들 아빠처럼 양복쟁이가 되겠구나!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이 양복을 입으면 다른 애들 아빠랑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양복쟁이 신사가 되겠구나!”
아이가 좋아라고 손뼉을 쳤다.
“그런데 당신 무슨 돈으로 양복을 맞췄어요?”
이렇게 묻는 아내의 얼굴에 얇다란 그늘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점박이는 놓칠 수가 없었다.
“떳떳한 돈이야, 아주 떳떳한!”
점박이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 바람에 그의 왼쪽 입꼬리 근처의 외씨같이 길쯤한 검정 점은 키가 줄어드는 대신에 폭이 넓어지게 모양을 바꾸었다. 그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맞춤양복이 아니라 기성복이야. 기, 기성복.”
“기성복은 돈 안 줘도 되나요? 내 말은 그 돈이·…·.”
“글쎄,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 돈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더없이 떳떳한 돈이라구!”
이렇게 떳떳한 돈임을 아주 떳떳하게 말했다.
“어떻게 떳떳한 돈이냔 말예요?”
“떳떳하게 바느질품을 판 돈이니까 떳떳하지. 당신이 바느질품을 팔아 내게 용돈으로 떼어준 것을 꼬박꼬박 모아뒀다가 이번에 큰 맘먹고 양복을 마련한 거라구. 그러니 그보다 더 떳떳한 돈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소!”
“그 알량한 용돈을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모았기에·…·.”
아내는 걷어올린 치마자락을 뒤집어 눈으로 가져갔다.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눈물을 찍어내기 위함이었다.
“야아 신난다! 우리 아빠가 양복쟁이가 돼서 돈벌러 다니면 이제 난 미술 점수 백 점을 맞을 수 있다아, 국어도 산수도 자연도 도덕도 모두 백 점인데 미술만 사십 점이었다구. 이제 아빠가 집에서 낮잠만 자는 게 아니라 일터에 가서 일하시면 미술 점수도 문제없이 백 점을 따낼 수가 있다구!”
아들 녀석이 또다시 손뼉을 쳐대며 이렇게 지껄여댔기 때문에 두 내외는 얼이 빠진듯 아들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대체,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한참 후, 점박이가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빠한테 일터가 생긴 것과 우진이 네 미술 점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아내도 남편의 뒤를 이어 자기 아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아이는 그런 물음들이 날아들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단 듯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있잖아요, 미술시험 땐데요, 선생님께서 있잖아요, 모두들 각기 자기 아빠들이 하시는 일을 그림으로 그려서 내라고 하셨어요. 며칠 후 선생님께서 나하고 이미경이라는 여자애하고 둘을 불러냈어요. 그리고 벌을 세우는 거였어요. 미술시험 시간에 장난을 했기 때문이라는 거였어요. 나는 아빠가 낮잠 주무시는 것을 그려냈고 이미경이라는 애는 그냥 백지를 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화가 나신 거예요. 사실, 우리는 장난을 했던 게 아니었어요. 이미경이는 즈네 아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없기 때문에 아빠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이름만 쓴 백지를 냈고 전 아빠가 늘 낮잠만 주무시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낮잠 주무시는 모습을 그렸던 거예요.”
두 내외는 아들의 나불대는 입술만 바라볼 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사내아이는 돌처림 굳어진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다 하던 얘기를 계속해 날렸다.
“미경이는 아버지가 없다는 얘길 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술점수가 빵점인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도 않고 벌을 섰으며, 나는 아빠가 직장이 없어 매일 낮잠만 주무신다는 얘기를 하는 것보다 벌을 서고 미술점수를 사십 점 맞는 게 더 낫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던 거예요.”
“……?”
두 내외는 그들의 아들 앞에서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거 보세요. 이게 그때 그린 그림이에요. 선생님께서 이미경이한테는 그 애가 낸 백지를, 그리고 나한테는 그날 그린 그림을 되돌려주시면서 집에 가져가서 벽에다 붙이라고 하셨어요. 다음 미술점수가 팔십 점 이상이 될 때까지……. 그게 바로 이 그림이에요.”
