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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화두삼아 <대구BBS 제1회 신행일기 대상작>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까까머리 중놈 아들’이란 놀림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난 나는 불교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6남매를 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심이 깊어만 갔다.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으로 불교를 무작정 싫어하며 부정하던 어느날 난 실명(失明)이란 엄청난 충격에 부딪치게 되었다.
맹아학교에 가기 전까지 나의 하루하루는 어두운 방안에서 꼼짝도 않고 실의에 빠져 살았다. 한 줄기 햇살조차 내 방안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그때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이 바로 아버지였다. 평상시 신도들에게 법담을 해주실 때 재미있어 귀동냥으로 듣던 법담을 아무것도 안 보이는 내게 해 주셨다.
아버지는 내게 여러 선사들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참선을 하라고 권하셨다. 참선을 통해 혜안이 트이면 모든 게 다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땐 그것이 아버지의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간절한 음성이란 걸 몰랐다. 당시 무명과 좌절 속에 있던 내게 그런 말이 들려올 리 없었고 오히려 반항심으로 타종교 방송을 크게 틀어 놓기도 하고 타종교를 믿어 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종교란 것이 단순히 믿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좌절의 시간이 이어지던 중 어느 날 불교방송 개국 소식이 들렸다. 당시 난 서울에 살았기에 일찍이 불교 방송을 접할 수 있었는데 ‘석가모니의 생애’라는 드라마는 단순히 재미의 수준이 아니라 내 영혼을 새로 눈뜨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왕이라는 세속의 부귀영화를 다 저버리고 고행의 수도생활을 선택한, 한 인간의 절실하고도 진지한 삶과 가르침은 차라리 눈물겨운 감동이었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에 의해 얻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고승열전’을 통해 효봉 선사의 늦깎이 고행,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했던 만공 선사의 일갈, 한암 스님의 고고하면서도 거룩한 법력은 나의 신앙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대학에 들어가 컴퓨터를 배웠고 음성 합성기에 의해 모니터링 되는 컴퓨터 덕분에 화면을 쳐다보는 대신 소리를 들어가며 내 서툰 타이핑 실력은 점차 속도를 늘려 나갔고 컴퓨터 통신도 가능하게 되었다. 통신 생활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 동호회 활동을 통한 불교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 주었다. 특히 경전이 거의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점자로 옮기는 것이 아려운데다가 시각장애인 대다수가 개신교나 카톨릭을 신앙하고 있는 터라 점자 도서나 녹음 도서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통신인들에 의해 제작된 불교관련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한글 경전이나 스님들의 설법 관련 자료는 내 공부에 박차를 가하는 고마운 계기였다.
석가모니불 염송은 시작한 지 넉달 정도됐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그 나름의 고충과 갈등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이 차츰 개선되어 가고 있다.
이에 감동하여 나 자신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화가 나거나 섭섭한 마음이 들 때마다 위의 방편을 응용하여 그들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염송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안 보인다는 걸 적당히 이용하여 나를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필요한 경우 ‘장애인’에 대해 호의를 갖는 척하며 접근하여 필요한 만큼 이용하다가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부처님이라 염송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자기 기만 같아서 잘 안되었으나 최근에는 화가 나거나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무조건 상대방을 부처님이라 믿고 “모자란 저 자신의 얕음을 잠시의 혼란으로 지적해 주시는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식으로 고마움의 염송을 되뇌이곤 한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속이는 수행인 듯도 싶었지만 하루 이틀을 거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이 길 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발길들이 그 얼마며, 이 대기 중에 흩어진 부처님의 숨결이 그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 내 주위가 축복감으로 밝아오고 미웠던 사람들도 나를 깨우쳐 주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혼란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 싫기만 하던 사람들이 차츰 이해도 가고 고맙기도 한 것이다.
내가 아직 무명속에 헤매면서 억지로 믿어 이 정도이지 진정으로 그들의 참된 성품을 알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세상이 감격스러운 환희가 될까? 그리고 그냥 마음속으로 부처님이란 말만 새겨도 이렇게 가슴 뛰고 밝아지는 세상인데 나 자신이 불도를 닦아 남들을 돕는다면 그것만한 보시와 공덕이 또 있을까도 싶다.
물론 ‘장애’란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 그렇게 유쾌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는 자’라 하였던가? 더하니 못하니 하는 분별의 개념으로 헤아린다면 ‘장애’라고 하는 화두는 내 삶을 곤두박질치게 하는 독설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게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한 생각 돌려보면 이것 또한 내게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되며, 불행 속의 사람들에겐 나 자신이 열심히 살수록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극제가 된다면 이것만한 마음의 보시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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