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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
폼포코 31년, 더 이상 갈 곳 없는 너구리들이 봉기했다!! 조상대대로 전해지는 변신술로 인간들과의 대전투를 선언하다! 순진하고 천진하기만 한 너구리들의 내 땅 지키기 대작전!
도쿄 근방의 타마(多摩) 구릉지. 다카숲과 스즈가숲, 두 무리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도쿄의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로 인해 그들의 숲이 파괴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흥'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다. 또한 시코쿠(四國)와 사도(佐渡) 지방에 살고 있는 전설의 장로 등에게도 원군을 청하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 시합'을 통해 사자를 보낸다.
너구리들은 외부의 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변신술 특훈과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으로 인간들의 개발 계획과 공사를 방해하지만 결국 '뉴타운 개발 계획 저지'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때, 그토록 기다리던 전설의 장로 3명이 시코쿠 지방에서 온다. 3명의 장로는 너구리 변신학을 집대성한 『요괴대작전』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이 작전을 경험한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 너구리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품도록 함으로써, "뉴타운 개발 계획을 백지화"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자! 과연!! 이후, 이들의 작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출처: 네이버
Production Note
수수께끼의 동물, 너구리?!
너구리를 주제로 시작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너구리란 동물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예를 들어 문헌에 따라서는 `너구리는 나무에 오르는 것이 특기`, 손재주가 없어서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 `나무에 오르기는 잘 오르나 내려오는 것을 잘 못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어 좀처럼 너구리의 실태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기획 초기 단계에서 작품 자체를 포기하려했던 제작진은, 도쿄 마치다시의 시민 단체 『타마 구릉지 야외 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너구리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적으로 그려 보고 싶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의지로, 너구리들의 기초 생활 양식과 하수구를 이용해 주택가를 왕래하는 너구리와 인가의 정원에까지 들어와 먹이를 얻어 먹고 있는 너구리 등 도회지에서의 너구리들의 생활 모습 등이 세밀하게 조사되어, 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너구리와 조우
산보를 좋아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제작 기간의 바쁜 스케줄에서도 시간을 내어서 자주 회사 주위를 자전거로 산책한다고 한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 근처에는 도립 노가와(野川) 공원을 가장 좋아하는데, 작품 완성을 며칠 앞둔 어느날 평소와 같이 공원으로 나간 감독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대와 대면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상대는 바로 두 마리의 너구리. 이 너구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니면 이전부터 살았었는지, 어떻게 되었던지 간에, 그 순간에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있어 그들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성공을 알려주기 위해 온 ˝행운의 너구리˝였다고!!
CG로 보이지 않는 CG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CG가 사용되었다. CG로 처리 한 부분은 도서관에서 `오로쿠 할멈`이 젊은 너구리들에게 자료를 보여 주며 강의하는 장면이다. 책들이 들어서 있는 서고를 카메라가 부드럽게 들어가는 장면이다. 실사 영화라면 비교적 간단히 촬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배경 동화의 각도가 변해가는 책꽂이를 하나 하나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마 어마한 일손이 드는 부분이다. 이는 완성된 것을 보는 일반 관객에게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보답 받지 못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카하타 감독은 이러한 것이야 말로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었다.
사용한 컴퓨터는 `인디고` 라고 하는 유명한ILM(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특수효과 회사)이 「쥬라기 공원」에서 사용한 기계이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해서는 완전히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었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닛폰 텔레비전의 CG부와 함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CG로는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십시오」라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주문을 실행해 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니 쉽게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작업은 1993년 7월에 시작하여, 영화 완성의 며칠 전이라고 하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종료 되었다. 미국은 제쳐두고 일본에서는CG의 화상을 35mm 필름의 해상도를 만족시킬 퀄리티로 제작하고, 필름에 직접 출력하는 것 자체가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시행착오와 피땀어린 결과로 태어난 CG장면! 어떻게 보셨습니까?
제발 「CG라니 대체 어디서 사용한 거야?」라고 생각해 주시길...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어떻게 깨지는가?
인간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 만복사(萬福寺)에 너구리들이 설치 한 텔레비젼을 `곤타`가 주먹으로 부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한 제작진의 고심은 실로 대단했다. 브라운관이 깨지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그려내는 것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고, 결국 제작진은 직접 브라운관을 깨보기로 결정했다.
`곤타`가 부수는 것과 같은 조건을 위해, 주차장으로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 전원을 연결해서 켜고, 그 앞에 비디오 카메라 두 대와 스틸 카메라를 준비한 후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 머리에는 핼맷을 쓰고, 오토바이 선수가 입는 복장에, 가죽 장갑을 끼고 금속 뱃트를 든 제작부의 모씨. 그 주위를 열명이 넘는 애니메이터가 숨을 죽이고 둘러 앉았다. 침묵의 순간, 그리고 ˝펑` 하며 울리는 소리. 홈런~.
그러나 텔레비전은 전혀 깨지지 않았고, 계속된 시도 끝에 쇠 방망이를 들고 와 도전함으로써 간신히 브라운관은 깨졌지만 대부분이 기대했던 폭발도 없었고, 섬광이 튀지도 않았다고.
이 때문에 이 이벤트는 없었던 일이 되고, 여기에 쓰였던 부서진 텔레비전은 제작 기간 중 불단(佛壇) 대신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주인공들 까메오로 깜짝 등장!
<폼포코 너구리 대전쟁>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이 장면!