아이가 앉은뱅이 책상에 앉으면 곧바로 보일 수 있게 붙여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점박이 내외의 눈길은 방바닥에 팔깍지를 해 베고 벌렁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그 그림에서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눈길은 그곳에 붙박힌 듯 움직임을 잃고 말았다.
3
“그래, 도대체 얼말 더 기다려야 된다는 거예요?”
아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점박이의 가슴은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그 사람들이 취직을 시켜주긴 한답디까?”
“그야 물론이지. 그러니까 목을 빼고 앉아서 여태까지 기다려온 것이잖소.”
점박이는 아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러한 그의 눈길에 꼭 요 한자락 크기만한 정원이 들어왔다. 주인집 영감이 여름내내 소일삼아 가꾼 들국화가 색색으로 만발해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던 어느 날, 양복을 마련하기 위해 기성복 상점을 찾아갔던 일이 문득, 바로 엊그제의 일이기나 한 듯 선명하게 그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땐 아직 꽃을 피울 생각도 않던 국화가 저렇게 만발했으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구나!’
점박이는 그때, 그 상점 안 여기저기에 놓여있던 분재 국화의 꽃망울들을 눈앞에 떠올리며 이렇게 중얼댔다. 마치 쬐그만 푸른 콩알들을 쏟아놓은 것 같던 꽃망울들이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그 꽃망울들도 이제는 화사한 꽃으로 만발하여 상점 안을 온통 국향으로 가득 채우고 있겠지!’
이렇게 중얼대고 있던 점박이의 눈에는 때마침 불어닥친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들이 잡혔다. 담벼락을 타고 기어오른 넝쿨나무의 잎들이 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가 벌써 언제예요? 끝여름이었잖아요? 그때 나온 취직 얘기가 아직도 구름잡는 일처럼 아득하기만 하니 쯧, 쯧, 쯧.”
아내가 방 안에 에넘느레하게 널려 있던 바느질법을 손바닥 비로 쓸어 휴지통에 쑤셔넣으며 혀를 차댔다.
“끝여름이 아니라 초가을이었지.”
점박이가 아직도 눈길을 밖에서 끌어들이지 못한 채로 힘없이 중얼댔다.
“저 이 얘기하는 것 좀 들어보라지. 끝여름 다르구 초가을 다르우? 그래, 다르다구 칩시다. 어제가 초가을이었수. 그제가 초가을이었수. 아니면 열홀, 아니 보름, 아니 한 달 전이 초가을이었수?”
점박이는 점점 더 대꾸가 궁해졌다.
“아니, 왜 벙어리 노릇을 하는 거예요. 뭐라고 대답 좀 해보시구랴! 내 이 답답한 가슴이나 풀어지게·….·’
점박이는 아내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의 똘똘 뭉친 가슴을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어야만 했다. 그래서 깊은 생각없이,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만 말우. 내 가슴속엔 돌덩어리 같은 것으로 꽉 차 있다구. 그리구 취직을 시켜준다구 얘기했던 그 친구들도 그렇지, 모두 제 한 목구멍 멕여 살리기에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 나한테 구전을 받아 쓴 게 있나 불갈비 한 대, 아니 쓴 소주 한 잔 얻어먹길 했나, 도대체 뭐가 몸이 달아서 제 일처럼 발을 벗구 뛰겠느냐 말이오. 그렇잖소?”
이렇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그의 그런 말이 아내의 똘똘 뭉쳐진 가슴을 풀어주었을 리도 없는데, 아내의 입은 더 이상 열려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또 며칠이 후딱 지나갔다. 역시 취직에 관한 일은 개미 한걸음만큼의 진척도 없었다. 매일의 일과이다시피한 취직 재촉의 전화질을 게을리한 것도 물론 아니었다.
“엣수, 오늘은 전화연락만 하는 것으로 끝내질 말고 한번 그 친굴 찾아가보 세요.”
