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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7일에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 기념일 추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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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명 신 청 이 유
판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한글만쓰기 운동을 해 왔습니다. 특히 사람 이름부터 한자로 적지 말고 한글로만 적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은 되도록이면 우리 토박이말로 짓기를 국민들께 호소하는 운동을 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제 이름은 한자 이름을 지금까지 그대로 써왔습니다.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엔 이름을 반드시 한자로 지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또 이름을 한자로 적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이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이름에는 동명이인이 있을 수밖에 없고, (한자 이름이나 한글 이름, 영어 이름도 마찬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란 게 있어서 사람 구별도 잘 됩니다. 한자 이름은 전래돼 온 관습일 뿐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필수적인 게 아닙니다. 저 역시 한자 이름을 부모님한테서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자로 이름을 적는 경우는 이따금 공문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로서 또 연출가나 직장인으로서도 저는 제 이름을 사용할 때 언제나 한글로만 ‘이 봉원’이라고 적었고, 남들도 제 이름이 한자로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은, 제가 날마다 지니고 다니는 제 주민등록증에는 한글 이름 옆에 한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떳떳한 자주 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왜 남의 나라 글자로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사람은 제 이름을 ‘리 펑 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참 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이름이 한자로만 적히던 시절, 제 주민등록증에는 오랫동안 내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요. 그러니까 ‘鳳’(봉)자여야 하는데, ‘風’(풍) 자가 적힌 채 발급됐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잘못된 줄 모르고 오랫동안 그것을 사용했고, 그 뒤로 어느 정부 기관에서도 제 주민등록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이 없었지요. 그런 중에 제가 중국에 가서 중국 간체자를 대면한 순간 제 이름이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제 이름 가운데 글자 ‘鳳’을 어느 유식한(?) 동사무소 직원이 약자랍시고 ‘風’자의 약자를 쓴 것입니다. (‘几’ 속에 ‘又’를 쓰면 그런 대로 ‘鳳’의 간체자가 되는데, 획이 하나 없는 ‘X’ 자를 썼기 때문에 ‘風’의 약자(간체자)가 돼 버린 것.) 이제 막 예순 살이 된 저는 여생을 바쳐 ‘한말글 이름의 날을 정해 그것을 법정기념일이 되게 하는 일’을 펼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때를 계기로 한자로 된 제 이름을 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사회 단체나 저의 작품을 읽어 주는 독자들, 그 밖에 저를 아는 모든 지인은 제 이름이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또 아는 이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이름에서 한자를 빼어 버린다고 해서,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줄 리도 없고 또 남들도 전혀 혼란을 느끼거나 불편해할 리가 없습니다. 사실 저는 한동안 제 이름을 순 우리말로 바꿀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그것은 남에게 다소 혼란을 줄 수가 있고, 또 이것저것 다 고치려면 매우 번거롭기도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저는 제 이름으로 창작생활을 하고 있고, 지금도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글 이름으로 개명은 하되, 제 정체성이 흔들리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나 불편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제가 평생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한글 이름 쓰기 운동의 길잡이로서 떳떳이 남 앞에 나설 수 있는 한 방법을 말입니다. 그것은 제 이름을 한자에서만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한자를 적을 필요가 없는 오로지 한글로만 적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비록 발음은 같을지나 한자가 없는 소리글자 ‘봉원’은 한자 이름 ‘鳳遠’과는 엄연히 다른 이름이고, 따라서 이것은 개명이랄 수 있습니다. 판사님, 부디 제 청원을 거두어 주시어, 40여 년 동안 저를 짓눌러온 굴레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홀가분하고 떳떳하게 한말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007년 5월 7일 신청인 이 봉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