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밤보다야 어젯밤이 잠자리에 일찍 든 편이었지만 그래도 새벽 네 시. 아침 아홉 시 쯤 전화 오는 소리에 눈이 떴다. 눈이 뜨자 마자 한 말, 비 와? 몸은 가벼웠다. 가볍게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다섯 시간 밖에 못 자면 몸이 무거웠을 텐데 깊이 잤는지 가볍게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고, saba가 일어나고, 시치프스가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 찍은 사진 올린 것을 좀 더 손 봐야 해서 그 일을 했다. 시치프스와 saba는 바깥에서 준비 물품을 챙기고 선전물을 만드느라 지저분해진 마루를 치웠다. 금세 열 시가 되고 열 시 반이 되었다. 그런데도 단식장을 차리러 나갈 아침 도우미들이 더 오지 않았다. 시치프스가 이리 저리 전화를 걸었다. 아직 자는 사람,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 이제 출발한다는 사람……. 오늘은 다른 때보다 서둘러 시작해야 하고, 준비도 더 많을 듯한데 오히려 사람이 더 없으니 걱정이었다. 열 한 시 가까이 되어서였나. 늘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 진호 형이 아, 미안 미안 하며 숙소로 들어왔다. 나는 계속 컴퓨터로 하던 일을 했고, 마루에서 물품 준비와 사람들 연락을 하던 시치프스가 진호 형과 먼저 트럭을 가지고 단식장으로 나갔다.
토요일 혜화 역 4번 들머리
숙소에서 컴퓨터로 하던 일을 마저 하고 혜화 역으로 나갔다. 토요일이라 그런가? 길은 다른 때 보다 더욱 활기가 넘쳤다. 천막 앞 책상에는 saba와 동치미 선생님이 나와 있었고, 천막 안에는 이혜숙 선생님과 '내 안의 평화' 님, '내 안의 평화' 님이 꽃에 리본을 매고 있었고, '내 안의 평화' 님의 어린 딸 미진이가 옆에서 놀고 있었다. 파니 누나도 일찍부터 나와 악보를 챙기고, 기타 줄을 맞추며 무언가 준비에 바빴다.
단식장 둘레에 어젯밤 만든 바닥 포스터를 붙여 놓으니 분위기가 한 결 좋았다. 설렜다. 어쩌면 분위기가 더 그랬던 게 어쩌면 우리 단식장에서 몇 미터 앞에서 파병반대 선전전을 하는 이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은 '다함께'라는 운동 단체에서 나왔는데 책상 하나를 내어놓고 피켓들을 들고 서명 운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파병반대의 내용이야 다 같지만 우리가 시민들을 만나는 방식과 많이 달라서 그게 아쉽기는 했다. 소망의 나무에 손을 보태러 온 분들조차 거기에서 하는 것도 다 소망의 나무 활동인 줄 알았다 했으니 아마 지나가는 시민들이 볼 때에야 다 같은 패로 보이지 않았겠나 싶다.
어제부터 발전기가 움직이지 않아 시치프스는 발전기를 어찌해보러 뛰어다녔고, 오늘 작은문화제 판 준비를 맡아 하기로 한 파니 누나는 한 쪽 천막을 떼어 길에 깔아 그림 그릴 준비를 하면서 프로그램들 준비를 했다. 아멜리에는 요사이에 난 소망의 나무 및 바끼통 신문 기사들을 크게 뽑아 또 다른 선전물을 한참 만들었다.
