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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김양기
#1. 프롤로그
-위에서 내려다 본 노량진의 풍경
-노량진역에서 학원가로 이어지는 육교와 오가는 학원생들로 붐비는 거리
-거대한 섬처럼 보이는 노량진의 모습과 진시황릉의 거대한 무덤이 교차
-수업 종소리 울리면,
-카메라, 학원 안으로 학생들을 따라 빠르게 훑으며 강의실로 들어간다.
#2. 최강 공무원학원 (밤)
학생들로 꽉 찬 강의실. 맨 뒤 쪽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희준(남/29세).
강사1(남/50대), 칠판에 ‘점증모형’이라고 쓴다.
강사1 정책결정 모형 중 점증모형은 과거의 정책에서 약간 수정한 정책을 택하는 방안이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획기적이거나 혁신적인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손동작을 크게 하며 열강중인 강사1.
희준Na 스물아홉, 내 인생은 일관된 점증모형이었다.
어제랑 오늘이 별반 차이가 없는, 그날이 그날인.
한 발 한 발 무덤에 가까워지는 인생.
그런 인생일지라도 사는 건 전쟁이다.
다시 수업 종소리 울리면, 우르르 빠져나가는 학생들.
희준Na 여기는 꿈의 리그, 노량진이다.
가방을 챙겨 학생들과 합류해 빠져나가는 희준.
#3. 합격 고시원, 희준의 방 (낮)
<인서트-컴퓨터 모니터 화면>
‘2014년도 서울특별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합격자’
희준, 숨을 내뱉고는 떨리는 손으로 ‘확인’을 클릭한다.
명단을 훑는데, 이름이 안 보인다.
마우스를 급하게 움직이는 손.
위 아래로 화면을 움직이며 확인하지만 이름이 없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희준. 이 때, 옆방에서 들리는 환호.
희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던지는데, 문을 벌컥 여는 윤철(남/27세).
윤철 형! 어떻게 됐어? 영호 형은(입을 닫는)
희준, 벌떡 일어난다.
윤철 국가직 남았잖아. 그게 진짜 게임.
희준, 그대로 윤철을 밀치고 나가면,
윤철 (뒤통수에 대고) 형!
#4. 한강대교 위
다리 위를 달리는 희준. 이미 노량진부터 뛰어온 터라 숨이 턱까지 차고,
온 몸은 땀으로 절었다. 다리가 꼬이며 쓰러지는 희준.
그대로 다리 위에 드러눕는다.
뜨거운 태양이 그대로 얼굴 위로 쏟아지면, 찡그리며 눈을 감는 희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린다.
희준 (눈 감은 채, 노래)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유하(off) 가슴을 쫙 펴라.
희준, 깜짝 놀라 눈을 뜨면,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유하(여/19세).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나는 희준.
희준 뭐야?
유하 시험 떨어졌죠?
희준 (보면)
유하 (난간 보며) 여기서 뛰어내릴 건 아니죠?
희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얼굴로 쳐다보는데,
훌쩍 다리 난간 위로 올라가는 유하. 희준, 깜짝 놀라 잡으려는데,
체조 선수처럼 팔을 벌린 채 평균대 연기를 하듯 난간 위를 걸어가는 유하.
그대로 유하를 쫓아가는 희준.
희준 너 빨리 내려와. 니가 지금 균형감각을 자랑하나 본데, 거긴 발로 걸어가라고 있는 곳이 아니라, 손으로 잡으라고 있는 곳이거든.
남들이 손으로 잡는 곳을 발로 밟는 건 공중도덕에 어긋나고.
깔깔거리며 희준을 내려 보는 유하.
희준 (합장하듯) 빨리 내려와.
유하 좀 귀여웠어요.
유하, 손 짚고 앞으로 한 바퀴 돌며, 그대로 착지해서 내린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희준.
희준 (앉은 채, 버럭) 야!
희준을 빤히 바라보는 유하.
희준 뭐?
유하 죽지는 않겠네. 열심히 살아요. 그럼!
시선을 교차하는 희준과 유하 뒤로,
한강 철교 위를 ‘쌩’하며 달려가는 KTX.
타이틀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5. 노량진 수산시장, 얼음가게 (낮)
톱으로 얼음을 자르는 소리, 포대에 얼음 담는 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얼음포대를 수레에 싣는 희준과 윤철.
윤철 형은 어떻게 1점이 모자라 떨어지냐. 정말 재수도.
희준 (말 자르며) 똑바로 잡아.
윤철 (포대 잡으며) 부모님 뭐래셔? 국가직 얼마 안 남았는데, 버텨보지.
시간 뺏기게 이걸 해야 돼?
1점차라고 얘기하면, 형네 아버지도 봐주지 않을까?
포대를 수레에 싣는 희준과 윤철.
희준, 말없이 수레 끌고 나가면, 그 모습 그대로 보고 서 있는 윤철.
사장(남/50대), 나오면서 윤철의 등을 툭 친다.
사장 뭐해? 닦달 전화 오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여.
윤철 네, 갑니다.
수레를 끌고 나가는 윤철.
#6. 동, 유하 횟집
좁은 공간에서 헤엄을 치는 수조 속 물고기들.
수조 뒤에 숨어서 가게 안의 동태를 살피는 유하.
일군의 손님들 나가면, 테이블을 정리하러 홀로 들어가는 유하부(남/50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전광석화 같은 솜씨로 수조에서 우럭 한 마리를 꺼내 물통에 담고는 그대로 도망가는 유하.
닦던 행주를 들고 뛰어나오는 유하부.
유하부 거기 안 서?!
유하 (돌아보며) 저녁 먹기 전까지는 들어올게.
그대로 뛰어가는 유하와 쫓는 척하다 멈추는 유하부,
쓸쓸한 눈빛으로 유하의 뒷모습을 본다.
#7. 동, 일각
낑낑거리며 수레를 끌고 오는 희준.
모퉁이를 도는데, 뛰어오던 유하와 그대로 꽝하고 부딪치려는 찰나, 체조선수처럼 우아하게 돌면서 피하는 유하.
반면, 그대로 얼음과 함께 와장창 넘어지는 희준.
손목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진다.
