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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서 나는 ‘나무아미타불’ - 자성염불 소리
수환(세종시 학림사 주지)
1) 뜻밖의 친견
”이 시대의 이런 스님이 계시는구나!“
1990년대 초 송광사에서 펜으로 써서 낸 「극락세계 유람기」가 선방과 강원에 나돌아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그 뒤 한 동안 중국에 가 있게 되었을 때 책을 쓴 관징 스님을 찾아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이 얼마나 큰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2003년 3월 5일 큰스님을 친견할 기회가 왔다. 상좌인 능행 스님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스님, 중국에서 오신 관징 스님이라고 아시는지요? 그 스님이 갑자기 다른 일정을 다 제치고 우리 정토마을에 오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말도 통하지 않고 중국 스님은 무얼 잡수시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중국말이 가능하시니 오셔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날 관징 스님이 초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환자들이 많고 죽은 사람이 많은 곳이라 천도해주시기 위해 다른 일정을 미루고 일부러 정토마을을 찾아와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다음날 천도재를 마치고 난 뒤 다음에 오시면 학림사에서도 법회를 해달라고 초청하였다.
그해 가을 10월 11일 갑자기 중국 동포 통역관인 강윤철 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관징 큰스님께서 그곳에 가시기로 했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날짜가 하루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전화로 연락하여 큰스님 법문에 참석하도록 초청을 하였다. 10월 12일 관징 큰스님 일행이 도착하셨고, 다음날 그래도 몇 십 명이 모여서 큰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원래 학림사는 신도들이 많지 않은데다 갑자기 법회를 갖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진지하게 수행하는 대중들이기 때문에 좋은 법회가 되었다.
2) 극락 갈 때 색신은 어디 두고 가셨습니까?
2004년 가을 10월 23일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학림사에서 법회를 가졌다.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미리서 연락하지 않고 갑자기 전화연락을 하였지만 작년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미리서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전화로 연락을 해서 스님들과 신도들이 제법 법당을 메웠다.
특히 이번에는 미리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에게 부탁하여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 . 대세지보살 세 분을 모신 삼존불을 10장 그려 놓았다가 삼존불을 직접 뵙고 오신 관징 스님에게 점안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10장의 삼존불 탱화를 모셔가는 신도들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보시를 올리도록 하고 서울 보살 등에게 독려하여 관징 스님의 저서인 「극락세계 유람기」와 「정토선 정의」를 법보시 하도록 하였다.
이번에는 특히 큰스님들이 많이 오셨기 때문에 관징 스님과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색신을 벗어나면 색신은 썩는 것인데, 큰스님은 (육신을 사바세계에 두고) 6년 반 동안 극락을 다녀오시는 동안 색신을 어디다 두고 다녀오셨는지요?“
”나는 관세음보살의 안내로 먼저 나한동으로 가서 그곳에 육신을 두고 극락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문답이 있었지만 수환 스님은 또 한 가지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
”지금 나는 내 안을 다 볼 수가 있다.“
수행을 해 본 사람들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다음날 어떤 사람이 천도재를 원해 관징 스님께 부탁하니 그 집 영가들을 다 쓰라 하고는 천도를 진행하였다. 천도를 마친 관징 스님이 말했다.
”여자 아이를 하나 빼먹었더구나!“
그러자 천도재를 지낸 신도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예, 스님! 너무 어려서 잃어버린 아이라 깜빡 잊어먹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도 잊어버린 어린 딸까지 찾아서 천도를 해 주신 큰스님의 법력에 모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10월 24일 수환 스님은 마지막 가시는 날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수환 스님은 이것이 관징 스님 생전에 한국을 16번 방문하고 마지막 공항을 떠난 날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3) 몸속에서 ‘나무아마타뷸’ 염불소리가!
수환 스님은 관징 스님과 인연을 맺은 뒤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극락에서 배워 왔다는 정토선 수행이었다. 그러나 그 염불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염불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신도들에게 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해 보자!“
이렇게 해서 같은 절에 계시던 석천 노스님과 함께 한철을 직접 해 보았다. 관징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두 번은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두 번은 속으로 따라 하며 주의 깊게 그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귀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염불소리는 스스로 한 염불 소리도 아니고 관징 큰스님이 하시던 염불소리도 아닌 아주 특이한 염불소리였다. 석천 노스님도 마찬가지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이 귀에서 염불소리가 들리는 이적을 경험하였다. 이것이 바로 관징 큰스님이 법회 때 말씀하신 자성염불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런 좋은 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정 스님에게 배워 한 철 동안 했던 염불을 그대로 녹음해서 대만에서 염불기를 제작해 왔다. 그리고 신도들에게도 정토선 염불을 권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염불기를 틀며 열심히 하던 한 신도도 몸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염불법이 참으로 수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주로 선방만 다니다가 염불을 통해서도 일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지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신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정토법문을 이어 갔다.
”극락은 있다.“
이것이 관징 스님이 정확하게 심어준 믿음이었다. 신도들이 좋아해 절에서 뿐 아니라 각기 자기 집에서 열심히 하고, 매 달 보름에 있는 미타재일에는 정토선 염불을 하고 있으며, 성지 순례 갈 때도 스님이 먼저 선창하면 모두 따라서 하는데 단체로 하게 되면 그 소리가 정말 장엄하게 들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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