사람들
오늘 소망의 나무에 온 사람들, 아 어떻게 여기에 다 적을 수 있을까. 기억하는 대로 다 적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하지도 못한다. 처음 가자마자 동치미 선생님을 보았고, '내 마음의 평화'님과 미진이, 이혜숙 선생님을 보았다. 조금 있으니 강아지풀님이 왔고, 인천 연우학교의 말랑이님과 그 친구 분, bookinheart님과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반장님,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김미자 선생님과 유정이 남매, 그리고 스사노와 스사노의 아들 현승이. 천막이 좁았다. 한아름씩 가져온 소국도 아주 많아서 다들 꽃을 다듬고 리본을 매는 일에 매달렸다. 그 때 쯤이었을까? 그 때 쯤 엄마가 왔나? 엄마가 왔다.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고구마를 하나 가득 구워 가지고 왔다. 천막 바깥에서 일하는 운영진들부터 도우미로 함께 하러 온 분들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하나씩 주었다. 아, 맛있겠다. 정말 맛있어 보였다. 여지껏 먹는 것 앞에서 한 입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 같은 거 별로 없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것들을 보니 입에 침이 돌았다.
엄마가 왔다지만 따로 엄마를 챙기거나 엄마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건 없었다. 엄마한테도 천막 안에 들어와 다른 분들이랑 같이 꽃 다듬는 일, 꽃에 리본 다는 일을 하자고 했다. 엄마도 사람들 틈에서 같이 꽃을 다듬고 리본을 매었다. 그러고 있을 때 겨레아동문학회 홍경남 선생님이 왔고, 고마리 선생님이 아이들이랑 함께 왔고, 창비 회의가 끝났는지 원종찬, 김상욱, 김이구, 김경연, 박상육 선생님들이 한 번에 같이 왔다. 천막 안 널려 있는 물건들을 치워 최대한 앉을 수 있을 만큼 같이 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 저 멀리 충주 무너미에서부터 노광훈 선생님과 김정남 선생님, 지원이가 올라왔고, 신정숙 선생님이 왔다. 찾아오시는 분들 앞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천막 안은 좁았고, 중간 중간에도 유인물을 인쇄하는 문제며, 방명록을 돌리거나 찾아오신 분들 사진을 찍는 문제들로 계속 연락하고 얘기해야 해서 나 스스로도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강아지똥 모임을 하던 교사 루이제와 감쪽이가 왔고, 겨레 모임의 강승숙, 심명숙, 정미영, 박숙경 선생님들이 왔다. 그리고 사흘 째 계속 오고 계신 이상교 선생님에 선생님과 같이 온 길지연 선생님, 산하 출판사에 다니신다는 분이 왔다. 이렇게 하루 도우미나 지지 방문자로 오는 분들 사이에 물론 소망 나무 운영자들도 하나 둘 계속 오고 있었다. 피플파워, ㅅ꼬미, 날자, 성호, 배준이, 배준이의 후배……. 아, 그리고 이라크에 함께 갔던 재진이 형도 알고 찾아왔다. 바끼통의 스캐너.
나는 천막 안에서 소망 나무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사실은 바깥에서는 무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그저 천막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있으면 그 분들께 인사를 드리며 얘기를 나누는 것, 그렇게 천막 안에 있느라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느라 문화제나 천막 바깥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바깥에서는 기타 소리,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천막에 페인트칠하는 준비를 다 해 놓고 노래 공연으로 행사를 여는 것 같았다. saba도 그쪽으로 가 마이크를 잡아주면서 사회자 비슷하게 멘트를 보았으니, 그 뒤부터 천막 앞 서명 책상은 강아지풀님과 김미자 선생님이 맡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계속 찾아왔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거기에는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 16기에서 공부하는 분이 있었고, 아마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여러 분 오지 않았나 싶다. 사실 시간대나 오신 차례 같은 건 지금도 헷갈려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저녁까지 온 분들 대부분은 글쓰기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이었다고 안다. 그리고 뒤이어 김권호 선생님이 오셨고, 김제곤 선생님, 엉겅퀴 님이 왔다. 그저 짧게, 짧게 인사만 드렸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해도 쓰지 않은 이름들, 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아마 보다 훨씬 많았을 거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천막 안에 있는 동안 작은 문화제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파니 누나와 성호가 기타 반주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 앞으로 넓게 깔아 놓은 천막 한 쪽 천 밑그림에 사람들이 하나 둘 달라 붙어 페인트 칠을 했다. 노란 잎, 초록 잎. 처음에는 밑선만 겨우 칠하던 게 나중에는 정말 환하고 따뜻한 소망나무로 활짝 열리게 되었다. 예뻤다. 붓을 든 사람들이 천막을 빙 둘러 천막을 칠했고, 누나의 노랫소리가 나직하게 또는 아주 발랄하게 울렸고, 그 둘레에 선 사람들은 노란 ‘보내지 말아요’ 스카프를 목에 두르거나 머릿수건으로 맨 채 싱긋 또는 함박 웃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노랫 소리 앞에서, 길바닥에 깔고 그리는 천막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고, 소망 나무에 건 수많은 색색 나뭇잎에 적은 소망들을 들여다 보았다. 아, 커다란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꽉 짜인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자유롭고 편안한, 그리고 흥겨운 마당, 잔치.