희준의 시선에, 튀어가는 유하의 뒷모습 들어오고,
깨진 얼음 조각을 집어 유하의 뒤통수에 명중시키는 희준.
‘앗!’ 하고 멈추는 유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희준과 눈이 마주친다.
뛰어오는 희준을 피해 사람들 사이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도망가는 유하.
시끄럽게 울리는 희준의 휴대폰.
희준, 받으면, 호통 치는 사장의 목소리.
사장(F) 어디야? 생선 상하면 니가 책임 질 거야?
희준 (꾸벅) 죄송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희준, 유하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며, 되돌아와 얼음포대를 집는데,
손목이 시큰하다.
‘에잇!’ 포대를 발로 뻥 차는 희준.
#8. 인천행 지하철, 안
자리에 앉은 유하, 물통 열어보면 꿈틀거리며 헤엄치는 우럭이다.
입가에 미소를 띠는 유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안내방송(F) 이 열차는 인천행 열차입니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주안, 주안역입니다.
#9. 노량진, 학원 골목 (밤)
기지개를 켜며 걸어오는 희준과 윤철.
희준, 손목이 불편한 듯 자꾸 돌려본다.
윤철 손목 괜찮겠어?
희준 파스 붙이면 되겠지 뭐.
윤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족발집 앞을 지나는 둘.
윤철 한 잔 할래?
희준 먹고 싶음 너나 마셔라.
그대로 걸어가는 희준.
윤철 혼자 어떻게 다 먹어?
#10. 최강 공무원학원, 자습실 (밤)
숨소리 하나 안 들릴 만큼 조용한 자습실.
앞쪽에 앉은 덩치 큰 남학생, 다리를 떨며 공부하는데, 그 움직임이 크다.
뒤쪽의 여학생들 입모양으로 수군댄다. 짜증 섞인 얼굴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자습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빈자리에 앉는 희준.
조용히 가방을 열어 책을 꺼내고, 이어폰을 꽂는다.
연습장에 메모를 하며 열심히 외우기 시작하는 희준.
여학생, 희준에게 와 쪽지를 건네준다.
희준, 쪽지를 펴 보면,
<인서트-쪽지>
앞자리 학생의 움직임이 거슬려요.
희준, 고개를 들어 보면, 앞쪽의 남학생을 가리키는 여학생.
보면, 여전히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는 남학생.
희준이 보기에도 움직임이 거슬린다.
한숨을 살짝 쉬고는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희준.
희준 (아주 작게) 죄송한데, 조금만 다리 덜 떨어주시면 안 될까요?
남학생 뭡니까?
희준 (작게) 민원이 들어와서요.
남학생 내가 떠들었어요?
희준 떠드신 건 아니고요, 다들 예민해 있으니까. 동작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남학생 완장 찼다고 지금 유세합니까?
희준 (애써 누르며) 잡일 하는 총무 주제에 무슨 완장입니까?
남학생 지금 나 깠냐?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공부하던 학생들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는데,
희준 (돌아보며) 곧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남학생 뭘 시켜?
희준 (남학생을 끌며) 나가서 얘기하죠.
남학생 어딜 잡아!
남학생, 희준의 손목을 잡아 비트는데, <씬7>에서 다친 손목이라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남학생을 세게 민다.
책상이 넘어지며, 나뒹구는 남학생.
주변 학생들까지 몰려들자, 남학생 벌떡 일어나 희준의 멱살을 잡는다.
희준, 역시 지지 않고 버티는데.
사무장(off) 뭐 하는 거야?
#11. 동, 사무실 (밤)
고개를 잔뜩 수그리고 서 있는 희준.
씩씩거리며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훈계중인 사무장.
사무장 그런다고, 원생이랑 붙어?
희준 죄송합니다.
사무장 니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니까, 다른 놈들은 척척 붙어 나가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어?
희준 (주먹을 꽉 쥐는)
사무장 어떡할 거야? 원장님 아시면? 고시신문에라도 나봐.
희준 (말 없는)
사무장 가서 사과를 하든, 빌든 해결하고 와. 계속 공짜로 수업 받고 싶으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가는 희준.
#12. 동, 건물 앞 (밤)
학원 문을 열고, 가방 들고 힘없이 터벅터벅 나오는 희준.
문자 도착 알림음. 휴대폰 열어보면,
<인서트-휴대폰 화면>
토요일에 결혼식 있어서 아버지랑 서울 간다. 아버지 몰래, 잠깐 보자.
한숨 쉬며 전화 거는 희준.
희준모(F) 준이가?
희준 뭐 할라고 옵니꺼?
희준모(F) 고추장 볶은 거 좋아한다이가. 아들내미 얼굴도 보고.
희준 아버지는 우야고. 오지 마라이
희준모(F) 그냥 디다보고 가께. 그때 보자이.
희준 엄마! 엄마!
거칠게 휴대폰 폴더를 닫는 희준.
어깨에 가방을 메려는데 시큰거리는 손목. 잔뜩 찡그린다.
#13. 약국, 안 (밤)
약사에게 조제약을 받는 유하.
약사 몸은 어때?
유하 아직 공중돌기 3번은 거뜬해요.
약사 (미소) 비 온다고 했는데, 우산 있어? 비 맞으면 안 된다.
유하, 가방에서 우산 꺼내 흔들어 보인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들어오는 희준.
희준 (손목 돌리며) 파스 하나 주세요.
유하, 어디서 본 듯한 기억으로 뚫어지게 보는데,
유하를 알아보는 희준.
희준 (손을 뻗으며) 얼음!
유하 (동시에) 한강대교!
‘아차!’ 싶은 유하, 희준을 피해 싹 도망친다.
그대로 뛰어나가는 희준.
#14. 노량진 거리 (밤)
뛰어가는 유하를 낚아 채 잡는 희준.
희준의 손에 매달려 허우적거리는 유하.
유하 뭐예요? 빨리 놔요!
희준 니가 얼음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유하 (뜨끔해서 보면)
희준 배달지연으로 인한 콤플레인, 내 손목 부상.
유하 (힘차게) 아저씨, 손!
희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면,
유하,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을 턱 안긴다.
희준, 보면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인형 열쇠고리다.
유하를 내려놓는 희준.