시코쿠의 세 장로를 주축으로 너구리들은 인간과의 최후의 결전으로 `요괴대작전`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너구리 대집회를 개최한다. 시코쿠의 장로들과 너구리들이 펼치는 화려한 `요괴들의 대향연`이 끝날 즈음,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깜짝 선물이 등장한다. 희한하고 독특한 각종 요괴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틈에 살짝 살짝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그것. 빗자루를 타고 나르는 `마녀배달부 키키`, 비행기를 탄 `붉은돼지 포르코`, 우산을 쓴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 등 우리에게 낯익은 만화 주인공들이 너구리, 요괴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각종 주인공 캐릭터들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이 한 장면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
너구리의 4가지 모습
기획 단계에서 언급되었던 많은 작품 중에 스기우라 시게루의 만화 「팔백팔 너구리」가 있었다. 기획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꼬마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로 `이 작품을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게 아쉽다.`라고 생각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작품 안에 스기우라 씨의 너구리 캐릭터를 등장 시킨다. 그것이「스기우라 너구리」. 감독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게스트 캐릭터가 아닌「주인공 너구리들이 정신적으로 `졌다` 라는 기분일 때 자연스럽게 이 모습이 되어 버린다」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였다. 결국, 마음속의 모습이 외견으로 보인다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이디어인 것.
이 발상은 한층 더 확장되어 역으로,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취하는 너구리의 모습과 일상적으로 취하고 있는「직립 상태」라고 불리는 직립 보행 모습, 인간들이 흔히 보아왔던 생물학적인 모습인「너구리」의 모습이 <폼포코 너구리>에서는 보여지게 된다.
씨네21 리뷰:
너구리의 눈으로 본 환경파괴와 인간의 조건 | ||||||||
‘뉴타운 프로젝트’로 도쿄 근교가 개발되기 시작하던 폼포코 31년. 숲이 점점 줄어들면서 살 곳이 없어지자 너구리들이 대책회의를 시작한다. 긴 회의 끝에 너구리들은 인간을 알기 위한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시작하고, 한동안 금지되었던 변신학을 되살리기로 한다. 한편 시고쿠와 사도의 너구리 장로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이용하여 각종 사고를 일으키고, 귀신 소동을 일으켜 잠시 차질을 빚는 것은 성공하지만 인간의 개발 전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구리는 그대로 멸망해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 세계의 틈바구니 어딘가에서 숨어지낼 것인가. 다카하다 이사오는 현실주의자를 자처한다. 이상주의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근원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반대로, 다카하다 이사오는 초현실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여 풍자하며 한바탕 굿잔치를 벌인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그대로 그려내고 풍자한다.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위협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노노케 히메>에서 말하듯이 인간과 자연의 생존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모순된 상황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들은 삶의 길을 택한다. 너구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멸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변신술로 인간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 너구리들은 인간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햄버거는 레몬티는 어쩌지? 라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리고 동의한다. 인간을 조금은 살려두자고. 그 풍자가 바로 다카하다 이사오가 추구하는 것이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비극적인 환경파괴의 연대기이자, 거기에 맞서 싸운 너구리들의 투쟁사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전통적인 만화 기법과 유희정신으로 이 고난의 연대기를 장쾌하게 써내려간다. 능글맞은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너구리들의 낙천전인 생활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너구리들은 두발로 서서 다니고,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변신 여우들은 긴자에서 고급 술집을 열어 인간을 홀리는가 하면, 아직 자연의 힘이 강한 시고쿠에서 너구리들은 신사의 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상주의로는 포섭하기 힘든 현실의 추레함들마저 다카하다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푸근한 서민적인 정서로 되살아난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화사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서민적이고 정겨운 서정이 가득 담긴 애니메이션이다. 생존을 위해 개발을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히 살려둔다. 다만 인간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정도에서. 그러나 인간의 자비라는 것은, 너구리에게는 결국 패배다. 너구리는 맞서 싸우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변신술뿐이다. 아무리 겁을 주고 소동을 일으켜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너구리들도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각자의 삶을 택해야만 한다. 변신 너구리는 변신술로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고,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은 또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너구리의 낙천성을 잃지 않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흥겨운 풍자와 익살이 가득하다. 너구리들이 연애를 하는 장면이나 인간으로 둔갑한 너구리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 너구리들의 회의를 묘사하는 장면 등에서는 재기가 빛난다. 시고쿠의 세 장로가 초빙되어 타마 숲의 너구리들과 합동으로 펼치는 요괴대작전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클라이맥스다. 여우 결혼식에서 전통적인 요괴까지 일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과 잔살들이 총동원되어 판타스틱한 퍼레이드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구리들의 요괴대작전은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이다. 너구리들의 둔갑술은 괴담이 아니라 진기한 구경거리일 뿐이다. 너구리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현실의 법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다카하다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통하는 것도 바로 그 최소한의 믿음이다.
1994년에 만들어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10여년 전의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발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잔뜩 보아온 관객으로서는, 조금 서툴고 촌스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전언(轉言)만은 지금도 변치 않는다. 인간과 맞서 싸우는 너구리들은,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면서 몇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곤타를 대장으로 한 강경파들은 일종의 테러를 시도한다. 변신을 할 수 없는 보통 너구리들은, 노승을 따라 춤추고 노래하는 종교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현실적인 너구리들도 두 부류가 있다. 변신술에 가장 능했던 쇼우키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가족을 이루어 살아간다. 폰키치는 너구리 그대로의 삶을 원한다. 크게 원하는 것 없이, 자연의 원형을 살린 공원의 한구석에서 여전히 과거와 같은 잔치를 벌이면서 흥겹게 살아간다. 어느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방식일까? 정답은 없지만, 다카하다 이사오는 결말에서 분명하게 방점을 찍어준다. 쇼우키치와 폰키치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앞뒤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즐거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보다 인간적인 너구리의 길인 것이다. |
첫댓글 잘하세요. 언제나 같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다음달에는 꼭 함께 해야지.