그 때에도 나는 계속 천막 안에 앉아 있었다. 나도 밖에 나가 색칠도 하고 반가운 얼굴 쫓아다니며 얘기 걸고 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날일수록 천막 안을 지켜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에서는 시치프스를 비롯해 saba, ㅅ꼬미, 날자, 배준이, 피플파워, 진호 형 들이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어젯밤 만들어 급하게 편집한 인쇄물을 내기 위해 햄스터가 바삐 왔고, 급하게 인쇄를 부탁해 찾아왔다. 소망 나무 운영진 뿐 아니라 천막 앞 책상에는 여러 설샌님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며 서명을 받는 도우미로 애를 썼다. 강아지풀님, 말랑이님과 함께 오신 분, 작가학교 16기 분, 이혜숙 선생님, ‘흐르는 강물’님, 엉겅퀴 선생님…….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는 동안에도 일부러 찾아주신 분들은 계속 이었다. 풀무질 은종복 선생님은 남북어깨동무어린이 모임이 있다면서 세 식구가 모두 함께 들렀다. 날마다 그러시는 것처럼 <<맨발의 겐>> 한 권을 주셨다. 아, 벌써 5권까지 받았는데 나는 여태 2권을 읽고 있다. 은종복 선생님은 오늘 남북어깨동무에서 발제 하나를 맡기도 했다시며 발제시 복사한 것 한 부를 보여주시며 거기에 우리 소망의 나무 이야기도 썼다고 얘기했다. 고마웠다. 아버씨는 방명록에도 한 바닥 정성껏 긴 글을 쓴 뒤, 잠깐 마이크 좀 쓰고 싶다 하시더니 천막 앞에서 큰 소리로 얘기했다. “이 앞을 지나는 민족 성대 학생 여러분, 나는 풀무질 서점 은종복입니다. 지금 이 앞에서 파병을 막기 위해……” 마음이 따뜻했다.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여섯 시 쯤 되었을까. 엄마가 그만 들어가보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좀 더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는 벌써 불편한 천막 안에서 네 시간 가까이나 있었다. 사람 많은 길가, 이런 천막 농성장은 또 얼마나 낯설 것이며, 밥 굶는 아들 옆에서 마음은 또 얼마나 안 되었을까. 마땅히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던 엄마는 기도하듯 앉아 있다가 그만 일어났다. 나는 천막 앞에서 문화제를 이끄는 도우미들에게 부탁해 엄마에게 얘기 한 번 들어보게 하자 했다. 엄마는 사람들 많은 데도 별로 떨지 않고 얘기를 잘 하는 것 같았다. 아s 실은 엄마가 마당에 나가 얘기하는 것도 잘 못 보았다. 엄마가 서명받는 종이, 그것 좀 많이 복사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하숙생들에게 나 이거 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서명 용지 좀 갖다 주면 자기네 강의실에서 많이 받아다 주겠다고들 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것 복사 좀 부탁하고 어쩌고 하면서 또 사람들 사이에 있느라 엄마가 앞에 나가 하는 얘기를 못 들은 것이다.