유하 시험은 운칠기삼!
희준 (보면)
유하 내가 전국체전 우승할 때 갖고 있던 거예요. 행운의 부적.
그걸로 퉁 쳐요.
희준 뭘 믿고?
유하 안 믿음 말구요.
유하, 그대로 가려는데 다시 뒷덜미를 잡아채는 희준.
유하, ‘악!’ 소리 내며 바동거리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대로 우산을 펴는 유하.
펴지는 우산의 기세에 놀라 유하를 놓치고 마는 희준.
후다닥 뛰어가는 유하. 돌아서서는.
유하 그거 진짜예요.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유하를 바라보는 희준.
#15. 합격 고시원, 희준 방 (밤)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들어오는 희준.
벽에 잔뜩 붙은 포스트잇 종이를 본다.
각 과목들의 핵심정리와 의지를 적은 문구들.
그 중,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는 1점이 필요하다.’라고 쓰인 종이를 보는 희준.
씁쓸해지는 희준, 돌아서 옷을 벗는데,
주머니에서 나오는 <씬14>의 인형 열쇠고리.
열쇠고리를 흔들어 보는데, 순간 시큰거리는 손목.
짜증이 나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희준.
#16. 최강 공무원학원, 강의실 (낮)
학생들로 빽빽한 강의실.
윤철과 함께 책상 사이 통로를 걸어가며 프린트를 나눠 주는 희준.
강사2, 강단에서 학생들 둘러보다 마이크를 들고.
강사2 지난 번 서울시 문제다.
지금, 여러분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항상 명심하고, 틀린 문제는 무조건 반복해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여러분 인생이 달라진다.
마지막 줄까지 프린트를 나눠주고는 자리에 앉는 희준과 윤철.
강사2 1번 문제 본다.
학생들, 모두 시험지에 집중한다.
<시간경과>
강사2 지금 나온 문제는 반드시 기억하도록. 딱 10분만 쉰다.
강사2가 나가면, 앞으로 가서 칠판을 닦는 희준.
칠판에 쓰여 있는 각종 고대 무덤에 대한 내용들.
칠판을 닦다가 뒤를 돌아보는 희준.
병든 닭처럼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원생들.
진시황릉의 병마용처럼 보인다.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반사된 빛이 들어와 눈이 부시는 희준.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면, 건너편 미장원 건물에서 파마 덮개를 한 채,
손을 흔들고 있는 유하. 손거울로 희준의 얼굴에 햇빛을 비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유하의 모습이 눈이 부시다.
당황한 희준, 그 쪽을 향해 지우개를 확 털고는 창문을 세게 닫아버린다.
#17. 마을버스 안 / 노량진 거리
마을버스 안에서 노량진 거리를 구경하는 유하.
유하의 시선에 건널목에 서서 책을 보는 희준이 잡힌다.
차가 밀려, 건널목에 멈추는 마을버스.
유하, 창문을 휙 열고는 희준의 모자를 낚아챈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희준에게,
약 올리듯 모자를 흔들고는 창문을 확 닫아 버리는 유하.
마을버스가 출발하자, 놀라 버스를 두드리며 뛰어오는 희준.
멈춘 마을버스 위로 올라타는 희준.
희준, 유하를 노려보며 무서운 기세로 뚜벅뚜벅 걸어오면,
모자를 얼른 가방 안에 감추는 유하.
희준 내 놔!
유하 뭘요?
희준 (가방을 뺏으려면)
유하 (얄밉게) 어? 지금 폭력? (휴대폰 들고) 찍는다.
공무원 지망생은 언행을 조심해야 되지 않나?
희준, 실랑이를 포기하고, 결국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유하 착한 어른이네. 하루만 나 에스코트 해 줄래요? 그럼 모자 줄 건데.
무시하고 그대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 벨을 누르는 희준.
유하, 쪼르르 쫓아가 문 뒤의 의자에 앉으며,
가방에서 이상한 인형을 꺼내든다.
유하 (무서운 얼굴로 주문 외우듯) 떨어져라! 떨어져라!
지방직, 국가직 모든 시험에서 똑 떨어져라.
뜨악하는 희준.
#18. 마을버스 종점
뒤쪽으로 국사봉이 보이는 종점.
마을버스 들어와 멈추면, 버스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유하.
뚱한 얼굴로 따라 내리는 희준.
유하 (국사봉 가리키며) 첫 번째 코스.
희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
유하 우리 아빠는 바쁘니까. 귀찮게 해 주면 안 되거든.
희준 나도 바빠.
못 들은 척, 국사봉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유하.
희준 너 나 안 무서워?
유하 하나도!
입을 삐죽거리며 따라가는 희준.
#19. 국사봉, 숲길
씩씩하게 걸어가는 유하.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뒤에서 이어폰 끼고 터덜터덜 따라가는 희준.
유하 유치원 때 여기로 소풍 왔었는데요,
그때도 (소나무 가리키며) 저거 있었어요.
희준, 유하 말은 아랑곳 않고, 이어폰에서 들리는 수업내용을 따라 중얼거린다.
유하가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쿵 부딪치는 희준.
유하, 희준을 째려보면서 인형을 꺼내면,
희준 (기겁) 따라가고 있잖아.
유하 이왕 하는 거, 성의 있게.
희준 더 이상 어떻게?
유하 이 시간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죠?
희준 그게 왜 나야? 넌 친구도 없어?
유하 질척거리는 친구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나아요.
희준 너 왕따지?
유하 아저씨 몇 살까지 살고 싶어요?
희준 (자기도 모르게) 90살?
유하 앞으로 60년이나 남았구만, 4시간도 못 내줘요?
희준 시험까지 두 달 밖에 안 남았거든. 그 시간을 니가 지금 보상도 없이.
유하 (말 자르며) 두 달이면 많이 남았네.
희준, ‘이걸 콱!’하는데, 들리는 산새소리.
희준 어? (기분이 좋아지는)
유하 됐죠? 저 새소리만으로도 아저씨는 이미 보상 받았음! (휙 돌아서는)
꼼꼼하게 사진 찍으며 산책하듯 걸어가는 유하.
그 모습 도통 이해 안 되지만, 길섶에 핀 꽃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뺏기며 따라가는 희준.