아내가 봉투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나 점박이는 그것을 냉큼 받아들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내밀고 있는 그 봉투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팔 떨어지겠수, 어서 받아요. 그리구 이 돈으로 그 친구분들에게 약주라도 한 잔 대접하구 오세요. 맨날 빈입으로만 부탁을 해대니, 일이 될 게 뭐예요. 오늘 꼭 그 친구분들에게 약주대접을 좀 하시우. 그리고 이쪽의 딱한 사정도 자세하게 얘길 하시구요, 알았죠?”
“그 친구들이 내게 술을 얻어먹지 못해서 힘을 쓰지 않는 것두 아닌데…….”
점박이는 아직도 아내가 내밀고 있는 봉투를 받아들 생각을 않고 있었다. 실은 그로서도 자기의 취직을 위해 힘쓰고 있는 그 친구들에게 술대접을 하고 싶은 생각은 벌써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경제적인 조건이 여의치를 못해서 그랬지, 그런 문제만 없었다면 벌써 몇 차례라도 술대접을 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서 쓴 돈을 아까워할 위인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않은 법이에요. 여러 생각할 것 없이 오늘은 꼭 약주를 대접 해드리구……다짐 을 받도록 하시라구요.”
점박이는 더 이상 마다할 수가 없어 아내가 떠맡기다시피하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는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며칠 전 깊은 생각없이 자기의 속맘을 아내에게 쏟아냈던 일을 후회했다.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만 말우. 내 가슴속엔 돌덩어리 같은 것으로 꽉 차 있다구. 그리구 취직을 시켜준다구 애기했던 그 친구들도 그렇지, 모두 제 한 목구멍 멕여 살리기에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 나한테 구전을 받아 쓴 게 있나, 불갈비 한 대, 아니 쓴 소주 한 잔 얻어먹길 했나, 도대체 뭐가 몸이 달아서 제 일처럼 발을 벗구 뛰겠느냐 말이오, 그렇잖소?’
그때 자기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던 얘기들이 그대로 아내의 입에 옮겨져 담겨 있다 쏟아져 나오기라도 하는 듯 지금 그의 귓가에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돈을 쓸 필요는 없는데…….”
점박이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지금 돈이 문제예요? 취직만 된다면 그깐 돈이 문제냐구요! 내년은 원래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으니 평생토록 삯바느질로 뼈빠지게 일을 해도 상관없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땡전 한 닢 없어도 괜찮지만 아이들 생각을 좀 해보시라구요. 저, 그림 못 봐요? 학교에서 선생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그림으로 그리라니까 그렸다는 사십 점짜리, 아버지가 낮잠 자는 그림말예요. 정신 좀 차리세요! 난 아이들만 아니라면 당신이 빈둥빈둥 놀든지, 밤낮없이 소대성이처럼 쿨쿨 잠이나 자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도 않는다구요, 그런데·…·.”
열을 올리던 목소리가 차차 코맹맹이 소리로 바뀌어지더니 아내는 급기야 하던 얘기를 중도에서 끊으며 말끝에 울음을 매달았다. 자기 설움에 겨웠던 것이다.
점박이는 더 이상 아내와 무릎을 맞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얼굴을 피해 돌린 그의 눈길엔 벽에 붙은 아들녀석의 그림이 뛰어들 듯 들어왔다. 그는 그 그림에서도 눈길을 거두었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 싱싱하던 국화꽃들도 몇 차례나 거듭된 된서리에 한풀 꺾여진 듯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 그는 또다시 엉뚱하게도 분재국화 화분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던 기성복 상점 안의 정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젠장, 그럴 줄 알았더라면 공연하게 그 비싼 양복을 사 입는 게 아니었는 데…….’
사실, 그는 당장에 취직이 될 것 같지 않았으면 그렇게 무리를 해서까지 양복을 사 입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잠깐 동안, 그때 춘추용으로 한 벌 장만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장롱문을 밀쳐 열고 엷은 밤색양복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내가 그러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눈에 밴 물기를 찍어 누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코맹맹이 소리였다.
