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를 뭘로 생각할까 생각하다 그냥 대선결과에 좌절하고 술먹고 막 쓰고 있습니다.
중구난방일테지만, 어떤 결과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다듬지 않은 거친 문장으로 올리고 싶어서 씁니다.
'
살아간다는 건 무언가에 빚지고 사는 것이다'라고들 합니다. 우리의 식사 역시 무언가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고기, 야채,
곡식 등 섭취하는 모든 존재에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계실
겁니다. 다만 식물이 음악을 듣고서 반응한다는 점이나, '말을 알아듣는 것 처럼' 행동하는 동물들, 수많은 '애완 동물들의
보은'을 보고 있자면 그들에게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생태론적 입장에서 사람도 이 세계의 일부라고
한다면, 모든 존재가 동등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언가의 희생에 빚지고서 살아 있는 겁니다.
이 희생을 보통 '소비'라고 바꿔서 말할 수 있겠죠. 우리의 삶에서 소비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
딘가로 이동하는 교통비, 식사비, 넓게 본다면 내가 지금 살아있기 위해서 소모하는 산소까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비'와 '수요'입니다. '수요'는 다음 주제엔 유행에서 다룰 듯 하니 패스하고, 이번에는 '소비'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려
합니다.
소비로 관련해서는 브루디외의 '구별짓기'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브
루디외의 '구별짓기'는 간단합니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비서울권(혹은 수도권와 비수도권, 중앙과 지방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요)만 봐도 간단하니까요. 올해의 가장 뜨거운 노래였던 '강남스타일'을 생각해 보세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상위 2%의
소비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의 명대사였죠?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물론 사랑이 돈은 아니고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물질만능주의는 하루의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연예인 X파일이나, 유출 동영상,
성상납 등을 보면 Part time Lover라는 곡이 절로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화폐의 소비'로서 해결하게 되었으니까요. 전
아직 화폐가 모든 것을 대처하진 않는다고 믿습니다만, 대다수의 일상은 해결해 줍니다. 그건 화폐가 무서운 점이죠.
'구별짓기'는 강남과 강북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난 너랑 달라' 라는 이야기죠.
'
난 이런 걸 가졌고 이런 걸 하니까 너랑은 달라' 라는 건데, 간단하게 말하면 엘리트 관점이기도 하고,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본능에
가깝죠.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보통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나 서슴치
않고 파렴치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난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난 저런 사람들과 달라',
'난 너희처럼 하등하지 않아' 라는 우월감. 단지 '난 아냐'라고 발뺌하는 것이 큰 것이죠.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이 뭔지 아시나요? 다들 '난 거기에 해당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매한 대중들'이란 표현이 있는데, 사실 그 속에 자기도 포함된 줄 모르고 자기는 상위 그룹에 들어가는 인종인줄 착각하는 거죠.
시
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 개념은 좀 복잡한 개념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실물'보다 '이미지'가 우선하는 겁니다. 흔히 유명 상표를
대면 뜨는 이미지가 있지요? 서비스업 교육 중에서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스튜디어스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
3초정도 생각하시고 내려주세요.
절
로 웃음이 나옵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거죠. 보통 '예쁘다'나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미안할 정도로 친절하다'고
합니다. 모든 스튜어디스가 그렇지는 않지만(유럽같은 경우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스튜어디스를 하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본 스튜어디스는
보통 저런 이미지고, 미인이고, 언제나 웃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서비스를 파는 존재로서 충실히 자기 일에 충실하지만,
우리에게 환상을 주고 있죠. '이들은 언제나 웃고 있으며 친절하고, 예쁜 사람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흔히 람보르기니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십니까? 보통 '빠른 스포츠카'나 '고급 브랜드'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람보르기니는
기원을 거슬러 가면 원래 농업용 트랙터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가 BMW에 빡쳐서(...) '우린 이제 승용차도 만든다!' 해서