윤철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받으면,
윤철(F) 수업 안 들어와?
희준 지금 못 가. 녹음 좀 해 줘. 고맙다.
(전화 끊고는 앞에 가는 유하 보며) 그래. 가 보자.
산길을 걷는 동네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하며 걸어가는 유하.
희준 (혼잣말) 싹싹한 척은. 저 가증.
#20. 상도초등학교, 운동장
아이스크림 한 통을 들고 정글짐에 앉아 있는 희준과 유하.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뛰어놀고 있다.
유하 저기 체육관 보이죠?
희준 (아이스크림 먹으며, 건성) 어.
유하 저기서 공중돌기를 처음 배웠어요.
희준 너 근데, 진짜 전국체전 우승했었어?
유하 (끄덕)
희준 지금은 안 해?
유하 우승하고 나서 바로 은퇴했어요.
희준 왜?
유하 어지러워서 돌기 싫더라고요.
희준 빨라서 좋다.
유하 아저씨는 여기 오기 전에 뭐 했는데요?
희준 대학 다니고, 군대 갔다 오고...
유하 별로 한 게 없네?
희준 (유하가 얄미워 죽겠는)
유하 (일어나며) 노량진 구경도 다 못했죠?
#21. 노량진, 만양로 오르막 끝 부분 (해질녘)
아래로 노량진 전경이 쫙 펼쳐졌다.
멀리, 63빌딩이 보인다.
유하 아침에 여기 와 본 적 없죠?
희준 여기 올 짬이 어디 있냐? 잠잘 시간도 없는데.
유하 해 뜰 때, 한 번 와 봐요. 살고 싶어지니까.
희준 쪼끄만 게, 어른한테. (시계 보며) 이젠 뭐가 남았는데?
유하 떠날 준비.
희준 (보면)
유하 (노량진역을 가리키며) 저기서 기차 타고, 그대로 달리면 시베리아.
그리고 유럽까지 가는 거예요. 몇날 며칠을.
가다가 내려서 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렇게.
희준 노량진엔 기차가 안 서. 그리고 기차 타고 그대로 달리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것이고, 아직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연결이 안 됐고.
유하 기차는 세우면 되는 거고, 그런 법은 없애면 되는 거고,
레일은 깔면 돼요. 그런 건 다 핑계예요.
문제는 그런 마음이 드느냐는 거지.
희준 간단해서 좋다. 살아 봐라.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건지.
유하 비겁한 변명.
희준 뭐?
유하 자기한테 솔직하지 못하니까 복잡한 거예요.
희준 그러니까, 더 살아보세요. 비겁한 건지, 현명한 건지 알게 될 테니까.
유하 아저씨 꿈은 뭔데요?
희준 남들처럼 사는 거.
유하 어려운 꿈이네.
희준 (유하를 다시 보면)
유하 진짜 꿈은요?
희준 (당황) 뭐?
유하 남들처럼 사는 게 꿈이면, 인생이 너무 후지지 않나?
희준 잘 났다. (입을 삐죽거리다 작게) 사막.
유하 뭐라고요?
희준 사막을 한 번 달려보고 싶어. 할 수 있다면.
유하 그럼, 가요.
희준 두 달 뒤가 시험인데?
유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에요.
유하, 희준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통 뺏어 들면, 다 녹아 형체를 알 수 없다.
유하 꿈은 이런 거예요. 먹지 않으면 녹아버리는 거.
희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유하를 보면, 벌떡 일어나는 유하.
유하 이제 가야겠어요. 우리 아빠는 나 없으면 밥 안 먹거든요.
손 흔들고는 내려가 버리는 유하.
#22. 노량진, 학원가 골목 (밤)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 희준.
희준을 거슬러 올라가는 학생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희준의 시선에,
무거운 가방과 책들을 들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리고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 희준.
#23. 최강 공무원학원, 강의실 (밤)
학생들로 빽빽한 강의실.
희준, 문을 여는데, 열기에 숨이 턱 막히면서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강의실을 둘러보면, 모두 똑같은 책에, 똑같은 동작으로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필기를 하는 학생들. 순간 로봇들처럼 보인다.
멍하니 서 있는 희준을 보고 손짓을 하는 윤철.
희준, 가방을 다시 한 번 어깨에 둘러메고 안으로 들어간다.
윤철 가방을 들어 자리를 내 주면, 그 자리에 앉는 희준.
윤철 (소곤) 어디 갔었어?
희준 녹음해놨지?
윤철 천 원.
팔꿈치로 가볍게 윤철을 치는 희준. ‘윽’하며 엄살떠는 윤철.
앞의 학생이 돌아보면, 미안하다는 동작을 취하고 강의에 집중하는 희준.
#24. 합격 고시원, 희준의 방 (밤)
힘이 드는 듯 가방을 던지고 침대에 휙 드러눕는 희준.
메시지 도착음에 휴대폰 보면,
<인서트-휴대폰 화면>
사막 사진과 메시지
“물구나무 인형한테 빌어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다 톡 떨어뜨려줄지도 모르니까.”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도는 희준.
메시지 도착음.
<인서트-휴대폰 화면>
“설마 버린 건 아니죠?”
벌떡 일어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희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물구나무 인형을 찾는다.
닦아서 책상 위에 놓는 희준, 손가락으로 인형을 툭 쳐본다.
#25. 노량진 수산시장, 얼음가게 (낮)
얼음을 나르는 희준의 몸놀림이 가볍다.
사장 왜 이렇게 날아다녀? 윤철이는?
희준 오늘은 저 혼자 합니다.
사장 괜찮겠어?
희준 사막에서는 이 얼음이 보고 싶을 거예요?
사장, 무슨 소리인가 싶어 보지만, 그대로 힘차게 수레를 밀고 나가는 희준.
#26. 동, 일각
수레를 끌고 가는데, 저 쪽에서 우럭을 들고 뛰어오는 유하와 쫓아오는 유하부.
유하 안녕, 아저씨.
희준, 미처 대답 못하고 ‘어?’ 하는데, 날쌔게 스쳐가는 유하.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유하 이따, 5시 30분에 사육신묘에서 봐요.
희준, 자기도 모르게 끄덕이며 약속을 한다.
