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편안을 누리는 길
빌립보서 4장1-7절 469 2006/ 9/1(금)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얼마 전 정부가 아파트 값 실거래가를 공개하면서 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재개발 17평형 아파트가 10억을 호가 한다는 것을 보면 점점 돈에 대한 가치가 상실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억하면 억하고 죽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1, 2억은 돈도 아닌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예배당 짓는다고 하면 기본이 100억, 200억입니다.
말이 100억 200억이지 보통 큰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건물값만 1000억 자리 교회가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점점 돈에 대한 가치와 개념이 상실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는 주간지 경제면에 ‘1조원은 얼마나 큰 돈일까?’ 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1조원 0만 12개입니다.
1조원을 다 쓸려면 하루 100만원씩 2천7백40년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1조원을 1만원권으로 바꾸어 차에 실으려면 5톤 트럭 22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폐공사가 1조원을 찍으려면 비용만 80억원이 필요하고 꼬박 44일을 찍어야 합니다. 길에 깔면 경부고속도로를 열 아홉번을 왕복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1조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워런버핏’이라는 투자가가 빌게이츠제단에 기부한 돈이 34조원입니다.
말이 34조원이지 정말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그런데 대우그룹 김우중 씨는 정치로비 자금으로만 4조원을 빼돌렸다고 하니까 기업이 온 전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1조라는 돈,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돈인데 만약 내가 1조원의 부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과연 나는 행복할까?
그 1조원이 내 마음에 참 평안을 가져다줄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무리 큰 돈이라 해도 참된 행복과 마음의 참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돈을 통해서 행복을 얻고 참 평안을 얻었다면 ‘돈 벌어라. 돈 안에 행복이 있고 평안이 있다’고 말했을 텐데 아직 역사상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과 참된 평안은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이고 참 평안인가?
오늘 본문은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정말 인생의 참 맛을 알려면 먼저 주 안에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인생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좀더 행복하고 좀더 평안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든지 돈을 좀 만들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좀더 행복한 삶과 인생의 평안함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녀를 힘들게 교육시키는 것도 실은 보다 안정적인 평안한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좀더 높은 자리, 좀더 높은 권세를 잡으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좀더 행복하고 좀 더 평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려 보아도 평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만이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비극이요, 죄인 된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것이 하늘의 참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과 평안.
바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 속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현실적인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살다보면 실패와 좌절도 맛보고 남들에게 우겨 쌈을 당하는 일도 무수한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주 안에서’주 안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 ‘주 안에서’ 입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들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 이하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인생의 참된 행복과 참된 평안.
그것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 속에 서있는 자만이 이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신뢰하던 인간관계가 깨질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경험할 때 사람은 가장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2절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사람의 이름이 거론 됩니다.
아마 빌립보 교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빌립보 교회가 갈등과 상처를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행복과 평안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처방으로 내린 주문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그렇게 해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잃어버렸던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면한 것이 염려를 기도로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가 남들 자는 시간에 나와서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금심과 염려를 덜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로 염려를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를 달고 산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물론 염려 없을 수 없습니다.
세상사가 복잡한 만큼 염려 또한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열쇠가 있습니다.
염려의 문제를 풀고 평안을 노래할 수 있는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기도의 승리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평안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항상 기버하며 자족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