지금의 브랜드 이미지를 완성하긴 했지만요. 우리는 좋게 말하면 적응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파블로프의 개입니다. 브랜드 명만
듣고도 기대하고, 흥분하는 우리가 있는 거죠. 실체는 전혀 보지도 못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
브랜드인 '샤넬'이나 '루이비똥' 같은 것들은 완벽한 물건만 내놓지 않습니다. 장인이 만들어도 실패작은 나오기 마련이고, 정교하고
정밀한 생산공정에서도 불량품은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드러난 상품의 질이 좋기에 그 물건은 믿고 써도
된다는 환상을 품게 되지요. '된장녀'라 불리는 명품에 환장하는 이들, 쇼핑에 중독된 이들은 물건보다는 자신이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흥분합니다. 그 물건이 자신을 '특별하게, 다르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You
can [not] advenced.란 문장을 전 좋아합니다.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혼재된 이 카오스가
가득한 문장에 열광합니다. 상반되는 의미를 지니지만, 이걸 하나로 조화시킨다면 자신을 뒤돌아볼 하나의 기회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다중적인 면을 지닙니다. 내가 지닌 '지위'는 타인이 가지지 않은 위치입니다. '덕후'인 나. '반백수'인 나. 그러나
이런 위치와는 달리 나는 '인간'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질성을 지닙니다. 먹지 않으면 죽고, 문명의 이기에 젖어 있으니까요. 어쨌든
'내가 남들과 다르게' 될 수 있는 존재를 소지한다고 해도 그건 내가 가진 것이 아닙니다. 소쉬르 기호학 개념인 기표와 기의
이야기까지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복잡한 이야기니 접어두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미지'란 시뮬라르크입니다. 실체를 배제한
이미지가 실체를 대체한 현상이죠. 시뮬라시옹은 'Do 시뮬라시옹'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프랑스어다 보니 어감이 좀 다르지만,
시뮬레이션이라 하면 어느 정도 감이 오실겁니다. 게임 장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상현실'이라고 말하면 개념은 비슷하겠죠.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같은 존재. 이게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것의 정체입니다. '미원', '호치키스', 'KIN사이다'를 말하면
어떤 대상이 생각날 겁니다. 이런 대상은 진짜 대상이 아니라 '브랜드명'일 뿐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인공죠미료'나 '스탬플러',
'청량음료'인데 어느세 그 이름을 대신하고 있죠. 우리는 이런 걸 소비하고 향유합니다. 설명도 오히려 쉽구요. 브랜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기업에서 만드는 제품의 물건에 대해서 붙는 상표'일 뿐인데 우리는 그걸 '실체'에 가깝게 생각하죠.
실제로 물건을 찾을 때 브랜드만 말해도 찾아주니까요. 비싼 브랜드일수록 나와 타인의 차이점을 늘려주고, 이걸 기반으로 우리는
차별을 가속화합니다. 난 아니라구요? 아니요, 우린 이미 익숙해 진 일입니다.
내년 2월에 바뀌는 현
정부의 대통령이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시죠. 서민 실황을 둘러보겠다고 수행원을 동반해서 다니는데 다들 '서민 코스튬 플레이'라고
까기 바쁩니다. 단적으로 '손녀가 300만원 페딩을 입고 있는데 대통령께서 손녀에게 서민과자를 사주고 좋아한다' 이런 상황은
기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죠. '난 당신들과 다른 게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니까요. 자신은 나름 동질성을 외치고
싶어하지만, 사람들이 구분지은 벽은 이미 넘어설 수 없는 벽입니다. 이런 격차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에
포획된 상태이고, 이 체제 속에서 자라나서 이 체제 바깥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그러려니'하고 '저런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야'라면서 체념하기 바쁩니다.
민주주의 개념이 모두에게 침투한 지는 한 세기가 체
안됩니다. 평등의 구현이 완전히 구현된 지는 한 세기도 안되었고, 한국에서 투표의 권리는 87년, 전두환 정권 이후에서야 겨우
이룩했습니다. 25년 남짓한 역사에서, 우리는 이게 전부인 양 알면서 희희낙낙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향유하는 것들은 민주주의
개념에선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게 '당연한 것'이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 주세요. 저 역시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소비하는 세대에 해당되지만, 그만큼 소중하다는 인식은 하면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열흘 남짓 남았는데, 급하게라도 4부와 5부는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4부는 '유행', 5부는 '일상'입니다. 큰 테마와 끌어오는 철학자는 유지하지만, 내용은 언제나 바뀔 수 있습니다.
P.S
이번 대선을 보며 '제주도는 4.3을 잊었고, 부산은 부마항쟁을 잊고, 5.18을 기억하는 광주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트위터에 부끄러움만 느낍니다.
첫댓글 나 한테 소비...사실은 신앙생활이라는 걸 하면서 바뀌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재우씨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죠.^^ 내 집대출 자녀교육 문화생활을 더 하려했던...의식이라는 것이 바뀌면 안 보이던게 보여요. 그래서 안하던짓을 하게 되죠.
지금도 소비는 고민인데...타인을 배려하는 소비.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