쫓아오던 유하부, 희준을 돌아보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내빼듯이 가는 희준.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번지는 희준.
윤철(off) 미쳤어?
#27. 최강 공무원학원, 구내식당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학생들. 그 사이에서 실랑이 중인 희준과 윤철.
희준 작게 얘기해라.
윤철 형. 우리 두 달 밖에 안 남았어.
희준 7시까지 올게. 복사 다 해 놨으니까 나눠주는 것만 니가 좀 해 줘라. 응?
윤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집적거리는 희준. 짜증내는 윤철.
#28. 사육신 묘 (저녁)
나무에 기대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유하.
벤치에 앉아 보고 있는 희준.
희준 안 힘들어?
유하 힘들어요.
희준 그만해.
유하 싫어요. 할 수 있을 때 실컷 할 거예요.
희준 아버지한테 안 혼났어?
유하 쪼끔.
희준 왜 그렇게 매일 혼나면서 물고기는 풀어줘?
유하 하루에 한 마리씩 풀어주기로 했어.
희준 누구랑 약속했는데?
유하 나랑, 물고기랑.
희준 왜?
유하 바다로 가고 싶을 거 아니야.
희준 걔네 양식일 텐데?
유하 양식이면, 바다에서 안 오고, 산에서 왔어요? (눈이 반짝) 어? 됐다.
유하, 벌떡 일어난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는 가방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하늘 사진을 찍는 유하.
유하 아저씨!
희준, 돌아보면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찍어주는 유하.
폴라로이드 사진 나오면, 펜으로 적는다.
<인서트-폴라로이드 사진>
2014년 6월 30일. 노량진의 저녁 하늘.
유하 잘 나왔죠? 기억해요. 이게, 6월30일의 하늘이에요.
유하와 함께 사진을 찍는 희준.
벤치에 있는 휴대폰이 진동으로 울리다 꺼지지만, 눈치 못 채는 희준.
#29. 최강 공무원학원, 사무실 (밤)
계속 전화를 거는 윤철.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무장.
사무장 아직 연락 안 돼?
윤철 (난처한) 꺼져 있는데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희준.
희준의 얼굴로 복사물을 던지는 사무장.
바닥에 산산이 흩어지는 복사물.
놀라 쳐다보는 희준과 윤철.
사무장 작년 것을 복사해 놓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그따위 정신머리로 무슨 공부를 해?
희준 죄송합니다.
사무장 당장 새로 복사해서 다시 뿌려.
윤철, 바닥에 떨어진 종이 주워, 멍하니 서 있는 희준에게 오며.
윤철 정신 차려. 지금 9회 말 투 아웃, 만루야.
홈에 들어 오냐 마냐의 순간이라고.
희준, 복사기 쪽으로 걸어가 묵묵히 복사를 하는데, 종이가 턱 걸린다.
복사기를 팍팍 때리며 종이를 꺼내는 희준.
#30. 동, 강의실 (밤)
복사물을 나눠주는 희준과 윤철.
<씬10>의 남학생에게 복사물을 나눠주는 희준.
남학생 한 부만 더 주세요.
희준 안 돼요.
남학생 어차피 남잖아요.
희준 학생 수랑 맞춰서 복사했어요. 필요하면, 직접 복사해서 쓰세요.
남학생 그쪽 꺼도 아니면서 왜 생색내요?
희준 주는 대로 받아 가시죠?
남학생, 일어나 희준을 밀치면, 힘겨루기를 하는 희준. 웅성거리는 학생들.
강사2, 들어와 ‘뭐 하는 거냐?’며 칠판 세게 두드리면, 그 때야 물러나는 희준.
그대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31. 동, 옥상 (밤)
묵묵히 노량진역을 내려다보는 희준.
KTX열차 지나가고, 덜컹거리며 지하철이 들어서면,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다시 덜컹거리고 출발하는 지하철.
옥상 문 열고 들어오는 윤철.
윤철 형, 공부할 시간 늘어 좋겠다.
희준 (보면)
윤철 사무장이 형 총무일 그만 두래.
희준 (노량진역의 사람들 보며) 다들 어디 갔다 오는 걸까?
윤철 (같이 보며) 돈 벌고 오겠지.
희준 윤철아, 넌 여기 왜 왔냐?
윤철 형이랑 똑같지 뭐. 등 떠밀려서.
희준 그래서 좋냐?
윤철 선택할 게 있어야 좋고 말고가 있지.
희준 1점 더 받으면, 정말 인생이 달라질까?
윤철 달라지지.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어깨동무하며) 형! 쪼끔만 더 해서 우리 빨리 나가자.
다시, 노량진역을 내려다보는 희준.
#32. 합격 고시원, 희준의 방 (밤)
침대에 앉아, 방을 둘러보는 희준.
책상에 침대가 전부인 방.
유하(off) 한 게 없네?
침대 밑에서 박스를 꺼내 열어보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연습장.
펴 보면, 2011년. 2012년, 2013년 연습장들이다.
연습장 무더기 속에 앉아 있는 희준.
연습장을 탑처럼 쌓아올리기 시작하는 희준.
희준Na 내 20대는 연습장 속에 있었다.
#33. 은행, ATM기 앞 (낮)
<인서트-ATM기 화면>
출금하시겠습니까?
‘예’를 누르는 희준.
#34. 최강 공무원학원, 접수처
희준에게 수강증을 내 주는 직원.
직원 희준씨도 조금만 더 참지. 생돈만 깨지네.
희준 (미소) 수고하세요.
희준, 나가는데 들어오는 사무장. 목례만하고 그대로 나가는 희준.
#35. 한강둔치 (저녁)
표정 없이 달리는 희준.
점점 어둑해지면서 달리는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멈추고는 한강을 향해 ‘야!’하고, 크게 소리를 친다.
#36. 합격 고시원, 앞 (밤)
절뚝이며 걸어오는 희준.
고시원 앞에서 서성이다 희준을 보고 반갑게 걸어오는 희준모.
희준모 어디 갔다오노? 다리는 와? 다칬나?
희준 (귀찮은 듯) 아무것도 아이다.
희준모 전화는 와 안 받는데? 차 시간 다 되가꼬 못 볼 뻔했다이가.