“이제 그 양복은 철적어서 못 입는다구요. 그냥 잠바 차림으로 나가시는 게 더 어울려요.”
“그럴까?”
점박이는 아내의 얘기에 이렇게 대꾸는 했지만 입에서 나온 대꾸와는 달리 계속해 양복을 입었다. 꿴 바지의 앞단추를 채우고 혁대를 조였다.
“벌써 오래 전에 동복들을 차려 입었을 텐데, 당신 혼자만 철적게…….”
“내 주제에 동복이 어디 있고 하복이 어디 있어. 그냥 있는 대로 아무거나 입고 다니면 되는 게지.”
점박이는 윗도리를 꺼내어 팔을 꿰었다.
“어쨌던 오늘 나가시거든 가부간에 결정은 보시라구요.”
“염려 말라구. 꼭 취직이 되게끔 공작을 꾸며놓고 올 테니·…·.”
“공연한 흰소리는 퍽도 하시지!”
아내가 흘긴 눈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찔렀으므로 점박이는 속이 뜨끔했다. 그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그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 바람에 왼쪽 입꼬리 근처의 외씨 같은 검은 점의 키가 줄어들며 통통하게 살이 쪘다.
점박이는 그 길로 밖에 나가 자기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힘써 보겠다고 약속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만나기로 했다. 그날 밤, 점박이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들어간 술집에서는 소주에 홍어회를 안주 삼아 마셨는데, 그 술값은 건축회사에 일자리를 마련해보겠다고 약속했던 친구 개발코가 계산했다. 그는 말했다. 자기의 청이면 차마 거절치 못할 사람이 그만 중동(中東)으로 나가는 바람에 뜻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고, 그러니 당연히 술값은 자기가 내야 한다고.
두 번째 들어간 술집에서는 소주에 파전을 나눠 먹으며 기분을 냈는데 그곳의 계산은 제본소(製本所)에다 일자리를 마련해놓겠다고 큰소리를 친 안경쟁이 친구가 냈다. 그는 말했다. 실업자에게 술값을 내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제본소의 접지공들을 관리하는 책임자 자리여서 잘만 되었으면 큰소리 탕탕 치며 월급쟁이 노릇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제본소에서 다량으로 자동접지기계를 들여오는 바람에 접지공들이 무더기로 해고되었으므로 책임자 자리라는 그 의자 자체가 없어졌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그러니 2차의 술값은 당연히 자기가 내야 옳다고.
세 번째 들어간 술집은 커다란 한식집이었는데 그곳은 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술집 이었다. 꼭 갈비를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술취한 기분에 많이 걷기두 싫고해서 가까운 술집을 찾아든 것이 바로 그곳이었다.
“홀이나 빠에 가서 비싼 맥주를 마시느니 이런 데서 입가심으로 맥주를 쭈욱 한 잔씩 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구.”
안경쟁이 친구가 약간 혀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우리 점박이가 불쌍하다구, 벌써 업자(실업자) 노릇을 이태 동안이나 하고 있는데 그 동안 업자 노릇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으니까 갈비를 사주자구, 갈비로 영양보충을 시켜줘야 해. 그렇잖니? 안경쟁이야! 비록 우리가 취직은 못 시켜줬을망정 시원한 맥주에다 푸짐한 암소갈비를 사먹여서 영양보충을 시키는 것쯤이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냔 말야, 그렇잖니? 이 안경쟁이야.”
개발코 친구가 안경쟁이 친구보다는 좀더 심하게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래, 맥주는 내가 살 테니 염려 말라구. 야! 맥주 열 병!”
안경쟁이 친구가 종업원 계집에에게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열 손가락을 쫙 펼쳐보이며 소리쳤다.
“야, 그리구 말이다. 암소갈비 6인분, 하나앞에 2인분씩, 6인분을 빨랑 가져오란 말야!”