의사 선생님
엄마가 앞에 나가 얘기를 하고 들어와 이제 정말 지하철을 타러 가려 할 때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청년 한의사’에서 온 이영욱 선생님이다. 우석균 선생님이 날마다 돌봐줄 수 없으니 함께 일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얘기해서 돌아가며라도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거였다. 어제도 인의협의 이상윤 선생님이 다녀갔다.
이영욱 선생님은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예전 요르단에서 뵌 일이 있다. 바그다드 점령 뒤 내가 요르단으로 나와 있을 때 이 선생님은 보건희료팀 1진으로 이라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팀 숙소로 쓰던 알 아미라 호텔에서 만난 기억이 난다.
혈압을 쟀고, 맥을 짚었고, 혀를 보았고, 내가 내 몸상태를 애기하고. 나는 내가 느끼기에 정말 몸이 가볍고 괜찮다 여기고 말씀을 드리는데 선생님 얘기가 단식을 해서 체력이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단식자 본인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주의할 것들을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었다. 엄마는 그 옆에 앉아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걱정이 더한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과 검진을 하고 일어나 앉으니 어느 새 바깥이 더욱 어둑해져 있었다. 잠깐 사이인데도 날 어두워지는 건 그렇게 빠르다. 도우미들이 초에 불을 붙여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그리고 곳곳에 초를 세웠다. 작은 불빛. 불빛은 꼭 사람 가슴 께, 턱 아래에 들려 그이의 얼굴을 감빛으로 물들였다. 초를 든 사람들 모두 얼마나 그리 예쁜지.
저녁 시간이 되어 포장마차들이 나왔다. 우리가 무대로 삼던 자리는 그만 내주어야 했다. 마이크를 옮기고, 앉아 노래하고 기타를 칠 걸상과 악보 받침대를 옮겨 다시 판을 만들었다. 무대에는 아이들의 노래도 이어졌다. 고마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나와 소망나무에게 쓴 편지를 읽은 뒤 노래를 불렀고, 주희 선생님네 아이들이 나와 노래를 했다. 아주 어린 아이가 나와 노래를 하기도 했다. 정화 선생님은 오카리나 연주로 사람들 마음을 울렸다. 그 곱고 긴 호흡의 소리를 듣노라니 이게 평화의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주황 알전구로 불을 밝히고, 촛불을 켜고, 사람들 나와 한 마디씩 이야기를 하고 그 가운데 홍경남 선생님, 노광훈 선생님은 즉석에서 노래도 하고, 파니 누나의 노래로 사람들 마음을 크게 울리고…… 작은, 정말 작은 문화제는 무르익었다.
어둔 천막 앞에서 조금 늦어 온 사람들도 만났다. 반전평화팀으로 같이 다녀온 혜경 씨, 일부러 소식듣고 서울에 올라온 그리운 석고개의 갑식이 형과 같이 일하는 건수 아저씨, 주희 선생님네 식구, 파랑새 나눔터 공부방의 꽃님 선생님, 상엽 엄니네 세 식구, 그리고 꼬바리 선생님.
순대 곱창 볶음과 닭갈비
다른 때 같으면 마이크 잡고 얘기하는 일 잘 못했을 텐데, 그저 어렵고 쑥스러워 대충 말을 뭉개다가 마치거나 했을 텐데 오늘은 힘이 났다. 나도 놀랄 정도로 하고픈 말, 붙잡고 싶은 얘기들이 또박또박 나왔다.
정말로 안 되는 거, 그거 맞지요. 우리 군인들이 침략군이 되어 그곳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러 가는 일, 친구가 된다고 하면서 어깨에는 총을 들고 가는 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하는 일. 나는 지금 몸도 아주 좋고, 마음도 좋습니다. 힘없고 보잘것 없는 것들, 그것들이 안간힘으로 내는 작은 몸짓, 그저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싸우는 거지만 우리들 하나 하나 마음 밭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티워 가꾸기 위한 싸움 또한 함께 하고 있는 거니까요.