희준 오지말라카니깐 머할라꼬 왔노?
가방에서 서둘러 볶은 고추장을 꺼내 주는 희준모.
희준모 냉장고에 너어 두고 무라. 어여 드가라. 내 간다이.
(돌아서다 생각난 듯) 내 정신 좀 봐라.
희준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주는 희준모.
희준 뭔데? (돈 보고는) 필요읍따.
희준모 너어 두라.
희준모, 돌아서서 가면, 후다닥 뛰어가서 잡는 희준.
희준 (주머니에서 돈 꺼내주며) 이걸로 택시타고 가라. (택시 잡으려면)
희준모 지하철 타고 가믄 10분이믄 되는데 뭐 할라고 택시 타노. 차만 막히지. 괜히 내 때매 시간 마이 빼낀 거 아이가? 빨리 드가서 공부해라.
니 아부지 소원 알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남들만큼만 사는 거.
두 달만 참자이. 알았재?
희준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서둘러 가는 희준모.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는 희준.
희준Na 남들처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버지는 모르신다.
#37. 동, 희준의 방 (밤)
책상 위에 <씬36>의 고추장과 돈 봉투를 놓고 가만히 쳐다보는 희준.
울리는 휴대폰. 보면, 유하다.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서 서랍 안에 넣는 희준.
벽에 붙은 사막 사진과 인형도 함께 서랍 속으로 구겨 넣어버린다.
#38. 최강 공무원학원, 강의실 (낮)
칠판에 ‘3회 국가직 7급 모의고사’라고 적혀있다.
벨이 울리면, 일제히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학생들.
나란히 앉은 희준과 윤철도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39. 몽타주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유하와 걱정스레 곁을 지키는 유하부.
-공부에 집중하는 희준. 책상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연습장.
#40. 최강 공무원학원, 복도 (낮)
학원생들 게시판 앞에 서 있으면, 등수가 적힌 종이를 갖고 나오는 사무장.
턱하니 게시판에 붙이고 가면, 우르르 몰려드는 학원생들.
희준도 윤철과 함께, 성적을 확인한다.
윤철 (상위권에서 이름을 찾는) 어?
희준, 윤철의 시야를 따라가면, 윤철 이름이 희준보다 위에 있다.
윤철 (놀라는) 형 밀려 썼어? 내가 형보다 높을 때도.
표정이 굳어진 희준, 그대로 휙 돌아나간다.
윤철 형!
#41. 한강대교 위
희준, 흐르는 강물을 보고 한참 서 있다 고개를 돌리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유하가 보인다. 해쓱한 얼굴의 유하.
반가움에 잠깐 일렁이다 거꾸로 돌아 걷는 희준.
그대로 달려와 희준의 등에 찰싹 매달리는 유하.
희준 뭐 하는 거야?
희준, 놀라서 유하를 떼 내려 몸을 털지만, 더 찰싹 붙는 유하.
희준의 뺨까지 꼬집으며,
유하 살아있었네요. 아저씨! (볼 살 뜯으며) 살 찐 거 봐.
희준 너 빨리 안 내려와!
유하 (둔치 가리키며) 조기까지만 업어주기.
희준 까분다.
유하 나 아팠었는데. 그냥 좀 업어주지?
희준 (걱정스런) 어디가?
유하 여기저기.
그대로, 유하를 업고 걷는 희준.
유하 왜 전화기 꺼 놨어요?
희준 공부하느라. (망설이다) 전화 많이 했었니?
유하 가끔?
#42. 한강둔치
벤치에 앉아 있는 희준과 유하.
희준 이제 전화하지 마.
유하 내 부탁 들어주면!
희준 (보면)
유하 나대신 물고기 좀 바다에다 놓아주고 오면 안 돼요?
내가 인천까지 못 갈 것 같아서.
희준 안 돼. 시간 없어.
유하 (옷 잡고 늘어지며) 에이. 딱 한 번만 해 줘요. 이제 귀찮게 안 할게요.
우리 아빠, 이제 횟집 그만 두거든요. 딱 한 마리 남았는데.
희준 그럼 아빠랑 갔다 와.
유하 아저씨랑 가고 싶은데.
그럼, 나 좀 데리고 같이 갔다 와요.
희준 싫어.
유하 치사하게 왕복 3시간인데, 그걸 못 내요?
희준 (화가 난) 넌 내가 너처럼 철없는 19살로 보이니?
유하 (장난) 아니. 29살 아저씨로 보이는데요?
희준 그래, 난 니 말대로 20살이 되고부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없는 사람이야. 그 시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이번엔 끝내고 싶어.
유하 그 다음엔요?
희준 (보면)
유하 (장난스레, 배 내밀며) 이렇게 배 나와서 시간 때우는 직장인?
희준 빛나는 20대가 기다리고 있는 니 눈엔 우습겠지만.
유하 (말 자르며) 내 20대가 빛날지 안 빛날지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 20대는 빛났어요?
희준 (말 못하는)
한강철교 위를 지나가는 KTX
유하 기차가 똑바로 가려면, 자기 레일을 달려야 해요.
아저씨 기차는 자기 레일을 달리고 있어요?
희준 내 레일을 달리려면, 1점. 딱 그 점수만 있으면 돼.
니가 볼 땐 우스울지 몰라도.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유하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희준 (보면)
유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진짜 꿈도 아니면서
1점 채우려고 바동거리는 건 너무 거지같잖아요.
희준 다들 그렇게 살아. 너도 살아봐.
남들처럼 사는 게 어른이 되는 거니까.
유하 (희준의 심장에 손을 갖다 대며) 심장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희준 (손 내려놓으며) 난 니 수족관의 물고기가 아니야. (일어나는)
유하 진짜, 바다에 같이 안 갈래요?
희준 어. 안 가. 그리고 이제 연락하지 마라.
그대로 돌아서서 가 버리는 희준.
#43. 합격 고시원, 계단 (밤)
계단을 올라가는 희준.
‘7급 공무원의 영광’, ‘합격수기’ 등이 벽에 어지럽게 붙어있다.
그 포스터들을 하나하나 뜯으면서 올라가는 희준.
눈물을 꾹 참고 계단을 올라가는 희준.
