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다가선 노인
마태복음에 부자 청년이 등장한다. 이승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해왔고 부모형제와 친인척들에게 까지 도리를 다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셨다. 부자 청년은 낙담하고 돌아섰다. 자신이 평생 정직하게 모은 재물도 함께 가지고 가는 천국, 그런 영생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핍의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장이 거절되었다.
결핍의 사고란 일단 내 손에서 빠져나가면 없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본전 생각이 나서 버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는 풍요와 빈곤이 존재하나 수고하고 정직하게 만든 재물이라고 해도 자신만을 위해서 쓰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욕심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재물은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이므로 물질에 얽매이지 말고 남에게 벗어주고 오라는 말씀이다.
늦깎이로 성당 문을 들어선 지 1년이 지났다. 금년 여름은 너무 무더워서 새벽 미사에 참석하였다. 아직도 기도문조차 변변히 외우지 못하지만 나 또한 결핍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달 신자라고 함이 마땅하다. 교무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최소한의 금액을 적어놓고 체면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더욱이 새로 건축한 성당이다 보니 교우 모임도 있고 특히 건축헌금등 몇가지 권고하는 사항이 있는데 무관심하게 나 홀로 다니고 있는 나 홀로 신자이다. 미사 때 마다 내는 헌금도 누가 볼까 봐 최소한 금액만 몰래 봉투에 넣고 다니는 인색한 마음에 부끄러워하고 지냈다.
성당의 주임 신부는 오십이 조금 넘었는데 강론을 들어보면 매우 성실하고 깊이가 있는 내용들이라 보람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성당 생활에 대한 감상등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였다.
“ 제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지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당이 신축 건물이라 여러분들에게 부담도 많이 드리고 제 생각에는 교우 간에 단합등을 목적으로 청년이나 부녀회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가 말로만 평화의 인사를 나누시라고 하였지만 세대간 계층간을 골고루 살피지도 못하고 또 진정한 평화의 전도사 노릇도 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였습니다. 지난번 미사 때 어느 신도분이 헌금 봉투에 편지 한 장을 적어 보내주셨는데 그날 저녁 그 편지를 읽고 부끄러운 마음에 사제관에서 한 참을 속죄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 신부님. 저는 나이가 많아서 신부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교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경조사에도 찾아가 보지 못하고 살고 있어서 항상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배우자도 일찍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데 사는 게 여의치 않아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때는 사업도 해서 잘살아 보기도 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홀로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노인 일자리를 찾아서 조금 받는 돈으로 세를 내고 생계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사정도 어려운데 다만 얼마라도 건축헌금을 내고 싶은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교무금도 신도의 의무인데 그것도 내지 못한채 성당을 찾을 때마다 성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오늘 장문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신도 생활도 적지 않게 했습니다만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제가 수중에 4,000 원이 있었으나 복지관에서 점심을 사먹을 생각에 3,000원을 제하고 1,000 원만 헌금봉투에 넣게 되었습니다. 헌금 액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린이도 아니고 교회 사정도 어려운데 나이도 먹은 사람이 내 배 채울 계산을 먼저 한 것이 아직도 사람 되기는 요원한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편지를 읽자 교회내는 잠시 숙연한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인에 대한 격려와 위로 그리고 그 마음을 따뜻하게 읽어준 주임 신부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인 것이었다. 성당 문을 나서면서 왜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지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 노인이야말로 천국에 다가선 심령이 가난한 노인이 아닌가.
(24. 10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