일부러 소망나무를 만나러 온 분들과 함께 한 뒷풀이는 길을 건너 커다란 3층 건물 순대곱창과 닭갈비를 파는 집이었다. 아, 맛있겠다. 오랜만에 뵌 분들, 처음 뵙는 분들, 멀리서 오신 분들, 늘 곁에서 뒹굴며 일하던 동무들, 오십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이 왁자하게 술잔을 주고 받으며 놀았다. 좋았다. 물만 먹고 앉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도 나중에 순대랑 곱창이랑 먹어야지, 닭갈비 먹을 때는 고구마 익힌 것부터 골라 먼저 먹어야지.... 꿀꺽.
소망나무 운영진들
뒤풀이를 마치고 운영진들이 술을 더 사들고 들어왔다. 그래서 마루에 모여 앉으니 파니 누나, 진호형, 시치프스, ㅅ꼬미, 염창근, 아멜리아, 배준이, saba. 이제 우리 일주일 되었다. 그 사이 시행착오도 많았고, 서로 이해가 모자라거나 일을 푸는 방식이 달라 눌러 두고 있던 얘기도 많았다. 사람들 모두 일주일이라는 고비를 넘기며, 그리고 오늘 문화제를 잘 치러내고 나서 서로 마음에 두고 있던 이야기들도 꺼내었다. 서로 일 역할을 나누는 문제, 일을 진행헤가는 방식의 문제, 그 안에 있는 공유와 소통, 믿음의 문제 …….일을 꾸리는 과정에서 해명할 것이 없지 않지만 나 또한 새겨들을 얘기들이 많았다. 부끄러운 마음도 많았지만 언제나처럼 고마운 마음이 더 컸고, 쓴소리 단소리 함께 나누는 이들 모두가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내 언제 이보다 더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활동을 해보았나 싶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한 주일,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전체 회의는 화요일 쯤 하는 것으로 입을 모았다. 그 자리에서 2주 뒤에도 이 단식단을 계속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그만 거둘 것인지, 가져간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가져갈 것인지, 거둔다면 그 어떤 모습으로 그렇게 할 것이며 이후 활동으로는 어떻게 이어낼 것인지 따위가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고려할 것이 많다. 객관 조건으로는 파병과 관련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할 것이며, 또한 의사 선생님이 판단해 주는 내 몸 상태이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갖는 힘이나 여건, 처지들 또한 살펴야하겠지.
새벽까지 반 정도 쓴 일지를 올리고 잠든 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다시 썼다. 이제 다들 나만 보면 일찍 자라, 쉬어라, 말 많이 하지 마라 잔소리를 하면서 몸관리를 걱정하는데, 으이구. 이것들. 내가 일등으로 일어났대요. 푸하하. 지금은 다들 나가 단식장을 치고 서명 받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치프스는 아직도 이불 속이래요. …… 녀석, 얼마나 피곤했으면, 입가는 다 곪아 터지고. 나한테만 잔소리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에서 푹 쉬어라. 이 녀석아, 너야말로!
네, 그럴게요. 혹 다음 주 마당을 펼칠 때 함께 하실 수 있으면 다녀가세요. 너무 멀어 선뜻 들러가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요. 저는 지금 얼굴도 아주 밝습니다. 저도 놀라고 있어요. 요즘은 내가 보아도 내 몸이 참 기특해요. / 아 참, 쓰다 만 데부터 이어서 쓴 거 올렸어요.
첫댓글 광주는 갑자기 추워졌어요. 서울은 더 추울텐데... 또 문화제 소식도 궁금해서 계속 소식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사람들도 많이 오고 참 좋았을것 같아요. 물 많이 드시구 글은 조금만 올리구 정말 정말 조심하세요.
네, 그럴게요. 혹 다음 주 마당을 펼칠 때 함께 하실 수 있으면 다녀가세요. 너무 멀어 선뜻 들러가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요. 저는 지금 얼굴도 아주 밝습니다. 저도 놀라고 있어요. 요즘은 내가 보아도 내 몸이 참 기특해요. / 아 참, 쓰다 만 데부터 이어서 쓴 거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