그 위로, 알람소리.
#44. 동, 희준의 방 (새벽)
침대에서 일어나는 희준.
휴대폰을 보면, D-60 일이라고 적혀 있다.
일어나 이불 정리를 하는 희준. 방을 둘러보며, 간단하게 체조를 한다.
#45. 노량진, 만양로 오르막 끝 부분 (동틀 녘)
조깅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는 희준.
떠오르는 햇살을 맞아 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을 바라보는 희준.
#46. 몽타주
-학원과 고시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희준의 모습
-D-day의 숫자가 빠르게 감소한다.
#47. 영등포 고등학교, 교문 (낮)
‘2014년도 7급 공채 필기시험장’이란 현수막.
커피와 학원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응원객들로 붐빈다.
수험생 틈에 섞여 들어가는 희준.
희준의 가방엔 물구나무 인형 열쇠고리가 달려있다.
종소리 울리면,
#48. 동, 교실
시험문제를 푸는 희준.
시험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해서 푼다.
#49.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 (같은 시간)
기계장치를 달고 누워 있는 유하.
바이탈 사인이 약해지면, 의료진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위생복을 입고, 유하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유하부.
‘뚜우’하고 울리는 정지음.
#50. 영등포 고등학교, 교실 (같은 시간)
종소리 울리면, 펜을 내려놓는 희준.
뒷사람이 일어나 답안지와 시험지를 걷어 가면, 그제야 창밖을 보는 희준.
창밖으로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51. 합격고시원, 희준의 방 (낮)
<인서트-컴퓨터 모니터 화면>
‘2014년도 국가직 7급 공무원 합격자’
희준, ‘확인’을 클릭하면, ‘모희준’과 ‘김윤철’이 보인다.
윤철, 좋아서 비명을 지르면, 같이 얼싸안고 겅중겅중 뛰는 희준.
#52. 노량진, 맥주집 (밤)
희준과 윤철을 비롯한 합격생들, 맥주잔을 부딪치며 시원하게 들이킨다.
합격생1 이젠 면접이 걱정이네.
윤철 야! 오늘은 그냥 놀자.
맥주를 따르며, 환하게 웃는 윤철과 합격생들.
휴대폰을 들고 망설이는 희준.
<인서트-휴대폰 화면>
니가 준 부적 효과 만점이었다.
전송하겠냐는 메시지를 보고, 망설이다 ‘취소’를 누르는 희준.
윤철 형, 뭐 해? 건배하자.
희준 어!
잔을 부딪치며 어울리는 희준.
#53. 희준의 고향집, 거실 (낮)
거실에 상 한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고,
희준의 부모와 누나 부부, 조카까지 모여 왁자지껄하다.
모두들 깔깔 거리며 즐거워하는데, 예의상 미소만 띠고 있는 희준.
매형 (희준에게 잔 따라주며) 처남, 억수로 고생 많이 했다이.
희준 아직 면접 남았으요.
매형 그거야 기냥 형식적인 거고 다 붙는 거 아이가.
아버님께서 얼마나 처남 걱정 많이 하셨는지 아나?
(희준부 보며) 아버님! 이제 한시름 놨네요.
희준부 내가 운제?
희준모 자나 깨나 준이 걱정만 해 놓구서 무신 오리발이고?
누나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이 물어봐도 어깨 좀 펴겠다.
매형 (눈치 주면)
누나 뭐? 당신 누나. 은근히 걱정하는 척 하믄서 을매나 약 올렸는지 몰라서 그러나?
희준부 이제 남들 맹키 살게 됐으니까 딴 생각 말고 장가갈 준비나 해라이.
누나 울 아부지, 진짜 승질 급하네.
희준모 아부지 말 맞다. 공무원 합격했다 카니깐 선자리 들어오고 난리다. (희준 보며) 니 1등급 됐다.
모두들 웃는데, 희준만 밝지 못한 미소.
희준부 남들만치만 살면 된다. 욕심 안 내고.
희준 남들만치 사는 게 어떤 건데요?
모두들 희준을 쳐다보면,
희준 아버지는 남들만치 사셨습니까?
희준부 니가 장가만 가서 얼라만 나면 딱 남들 맹키 사는 기다.
희준, 희준부를 한참 바라보다 미소를 띤다.
희준 알겠습니다.
#54. 동, 희준의 방 (밤)
침대에 누워 있는 희준.
밖에서는 여전히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조카(off) 삼촌!
희준, 일어나 보면,
조카가 물구나무를 서서 걷고 있다.
조카 내 잘 하재?
희준 (한참을 보고 있는)
조카 삼촌!
희준 어, 우리 지수 윽수로 잘하네!
조카 (물구나무를 풀고) 인자, 비행기~!
조카를 번쩍 들어올려, 빙글빙글 돌리며 비행기를 태워주는 희준.
#55. 동사무소 (낮)
대기석에 앉아 공무원들을 보고 있는 희준.
창구 뒤쪽의 공무원들, 동물원의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닌다.
<플래시 백>
유하 (장난스레, 배 내밀며) 이렇게 배 나와서 시간 때우는 직장인?
알림음과 함께, 38번이 나타나는 번호판.
희준,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 멍하니 앉아 있다.
공무원 38번 고객님!
퍼뜩, 정신이 든 희준 창구로 간다.
희준 주민등록등본 한 장 주십시오.
다시 한 번 공무원들을 살펴보는 희준.
#56. 서울행 KTX, 안 (밤)
창밖을 바라보던 희준, 휴대폰을 들고 망설인다.
마음을 먹은 듯 통화 버튼을 누르면 ‘유하’로 연결되는 휴대폰.
‘꺼져있다’는 음성메시지가 나오면, 조용히 닫는 희준.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57. 노량진 수산시장 (낮)
희준, 유하횟집이 있던 자리로 가 보면, 낯선 간판이다.
주인 어서 오세요.
희준 예전에 여기서 가게 하셨던 분은.
주인 아. 유하네?
희준 (반색) 네.
주인 유하 죽고, 정리했지.
희준 뭐라고요?
충격에 휘청 이는 희준, 의자를 꽉 잡고서는.
주인 혹시 모희준씨?
주인을 보는 희준.