개 발코 친구도 종업원을 향해 오른쪽 손은 다섯손가락을 전부, 그리고 왼쪽 손가락은 집게손가락 하나만을 펼쳐보이며 악을 썼다.
“그래, 어서 갖고 와! 맥주 열 병에다가 암소갈비 6인분, 어서 가져오란 말야!”
점박이도 안경쟁이와 개발코에 지지 않는 소리로 청을 뽑았다. 그리고 그는 좌우에 있는 두 친구를 향해 계속 입을 놀렸다.
“1차는 안경잽이 네가 샀고, 2차는 개발코가 네가 샀으니까 당연히 3차는 이 점박이가 사는 게 원칙이다. 안 그러냐?”
점박이의 그 얘기에 두 친구는 술취한 눈이 반짝 빛을 냈다.
“그래, 원칙은 그렇다! 점박이 얘기도 맞는 얘기야!”
개발코가 말했다.
“우린 원칙대로 사는 거야. 점박이에게도 기회를 줘야 해 ! 우리가 점박이에게 술값을 지불할 기회까지 빼앗을 수는 없지.”
안경쟁이도 개발코에게 질 수가 없다는 듯 악을 썼다.
“야, 그래두 네놈들밖엔 없어, 뭐니뭐니해두 이 세상엔 불알친구밖에 없는 거야! 네놈들이니까 날 그렇게 생각해주지 누가 날 생각해주겠니? 부라보하자.”
점박이가 탁자에 갖다놓은 맥주를 따르며 외쳐댔다. 세 친구는 잔을 높이 들어 서로 부댄 다음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4
점박이는 방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인사불성이 되어 곯아떨어져 송장처럼 꼼짝을 못 했다.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소고기 냄새잖아!”
“그래, 아빠가 밖에서 갈비를 궈 잡숫고 오신 모양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취직건에 대해 이렇다할 얘기를 전혀 듣지도 못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자기 남편이 밖에 나가서, 부탁한 취직이 빨리 되게, 그리고 꼭 되게끔 하기 위해서 베푼 술자리가 결코 쩨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갈비 냄새로 미루어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취직문제가 쉬 해결될 것이라는 밝은 전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칫, 아빤 돈도 벌어오지 않으면서 맛있는 건 밖에서 혼자만 잡수시고 들어오신단 말야. 엄마, 우리도 집에서 갈비 좀 궈 먹어봐요! 난 갈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단 말야, 응?”
“인석아, 어서 숙제나 해, 이제 아빠께서 일자리를 얻게 됐는데 그깐 갈비가 문젠줄 아니?”
“그럼 갈비보다도 더 맛있는 게 있어?”
“있구말구!”
“그게 뭔데 ?”
“공연한 입맛 다시지 말구 어서 숙제나 마저 하래두!”
사내아이는 어머니의 홀긴 눈에 쫓겨 앉은뱅이책상 앞으로 가 가슴을 붙였다.
그날 밤, 점박이는 자기 아들이 그림을 그려대는 꿈을 꾸었다. 아들은 자기가 양복차림으로 바쁘게 설쳐대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그림도 그렸고 또 손잡이에 매달려 바깥을 내다보며 일터로 향하는 그림도 그렸으며 또 어떤 종이에다가는 버스의 좌석에 점잖게 앉아서 신문을 펼쳐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아들 녀석은 어느 그림에다가나 그 엷은 밤색양복만을 입고 있는 그림을 그려댔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꿈을 꾸고 있을 때, 그의 그 엷은 밤색양복은 마당을 가로지르고 매어 있는 빨랫줄에 걸린 채 겨울비를 맞으며 추욱 늘어져 있었다. 점박이의 아내는 양복에 배어 있는 갈비 냄새가 아들의 공부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맑게 개어 있던 하늘이 철적게 겨울비를 뿌릴 것이라는 점은 그녀뿐만 아니라 관상대에서조차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끝-
2016년 12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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