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카라얀 탄생 100주년,
올해는 카라얀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
그래서인지 카라얀의 음반을 유난히 많이 소개하고 있다.
프란츠 레하르(Frants Lehar. 1819~1895)의 오페레타
<경기병(輕騎兵)> 서곡을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듣는다.
카라얀은 본래 그리이스 이민자의 후손.
그의 선조가 작센주의 드레스덴으로 이주하였고
할아버지 때부터 잘츠부르그에 정착했다고 한다.
-드레스덴은 어떤 곳인가?
작센 왕국의 수도이며 신성로마제국의 역사가 깃든 고색창연한 고도. 그리하여 2차 대전 당시,
연합국이 감히 이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히틀러가 독일의 중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옮겨 놓기도 했던 도시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연합국이 드레스덴 데이,
이른바 D-Day를 설정하고
공격을 감행하여 도시는 폐허가 되고 만다. 그로부터 20일 후에 2차 대전이 막을 내리자
곧이어 드레스덴 재건 계획이 수립되고
연합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도시가 재건되었다고 한다.
드레스덴 시민들은 흩어진 벽돌을 조각 조각 모아
재건에 힘을 쏟았다고......
(드레스덴은 독일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라는인데
그 이야기는 차후에......)
“카라얀만큼 영상 시대를 미리 내다본 음악가는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감상하는 카라얀의 음악은 대부분 도이치 그라모폰사가 촬영해 놓았던 필름을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로 재생한 것입니다. 카라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은 주로 3개 회사가 내놓은 것들인데, 독일의 DG는 주로 베를린 필이 연주한 독일 정통 음악을, 영국의 DECCA는 빈 필이 연주한 오페라 음악을, EMI는 카라얀이 48세에 베를린 필로 가기 전까지 40대 초중반에 주로 지휘한, 모노 후기, 스테레오 초기의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카라얀이 만년에 소니사와 합작으로 텔레멘디알이란 영상회사를 설립하는데 이때 녹음한 것들이 소니 음반으로 출시되고 있지요.”
“카랴얀은 악보를 보지 않고 거의 모든 곡을 암보로 지휘했습니다. 토스카니니 역시 암보로 지휘했고 로린 마젤은 8세 때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암보로 지휘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게오르그 솔티 같은 사람은 작곡가에 대한 예의라며, 악보를 꼭 보고 지휘했습니다. 악보를 보고 지휘하든, 암보로 지휘하든, 어느 게 더 낫다 못하다 말할 수는 없는 문제지요.”
“카라얀은 영욕의 세월을 살다 갔습니다. 이런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관한 한, 베를린 필과 그가 이끌어 낸 음악은 참으로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나 독일 음악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클래식 음악으로 이끈 사람도 아마 카랴얀일 겁니다.”
두 번째 순서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을 듣는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어두움(Darkeness)”이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던 곡인데 3번과 함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곡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3대 연주자는 이 곡을 발견하고 초연한 파블로 카잘스, 또르뗄리에,
로스트로포비치입니다. 이 세 명의 음반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연주자별로 차이가 있습니다만, 모두 다 명연주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러시아 특유의 강한 주법을 구사한다면 또르띨리에는 프랑스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선율을 선보입니다. 참으로 인간사 만단정회를 담아내는 음악이 바로 이 음악입니다.”
카잘스도 말했단다. 이 음악을 연주할 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고. 카잘스를 빌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음악.
파블로 카잘스를 기념해서 열리는 프라드 축제 40주년에서 또르띨리에가 연주한 영상으로 감상한다. 이 곡 연주 후 6개월 후 또르띨리에가 세상을 떴으니 그f로서는 마지막 공개 연주이고, 그의 마지막 영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 35
“음악사상 3대 D-major 협주곡이 있습니다.
베토벤이 1806년 36세에 작곡한 Op. 61
브람스가 1878년 35세에 작곡한 Op. 77
차이코프스키가 역시 1878년 38세에 작곡한 Op. 35가 그것입니다.
베토벤과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자웅을 겨루는 걸작인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로서는 브람스가 베토벤을 유일하게 능가한 것이 바로 이 D-major가 아닌가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작곡된 해 12월 4일 친구인 브론스키에 의해 비엔나에서 초연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중 유일하게 러시아 밖에서 초연된 곡이지요.
러시아 음악을 알려면 차이코프스키의 디 메이저 하나면 충분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독특한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는 곡입니다. 끝 악장으로 갈수록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놀랍습니다.”
이착 펄만의 바이올린과 유진 올만디(Eugene Ormandy)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듣는다. 1974년, 이착 펄만 35세 때 필라델피아 홀에서의 연주회 실황이다.
목발을 짚은 펄만이 자리에 앉아 바이올린 활을 든다. 귀에 익은 선율이 흘러나오고 한 방울 두 방울, 펄만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이윽고 1악장이 끝나자 오케스트라 단원이 넋을 놓고
연주자 펄만을 지켜보고
객석에서는 댐의 물이 터지듯 박수가 터진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습인데,
디브이디로 감상하는 관객들도 덩달아 박수를 칠 정도이다.
모두 다 홀린 듯하다.
이착 펄만의 표정 자체가 음악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
2악장, 3악장에서도 그의 무궁무진한 표정과 현란한 연주를
보고 듣는다.
객석을 나와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올 때까지
차이코프스키가 만들어 내고
이착 펄만이 이끌어 냈던 선율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앞으로 바이올린을 좋아하게 된다면
열에 아홉은 이착 펄만 때문일 것이다.
2009. 홍차 |
첫댓글 이 글에는 댓글이 하나도 없네요^^* 홍차님, 저무는 마지막 달도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아기장수님 비롯 꽃구름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