#58. 마을버스 안
<씬17>에서 유하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희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off) 무슨 병이라 하던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요.
운동 잘 하던 애가 안 됐죠. 상도 많이 받았는데.
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 보는 희준.
#59. 마을버스 종점
버스에서 선뜻 내리지 못하고, 힘겹게 발을 디뎌 내리는 희준.
#60. 국사봉 / 상도초등학교 / 만양로 오르막 끝 부분
-국사봉 숲길을 천천히 걷는 희준.
<플래시 백>
유하 두 달이면 많이 남았네.
-상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희준
<플래시 백>
유하 별로 한 게 없네.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희준
<플래시 백>
유하 꿈은 이런 거예요. 먹지 않으면 녹아버리는 거.
희준 (유하의 환상 바라보며) 왜 하필 나였니?
유하의 환상, 미소를 띠며 점점 사라진다.
#61. <씬42>의 한강둔치 / 월미도 (저녁)
주머니에서 아이팟 터치 꺼내는 희준.
주인(off) 유하 아버지가 맡겨 놓은 지 한참 됐어요.
희준,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켜 동영상을 틀면, 화면 속 유하의 얼굴.
유하 아저씨, 여기 어디게요?
유하가 화면에서 물러나며, 손으로 가리키면 월미도의 바다가 보인다.
유하 치사하게 아저씨가 넘 튕겨서 아빠랑 물고기 놓아주러 왔어요.
우리 아빤, 돈 주고 산 거 그냥 풀어준다고 완전 투덜투덜.
시험은 잘 봤어요? 내 인형 버린 거 아니죠?
아저씨, 처음 만난 날.
사실은 나 어디서 어떻게 떨어지면 잘 떨어져 죽을 수 있을까 연구하러 갔었어요. 평균대에서 공연하듯 3회전을 하면 될까?
그럼, 멋지게 죽는 건가? 그런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아저씨 얼굴이 너무 웃겼어요.
나보다 열 살은 많아가지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울면서 노래 부르는 아저씨 보니까 살고 싶어졌어요. 두 달을 살든, 석 달을 살든,
사는 데 까지 살고 싶어졌어요.
희준, 손으로 입을 막고 울기 시작하는.
유하 지금, 내 부탁 안 들어줘서 좀 찔리죠? 파도 소리 들려요?
내가 놓아준 우럭, 지금쯤 태평양 한 가운데 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테니까 너무 맘에 담아 두지 말아요.
나도 잘 살고 있어요. 국사봉 소나무랑 저녁노을이랑, 아침 햇살이랑.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아주 한참은 거기에 있을 테니까.
그럼, 나도 거기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아저씨 인생 걱정만 하세요.
아저씨 말처럼 남들처럼 사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니까.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가며 우는 희준.
#62. 합격 고시원, 희준의 방 (아침)
아이팟을 가슴에 안은 채 <씬61>의 복장 그대로 자고 있는 희준.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윤철의 목소리에 깨는 희준.
문을 열어주면,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오는 윤철.
윤철 준비 안 해?
희준 무슨 준비?
윤철 오후에 면접 특강 있잖아. 빨리 씻고 나와.
윤철, 나가면, 거울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는 희준.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63. 노량진 거리 (아침)
힘차게 걷는 윤철과 대비되게 터벅터벅 걷는 희준.
둘의 간격이 점점 멀어진다.
윤철 뭐 물어보려나? 신문을 본다고는 봤는데.
형은 준비했어?
윤철 돌아보는데, 희준이 없다.
보면, 저쪽 횟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희준.
#64. 동, 횟집 앞 (아침)
수조 앞에 쪼그리고 앉은 희준과 유하.
유하 얘네 둘, 커플인가 봐. 꼭 붙어 있는 걸 보니.
윤철(off) 형! 뭐 해?
희준, 돌아보면 유하가 앉았던 자리에 윤철이 서 있다.
윤철 안 가?
희준 너 먼저 가라. 나 어디 좀 들렀다 갈게.
윤철 어디?
희준 금방 갔다 올게.
#65. 인천행 지하철, 안 (아침)
<씬8>처럼 유하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희준.
발밑에 놓인 물통 열어보면, 꿈틀거리며 헤엄치는 두 마리의 우럭.
#66. 월미도, 바다 (낮)
물통을 들고, 바다 앞에 선 희준.
물통 안에서 파닥거리는 우럭.
희준, 신발을 신은 채, 바다 속으로 들어가 우럭을 풀어주면,
힘차게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바다로 쏜살같이 헤엄쳐 가는 두 마리의 우럭.
그 모습을 보고 선 희준.
유하. 환하게 웃으며 희준의 손을 잡아준다.
손을 잡은 채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희준과 유하.
#67. 의정부행 지하철 안 / 노량진역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서 있는 희준.
역에 정차할 때마다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희준.
승객1 (통화하며) 짜증나. 토익시험 또 봐야 돼. 커트라인 넘기가 넘 힘들다.
승객2 (통화하며) 과장 미친 거 아니냐? 그걸 언제 다 해?
승객3 (옆 친구에게) 그 인터뷰를 해야지 A+를 받겠지?
피곤에 지친 듯 짜증내는 승객들의 얼굴과 투덜거리는 대화들.
몸이 흔들리는 채로, 그 모습들을 보는 희준.
안내방송(F) 다음에 정차할 역은 노량진, 노량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점점 속도를 낮추는 지하철.
희준, 내리기 위해 문 쪽으로 이동하는데,
건너편 선로 위를 달리는 KTX가 보인다.
빠르게 달려오던 KTX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멈출 것처럼 천천히 달린다.
서서히 멈추는 지하철. KTX는 멈추지 않고,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한 가운데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희준.
사람들, 투덜거리며 희준을 지나치는데.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노량진역을 통과해 도망가는 시간처럼 빠르게 멀어지는 KTX를 보는 희준.
안내방송(F) 출입문 닫힙니다. 출입문 닫힙니다.
여전히 그대로 서 있는 희준.
플랫폼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유하.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 희준.
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문이 닫히고, 서서히 출발하는 지하철.
노량진을 빠져나가 한강철교를 건너는 지하철의 모습에서 엔딩.
첫댓글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